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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01화 (101/200)

제101화. 길을 터라 (1)

─뚜벅, 뚜벅.

몇 개의 발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작은 불빛이 청유백의 시야에 비춰졌다.

그리고 동시에, 사내 두 명의 목소리가 번갈아서 들려왔다.

“지키고만 있으면 되는 게 맞겠지?”

“그래. 어차피 밖의 적가 경비 놈들은 돈을 잔뜩 처먹여 놓았다고. 어차피 여기까지 누가 오지도 않을 테니, 눈이나 붙이게.”

“아니, 그 뜻이 아니라.”

“그러면 뭐?”

“이상하지 않나. 내 저 청년이 멀쩡한 정신으로 가주를 뵙는 것을 봤는데, 이리 갑작스레 뇌옥으로….”

파악!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은 파공성이 한 번 울렸다.

크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밀치는 정도의 소리였고, 사내 한 명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왜, 왜 이러나?”

“쉿, 그 입 닥치게. 자네야 이리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를 수도 있겠네만, 비일비재한 일일세.”

“비일비재하다고? 아니, 허면 어찌 이것을 다들 묵과한단 말인가.”

“자네도 어느 날 갑자기 백치가 되어 발견되고 싶지는 않잖은가?”

“그, 그야…….”

“그럼 그저 닥치고 따르게나.”

“큰 봉급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구먼…….”

사내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둘 중 한 명은 이러한 일에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익숙해 보이는 쪽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어차피 들킬 염려도 없어. 저놈은 내일 아침이면 진짜 미치광이가 되어 있을 테니까.”

“아, 가주께서 저치의 귀에 넣은 그…….”

“그래. 곧 미치광이가 될 놈 걱정하지 말고, 자네 앞일이나 생각하게. 우리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잘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 * *

“이쪽으로.”

백소하를 포함한 셋은 일제히 마교의 어둠 속을 내달렸다.

아이들은 저들도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굴에 보였지만, 짐만 된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인지 나서지는 않았다.

백서각에서 중앙 뇌옥이 있는 만검각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둘 다 마교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으니 말이다.

저 멀리 거대한 만검각의 대문이 보이기 시작했고, 백소하는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앞서가는 그녀들에게 힘겹게 속삭였다.

“어떻게 잠입할 계획입니까?”

그냥 무턱대고 담을 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일단 냅다 오기는 했다만, 이렇다 할 계획은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적영과 녹지연이 마교의 후기지수 중 손에 꼽는 실력이긴 하다.

허나, 이곳은 후기지수를 넘어, 현재 마교 제일의 고수들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

‘이미 깊은 밤이니만큼 경비 이외의 인원은 많지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 경비의 수준도 다른 곳과는 질 자체가 다를 테다.

하지만, 적영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양 당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잠입할 필요가 뭐 있어?”

“……아!”

맞네.

백소하는 잠깐이라도 멍청한 고민을 했던 자신을 욕하며, 얌전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금까지는 그림자 옆을 걸으며 재빠르게 발을 옮긴 그들이었다.

그러나 만검각의 대문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걸음걸이는 점점 당당해져 갔다.

그리고 이윽고, 그 걸음이 대문을 비추는 화로의 빛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

방금까지 잠입을 걱정하던 사람이 무색해질 정도로 고고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적가의 후계를 뵙습니다!”

“적가의 후계를 뵙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무인이 일제히 적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과연,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적가의 딸이긴 한 모양이다.

그들이 인사를 끝마치자, 적영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친우들과 용무가 있다. 길을 터라.”

숨 쉬듯 자연스러운 하대.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불복하지 않았고, 무인들은 자연스럽게 비켜섰다.

하지만 문득, 그중 한 명이 적영의 뒤에 서 있던 녹지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그쪽 분은…….”

“……아.”

하긴,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차림이기는 했다.

녹지연은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장포로 몸을 가려,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만큼이나 수상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백소하가 타개책을 생각하던 찰나─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

“조, 존명.”

…….

역시 세상사의 반은 권력으로 해결되는 법이라는 사실을 적영이 몸소 보여주었다.

참고로 나머지 반은 돈이다.

“권력 남용 아닙니까?”

“어차피 뭐라 할 사람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요.”

적영은 가볍게 발걸음을 놀리며, 대문을 등지고 거대한 안뜰의 한편을 가리켰다.

“자, 저쪽이 뇌옥이야.”

적영이 가리킨 것은 한눈에도 을씨년스럽게 생긴 골목의 일부였다.

백소하도 지식으로써는 알고 있었다.

만검각의 지하를 파내어 만든 거대한 감옥.

웬만한 수준의 거악(巨惡)이 아니고서는, 거진 항시 비워져 있는 상징적인 감옥이었다.

세 사람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인기척이 적네. 경비를 도는 무인들도 없고…….”

“분명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생각을 좀 해보고 말하십쇼.”

“나도 알거든?”

백소하는 그리 말했지만, 분명 주변이 기이하리만치 조용했다.

이 안뜰의 전체를 비춰야 할 화로들은 드문드문 꺼져 평소에 없을 스산함을 자아냈고, 주기적으로 순찰해야 할 경비들도 몇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없을 때의 만검각은 그리 경계가 삼엄한 장소가 아니라곤 하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치다.

이 정도면, 적가의 상부─ 그것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자가 가담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어느덧 세 사람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 작은 건물의 앞에 섰다.

뇌옥의 입구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두 명의 무인이 지키고 있었는데…….

…….

백소하는 문득 입을 열어 속삭였다.

“…지금 뇌옥에 가둬진 사람이 있습니까?”

“청유백이 잡혀왔다고 말했잖아.”

“아니, 그 인간 말고요.”

그건 들어서 안다.

사실 진짜인지는 아직도 의심이 간다만,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인간.

중앙 뇌옥에 가둘 만한 다른 범죄자가 있느냐고 묻는 소리였다.

“아니? 백가 사람이 그것도 몰라?”

“이 빡대가리 색… 아, 아니지, 오히려 아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당연히 알고 있다.

지금도 중앙 뇌옥은 비어 있고, 근 십수 년 간 저곳에 갇힌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경비가 적은 와중에, 굳이 저 빛도 비치지 않는 뇌옥의 앞에 두 명이나 경비를 세운다라.

허, 참.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백소하는 깔쌈하게 적영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젠 변명의 여지도 없겠군요. 분명 뭔가 있습니다.”

녹지연은 계속해 보라고 주먹을 휘두르는 적영을 어떻게든 뜯어말리고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보냈다.

“망할, 너 다음에 보자…….”

어둠 속에서 두 명의 사내와 적영이 마주하여 섰다.

달빛 말고는 무엇도 비치지 않아 윤곽만이 흐릿하게 비칠 따름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 어둠이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 저 경비들도 적영을 알아보았다는 소리였다.

“적가의 후계를 뵙습니다.”

“그래.”

고개를 숙이는 경비들에게 손을 흔들며, 적영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문을 열어라.”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턴 쉽다지 않던가.

처음부터 쉽게 했으면, 두 번째는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움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

…안타깝게도, 조금 착각하여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도 된 모양이다.

적영은 당황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어투로 되물었지만, 경비들은 완고하게 자리를 지켰다.

“아무리 아가씨라 한들, 어찌 이 시간에 뇌옥의 문을 사사로이 연단 말입니까.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내 알기로 지금의 뇌옥에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렇다 해도 안 됩니다.”

뭐, 예상은 한 일이었다.

이만큼 수상한 정황에, 이만큼 수상한 배치가 아니던가.

‘아까의 문지기들은 몰라도, 이 자들은 당연히 매수되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지.’

지금은 한 번 물러나는 게 맞다.

백소하는 그리 판단하고 적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적영은 거칠게 밀쳐내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주인의 명이라 해도 말이냐?”

기실, 지금 어떤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이 앞을 막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설령 지금 뇌옥에 어떤 위험인물이 수감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만검각은 적가의 직계 관할이다.

이곳의 모든 권한이 적가의 후계에게 있었다.

본디 성인이 되어 가주가 되면 갖는 권한이었지만, 그 중심에 후계자─ 즉 차기 가주에 대한 편의가 있었기에 적가의 후계는 대부분 동등한 권한을 가졌다.

하지만, 경비들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리 답했다.

“저희의 주인은 적가의 가주 되시는 분입니다.”

“……!!”

일순, 적영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너무나 단순한 말뜻이다.

적영이라고 해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그런 말 말이다.

적가 후계의 권한은, ‘미래에 가주가 될 가능성’에서 나온다.

즉,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동등하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의 권한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리 대놓고 부정한다는 것은.

‘네가 그리 명령해 봤자 네가 가주 될 일은 없으니까, 네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였다.

‘미친놈들, 눈에 뵈는 게 없나?’

적가의 일반 무인이, 아니, 설령 실력이 있어 총애받는 자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후계와 정면으로 대립할 이유는 많지 않다.

이제는, ‘저 안에 뭔가 찔리는 게 있소’라고 대놓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꼴이 되지 않았는가.

그것도 제 놈들 목숨을 걸고서!

‘이,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적영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백소하가 말리는 것은 들은 체도 안 할 테고, 녹지연이 말하면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다.

백소하는 황급하게 그녀에게 전음했다.

{적영, 싸우면 불리합니다. 너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들은 물론 후기지수 중 최고로 치는 실력이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강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높게 치는 것이고, 지금 현역에서 뛰는 고수들과 비교하는 것은 아직 실례다.

5년, 아니 3년이라도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아직 자신들은 어렸다.

‘저들은 최소한 마사급. 만검각 배속이라면 당연히 상위는 되겠지.’

녹지연까지 만전의 상태라면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싸울 만한 상태가 아니다.

백소하는, 뭐…….

{나는 현재 발만 동동 구르는 상태의 쓰레깁니다. 어찌할 도리도 없어요. 날 믿지 마십쇼!}

…자기 평가를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적영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경비들도 흠칫하며 응수하듯 마기를 끌어 올렸다.

“이러신다면 저희도 제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결례? 네놈들이 감히 결례를 입에 담아!!”

─파앗!

정말 찰나의 시간이었다.

적영은 한순간에 땅을 박차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이 주먹을 뻗어 적영에게 응수하는 형태의 공방.

이리되면 은밀이라고는 지나가는 개나 준 꼴이 될 테다.

눈을 감은 백소하의 소리 없는 비명과 적영의 분노가 교차했다.

“……?”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도 그들이 격돌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떠한 종류의 타격음도, 비명도, 하다못해 땅을 박차는 마찰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백소하는 의문에 눈을 떴고,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경비들과 적영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떨어져야만 했다.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거구의 사내가 가로막은 탓에 말이다.

어둠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결례, 결례라…?”

“……!!”

백소하는,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가 누구인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정말 멋없는 말이지. 열정과 사나이다움이라곤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은 말이야.”

“이, 이공자…?!”

“적우각?!”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이곳에 등장했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적영도, 백소하도, 저 경비들도 전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적가의 주인을 따른다 했나?”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적우각, 적가의 차남이 지금 명하겠다.”

고요하게, 하지만 잔잔한 분노를 담아서.

“길을 터라.”

그 한 마디가 공간을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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