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신에게 율법을 걸고 (1)
신에게 율법을 걸고.
마교도에게 그것은 결코 쉬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선언이었다.
신의 앞에서 자신의 모든 행동과 발언이 정당하고 진실하다고 맹세하는 행위니까 말이다.
즉, 자신의 행위에 그릇됨이 있을 경우, 그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것은…….”
노인은 잠시 당황했다.
그저 단순한 농담 따먹기 문답이나 하려 했던 것일까, 혹은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올 줄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낯빛에 어린 것이 역력한 당황임은 명백했다.
그러나 노인은 공허하게 허공을 응시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 하지요. 천자마께 본교의 대율령을 걸고, 진실만을 답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까딱였다.
이렇게까지 말해 주었는데, 어디 한번 무엇을 물을지 들어나 보겠다는 투였다.
천화는 기가 찬다는 듯 성토했다.
[허, 의외로구나. 고작 한때의 문답 따위에 그리 할 것까지야…….]
무언가 대답해 주겠다고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일면식은커녕 난생 처음 본 사이다.
뭐, 그에 대고 대뜸 모가지를 걸라고 요구하는 청유백도 정상은 아니겠지만, 저 노인도 결코 제정신이라 이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그랬기에.
노인이 저토록 당연스레 대답했기에, 청유백은 확신을 가지고 입을 뗐다.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청유백은 손가락을 들어 노인을 가리켰다.
분명한 진실을 대답하겠다 확언했을 테다.
율법을 걸고 맹세한 이상, 그것이 녹가의 비밀이든 개인의 추문이든 간에 대답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뭐든 물어도 좋겠지만─
청유백은, 노인을 마주친 순간부터 이미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청유백은 고요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몸에 머금은 독, 무엇으로 만든 것입니까?”
일순, 정적이 흘렀다.
관계가 없는 자라면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녹가의 독인, 그리고 그것의 체향.
그것을 물질적인 ‘향’으로 맡을 수 있는 것은 청유백 외에 달리 없겠지만, 그 비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테다.
하지만, 녹인은 빙그레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진실만을 답한다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흐음. 분명 그랬지요. 그랬으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롭게 웃었다.
분명 진실을 답한다 하였고, 그것을 어길 생각은 없다.
허나.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노인은 마치 청유백의 생각은 전부 꿰뚫고 있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채 어린 눈.
그저 하인에 지나지 않는, 무력한 노인이라 보기에는 어려운 눈빛이었다.
[……불길한 눈이로다.]
무릇 눈은 마음의 창이라.
그리 이르는 말이 있다 하던가.
한순간 그것과 눈을 마주친 청유백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공포?’
아니,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공포와는 그 결이 달랐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며, 압도적인 힘 앞에 선 무력함도 아니다.
그럼에도 저것은 일말의 불길함을 지녔다.
한편으로는, 공포에 앞선 꺼림칙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
저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청유백은 잠시 고민했지만.
청유백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 저 눈에 누군가가 굳이 이름을 붙여야만 한다면─
‘광기’라고 이르는 것이 옳으리라.
한순간도 지나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
청유백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노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달리 중요한 것이 있을 텐데요. 뭐든 좋습니다. 이 노대… 비록 늙었지만, 아직까지 귀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자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큭큭큭.
노인은 실소를 흘렸다.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다 이를 법한 말이었다.
저는 진실만을 말하겠다 맹세했고, 지금의 대답도 그 일부다.
그렇다면 저것은─
‘이 마교에 관한 어떤 것을 묻더라도 대답해 줄 수 있다.’
라는 대답과도 같았다.
청유백 또한 마주하며 웃었다.
“오만하다 생각지는 않으신지?”
“클클, 오만을 지탄받지 않는 것이 늙은이의 특권일 테지요.”
결코 말을 무르지는 않는다.
실로, 어떤 질문을 하든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지금껏 말한 것이 전부 진실이었다고 확언하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말이다.
“그래, 가령 이런 건 어떠십니까?”
노인은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었다.
둔탁한 형태의, 술병이라고 보기에는 퍽 작은 병이었다.
무엇을 하는가 싶더니, 노인은 그것의 뚜껑을 따 손바닥 위에 그 병을 엎었다.
“……?”
그러나 병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모종의 독이라도 들어 있나 싶어 경계했지만, 물 한 방울 쏟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찰나.
“……그건.”
병에서 손톱보다도 작은 벌레 하나가 기어 나왔다.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이를테면, 지네에 가까운 벌레였다.
청유백이 미간을 꿈틀이자,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손바닥으로 기어 나온 놈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고독이라는 녀석입니다. 개중에서도, 헌원고(軒轅蠱)라고 불리는 놈이지요. 가주께서 장장 사십 년 동안이나 연구에 매진하여 만든 물건입니다만…….”
노인은 탁자에 올려놓은 벌레의 머리 위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리고 벌레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어지럽게 쫓으며, 마치 그 인도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다섯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벌레는 그 움직임을 따라 탁자 위를 기었다.
그리고, 마침내.
─콰직!
노인이 그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자, 벌레는 갑작스레 몸을 경련하더니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꽤 흥미가 일지 않으십니까?”
“……글쎄요.”
“흐음?”
노인은 의외라는 듯 목을 울렸다.
하지만 청유백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었다.
“분명, 흥미롭긴 합니다만.”
분명 흥미로웠다.
과거에는 없던 기술이었으니까.
옛 마교에서는 고독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연구되고 있었다.
특수한 향을 사용하거나, 특정한 빛이나 신호에 반응하게 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었지만, 저리 손짓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다.
[무엇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분명 무언가 있을 터인데….]
천화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 듯했다.
분명 고독에 관한 것은 알아야 하는 정보이고, 스스로는 알아낼 방도가 없겠지만.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시지요. 저는 이쪽이 더 궁금하니 말입니다.”
지금은, 이쪽이 더 중요했다.
고독은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 있을 테다.
가령, 다시 한번 녹지연을 만난다면 그녀에게 무언가 언질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은 눈앞의 이 노인 외에는 답을 주지 못하리라.
“대답이 어려우신 듯하니, 질문을 바꾸도록 할까요.”
어쩌면,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답만큼은 천하의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또한, 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기다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청유백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몹시도 익숙한 향입니다. ‘누구’로 만든 독입니까?”
* * *
청유백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끔찍할 정도로 코를 찌르는 향기로운 체취를.
아니, 향기롭다는 말로는 모자라다.
이것을 형용하여 이른다면─ 그래.
은혜롭다 해야 할 것이다.
선천진기를 마기로 물들여, 독기와 마기를, 세상 모든 악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청유백의 몸.
그리고 그러한 몸이, 지금껏 느낀 것 중 가장 황홀하게 다가오는 향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 무엇보다도 명확했다.
[가장 끔찍하고… 가장 극악한 죄악이로다….]
천화는 직감한 대답에 몸서리쳤다.
아니, 직감조차 아니다.
확신하고 있는 대답이다.
녹가의 독인.
그들이 만든 독.
그리고, 그중에서 독보적으로 찬연하게 빛나는 죄악의 향기.
청유백은 그러한 독을 단 한 가지 알고 있었다.
천화 또한,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조각의 편린을 쥐고 있었다.
“아, 이런…….”
큭, 큭큭.
노인은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추고, 허리를 숙여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고 웃었다.
그리고는.
“그래, 어쩐지. 인도를 보냈던 그 년이 없던 시점에서 자네의 평가를 달리 했어야 했거늘…….”
이내 허리를 펴, 손을 내리고 청유백과 다시금 눈을 마주했다.
구부정하던 허리가 꼿꼿이 서고, 일부러 처진 듯 보이게 했던 눈매는 날카롭게 변했다.
분명 같은 얼굴이었으나, 그 인상은 결코 같은 인간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였다.
“아무 의심도 없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무지몽매한 범인인 줄로 알았으나, 도리어 진실을 아는 비범이었도다. 허허, 내 실책이군.”
변화는 확고했다.
더 이상 감추지 않겠다는 투였고, 청유백은 자연스레 그에 호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녹가주.”
“끌끌끌, 처음부터 다 알면서 어울려 준 겐가? 고약한 심보로군.”
녹가주, 녹운룡.
섬뜩하리만치 황홀한 체향을 내뿜는 그는 모습과 동시에 갈무리했던 기를 여지없이 해방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도 절정을 넘어선 고수인 만큼 기를 감춘 것과 해방한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피부가 저려오는 감각.
청유백은 억지로나마 표정을 유지하며 심호흡했다.
‘과연. 이것이 지금의 가주인가.’
마교의 계급 중 가장 위.
천마 아래,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논하는 몇 없는 자리의 주인.
마주(魔主)급의 고수란, 지금의 청유백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위치임을 절실하게 체감했다.
아무리 마교가 퇴보했다고 하더라도, 정상에 위치한 자들의 명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육대가의 가주가 전부 항상 마주급의 고수는 아니지만, 녹운룡은 의심할 여지없는 마주.
지금 이곳에서 싸운다는 선택 자체가 어리석을 테다.
[멍청한 생각 하고 있지는 않을 테지?]
‘일 할은커녕 일 리의 승률조차 없는 싸움을 왜 하겠나.’
애초에, 녹운룡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공적인 위치에 있는 녹가의 가주다.
백주대낮에, 심지어 제 집에 찾아온 손님을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수틀리면 뭐.
‘싸움은 못 하겠지만, 도망은 어떻게든 칠 수 있겠지.’
하지만 청유백의 고민이 무색하듯, 녹운룡은 전혀 적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불러 무언가를 속삭이고는, 청유백의 맞은편으로 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
“이리 된 이상, 다시 처음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이 옳겠지. 좋아하는 차는 있던가?”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것보다는….”
“그래, 그래. 그리 보채지 말게. 내가 말한 것이니, 내가 지켜야 하겠지.”
녹운룡은 잠시 말을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하인 하나가 다기를 가져와 차를 두 잔 따라낼 때까지, 아무 말도 없는 정적이 고요하게 흘렀다.
─달칵.
녹운룡은 하나는 자신 앞에, 하나는 청유백의 앞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들겠나?”
“기꺼이.”
독은 없었다.
해코지할 생각도 없다는 방증이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찻잔을 기울이는 청유백의 모습이 다소 의외인지 잠깐 표정이 변했지만, 이내 그 또한 잔을 다잡으며 말했다.
“성연(星淵)이라는 여인이 있었지.”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다.
독의 재료를 물었거늘, 어찌하여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가.
하지만 청유백은 묻지 않았다.
그런 것을 왜 지금 말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독의 재료를 물었거늘, 왜 사람의 이름을 말하느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 사이에, 녹운룡이 말을 이었다.
전혀 숨길 기색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하나뿐인 딸의 어미라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