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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27화 (127/200)

제127화.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2)

“대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길래 걔들이 쫓는 거야? 뭐 보석 덩어리라도 돼?”

“아뇨, 정말 평범한 철 조각이에요. 특이할 것도 없는데….”

보석 덩어리?

만약 그랬다면, 쫓길 때 그것부터 이유로 생각했을 것이다.

척 보기에도 귀하고, 나라의 보물은 아닐지 자연히 생각해 보았으리라.

하지만 아니었다.

어찌 생각해도, 이 물건에 무언가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보여드릴게요.”

성시소는 그리 말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감출 이유도 없다는 듯이 당당히 꺼내 보인 그것을 보자, 일행들은 하나같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게 뭐야?”

“철판 조각…처럼 보이는데요.”

그것은 길이는 두 뼘, 폭은 손톱 하나 정도 되는 기다란 철판이었다.

가장 아래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것에 푸른색 장식을 감싸매고 있는 철판.

무언가 아름다운 조형이 되어 있는 듯 보이기는 했지만, 철 조각 자체만으로는 무언가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청유백만 제외하고.

“……부채 조각이다.”

“뭔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기에는 뭣한 물건이지. 내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요?”

백소하의 질문에, 청유백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성시소가 그랬듯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녀가 꺼낸 것과 완전히 동일한 크기의, 새겨진 문양만 조금 달라 보이는 물건을 말이다.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녹운룡이 지니고 있었다. 이 형태, 이 구멍, 게다가 여러 개 존재한다면….”

“…확실히 부채처럼 보이는군요.”

두 개를 이어 붙이고, 십수 개의 조각이 더 있다고 가정한다면 분명히 그리 보였다.

허나, 그게 무어 중요할까.

부채 조각이느냐고?

그깟 모양 맞추기와 다름없는 추론은 저잣거리의 아이들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에 대관절 어떤 용도가 있는가.

대체 무슨 가치가 있기에 사마신교가 저것을 쫓고 있느냐는 사실이었다.

“백소하, 아는 거 있어?”

“으음… 모르겠습니다. 뭔가 이렇다 할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적영의 질문에 백소하는 청유백의 것과 성시소의 것을 번갈아 보며 고민했다.

다만,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 성시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혼란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쫓기게 되었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게 하나 더 있다니.

그리고 그게 뭔지 알고 있다니?

“자, 잠깐만요…….”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에, 성시소는 당황하며 손을 들었다.

“잠깐만 들어주세요. 여러분은 대체 어디서 오신 분들인가요?”

너무나도 이상했다.

무엇 때문에 쫓기게 되었는가.

그것을 알아오는 것까지는, 그래 이상할 것 없다.

허나 자신이 이 증표를 꺼내 들자마자 무엇인지 안다는 양 행동하는 모습이라니.

‘그건 마치….’

일부러 이것을 노리고 접근한 것 같지 않은가.

성시소는 친구에게서 받은 그 증표를 꽉 쥐며 고개를 들었다.

일행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 눈빛을 나누는 듯 보였고, 가장 앞에 있는 적영이 대꾸했다.

“꼬마 아가씨, 그걸 이제 와서 묻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 그렇지만요…….”

적영의 일침에 성시소는 고개를 숙였다.

방랑자에게 출신을 묻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가문에 있던 식객들도 대체로 그런 반응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묻지 않았다.

그저 함께 움직여만 준다면, 그것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뭐, 계획적으로 널 마주쳐서 구해준 건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둬. 그건 정말 우연이었으니까.”

“그런가요…….”

성시소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적영의 손길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잖아.’

설마 나쁜 사람들이겠어?

원하는 게 있었다면, 진작에 다 죽이고 가져갈 수도 있었을 텐데.

성시소는 그리 결론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유백의 말이 이어졌다.

“어찌 되었든, 결론은 명명백백하지. 쫓기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라는 사실 말이야.”

“그, 그럼 그것을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걸 버렸다고 누가 소문이라도 내준다던가?”

“그, 그건…….”

차 호위는 대꾸도 못하고 쭈그러졌다.

소문?

뭐, 굳이 원한다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돈만 주면 무슨 이야기든지 부풀려줄 바람잡이들은 주점만 가도 한가득이니 말이다.

그러나 차 호위는 그 사실을 몰랐고, 청유백은 굳이 그렇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미쳤다고 놈들 좋을 일을 하나?’

부채 조각은 챙겨야만 했다.

놈들을 엿 먹이는 것도 엿 먹이는 것이지만, 천화의 기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잠깐 이리 줘봐라.”

“네? 네….”

청유백의 요구에 성시소는 잠깐 머뭇거렸다.

하지만 잠깐이라는 말에 이내 청유백에게 그것을 내밀었고, 청유백은 지체 없이 부채 조각을 받아들었다.

‘지난번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 과연 지금은 어떨까.’

이 조각들이 천화와 모종의 연관이 있음은 명백했다.

지난번 반지를 만졌을 때처럼, 이번에도 무언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는 한 개의 조각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개.

‘한 개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두 개는 다를지도 모르지.’

청유백은 그 두 개를 포개어 조금이나마 부채의 형태를 이루어 보기도 하고, 양손에 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으음.]

천화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지 멋쩍은 침음만을 삼킬 뿐이었다.

‘…두 개로도 모자란 건가?’

아니면, 어쩌면 천화의 부채이기는 해도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철 조각일 뿐인 건가.

청유백의 고민 사이로 천화의 말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다. 분명히 무언가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구나.]

‘지금은 필요 없다는 거군.’

쯧.

청유백은 가볍게 혀를 찼다.

뭐, 괜찮다.

당장의 일이 조금 나중으로 미루어졌을 뿐이니 말이다.

사마신교 놈들이 이것을 갖고자 한다는 말은 즉, 놈들을 조지면 이것을 찾을 수 있다는 말.

‘목표는 생겼다.’

그렇다면, 그것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면 그뿐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유백 개인만의 목표였다.

눈앞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여전히 없었으니, 성시소는 청유백에게 부적을 돌려받으면서도 불안에 찬 채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당장 떠나야 하나요?”

“아니, 그건 아니다. 추적자는 없고, 설령 습격이 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문제는….”

“문제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반문에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마신교가 성시소를 쫓는다는 것.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시소가 성씨세가라는, 강력한 가문의 규수라는 것 또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문제가 있다면.

“소문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소문이라는 녀석은 누구의 귀에든 들어가고, 저잣거리의 가담항설로 주워섬겨지는 이야기다.

사마신교가 성시소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산적은 물론, 동네의 한량들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아무나 아는 정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 누구나 아는 정보.

누구나 아는 소문을─

정작, 그녀의 아버지인 성무련은 알지 못했단 말인가?

그 강성한 성씨세가의 가주가?

‘아니, 그럴 리 없지.’

분명 안다.

그리고 알았다면, 자신의 딸이 위험에 처했다는 정보를 습득했다면,당연히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정상이리라.

어떠한 방법이든 상관없다.

관의 연줄을 이용하든지, 직접 군사를 끌고 나오든지, 식객으로 머무는 고수에게 부탁하든지…….

어떠한 방법이든, 성씨세가가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야만 했다.

허나, 지금껏.

성시소가 서역에서 출발하여 이녕을 거치고, 천산을 넘어 이곳 신원에 다다를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자기네 금지옥엽이 습격받는데, 지금까지 고수 하나 보내지 않았다고?”

“……!”

“너무 안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성시소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웠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과할 정도로 잘 안다.

차 호위도 그것은 잘 아는 바였다.

“분명 그렇습니다. 가주님께서 아셨다면 몇 번이라도 구원병을 보내셨을 겁니다. 아니, 고수들을 이끌고 직접 나오셨을 게 분명합니다!”

비록 습격으로 다들 돌아오지 못했지만, 서역으로 가는 길의 호위를 수십 명이나 붙여 줄 정도로 성시소를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였더랬다.

그런 그가, 아직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사실이었다.

녹지연이 고민의 신음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으음, 그렇다면 그 말은 즉…….”

“그래. 성씨세가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 * *

사시사철, 밤낮을 불문하고 성씨세가의 대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아부하러 찾아온 상인, 연을 트러 찾아온 귀족, 때로는 몸을 의탁하러 찾아오는 고수까지.

명실상부 서역과 중원을 잇는 허리인 만큼, 그 가문의 불빛은 언제고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에 가득하던 활력이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채였다.

이리 변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다.

그래, 아마도─

가주의 옆에, 그 섬뜩한 ‘하얀 사람’이 함께하기 시작한 이후였던가.

“들었어? 결국 아무도 보내지 않기로 하셨대.”

시비는 속닥이며 자신의 귀로 들었던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해 주었다.

따님을 그렇게 사랑하던 가주가, 장로와 식객들의 요청에도 결국 병사를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아가씨는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그것보다도 주인마님이 걱정이시지. 그 하얀 사람 봤어? 눈만 마주쳐도 소름이 끼치는 게…….”

“쉿,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어디서 듣고 있을 줄 알고.”

“정말,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가문의 무사들은 어딘가 모르게 날이 서 있고, 식객이던 고수들도 당장 날뛰지 못해 칼을 가는 듯 보였다.

마치, 집안 전체를 감시하는 듯한 눈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거진 한 달쯤 되었던 것 같았다.

그 하얀 사람이 가문에 찾아오고, 갑작스레 가주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 하얀 사람… 처음에 다른 사람이랑 같이 오지 않았었어?”

“아, 그 초록색 옷 입은 음침한 남자 말이지?”

“그래! 그런데 언제부턴가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돌려보냈나 보지 뭐. 주인마님께서 원래 아무나 식객으로 받지는 않으신다잖아.”

“역시 그런 건가…….”

그래, 괜한 걱정일 테다.

아가씨를 구하러 가지 못하는 것도, 분명 주인마님께서 무언가 생각이 있으신 것임이 분명했다.

한낱 사용인에 지나지 않는 시비들이 모여 그런 것을 걱정해 봤자, 아무런 것도 변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문득.

“무슨 재밌는 얘기 해?”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도 없이, 갑작스레 귀 바로 옆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겁에 질려 새파래진 동료들의 얼굴이었다.

시비의 눈이 천천히 돌아가며, 귓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새하얗다.

복장, 피부, 머리칼, 눈, 그 모든 것이.

나아가, 그 정신까지도 새햐얀 듯 보이는 사내였다.

“하, 하얀 사람…….”

“정말, 그런 바보 같은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나는….”

“자, 잘못했어요. 부디 용서를….”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럴 엄두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용서? 에이, 무슨 그런 재미없는 말을 하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내의 손이 시비의 얼굴을 감쌌다.

귀에서 시작해서, 볼, 코를 감싸고, 손가락 두 개가 눈꺼풀 위를 지나쳤다.

그리고는.

“나는 교아라는 이름이 있다고.”

콰득.

사내의 소매가 붉게 물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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