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10화 (110/200)

제110화. 네 죄를 헤아려라 (5)

‘솔직히, 인정한다.’

이곳이었기에 가능했다.

바깥에서 저자와 싸웠다면 백 번 싸워 백 번 패했으리라.

‘애초에 저자와 일대일로 싸우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았었지.’

마주가 괜히 마주던가?

독을 포함한다면, 녹운룡은 능히 천하에서 가장 강한 존재를 세어 백 위 안에 들 수 있을 테다.

그만큼 지금의 청유백과 녹운룡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고, 청유백은 처음에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녹운룡은 동이 틀 때 뇌옥으로 올 터였고, 그때에는 다른 가문의 가주들도 함께 올 것이 분명할 터….’

그러니, 그때 녹운룡의 비밀을 폭로하여 가주들로 하여금 녹운룡을 치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녹지연을 비롯한 이들이 난입하며 녹운룡의 계획을 흩트려 놓았고.

녹지연이 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될 수 있는가 가늠해보던 찰나, 이 굴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

녹가주 본인을 제외한 그 어떠한 존재도 출입을 허락지 않을 금역.

존재 자체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동굴을 말이다.

* * *

“왜… 왜냐! 어째서 죽지 않지?!”

이제 녹운룡은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회복?

그래, 만 번 양보해서 좋다 치자.

그것까지는, 녹운룡도 지식으로써는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마교에서도 잊혀진 기술이지만, 고대에는 ‘강시’라 하여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이 있다 했다.

더 나아가, 그것을 산 자에 접목하여 산 자의 상처를 삽시간에 고쳐내는 비술이 있다고 들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통상적인 상태’에서 성립하는 법이다.

강시는 생물이 아니라던가?

강시의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던가?

설령 진짜 강시라고 해도, 이 독무의 안에서는 상처 입는 순간 그것이 곪아 썩어나가야 정상이었다.

단지 본인, 이 독굴의 제작자이자 유일한 면역을 지닌 녹운룡을 제외하고 말이다.

“네놈은 요괴라도 된단 말이냐!”

“흐음…….”

청유백은 녹운룡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 안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뚜껑을 땄다.

“하아… 좋군. 훌륭해. 이게 뭔지 알아보겠나?”

녹운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야, 무색무취의 독에서 나는 무형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인간은 청유백 외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괜한 질문을 했군. 모르겠지! 알 턱이 없지 않나.”

그러나, 청유백이 대신 대답하자면.

그것은 지고한 생명의 향이었다.

먼 옛날, 몇 번째 삶에서인가 공청석유를 입 안 가득 머금었을 때의 감각을 다시금 느끼는 듯했다.

그것이 지닌 생명의 기운에 필적하는 죽음이 이 액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찾자면, 녹운룡의 체취가 이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것이 더 강해.’

청유백은 그 병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허나, 녹운룡이 그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무엇인지 모른다 한들, 잠재적인 위협을 그대로 둘 이유는 없다.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러나.

─까드득!

녹운룡의 주먹이 청유백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 청유백은 이미 병을 통째로 입에 넣어 깨부순 뒤였다.

병의 조각이 목구멍과 입 안을 정신없이 찢어 놓았지만, 상관없다.

찰나가 지나기 전에 상처는 순식간에 나았으니까.

청유백은 주먹에 맞아 다시금 벽에 처박혔다.

먼지구름이 일었고, 다시금 움직이는 것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녹운룡은 직감했다.

저놈이 어떤 사술을 쓰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이리 계속해서 힘으로 부딪쳐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놈!”

녹운룡은 괴물처럼 부풀어진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좀 더 정밀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하게, 놈의 혈을 찌르고 심장을 뜯어 버린다면…!’

아무리 치유가 빠르다 한들, 죽음 외에는 길이 없을 터.

녹운룡은 먼지구름 너머로 비도 네 개를 던졌다.

하나같이 극독을 바른 것이었고, 그 속도나 정밀함 또한 누군가에게 비견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카강!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며─

─슈욱!

먼지구름 너머에서, 일직선으로 솟아오른 검이 녹운룡의 미간을 향해 쇄도했다.

“!!”

녹운룡은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 그것을 비스듬히 흘려냈다.

‘이런 직선적인 공격, 얼마든지…!’

흘려낼 수 있다.

제 딴에는 비도에 대항하기 위에 궁여지책을 짜낸 것이겠지만, 어림도 없다.

‘투척술이라는 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따라 한다고 익혀지는 기예인가!’

녹가는 모든 투척술의 종주이고, 녹운룡은 그 녹가의 가주다.

투검이라는 행위의 장단점도, 나아가 그것을 파훼하는 방법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머저리 녀석.’

녹운룡은 청유백에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심장을 뜯고, 어디 그래도 재생이 되나 한번 지켜볼 요량이었다.

허나, 순간.

─콰드드득!

먼지 너머에서 뛰쳐나온 청유백의 검과, 녹운룡의 수강(手剛)이 맞부딪쳤다.

…일순간, 힘으로는 경쟁할 수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멍청한 놈.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 대가다.”

청유백은 이미 검 하나를 내버렸고, 이리 가까운 거리는 검보다는 권격의 영역이다.

청유백이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녹운룡은 그대로 팔을 휘둘러 청유백의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동시에 녹운룡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쳐졌다.

‘끝났군.’

녹운룡은 심장 그득히 독기를 찔러 넣으며, 동시에 작은 무언가를 선물해 주고 손을 뺐다.

그리고 동시에, 빠져나온 손을 그대로 다시 쥐어─ 발경(發勁).

“──!!”

청유백은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이번에야말로 죽었으리라.

녹운룡은 이번에야말로 청유백의 죽음을 확신했다.

심장을 뜯어내고, 그 남은 자리에는 가득한 독기를 심어두었다.

그것에 더하여, 만에 하나 모를 경우를 위해 선물까지.

헌데….

헌데…!

“……흐음.”

“어떻게… 어떻게 계속 일어서는 거냐…?!”

녹운룡의 손에는 여전히 짙은 수강이 둘러져 있었다.

녹가의 비전, 녹수철조(綠藪鐵爪).

짙은 흑록색으로 빛나는 저 수강의 흐름 하나하나에 녹운룡의 독기가 그대로 실려 있었다.

이 수에 당하면 상처가 즉시 곪고, 절단하지 않으면 위험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절기.

그럼에도, 저놈은 상처가 곪기는커녕 순식간에 치유되고 있었다.

‘정녕 만독불침이라도 된단 말인가…?!’

만독불침이라고 해도!

어떻게, 심장이 뜯겼는데 멀쩡히 살아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천하의 그 어떤 경우에도, 심장을 뜯어내고서 살아 있는 생물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헌데!

그래 놓고서, 청유백은 한술 더 떠 목과 어깨를 뚜둑이며 지껄였다.

“아… 조금 적응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목을 뜯어 버리고서도 살아 있는가 보자!”

녹운룡은 다시금 수강을 두르고 달려들었다.

단지 눈 한 번 깜빡할 정도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십 장 가까이 되는 거리를 찢어발기고, 허공을 뛰어넘어 녹운룡이 청유백의 지척까지 쇄도했다.

하지만, 그 찰나.

“커억?!”

기세 좋게 달려들던 녹운룡은 등 쪽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아무도 없을 터인 뒤쪽에서 스스로 날아온 순백색의 검.

아까 청유백이 던져 가벼이 피했던, 그 검이었다.

“무, 무슨…?!”

쿨럭.

입에서 사혈을 토하며 녹운룡은 무릎을 꿇었다.

“이기어검…이라고?”

있을 수 없다.

고작, 고작 약관조차 되지 않은 청년이 어찌 그런 깨달음을 얻는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천마조사가 살아나 마교를 다시 세우든, 달마가 살아나 소림의 절예를 이백 개로 늘리든, 저 나이에 이기어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그 어떤 살기도 느끼지 못했건만!’

어떤 공격이든, 그에 상응하는 살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큰 집중과 깨달음이 필요한 기술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목표를 명확하게, 죽이고자 하는 심상을 명확하게.

헌데.

그 티끌 같은 살기 하나조차 없이, 어찌 이런 검을 다룬단 말인가.

녹운룡은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는 양 머리를 긁적이는 청유백을 눈에 담았다.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말했잖나.”

청유백은 대충 어깨를 푸는 듯 돌리더니, 들고 있던 검 하나까지 대충 공중으로 내던졌다.

“……?!”

빙글빙글 회전하던 그것은 갑자기 허공에서 뚝 하고 멈췄다.

그리고 그 칼끝은 정확하게 녹운룡을 향해 돌아갔다.

“이렇게.”

─카캉!

녹운룡은 숨을 헐떡이며 날아드는 검을 다시금 흘려냈다.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았다.

검 하나가 몸에 꽂혀 있는 채로, 검을 튕겨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푸욱!

“!!”

그러나, 이번에도 찔러온 방향은 뒤쪽.

분명 오른쪽으로 튕겨냈을 검은 어느새 뒤편으로 돌아가 자신의 등을 찌르고 있었다.

“사, 살기도 없이… 어떻게?!”

“살기? 살기라…….”

청유백은 그의 말을 비웃었다.

손가락을 까딱이자, 녹운룡의 등에 박힌 검이 부드럽게 뽑혀 나와 청유백의 주변을 회전했다.

너무나도 숨 쉬듯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그 무위를 과시했다.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벌레를 찢어 죽이는 마음을 살심(殺心)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

그것은 마치, 이르자면 천마(天魔).

그래. 백 년 전, 여섯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는 패도천마의 그림자가 저러할까.

녹운룡의 팔이 떨려왔다.

고작 저 나이에, 어찌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천마의 환생이라도 된단 말인가…!’

허나, 아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저놈의 비밀이 무엇이든 간에, 방금의 수에는 작은 선물이 있지 않았던가.

“끝이라고 생각 마라…!”

녹운룡은 오른손을 들어 청유백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고는, 콰악. 움켜쥐었다.

단순한 행위였다.

다른 이의 몸에 심은 고독을 발작시키고, 고통을 주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신호였다.

그리고 방금, 청유백의 심장을 뚫었을 때.

벌레 한 마리를, 심어두고 나왔다.

“하하… 어떠냐? 벌레가 몸 안을 쥐어뜯는 감각은! 아무리 상처가 빨리 치유된다 한들, 고통은 그대로일 터…!”

이기어검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기술.

즉, 그 끔찍한 고통하에서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청유백의 주변을 도는 두 자루의 검은 땅에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천천히 청유백의 저변을 선회했다.

“…뭐, 뭐지?”

그제야 녹운룡은 제대로 청유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일말의 고통이라고는 담겨 있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쾌락, 그리고 조금의 분노.

혹은─ 전능함의 미소.

그것은 고통을 느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녹운룡은 직감했다.

청유백의 몸에 심겨 있는 고독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왜냐고? 단순하지 않나.”

간단한 이유였다.

자고와 원고를 나누는 기준.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두머리를 가리는 기준.

누가 머금은 독기가 더 강한가.

그 결과가 나온 것뿐이었다.

“더 강력한 독의 주인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가짜 왕을 따를까.”

“……?!”

청유백은 퉤, 하고 입 안에 남은 병 조각을 내뱉었다.

아직도 입 안에 그 황홀한 향이 남아 있는 듯 느껴졌다.

“그나저나 훌륭한 독이군. 네 딸을 좀 칭찬하는 건 어떤가?”

“무슨 의미냐…! 설마, 방금 그 병에 들어 있던 것이…?!”

“방년도 이르지 않은 나이에, 내가 여지껏 본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흉물을 만들어 내었구나.”

청유백은 웃었다.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효력이 길지는 않겠지만, 지금 전신을 채운 이 전능감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녹운룡은 기겁했다.

“…무, 무슨! 그럴, 그럴 리가 없다! 설령 그런 게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있을 리가 없다고?”

어머나, 그러나 짜잔!

안타깝게도, 있는 모양 아니던가!

청유백이 천천히 걸었다.

녹운룡의 지척까지 이르러, 머리칼을 쥐어뜯듯 잡아 저편으로 던졌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녹운룡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되는 대로 손과 발을 휘적이며 엉덩이를 끌어 도망쳤다.

‘더 강한 독이라고? 심지어, 다른 독을 전부 무시하는?’

어찌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수십 년은 도대체 무엇이 되는가.

녹운룡은 몇 번이고 거친 숨을 삼키며 말을 내뱉었다.

“말도 안 돼. 생명으로서 불가능하다. 선천진기가 마기가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하다.

선천진기가 마기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인간은, 결코…!!’

…….

…….

마기가 아닌 다음…에야?

녹운룡은 찰나, 눈앞의 마(魔)의 화신과 눈이 마주쳤다.

“서, 설마…?!”

불타오르는 듯한 황금색의 눈동자.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그것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목표를 노리는 포식자의 것에 가까웠다.

왜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가.

“가련한지고….”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몸이 터져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건… 불가능해!”

“천자마 앞에서 고할 너의 죄목을 생각해 보아라.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은즉….”

“아냐, 아니야! 나는 마교를 위해 일했을 뿐이다. 마교의 민중을 위해! 모두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 죄뿐이다!”

“…자.”

너의 죄를 헤아려라.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세상 모든 악의를 한곳에 모아, 사람의 형태로 빚어낸 것만 같은 하늘의 죄업이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입을 달싹였다.

아주 조용하고도, 고요하게, 한편으로는 기쁜 듯이.

천천히 녹운룡을 향해 걸어가며.

피할 수 없는 종언을 선언하듯이.

그러나 그것이, 녹운룡 그를 향한 말인 듯 보이지는 않았다.

마교의 아이야.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라.

네가 너의 모든 것을 걸고 너의 신에게 빌었으니, 그것이 비로소 하늘에 닿았을진저.

내 마땅히, 나의 아이가 가져야 할 몫을 돌려주러 왔노라.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