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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22화 (122/200)

제122화. 보름달이 뜬 밤에 (2)

“내겐 무엇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죽여라!”

“안다. 빌어먹을,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나? 하나같이 특색이라고는 없군.”

─빠각!

청유백이 움켜쥔 복면인의 목이 거친 소리를 내며 꺾였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해서 따라붙은 이들을 고문하며 안 것이 하나 있다.

쫓는 이들의 배후?

쫓기는 목적?

뭐, 그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면 오죽 좋았겠느냐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알아낸 것은 딱 하나였다.

이 새끼들, 입이 정말 무겁다.

[풋,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게지.]

천화는 자신이 직접 뛰는 것 아니라고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만, 청유백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치밀었다.

무슨 고문을 해도 입을 닥치고 있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죽여 달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에 이르면 없던 진실이라도 만들어내 성토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이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답하는 놈이 단 한 놈도 없다니.’

몇 놈을 잡아 이미 많은 것을 해 보았다만, 그중 입을 연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웬만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 테다.

가령, 뭐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따위가 있겠다만─

지금은, 당연히 그딴 건 아닐 테고.

[푸흐흐, 광기에 가까운 무언가겠지. 그런 건 몇 없느니라. 명예나… 영광? 하지만 그런 건 지닐 수 있는 자가 적을 테고!]

천화는 그렇게 장난스레 말하더니, 조금은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가능성 있는 것이라면, 역시 단연 신앙밖에 더 있겠느냐?]

‘……신앙이라.’

신앙.

참 모호한 말이다.

어렵고도 난해하며, 때로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도 같은 말이다만….

‘…잘 모르겠군.’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자신이 몸을 담는 마교도 교단이라 불리우는 단체이지만, 천자마를 진실로 신앙하는 자는 몇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집결과 강함의 상징으로서 작용할 뿐, 마교는 오히려 각자의 공통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가까웠다.

신앙은, 그것을 묶는 도구일 뿐이고 말이다.

마교의 역사에 신앙이 목적이 된 적은 없었기에, 신앙으로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천화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만한 인원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다른 이유는 찾기 힘들 테지. 허나 신앙이라…….’

도대체 어떤 단체가 이 정도로 사람을 신앙으로써 부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단체에 쫓기는 저 성시소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근 며칠 간, 청유백은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생각보다 큰 거물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생각해야 했다.

성씨세가? 청유백도 안다.

백 년 전에도 존재했던 가문이었고,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당대에도 위세를 떨치던 가문이었다.

유지, 지주라는 족속들이 본디 그런 사람들 아니던가.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뿌리를 내려 살아온 사람들 말이다.

허나, 저쪽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해서 덤벼들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들보다 더 큰 무언가의 세력이 얽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앙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어찌 되든 뒷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소리니 말이다.

천화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 어디의 왕실이라든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나?’

[비약이라니? 네놈도 황돈 그치에게 듣지 않았더냐! 그 아이의 일정에 그런 것도 있었다고 말이다. 어디 다른 나라 왕녀와 만났다며?]

‘분명 그랬긴 했다만…….’

헌데 뭐 왕족을 죽이고 도주했거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죽이려 쫓아오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전부 색목인이 아니라 중원 사람들 아닌가. 서역에서 쫓아온 암살자라면 그쪽 사람이겠지.’

[흐음, 그도 그렇긴 하구나.]

‘지금은 주의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만…….’

청유백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검들을 검집에 납검했다.

이제 주변은 조용했다.

최소한, 청유백이 느낄 수 있는 반경하에서는 말이다.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버릴지, 계속 데리고 갈지는 조만간 선택해야겠지.”

* * *

일행은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금 걸었다.

오늘은 평소보다도 이른 감이 없잖아 있었다만, 백소하에게서 희망찬 소식을 들었기에 힘차게 박차를 가했다.

“아으… 정말 오늘은 지붕 있는 데서 잘 수 있는 거 맞지?”

“정오 즈음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신원에는 성벽이 있어 검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힐끗.

백소하는 황돈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까딱이자, 황돈은 곧장 알아듣고는 말을 받았다.

“아아! 걱정 마시오. 소인, 말석이나마 금성상단의 후계자. 다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오.”

미리 매수해 놨다는 소리다.

성시소는 적영에게 귓속말하며 ‘방법이 뭐예요?’ 따위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만, 적영은 난처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어린애한테 매수가 뭔지 설명해서 좋을 게 무어 있겠는가.

대신, 발 빠르게 말을 돌렸다.

“아가씨, 덥지는 않니?”

새벽이라 지금은 선선했지만, 계절은 한창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성시소는 얼굴을 감추느라 외투 하나를 깊이 둘러쓰고 있었으니, 훨씬 더 더울 법했다.

성시소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서역은 여기보다 훨씬 더웠거든요.”

“아! 그 사막 이야기 말이지!”

“아, 저도 들어 봤어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요. 천산만큼 거대한 모래 더미가 있다면서요?”

적영과 성시소의 한담에 어느새 녹지연까지 끼어들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 나도 그림으로는 봤습니다. 별로 가보고 싶지는 않지만요. 오히려 바다라는 곳이 더 흥미 넘치지 않습니까? 모래 대신 물로 가득하답니다!”

그리고 거기에 백소하까지 한 술 더 뜨는 꼴이었다.

가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사막이든 바다든, 두 쪽 다 실상을 아는 황돈과 청유백은 무어라 대꾸할 것을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느 쪽이든 별로 환상을 가질 만한 동네가 아니오만…….”

“…뭔들 피똥 싸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

하지만 굳이 일러서 환상을 깰 필요도 없을 테다.

대신, 다른 아름다운 현실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청유백이 입을 열었다.

“신원도 신원 나름대로 명물이 많아. 중원의 대도시와는 다른 풍취가 있지.”

음식이라든가, 절경이라든가.

청유백은 그중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절경이야 뭐, 천산에서 동서남북 아무 데나 바라봐도 보이는 게 절경이니 말이다.

신원은 서역과 중원이 교차하는 장소라서, 음식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

오로목제까지 가면, 아무래도 중원에 훨씬 가까워지는 탓에 음식도 그 쪽으로 기운다.

“호오, 소협께서는 여행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되더이다.”

“마치 눈으로 보신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저희도 몇 달 전에야 들렀습니다만,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신원.

천산 근처의 마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말 본격적인 도시다.

당연히 몇 층은 되는 고급 기루도 있거니와, 각종 상단이나 단체의 중간 거점으로서 이용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청유백이 찾고자 하는 무리가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의 화제가 다른 것으로 돌아갔을 때 즈음, 청유백은 문득 백소하에게 물었다.

“백소하. 산상만월(山上滿月)이라고 들어 봤나?”

“예? 뭐… 그야 알기는 하지요. 백 년 전에 활동했던 살수 집단 아닙니까. 그건 왜요?”

“야황(夜黃)이 언제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야황…이면, 산상만월의 그자 말이지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오래 살았거든요. 이십 년이 채 안 될 겁니다.”

“흐음…….”

그런가.

이십 년이라.

길다면 길다만, 한 사람이 한평생 쌓아 왔던 것이 무너지기에는 아직 짧은 시간이다.

“산상만월은 아직 남아 있나?”

“그럴 겁니다. 우리는 그들과 거래를 하지 않지만, 간혹 가다 그들의 움직임이 포착될 때가 있거든요. 결코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아니, 근데 그건 진짜 왜요?”

누구 하나 죽일 생각이신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백소하를 무시하며, 청유백은 떠나기 전 청걸명과 했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렸다.

* * *

교주가 죽었다.

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말에 청유백은 이렇게 물었었다.

“정말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까? 그 정도로 실력 있는 자라면 무언가 표식을 남겼을 법도 한데요.”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했다.

실력 있는 자일수록 뒤를 잡히지 않을 자신 또한 있는 법이고, 개중 집단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고의적으로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자신은 이만큼 뛰어나다.

이런 일도 해낼 수 있다.

라며, 일종의 과시를 하는 셈이다.

그로 인해 몸값을 올리고, 혹자는 타인의 입에서 회자되는 자신의 악명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청걸명이 반문했다.

“사마신교가 외부의 살수를 썼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마신교 또한 본교에서 갈라져 나간 세력입니다. 차라리 정면 승부에서 교주를 이겼다면 모를까… 그 누구도 모르게 잠입하여 교주의 목을 따고 도망칠 수 있는 기술이라니요.”

“으음… 네 말이 옳기는 하나….”

마교의 마공은 대부분 은밀성보다는 그 파괴력에 중점을 둔다.

은밀한 기술이 없지는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주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연구와 발전에 있어 뒤처지는 감이 있었다.

‘헌데 사마신교가 마교에서 분리된 지는 채 백 년이 되지 않을 터.’

고작 그 시간 내로, 그런 어마어마한 암살 기술을 만들고 암살자를 길러내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차라리, 외부의 특급 암살자를 기용하는 것이 싸게 먹힐 것이다.

문득, 천화가 입을 열었다.

[흐음, 본녀가 만일 사마신교의 사람이고, 정말 살수가 그들의 사람이라면… 본녀는 오히려 흔적을 남길 것이다.]

‘어째서?’

[당연한 것 아니냐. 그것 외에 어떠한 기척도, 검흔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면,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의심케 해서 시야를 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렇군.’

가령 이 의심암귀의 현장에 매화 무늬라도 하나 새겨져 있었다면 화살은 화산파에게 돌아갈 테고, 천(天) 자와 검 한 자루라도 새겨져 있었다면 무림맹을 의심했을 것이다.

확실히, 이 또한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다른 단서를 무엇도 남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

오직 그것만을 기만하듯 남겨 놓을 수 있는 암살자라면, 분명히 유효한 방법이 될 테다.

하지만 청걸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다. 정말 그 무엇도 없었어.”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야, 뭐.

당장 눈앞에 놓인 사마신교의 흔적을 쫓을 수밖에 없을 테다.

청유백은 그렇게 떠나려고 했다.

허나 문득, 청유백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청유백은 뒤를 돌아, 다시 질문을 입에 담았다.

“허면, 그날의 달은 어땠습니까?”

“…달?”

“예. 하늘에 뜬 달 말입니다.”

“그건… 만월이었다. 그래. 그날의 달빛이 밝아 기억하는구나. 오랜만에 보는 명월(明月)이었지. 사람이 죽을 만한 날이 아니었어…. 헌데, 그것은 어찌하여 묻느냐?”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청걸명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청유백을 바라보았고, 청유백은 잠깐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녀석, 싱겁기는.”

청유백은 의문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청걸명을 뒤로하며 창운각을 걸어 나왔다.

만월, 보름달이라.

‘하필이면 가장 밝은 밤, 야행을 하고 암습을 해도 가장 위험이 높은 날에 거사를 행한다…라.’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과시다.

능력에 대한 과시이며, 동시에 마교의 무능에 대한 멸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쩌랴.

실제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유린당하지 않았는가.

아무런 단서도, 추적의 증거도 없이 일 년 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알고 있었다.

단 한 명.

이 말 같지도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암살자.

즉, 마교 한복판에 스스로 걸어 들어와서, 교주의 목을 따고 유유히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실력자를─

한 명, 알고 있기는 했다.

게다가 굳이 만월의 밤에 일을 행하는, 저 고집까지 똑같은 인물을 말이다.

‘그래, 야황(夜黃)….’

그라면 가능할 테다.

전성기의 그를 기억했다.

무신과 천마가 날뛰던 시대에서, 그 어떤 기억의 축적도 없이 매 생에서 제 자리를 항상 지켜내던 괴물을.

밤의 황제라는 이명을 쓰며 당당하게 활보해도, 관에서조차 그를 잡아가지 못했던 자를 알았다.

천화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야, 짐작 가는 이가 있느냐?]

‘아니? 백 년 전 사람인데 이미 뒤졌겠지.’

[멍청한 놈이!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왜 그렇게 있는 척 없는 척 다 해가며 고민하는 것이냐. 허세만 늘어서는!]

‘그놈이야 뒤졌겠지만, 후예는 남아 있을 것 아니냐.’

도둑들은 도둑만의 사회가 있고, 장사치는 장사치만의 사회가 있는 법이다.

살수도 마찬가지다.

어찌 되었든 간에, 살수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같은 살수이리라.

‘설령 그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니면 아닌 대로, 과거의 해후 정도는 풀러 갈 수 있는 법이다.

“산상만월(山上滿月). 그들을 찾아야겠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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