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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17화 (117/200)

제117화. 뜻하지 않은 만남 (2)

“돌아가서 준비하거라. 긴 여행이 될 것이니.”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지령이 있을 것이며, 대외적으로 시험을 위한 원정이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라는 것까지.

몇 가지 경고가 덧붙여진 뒤였다.

“아, 그리고 유백아. 너는 잠시 남거라.”

청명휘와 청률이 먼저 나가고, 청유백은 그의 부름에 뒤를 돌아 보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이, 어떤 화두를 던질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확히는, 청명휘와 청률의 걸음이 창운각의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주변에 그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게 되고 나서야 청걸명은 입을 열었다.

“칭찬을 먼저 해야겠지. 이번 일은… 잘해 주었다.”

“녹가주의 건 말입니까?”

“그래. 그걸 포함하여, 사마신교의 침입자를 격퇴한 것까지 말이다.”

후우.

청걸명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상당한 수준의 포상이 내려져야 할 공임이 분명하나… 그것이 상당히 곤란하게 되었다.”

“이리 따로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이리 말한다는 것은, 즉 다른 누군가에게 말이 들어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청률은 그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확실히 기이했다.

자신이라고 해도, 그만한 상대를 꺾었다면 당연히 어떻게 했느냐, 어땠느냐 등의 무용담을 가장 먼저 물어볼 것이었다.

청걸명이 그 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모두에게 함구령이 내려졌다. 다섯 가주 모두의 합의로 말이다. 아까 명휘의 복장을 보았느냐?”

“예. 명백한 전투의 흔적이더군요.”

“이번 일을 조용히 덮고 싶어 하지 않는 자들이 꽤 있다. 공연히 녹가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놈들이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픈 욕심.

제 주제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고자 하는 과욕.

머리가 그것으로 들어찬 놈들에게, 이성적인 설득이 먹힐 턱이 없었다.

청걸명은 말을 이었다.

“허나 그것은 결코 좋지 않다. 사마신교라는 적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고작 권력 다툼 탓에 분란을 만들 수는 없어.”

새로운 머리가 생겨나면, 당연히 그에 따른 분란이 이어서 생겨난다.

시기와 질투, 차별 탓에 말이다.

그러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떤 머리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대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저, 평상시 같은 나날을 말이다.

“…해서, 이번 일은 공연히 포상의 자리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이해합니다.”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썩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상관없다.

이리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도 자신에게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공연히 떠들어서 논공행상의 자리를 만들어 봤자, 지금의 마교에서 청유백에게 내려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황금.

의미도 없는 돌조각뿐이다.

‘그럴 바에는 녹지연이 세력을 온존하는 것이 훨씬 낫지.’

차라리 그녀가 개인적인 조력을 해주는 쪽이 일만 배 낫다.

청유백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허나, 청걸명의 말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턱.

청걸명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니, 이걸 주겠다.”

“이건…….”

청옥으로 만들어진 손바닥 크기의 옥패.

붉은색의 비단으로 장식된 그것에는, 한눈에 보아도 위엄이 서리는 늑대가 양각되어 있었다.

“청랑패(靑狼牌)다. 명휘에게도 주지 않은 물건이나… 공에는 마땅한 상이 따라야 하는 법.”

청유백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어 살펴보았다.

이번 생에 본 적은 없는 물건이나, 청유백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청랑패.’

청가 가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임과 동시에, 대를 이어 후계자에게로 넘어가는 신물.

청유백의 대에도 존재했던 청가의 가보였다.

“가져가거라. 필요할 것이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 크나큰 공을 그저 묻어 버려야 한다는 것에 통탄스럽기 그지없으나, 이것으로나마 아비의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하는구나.”

“무얼, 이미 충분합니다.”

청유백은 그렇게 떠나려고 했다.

마교의 영역은 넓었고, 백 년이 지나 규모가 축소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넓이는 상당했다.

준비는 꽤나 오래 걸릴 터였다….

허나 문득, 청유백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청유백은 뒤를 돌아, 다시 질문을 입에 담았다.

문득 떠오른 의문 탓이었다.

“헌데, 아버지. 그 암살 현장 말입니다…….”

“음?”

청걸명은 귀를 기울였고, 두 사람은 무언가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청유백이 자리를 뜬 것은, 꽤 긴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럼, 그리 움직일 테냐?]

‘그게 최선이겠지.’

* * *

오로목제(烏魯木齊).

서역과 중원을 잇는 사주지로(絲綢之路)…. 다시 말해, 비단길을 잇는 교통의 요지 중 하나다.

나름 대도시이고, 마교의 지부 또한 존재하여 엄연히 마교의 세력권 내에 있는 도시였다.

동시에, 사마신교의 실마리가 있노라고 점찍어진 도시 중 하나이며─지령받은 청유백의 목적지였다.

‘분명 긴 여행이 될 테지.’

아마 넉넉잡아 가는 데에만 한 달 정도는 족히 걸릴 테다.

때문에 짐을 싸고, 소혜에게 언질을 남기고, 일귀와 이찬, 삼아를 청가에 맡겨 놓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아침에 이르렀다.

꽤나 신선한 기분이었다.

백 년이나 지난 사회, 백 년이나 지난 천하.

어떠한 모습이 되어 있을지, 그것을 기대하며 잠을 청하는 것을 퍽 즐거운 경험이었다.

…음, 정확히 정정하자면.

대충, 방금 전까지는 그랬었다.

“……그래서.”

지금 청유백의 눈앞에는, 불만스레 발을 탁탁거리며 도끼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는 적가의 여인이 있었다.

당찬 표정이 인상적인…

무엇을 숨기랴. 적영이었다.

적영은 짜증스레 백소하를 바라보며 추궁했다.

“왜, 모인 게 이렇게인데?”

“그걸 나한테 물으셔도…….”

“너희 백가가 정했을 거 아냐! 쓸모도 없는 백소하!”

“아악! 때리지 마십쇼! 맞긴 하지만,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걸 정합니까?! 아악! 아, 뼈! 뼈 맞았어!”

투탁거리는─일방적으로 처맞는 것도 그리 표현할 수 있다면─ 적영과 백소하를 바라보며, 청유백은 흐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일행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니라. 본녀도 그렇다.]

청걸명 그 정정한 양반이 벌써 치매가 온 건 아닐 테고, 분명히 고의로 빼먹었다는 건데…….

지끈거리는 미간을 짓누르는 청유백에게, 옆에서 웃던 녹지연이 말해 주었다.

“미리 말해 놓으면, 어떻게 해서든 꼼수를 부리려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일 테니까요.”

“…….”

그야 그렇겠지.

너무나도 훌륭한 예시가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이곳에, 출발 장소로 배정받은 장소에 모인 인원은 총 다섯 명.

청유백 본인과 녹지연, 백소하와 적영…….

그리고, 멍청하게 멀뚱멀뚱 서 있는 황돈까지.

“골 때리는군…….”

당연히 무작위는 아닐 것이다.

효율이 좋은 대로, 실력자가 골고루 분산되게끔 조절했을 테다.

그리고 덤으로,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끼리 조를 짰을 테다.

줄을 섰다든가, 이미 친분이 있다든가 하는 등의 사유로 말이다.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닐 테지. 사마신교의 전력이 강대함을 아는데, 아이들을 각자 찢어 보내면 피밖에 더 보겠느냐?]

‘하긴, 고작 교아라는 놈 하나에게도 그리 당했으니.’

비록 진법가라는 변수가 있기는 했다만, 결국 졌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혼자보다는 다수가 나을 것이고, 다수라면 능히 그들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씩 끼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적철진이라든가.

가령… 청명휘라든가.

그리고 이 조에서는…….

‘…나인가?’

청유백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실력을 재단해 보았다.

황돈과 백소하야 말할 것도 없고, 녹지연은 유능하긴 하나 아직 만전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적영…도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적철진이나 적우각에 비하면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다.

천재와 근육 돼지.

적영이 약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기이한 것일 뿐.

청유백의 시선을 느낀 적영도 비슷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에게 고개를 돌려 이죽거렸다.

“언제부터 당신이 그리 고평가를 받았었는지 모르겠네.”

“나도 궁금한 일이다. 윗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말이야.”

기실, 청유백의 행보는 이목이 집중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용의 문을 돌파하고 나온 것.

귀아대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가르친 것.

나아가, 이번에는 녹가주를 제압하여 끌고 나온 것까지.

사람들의 눈앞에서 그 무위를 보인 적이 없을 뿐,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도리어 청유백의 평가가 박한 것이 기이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청유백은 고개를 들어 의문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뭐가?”

“너는 왜 나를 도왔지?”

청유백과 적영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어릴 적 무언가의 기억이 있는가 싶어 천화에게 물어도, 천화도 모르겠다는 대답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얼굴 정도야 알았다만, 이렇다 할 교류는 복마동에서 마주쳤던 그것이 처음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그다지 좋은 기억도 아니었던 듯한데.

의외로, 적영의 대답은 단순했다.

“돕기는 무슨…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 적가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난 그걸 해결하려 한 것뿐이야. 절대, 결코! 당신 같은 사람을 도우려 한 게 아니거든?”

“그런가.”

청유백은 대충 대꾸했다.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성격이다만.

뭐, 알게 뭔가.

청유백이 그렇게 고개를 돌리자 적영은 청유백의 어깨를 붙잡으며 따지고 들었다.

“이봐, 한 번쯤은 똑바로 대답할 수 있지 않아? 고맙다면 고맙다. 미안하다면 미안하다!”

“흐음, 퍽 난폭하군. 내가 밉보일 짓을 했던가?”

“남의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하! 모가지 위에 달린 건 장식이야?”

“그런가? 선처하지. 헌데, 도운 것이 아니라면서?”

“이 씨…….”

아악!

적영이 뒷목을 붙잡고 비틀비틀 나무에 기대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양 목표를 바꿔 삿대질했다.

손가락이 향한 대상은 녹지연이었다.

“그리고 너!”

“네?”

“너는 왜 여기 있는 건데? 윗분들이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너랑 나를 같은 곳으로 보내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뭔가 수작질을 부린 거지?! 저, 저놈이랑 같이 가려고!”

“하하, 무슨 말씀을…. 안타깝지만, 저는 당장 병상에서 일어난 게 어제였는걸요? 어르신들의 판단이시겠지요.”

녹지연은 청유백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고, 적영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한탄할 뿐이었다.

“아악! 짜증 나! 그냥 뒤지게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지!”

적영은 구시렁거리며 땅을 걷어찼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윗선에서는 다 결정이 났고,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다.

청유백은 준비된 말에 여장을 올리다가, 문득 백소하에게 물었다.

“저 둘은 왜 앙숙인 거지?”

“앙숙으로 보입니까?”

“으음…….”

솔직히,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백소하가 적영에게 처맞는 것이 싸움으로 성립되지 않듯─보통 사람들은 그걸 구타라고 부른다─적영이 녹지연을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저건 딱히 앙숙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일방적인 혐오?”

“뭐, 그런 느낌에 가까울 겁니다.”

녹지연은 어느샌가 이미 그녀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돌보고 있었고, 적영은 그 꼴을 보며 다시 열불을 올리는 모양새였다.

척 보기에도 사이가 좋다고는 못 하겠다만, 최소한 녹지연은 적영에게 이렇다 할 적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백소하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나불거리기에는 썩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네놈이 직접 물어보십쇼. 아니면 옆에서 보든가요. 여행길이 짧지는 않을 테니, 자연히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뭐, 상관없는 일이었다.

굳이 캐물어가며 알고 싶은 사안도 아니었고, 그럴 만한 일도 아니리라.

여장을 거의 다 꾸리고,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말에 올라탔다.

서로서로 대충 앞으로의 계획을 어찌할지, 우선 어디로 향할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등 뒤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소인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하오만.”

그곳에는, 안장에 다리 하나를 걸친 채 낑낑거리며 말에 올라타려 시도하는 황돈이 있었다.

“아… 있었구나?”

“…….”

적영의 대꾸에, 황돈은 조금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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