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네 죄를 헤아려라 (2)
칠흑같이 깊은 어둠.
스산한 한기와 살을 저미는 흉측한 소리가 교차하여 귓가를 스치는 동굴의 깊숙한 곳.
녹운룡은 이곳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놓였다.
미관적으로 아름답다 말하기에는 누구도 동의할 수 없겠지만, 이 장소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자신을 상대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령 죽은 천마가 살아온다고 하더라도, 이 동굴 안에서라면 자신은 안전할 자신이 있었다.
이곳에 그득히 들이찬 독기.
내성이 없는 자라면, 호흡은커녕 이 독무(毒霧)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썩어 들어갈 테다.
녹운룡은 동굴 한편의 의자에 앉으며,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얼마나 길었던가…….”
현재 자신의 나이 62세.
삼십 대에 그분을 만나 대의를 깨닫고, 녹가주의 자리에 올라 대계를 준비한 지가 어언 수십 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가주를 포함한 세 명의 가주에게 고독을 심었고, 그 외의 다른 요인이나 중책에게도 각종 포섭을 진행해 놓았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야. 어떠한 혼돈도 없이… 온전한 마교를 그분께 바치는 것이다.’
앞으로 정말 조금이다.
적철진을 합밀로 보내어, 그의 작업을 마무리하기만 하면 끝이다.
‘다소의 문제가 생기기는 했었다만…….’
그것도 동이 트면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다.
적법한 과정을 거쳐 적가의 뇌옥에 처박았으니 화살이 저에게 돌아올 리도 없거니와, 청유백의 무고를 주장할 사람은 없다.
‘클클클. 청유백 본인이 백치가 되어 있을진대, 누가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녹운룡은 편안하게 의자에 등을 뉘었다.
동이 틀 때 즈음 각 가문에 서신을 보내고, 뇌옥에서 미쳐버린 청유백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
헌데, 그러던 중.
─까악! 까악!
어둠의 너머에서 한 마리의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녹운룡은 흠칫 몸을 떨었다.
평범한 까마귀 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 까마귀가 무엇인지, 저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까아악….
잠시 후, 날아 들어온 한 마리 까마귀가 녹운룡의 책상에 날개를 접고 앉았다.
독기에 삼켜져 한순간마다 깃털이 빠지고, 살이 썩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까마귀는 꿋꿋하게 제 임무를 수행했다.
까마귀는 녹운룡의 앞에 작은 목패를 던져놓았다.
“이건…….”
녹운룡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패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것은 지령의 전달, 혹은 확인을 위해 쓰이는 물건이었다.
보통의 문자는 행(行), 혹은 퇴(退).
간혹 속(速)이나 금(禁) 따위의 지령도 있었다만, 녹운룡의 눈앞에 놓인 목패는 전혀 생소한 문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패(敗)…?’
패배했다고? 무엇이?
녹운룡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떻게 해석하든, 어떤 의미로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문자 아니던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잘못된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특히나 신중을 기하기 위해, 여섯 연꽃 중 하나에게까지 손을 벌리지 않았던가.
허면…….
누군가에게 백련이 패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천마신교에 육대가가 있듯, 사마신교에는 육련(六蓮)이 있다.
그러나 차이라고 함은, 육련은 가문 같은 개념이 아닌, ‘그분’께 인정받은 여섯의 칭호였다.
그리고 개중 백련─ 백가와 대비되는 그는 진법의 고수.
보험 삼아 준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움직일 상황이 오리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싸우는 일이 온다면, 그건 진법과 은폐가 간파당했다는 것. 백가주라도 오지 않음에야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가 패하여 물러났다는 것은, 범이 개에게 쫓겨 달아났다는 말과 다름이 없지 않던가.
너무나도 비약이 심한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자신의 눈앞에 이 목패가 왔다는 것은, 상부에서 모종의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패(敗)라면, 결코 좋은 결정은 아닐 테다.
목패를 잡은 녹운룡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 쥔 목패가 썩어 문드러져, 바스러질 즈음.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까마귀의 눈이 돌연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녹…운룡은… 들으라.]
“……!!”
그것은 까마귀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직접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져 오는 소리.
철판을 긁는 듯 기분 나쁜 목소리가 머리로 흘러 들어왔다.
“위, 위대하신 묵련(墨蓮)을 배알하나이다!”
녹운룡은 숨을 삼킴과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그는 ‘그분’과 가장 가까운 존재임과 동시에, 육련의 수령인 자.
그분이 아직 없는 지금, 사실상 저자를 위해 일한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무슨 말을 할까.
패했다면, 다른 계획을 세우라?
아니, 어쩌면 찾아올 위기를 경고해 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까마귀가 말한 것은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네놈은 실패했다.]
“예?”
[이해하지 못했나? 네놈의 필요가 다했다는 뜻이다.]
녹운룡의 숨소리가 떨려왔다.
실패? 실패라니?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실패라니요. 고작 하룻밤, 작은 사건일 뿐입니다.”
[육가의 아이 다섯이 알았고, 동이 트면 각 가문의 군세가 너의 집을 짓밟을 것이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상황은 완벽하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인바, 네가 진실로 그분을 신앙한다면 헛되이 정보를 넘기지 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까마귀는 단언했다.
다른 경우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양, 조금의 떨림조차 없었다.
하지만, 왜?
녹운룡은 조금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이해하랴?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자신하지 않았던가.
“제게 어찌 이러십니까! 고, 고작 애새끼들 몇에게 들켰을 뿐입니다. 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겝니다!”
[대계?]
철판을 긁는 듯이,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뇌리를 찢는 듯한 목소리에, 녹운룡은 목소리를 낮췄다.
“허, 헙…….”
[대체 언제부터… 네놈 따위에게 대계를 논할 자격이 있었지?]
목소리는 실로 분노한 듯 보였다.
그 이후로 까마귀의 부리가 썩어갈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침묵을 깨고.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허나 네 말이 맞다. 대계는 곧 완성된다.]
“허, 허면…….”
[빈껍데기만 남은 천마신교 따위는 이제 와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지막 소명을 행하라. 녹운룡.]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끊어졌다.
녹운룡이 거친 숨을 들이쉬며 까마귀를 붙잡았지만, 이미 썩을 대로 썩어들어 간 까마귀는 흉측한 소리를 내며 뭉그러질 뿐이었다.
그것은 이미 생물이 아니었다.
썩은 고기의 형태를 한, 깃털과 섞인 무언가일 뿐.
“말도, 말도 안 돼!!”
녹운룡은 그것을 집어 던지며 발광했다.
“수십 년을… 수십 년을 물밑에서, 그림자 속에서 살았거늘…….”
이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은 무엇이 된단 말인가.
처음에는 부정했다.
녹운룡은 울부짖었다.
“이제 와서, 고작 한 번의 실패로 저를 내치신단 말입니까!!”
다음은 분노였고.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이게 그분의 뜻은 아닐 게야…. 그래. 어리석은 육련의 판단일 뿐…….”
그다음은 타협이었다.
그리고 흐느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다.’
육련이라 한들, 결국은 아직 오시지 않은 그분의 대변자일 뿐.
아직 오지 않은 그분의 뜻을 어찌 완벽히 알겠는가.
녹운룡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 머저리들을 따를 것이 아니라, 직접 그분의 앞을 준비하면 그뿐 아니던가.
“…그분의 재래가 올 때, 가장 앞에서 가장 영예로운 선물을 들고 맞이하는 것은 내가 될 것이야.”
녹운룡은 동굴 더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갈수록, 살을 에는 추위와 스산한 독기는 더욱 강해졌다.
녹운룡의 몸을 감싸는 옷도 침식되어 너덜너덜해져 갈 무렵, 녹운룡은 그림자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해골.
거꾸로 뒤집어져 알 수 없는 액체를 담아내고 있는 해골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형체를 가늠하기 힘든 벌레 한 마리가 고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해.”
녹운룡은 떨려오는 두 손에 해골을 들고, 그 액체를 목 뒤로 넘겼다.
한 방울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 * *
밤이 깊었지만, 각 가문의 장들은 여전히 잠을 미룬 채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천마지회의 진행, 앞으로의 수단, 방침 따위를 논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적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허나, 그때 문득.
“……!!”
“가, 가주!!”
돌연, 적가주 적무혁을 포함한 몇몇이 가슴팍을 붙잡더니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기묘한 모양새였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쓰러지다니.
때를 맞춘 암습이라 한들 이리 동시에 쓰러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적여문은 곧장 달려가 그를 부축하며 상태를 확인했다.
“가주! 괜찮으십니까! 가주!!”
이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암습인가?!’
아니다. 기를 흩어 주변을 살펴도, 당장 반경 십 장에는 이상한 기척이 없었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질병?
그 또한 아니리라.
절정에 오른 무림인에게 질병이란 대부분 인위적인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인간이 갑작스레 쓰러지는 질병이 어디 있겠는가.
적여문은 고개를 돌려 다른 쓰러진 이들을 살폈다.
그들 중에는 만검각의 각주도 있었고, 적가의 장로도 있었으며, 어떠한 검대의 대주도 있었다.
이렇다 할 공통점은 없으나, 굳이 따지자면.
‘…전부 마교의 실권자들.’
개중에서도,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권력을 과시하는 인간들.
적여문은 곧장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이 사태는 분명 인위적인 공작이며, 분명한 목표가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던 중, 적무혁의 가슴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를 쥐어뜯듯 흉악하게 움직이는 실선이 있었다.
“…고독!”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래, 고독이라면 가능하다.
이 많은 인원을, 한순간에 갑작스레 고꾸라뜨리는 것이 말이다.
“…크윽.”
“가, 가주.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네. 거칠군. 이런 고통이 얼마 만인지! ……하, 퍽 인상적이야.”
적무혁은 제 가슴팍을 붙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쓰러진 다른 자들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있었건만, 적무혁은 멀쩡히 일어서 의자에 다시 앉았다.
마주(魔主)의 지위가 허언이 아니라는 양 버텼다.
분명히, 막대한 내공으로 체내의 벌레를 짓누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적여문은 탄식하며 대꾸했다.
“갑자기 고독이라니요. 분명히 주변에 범인이 있을 겁니다.”
분명 전조가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발작이라고 해도, 고독이 심어진 계기가 말이다.
그리고 잠시도 지나지 않아, 그럴 수 있는 인물은 단 하나로 좁혀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독이라는 것은, 그만큼 제한이 많은 수단이다.
“…분명 녹가주의 짓입니다. 그자 외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잖아도 이상하던 차였다.
정정하던 적무혁이 갑자기 기침을 해대지를 않나, 피로하다며 그를 찾아가지를 않나.
하지만, 적무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닐세. 나는 그를… 믿네.”
적여문은 무슨 소리 하나며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녹가주를 신뢰하는 투였다.
사람에게 마음을 잘 주지 않는 대신, 마음을 준 사람은 최후의 최후까지 믿는 사람이었으니.
“그 또한 하나 된 마교를 바라는 자. 다른 범인이 있을지 모르는 일일세. 속단하지 말게.”
적무혁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고독이 심장을 갉아 먹는다 한들, 그는 마교 최고의 고수 중 하나.
그리 쉽게 죽어 주지는 않는다는 듯, 전력으로 벌레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허나, 이 상태로 대화를 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그 말인즉, 적여문 자신에게 ‘지휘하여 해결하라’라고 명한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였다.
그리고 동시에.
‘무슨 일을 하든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는 말과도 같았다.
“……!!”
적여문은 곧장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가 목청을 울렸다.
“귀살마는 있는가!”
“여기에 있나이다.”
곧 그림자 하나가 어디선가 솟아올랐고, 적여문은 그에게 명했다.
“만검각 휘하 무인 백 명을 데리고 녹가장으로 향하라! 녹가주를 찾아 도움을 청하되…….”
그래, 일단은 대화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본다면, 이 정도는 말해 주어도 좋다.
허나.
“찾을 수 없거나 저항하면, 그때에는 추살(追殺)로 이행하라. 단, 목격자가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복명!”
* * *
“…괜찮나?”
청유백은 녹지연을 부축하며 안부를 물었다.
방금 비명을 지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도 퍽 웃기는 일이었다만,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으므로.
녹지연은 힘겹게 대꾸했다.
“……괜, 찮아요.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녀의 안색을 보면, 당장 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듯 보였다.
검은 낯빛,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옅은 맥박.
풀리는 다리의 힘에 녹지연은 청유백에게 몸을 맡기며, 억지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녹운룡이 헌고를 건드렸어요. 시간이… 없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