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90화 (90/200)

제90화.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 하지만… (5)

드르륵.

작은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청유백은 거리낌 없이 일귀를 누인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방은 꽤 큼직했다.

가로세로의 폭이 석 장씩은 될까.

발을 내딛자마자 풍겨 오는 짙은 약 향에, 청유백은 숨을 내쉬었다.

‘…처치는 끝난 건가.’

뭐, 아까 실려 갈 때의 표정보다는 확연히 편해 보였다.

청유백은 곧장 일귀의 곁으로 다가가 맥을 짚었지만, 천화는 그것보다도 주변을 먼저 둘러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언급했다.

[기이하구나.]

‘뭐가?’

[육대가의 아이도 아닐진저, 고작 귀아대의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이런 방을 내놓는다니.]

‘그래,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지.’

청유백은 긍정했다.

녹운각이 마교에서 가장 거대한 의료 기구인 것은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러한 개인실의 개수는 몹시 한정되어 있었고,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 또한 당연히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개인실을 만들 공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벽을 전부 허물고 모두가 몸을 누일 수 있게 만든다면, 열 명이 잘 공간을 백 명이 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데.

헌데, 지금 녹가는 그 한정된 개인실을 고작 귀아대의 어린아이 하나에게 할당한 것이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알려지면 곤란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단체실은 녹가의 의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진맥한다.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이상이 있다고 해도, ‘우연히도’ 그것을 간파하는 의원이 일귀를 진맥할 수도 있다는 것.

[무언가, 뒤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게로구나….]

‘지금 그걸 확인하러 왔잖나.’

분명히, 똑똑히 보았다.

일귀가 갑작스레 가슴팍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그 광경.

자연스러운 것 하나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전부 석연찮은 그 모습을 말이다.

청유백은 일귀의 옆에 꿇어앉아 일귀의 앞섶을 풀어헤쳤다.

“깊게도 베였군.”

몇 번이고 붕대를 갈았는지 엿보이는 피의 흔적.

그 위로 눅진하게 고약이 달라붙은 붕대가 칭칭 감싸여져 있었다.

“그래도 급소는 빗나갔군. 운이 좋은 놈이라 해야 할는지.”

청유백은 손가락을 뻗어 목의 맥을 짚었다.

옅고 흐리지만, 아직 분명히 맥동하고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구나.]

‘좋아… 어디 한 번 볼까.’

청유백은 일귀의 맥을 짚어가며, 기맥의 흐름을 훑었다.

전체적인 기의 흐름이 약해져 있기는 했지만, 거꾸로 흐르거나 어딘가 막혀 있는 곳은 없었다.

예상이 적중했다.

주화입마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 모종의 술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귀를 휘청거리게 한 무언가가.

‘독은 아닐 것이다. 외견도 깨끗하거니와, 몸 안쪽도 별반 다르지 않아.’

청유백은 계속해서 기맥을 훑어 나아갔다.

사지의 말단부터 시작해서, 점차, 척수를 타고 심장으로.

어느 한 곳도 문제 되는 곳이 없었다.

며칠 전이었다면 이 기맥 중 몇 개가 선기로 막혀 있었을 것이다.

그를 통해 근육을 찢어발기는 고통이 수반되고, 몸을 강화했으니까.

그러나 분근연혼대법은 이미 해제되어 선기는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이들에게 선기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청유백의 몸을 압박하는 선기는 줄어들었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선기의 총량을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한 톨의 낭비도 없이 전부 도로 가져온 것이었다.

헌데….

‘…이건?’

무언가 있다.

마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검정 속에서 홀로, 여전히 하양을 유지하는 티끌이 가슴팍 어딘가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기이했다.

움직이지도 않고, 반응하지도 않는다. 저것이 기의 일부라면 응당 순환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허, 빌어먹을….

청유백은 일귀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선기를 조금 뽑아내어, 몸 안으로 침투시켰다.

조금 거부반응이 있는지 일귀의 몸이 순간 들썩였다.

“잠깐이면 된다. 견뎌라.”

청유백의 기운은 기맥을 거슬러 금세 심장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흘러가듯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감싸고는, 주변을 선회하며 그 형태를 짐작했다.

…잠시 후, 천화는 침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보았느냐?]

‘봤다.’

그것은 벌레.

아주 작은, 형태를 지닌 벌레였다.

살과 근육, 혈관을 파고들어, 심장 부근에 둥지를 틀고 안착해 있었다.

발견했다.

분명히 이것이 원인이었을 테다.

청유백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야, 이것이 무엇인지 아니까.

‘짜증 나는 수를….’

까드득.

청유백은 이빨을 악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원인을 규명했다 하여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오히려 더욱 이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빌어먹을 새끼들.

‘고독이라니.’

고독(蠱毒).

그것은 일종의 기생충이었다.

숙주의 신경을 천천히 갉아먹고, 때에 따라 점차 생명을 조여오는 위험한 생물이다.

그러나, 여타의 기생충과 차이가 있다면.

고독을 이루는 고(蠱)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로 반응하여 활동을 개시한다는 점이었다.

즉, 누군가의 몸에 고를 심고 특정한 신호를 가하면 몸속에 있는 고가 발작하여 숙주를 갉아먹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처하기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영물이었다.

하지만 청유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굴렸다.

‘고독은 보통 간자(間者)나 회유한 요인 따위에게나 쓸 법한 물건인데…. 고작 이런 어린아이에게?’

고독은 보통은 요원을 통제하는 용도의 목줄로 사용하거나, 비밀의 누설을 막는 방지책으로 사용했다.

효과는 증명되어 있다만, 고독이라는 놈은 근본이 영물이다.

도구로 영락한 신세이기는 하나 취급도 까다로울뿐더러, 그 숫자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곧.

쓰이는 상황 또한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말과도 같다.

‘전성기의 마교에서도 결코 수백 기 이상은 운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말이 좋아 수백이지, 이 사람 저 사람 고르다 보면 고작 몇백 명 정도는 금방 차기 마련이니라.]

‘그런데 그런 것 중 하나를, 고작 어린아이에게 심었다고?’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수가 악독해서?

아니, 그런 같잖은 이유는 아니다.

고독이 강력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잔혹한 수단은 얼마든지 있을 따름이다.

청유백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이 수의 뒤에 숨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화가 대꾸했다.

[본디 통제하기 위한 물건이나, 그러한 의미는 아닐 게다. 고작 아이 하나가 도망치는 것을 통제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분명 그렇겠지.’

탈주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고독보다도 훌륭한 방법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러니 이 고독의 용도는, ‘아이’의 통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에서 이어지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결투의 결과를 조작하려 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몹시도 영악한 술수라고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었다.

천마지회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불문율은 존재한다.

가령, ‘상호간의 살인을 금지한다’ 따위의 암묵적인 조약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호간에 피해만 만연할 것이 분명한 것들은 암암리에 불문율로서 존재했다.

가령─ ‘독의 사용’이 그러할 테다.

녹가의 주특기가 독이니만큼 독의 금지가 너무 편파적인 행위가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녹가의 특기가 독이라 하여, 다른 가문이 독을 쓰지 못한다던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독을 공수하여 검신에 펴 바르는 것 정도는 누군들 쉽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허나, 이 ‘불문율’이라는 것은 몹시도 모호하여─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언제나 성립되는 단순한 진리다.

발각되지 않는다면,

범죄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고독이라는 물건은 몹시도 치졸하고, 영악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고발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기에 바르고 휘두르는 독이나, 넓게 퍼지는 독무는 그 주체가 명확하다.

책임을 돌릴 사람이 일목요연한 것이다.

하지만 고독은 다르다.

누가 심었는지 모른다면, 누가 고독을 발동했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몸속의 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해도, 그것을 누가 다루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안다고 해도 문제 아니겠느냐.]

‘무슨 뜻이지?’

[생각해 보거라. 중요한 것은 ‘어째서’다. ‘어째서’ 너를 배제하고자 했는지 말이다.]

‘어째서…인가.’

청유백은 천화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왜 자신을 낙오시키고자 했는가.

승리를 위해서?

‘…만약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승리를 위해서?’

기실, 누가 고독의 주인인지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고독 또한 결국 독충의 일종이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은 녹가 이외에는 전무하니.

‘고독의 주인은 녹가의 일원 중 한명이겠지.’

[허나 그것이 녹가의 것이라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니라.]

천화는 언질을 주었고,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대체, ‘누구’의 승리를 위해서 저를 견제했단 말인가?

‘그렇군. 확실히… 문제야.’

[녹가의 승리를 위해서? 아니, 아닐 테지. 녹가가 승리를 바란다면, 그 주체는 분명할 게다.]

‘정해져 있지. 녹가의 다른 자식들은 썩 쓸 만하지 않으니… 녹지연밖에는 없다.’

녹가가 자신들의 승리를 바라며 승부를 조작하려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녹지연의 싸움에서일 테다.

[하지만 그 아이는 첫 결투에서 패했다지 않았느냐. 녹가가 승리를 바랬다면, 거기서부터 손을 썼을 게야.]

‘…다른 목적이 있군.’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정도 있을 터.]

하나는 ‘특정 누군가의 우승’.

둘은, ‘청유백 개인의 패배’.

천화는 그리 말하면서도 근심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후자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

청유백 개인을 견제하기 위한 승부의 조작이라니.

너무 비약이 심하다.

아무리 진문을 통과했다고 한들, 그 명성이 단숨에 적철진이나 청명휘에 비할 정도로 오르지는 않았다.

그 누구라도 차라리 그 둘을 견제하지, 청유백을 견제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의 우승을 바란다는 것인데.

‘알 수 없군. 전혀 모르겠어.’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녹가가 다른 가문의 우승을 바랄 이유가 없었다.

승부를 조작할 수 있다면 스스로가 이겨 나가면 될 테다.

‘정보가 너무 없다. 목적이라도 알 수만 있다면….’

분명 무언가 음모가 꾸며지고 있건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추론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너무나도 적었다.

청유백은 일귀의 숨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당장 제거도 힘들겠지?’

[그랬다간 아이가 죽을 게다.]

고독을 제거할 방법이 정 없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살을 뜯고 강제로 고를 끄집어 낼 수는 있으나, 지금 상태의 일귀에게는 위험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고독도 매한가지 아니겠느냐. 너와 나라면 끄집어 낼 수야 있겠다만, 당장 내일도 결투가 예정되어 있으니.]

‘…가슴팍에 구멍이 뚫린 채로 멀쩡한 실력을 내기는 어려울 테지.’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장 무언가 빌어먹을 계획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느껴졌지만, 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알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당장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 정도였다.

천화는 그것을 입에 담았다.

[녹지연, 그 아이를 추궁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가능성은 있겠지만, 글쎄.’

이 누군가의 계획이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라면, 녹가의 중심에 있는 녹지연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을 테다.

당초부터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저를 도우려는 태도도 그에 연관된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기각이다.’

[어째서냐?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않더냐. 그 아이의 태도를 보면, 생각보다 쉬이 대답할지도 모르니라.]

‘연관이 있는 만큼 접근도 신중해야 하지 않겠나. 최소한, 녹운각으로 만나러 갈 수는 없다.’

녹가의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적지로 걸어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굳이 부득불 녹지연에게 말을 꺼내야만 한다면,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묻는 정도가 최선이리라.

[그럼 어찌할 셈이냐. 마땅한 방법 하나조차 없지 않더냐.]

‘적의 음모도 모르고, 경위도, 대상도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 때, 문득.

청유백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알고 있는 것?

알고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지 않은가.

청유백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의 목적은 명료하지 않나.’

[목적?]

‘그래, 목적. 저 너머의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들이 성취하고 싶어 하는 것.’

누군가를 우승시키려 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목적이 있지 않던가.

그리고 그 누군가가, 최소한 청유백 저 자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 괜찮겠는데?

큭, 큭큭큭.

청유백의 다문 입 사이로 실소가 슬금슬금 흘러나왔다.

[너는 가급적이면 웃지 마라. 사람 하나 잡겠구나. 뭐가 우습다고 그리 웃느냐?]

‘뭐가 우습냐고?’

아니, 우습지는 않다.

하지만….

‘아주 좋은 생각이 났거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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