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16화 (116/200)

제116화. 뜻하지 않은 만남 (1)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주가 부른다면 당연히 뭔가 일이 있어서겠지만, 구태여 그 소식을 지금, 이놈을 통해 듣고 싶지는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그때쯤 들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청유백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모른다. 우리를 부르신다는 말만 듣고 가는 것뿐이야.”

“아 예… 그렇습니까.”

아는 것도 없군.

쓸모 없는 놈 같으니.

청유백이 등을 돌려 터벅터벅 걸어가자, 청률은 청유백의 뒤를 쫓으며 의아한 듯 물었다.

“허, 헌데 뭔가 쌀쌀맞지 않으냐?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던가?”

“잘못한 거….”

글쎄, 팔 부숴먹은 것을 이제 와서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뒤끝이 심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좋은 감정이 있느냐 묻는다면, 글쎄.

무슨 이쁜 짓을 했다고?

하지만 그걸 굳이 입으로 내뱉을 필요도 없는 노릇.

청유백은 대충 대꾸했다.

“설마요. 기분 탓이겠지요.”

“그, 그러하냐….”

* * *

창운각(蒼雲閣).

평 부인의 처소였던 곳임과 동시에, 그녀가 쫓겨난 이후로부터는 공실이 되어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공연히 알릴 일이었다면 회의실인 청천각에서 불렀을 터.’

굳이 듣는 귀가 없는 장소에서 불렀다는 것은, 남에게 떠벌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일 테다.

청가주, 청걸명 자신을 호위하는 이들에게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과연.

“앉거라.”

“…….”

창운각의 꼭대기에서 바깥을 바라보던 청걸명은, 짐짓 보기에도 가벼운 주제를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렴. 두 번 이야기 하고픈 사안은 아니니 말이다.”

청유백과 청률은 비어 있는 자리에 다가가 각자 자리를 잡았다.

문득, 청률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겁니까?”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아니, 설명할 필요는 없겠구나.”

“예?”

청걸명은 대답 없이 문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다음 순간, 문이 양 옆으로 크게 열어젖혀지더니.

한 명의 청년이 들어와 청걸명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거진 스물네다섯이나 될까.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가주, 임무를 완수하고 지금 당도했습니다.”

“그래, 어서 오거라.”

청가의 후계자임을 증명하는 청색 늑대 자수는 피로 물들어 거의 적색이 되어 있었고, 그 피는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듯 보였다.

얼굴에 묻은 피는 닦아낸 듯했다만, 아직 옅은 붉은색이 남아 전투가 있었음을 분명하게 증명했다.

‘저 자는…….’

청유백은 그를 알고 있었다.

한 번도 이리 마주한 적은 없었으나, 분명히 기억 속에 있는 자였다.

‘…청명휘!’

청가의 적자, 청명휘.

계속 말로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그였다.

청걸명은 그를 불러 자리에 앉게 시키며 물었다.

“어땠느냐?”

“별것 없었습니다. 계율대의 대원들이 워낙 우수하지 않습니까.”

청명휘의 상태를 보아하니, 방금까지만 해도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온 듯 보였다.

그것도 마교 내부의 인원과 말이다.

청걸명이 물었다.

“후환은 어찌 되겠느냐?”

“아마…….”

뒷일이 어찌 될지 상태를 묻는다니, 누가 들으면 퍽 우스운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후환이 두렵다면, 싹을 자르는 것이 기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을 테지.’

계율대가 아군의 규율을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고는 해도, 반항하는 모든 이들을 죽여 버릴 수는 없다.

아예 그들이 들고 일어나 ‘반역’이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느 정도의 본보기만을 세우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후환은 남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뒷일이 결코 곱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을 이미 상정하고 들어간다.

그것이 청가의 계율대였다.

청명휘는 대답했다.

“몇 달 정도는 있어야 할 겁니다.”

다시 말해, 몇 달 정도라면 저들이 세력을 취합하여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내버려 두어야만 한다.

그런 뜻이었다.

“…충분치는 않구나.”

“그때도 해결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그 일 때문에 너희를 부른 것이다.”

청걸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럽게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 결심한 듯 발을 멈추었다.

“…그래.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해야만 하겠지. 너희 중 아는 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모른다면, 이제부터 알아야만 하니 말이다.”

‘대체 무슨 거지 같은 이야기를 하시려고.’

‘꿀꺽.’

‘…….’

세 형제의 상반된 반응이 교차하며, 그들은 청걸명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청걸명은 결국 입을 열었다.

“지금의 마교에는 교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내뱉은 그 말.

청유백은 그의 말과 동시에 다른 이들의 안색을 살폈다.

청명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저 덤덤했고, 청률은 놀라며 대꾸하는 꼴이었다.

청률이 반문했다.

“예? 그게 무슨…….”

“현 교주, 이제는 선대가 되어버린 적무극 교주께서는… 불과 일 년 전에 피습당해 승하하셨다.”

일 년 전.

그만한 일을 무려 일 년이나 아무도 모르게 덮어 놓았었다는 뜻이다.

청걸명은 말을 이었다.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니까. 아는 이는 육대가의 가주들을 포함하여 채 스물이 되지 않았다.”

마교의 고위 인사.

마주급의 고수들을 포함하여, 그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마교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의 인사들.

비밀을 아는 것은 그들뿐이었고, 그들의 함묵을 의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테다.

청걸명은 청명휘를 돌아보았다.

“…물론, 알음알음 눈치챈 이들도 있었겠지. 어떠냐 명휘야, 너는 알고 있었느냐?”

“편찮으실지도 모른다는 짐작뿐이었습니다. 민중에 모습을 드러내시는 횟수가 확연히 적었으니까요.”

“그래. 그러했지. 유백이 너는?”

“보름 전에 알았습니다.”

“뇌옥에 침입했다는 그자의 입으로 말이냐?”

“예.”

[사마신교의 교아라고 했던가.]

백련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이명을 대는 놈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았던 녹지연은 차치하더라도, 백소하와 적영이 그의 존재를 가주들에게 증언했을 테다.

보름이나 지났으니, 가주들끼리도 나름의 대답을 내놓은 듯 보였다.

문득, 청률이 물었다.

“헌데, 왜 비밀에 부친 겁니까? 마땅히 흉수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단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서… 말입니까?”

“그래. 단서.”

청걸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교주가 죽었다는 말을 공표한다면, 마교는 어찌 움직이겠느냐? 아니, 어찌 움직여야만 하겠느냐?”

“그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범인을 찾아서 죽인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를 색출하여 삼족을 멸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는 수순이었다.

누군가가 싫다고 하여,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하여 수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교 전체가 그리 움직일 것이며, 끝날 때까지 모두가 피에 미칠 것이다. 전란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야.”

마교의 위엄과 기강.

마교의 존립 이유를 지키기 위해, 교도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 것이다.

교주가, 천마가 죽었다는데 그것에 복수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그 누구도 마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테니까 말이다.

허나, 청걸명은 어둡게 말을 이었다.

“헌데… 어찌해야 하겠느냐. 우리가, 누구의 입으로 말해야 하겠느냐? 흉수가 누구인지 그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으며, 알아볼 수 있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이다.”

복수?

좋다.

분노?

그 또한 좋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를 향한 복수이며, 어디를 향한 분노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전성기의 마교라면 괜찮았겠지. 목표 없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감히 마교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괜찮았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마교는 약해졌고, 그런 짓을 했다간 변방의 이리들이 물어뜯을 기회만을 엿볼 것이 눈에 훤하다.

분명 그럴 테다….

하지만, 청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러니까, 저 말은 즉…….

“…천하의 교주씩이나 되는 자를, 심지어 그 천인전을 쥐새끼 하나 들지 못하게 지키고 있을 호법들을 뚫고…….”

심지어, 어떠한 전투도 없이 뚫고, 스쳐 지나간 다음에.

“그 어떤 소란도 없이, 죽였다는 겁니까?”

청률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청걸명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믿기지 않겠지. 나도 그렇다.”

청걸명 자신을 비롯하여, 육대가 가주 전부가 믿을 수 없었더랬다.

어찌 그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믿지 못한다고 주저앉아도 변화는 것은 없다.

일은 벌어졌고.

결과는, 이미 참혹한 피로써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난 보름. 가주들과 몇몇 대주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청걸명은 설명을 이어갔다.

꽤 긴 이야기였다.

보름 전의 이야기.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이야기.

녹지연이 엮인, 녹가의 이야기부터, 뇌옥에 침입했던 그자, 교아의 이야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나아가─

결국, 사마신교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결국, 교주를 암살한 흉수도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의심하는 상태다.”

교주가 없다는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갔으리라는 염려는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백가의 자제조차 꿈에도 모르고 있던 비밀인데 말이다.

헌데 그 비밀이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것은, 확연히 그에 관련되었다는 의심을 살 법한 일이었다.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물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 아닙니까?”

“…그리 불러도 되겠지.”

청걸명은 생각보다 쉽게 시인했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야, 아무런 빛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 있다가 한 줄기 빛을 찾은 심정일 테니 말이다.

“허나, 아직 이것이 공표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가문 내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너희들뿐이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부른 것이고.

청걸명은 그리 말을 붙였다.

허나, 이번에는 청명휘가 물었다.

“하지만, 실마리를 잡았다 하여 정보대를 움직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마신교는 마교에서 떨어져 나간 편린이지만,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그 크기가 거대해졌다.

심지어 저쪽은 마교를 속속들이 잘 알지만, 마교는 사마신교의 본산 위치조차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

이런 상황에서, 대뜸 마교의 정보 조직을 움직여 사마신교를 조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대뜸 적에 대한 정보를 조사한다는 것은, 당연히 전쟁을 위한 것.

그리 된다면 당연히 사마신교 쪽에서도 방비를 갖출 테다.

“그래, 그래서 너희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다른 가문의 아이들도, 전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이다. 천마지회의 참가자… 전부가.”

방비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준비한 적을 치는 것과, 준비되지 않은 적을 치는 것은 그야말로 전혀 다른 적을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설령 준비할 기회를 주어 버렸다 할지라도, 그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에게 명한다. 분명, 다른 가문의 아이들 모두가 같은 말을 듣고 있을 테지.”

세 명은 직감했다.

세 번째 시험이었다.

교주가 죽었기에 다음 교주를 뽑기 위해서가 아닌, 그야말로 필요에 의한 시험.

“세 번째 시험은 토벌. 근래 마교 외경 지역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는 원인을 축출하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사마신교의 흔적이 뚜렷한 곳만을 선정했다.”

말뜻은 명확했다.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의심당하지 않을 명분도, 이유도 당장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기에, 그럴 명분이 있는 사람을 움직이겠다.

“실마리를 쫓아라. 해당 지부의 전권을 일임할 것이며, 이 일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 약속하겠다.”

그리고 천마지회라는 이름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명분이 된다.

갑자기 마교를 떠나 바깥으로 나가도 무언가의 시험이겠거니 할 수 있고, 몇 달 동안이고 두문불출해도 시험이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청걸명은 그렇게 말했다.

천마지회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최소한, 지금 당장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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