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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89화 (89/200)

제89화.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 하지만… (4)

‘……?’

뭐?

잘못 들었나?

아니, 뭔 놈의 미친…….

모두가 같은 생각이 든 것은 비단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흘겨 그 방향을 바라볼 겨를은 없었다.

이 정신나간 멧돼지 놈들을 막아내는 것도 힘겨울 따름인데, 무슨 한눈을 판단 말인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 하나는 한 번 힘겹게 검을 받아넘긴 직후, 그 방향을 돌아보았다.

호기심 때문이냐고?

씨발! 뭐라고 헐뜯든 좋다.

하지만 저딴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자신은 조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었다.

이 전황을 파악하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선택해서 진형을 갖출 책임 말이다.

“……!!”

그리고 삼 하나는 보았다.

처음 든 생각은 단순했다.

아!

‘미친 새끼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만만하고, 말도 안 되게 거만한 자세로 서 있는 아이가 보였다.

무기를 뽑아 들고는 있었지만, 그야말로 건성건성 휘두르고 있을 뿐, 결코 진심을 담고 있는 듯 보이진 않았다.

평소였다면, 겁대가리를 상실한 안타까운 친구라고 치부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서, 설마….’

삼 하나는 이 순간, 무시무시한 가능성에 생각이 닿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저 열의 실력이 전부 비등비등하겠지만, 어디 저 놈들이 보통인 놈들이던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불구대천심공!

그 끔찍하다는─물론 어제 들었으니 그게 뭔지는 자세히 모른다만─ 마공을 저들 전원에게 익히게 했다니, 그냥 미친놈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마 저 셋이….’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믿을 수가 없지만!

하지만!

어제 청률 공자님께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문득 든 그 생각도 충분히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삼 하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장 약한 건가?!’

저 괴물같이 강한 셋이?!

‘말도 안 돼! 아니, 하지만…!’

하지만, 그런 끔찍한 마공까지 익힌 놈들이 아니던가?

저 뒤에 있는 놈의 옷에 십(十)이라고 적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눈앞의 검을 들고 있는 칠 하나 녀석만 하더라도,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저, 정말 저 셋이 가장 약하다면…….’

이곳 마교는 약육강식의 사회, 가장 약한 셋만 앞으로 내세워 강해지든가, 죽든가의 선택지를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런 결투마저도 그저 훈련의 하나로 소모한단 말인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길 가능성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조, 조장, 왜 그래?!”

“이런… 이런 빌어먹을…!!”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허세겠지!

삼 하나는 그리 되뇌며 다시금 집중하려 해보았지만, 더 이상 눈앞의 세 명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 누가 튀어나와 가세할지, 조금이라도 압박하기 시작한다면 저 뒤에 있는 놈이 갑자기 달려들진 않을지, 그 모든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미동이 있다면, 그것에 맞춰 다시금 진형을 가다듬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상념들은 반드시 빈틈을 만들기 마련이었다.

“크으읍!!”

섬전같이 파고든 검격에, 삼 하나는 억지로나마 검을 들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흘린다면 동료가 맞을 테고,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순간임에도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밀리고, 다시 한번 밀린다.

삼 하나는 이 순간 새삼 깨달았다.

검을 맞대고, 코등이의 감각에 집중하는 바로 이 순간이.

그 여느 때보다도 상대방의 표정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어, 손짓과 발짓, 나아가서 어깨에서 팔꿈치로 잇는 힘의 흐름까지,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임을 알았다.

찰나, 정말 찰나였다.

어쩌면 죽기 직전의 모든 힘을 짜내어 한순간이나마 힘을 겨룰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끄으윽!!”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다.

우연인지, 운인지, 자비인지 모를 대치는 결국 끝났다.

칼날은 밀려나와 목젖을 향해 쇄도했다.

‘빌어먹을…!!’

그러나.

그렇게 끝나나 싶던, 한순간.

돌연, 이변이 일어났다.

갑작스레 힘이 빠진 칼날은 삼 하나의 검을 따라 비스듬히 흘러내렸고, 목이 아니라 옆의 땅을 내리쳤다.

“……?”

지금의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검을 맞대고 있던 상대방─칠 하나가, 갑자기 가슴팍을 부여잡고는 휘청거렸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끄윽…!!”

무슨 영문인지는 모른다.

이유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생각하지 않았다.

저것이 속임수인지.

정말 무언가의 병증인지.

혹은 찰나의 능욕을 위한 기만인지.

아직 어린 검수에게 그런 것의 판단은 너무나도 일렀다.

그저 명확한 것은.

삼 하나는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퍼석.

섬찟한 소리와 선혈이 교차했다.

* * *

어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찬은 순간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찰나에 시야를 가리는 붉은 액체가 흰 두건을 물들이고, 이찬이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 때문인가?

아니, 그건 이미 익숙하다.

그깟 피 따위는 자신의 것이든 친구의 것이든 이미 질리도록 보아 왔다.

친구의 부상?

그 또한 익숙하다.

귀아대에서 그런 일은 일상의 한 요소일 뿐이니까.

허나, 지금 이 순간.

기묘하게도, 일귀가 당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왜?

무슨 수로?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사실상 십 대 삼의 싸움을, 어떻게든 끌어나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까드득.

이찬의 이빨이 거세게 악물어졌다.

당혹은 의문이 되고, 미지에 대한 의문은 분노가 되어─강렬하게, 도를 쥔 손아귀에 힘을 더해갔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아!!”

─콰앙!!

이찬의 일격은 저를 향하던 칼날을 단번에 전부 튕겨냈다.

눈앞이 붉어졌다.

피였다.

그러나,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이찬은 생각보다도 먼저 다리를 움직여, 바닥을 박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칼을 꼬나 쥐고 돌진해 나아갔고, 놀랍게도 옆에는 완전히 동일한 생각을 하는 듯한 삼아가 있었다.

그 행동이 무언가 계획이 있어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이 붉게 물들어 분노가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벤다, 휘두른다, 다시금 벤다.

그 단순한 일련의 과정이, 그저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에 반복되었다.

한순간이 지나자 지령을 내리고 진형을 주도하던 중심은 단칼에 붕괴되었고, 이찬과 삼아는 그곳으로 침투했다.

결코 현명한 판단이라 이를 수는 없었다.

등 뒤를 지켜줄 무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의 수준으로 판이하게 다른 위험을 가져온다.

특히나 저 무리는 이쪽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합격술을 사용하는 부류.

전방만 신경 쓰면 되었던 방금과 달리, 이제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막아내야만 할 테다.

합격진의 의미는, 그 숫자의 힘을 살려 몰아치는 공격을 반복함에 있으니까.

사람을 공격함에 있어서 그 방향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속도와 간격의 묘를 맞추어 더욱 거세게 압박하는 것이다.

본래라면, 그래야 했다.

“……!!”

그러나 칼이 닿지 않았다.

칼을 휘두르고, 찌르기도 전에.

두 사람은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져 다른 동료를 난자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신묘하고 기묘한 묘리가 담긴 움직임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경공과 유사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그 투박한 발걸음에는 조화라곤 일절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본능이다.

살기 위해, 그리고 죽이기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는 본능.

물들어지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익히지 않았기에 가장 순수한 본능이 힘과 함께 날뛰었다.

이 순간, 언젠가 청유백이 했던 말이 이찬의 뇌리를 스쳐갔다.

“굶주린 범이 토끼를 잡을 때 냉정히 계획을 세우던가? 저 놈이 어디로 튀면, 어떻게 쫓아가야지─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울 것 같나?”

뭐라 대답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청유백의 대답만큼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저 믿는 것이다. 제 힘을, 그리고 능력을 말이다. 허기와 분노로 눈앞을 가득 메운 채, 그저 달려드는 게지.”

그때는 그저 핑계라고 생각했다.

가르쳐줄 것 없는 멍청한 스승의, 하릴없는 핑계.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이찬은.

그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 칼끝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 * *

“허허, 믿을 수가 없구료.”

“저게 바로 불구대천심공의 효능인가! 아니, 하지만 그것은 심공일진대…!”

“그것과 조화되는 모종의 체술을 익힌 것일지도 모르지. 허나, 청유백 그 아이가 끔찍하게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소.”

단순한 힘으로, 분노와 본능으로 밀어붙여 승리를 거둔다.

말이야 쉽지만,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분노는 물론 힘을 주지만, 그 이상으로 눈을 어둡게 하여 움직임을 단조롭게 한다.

괜히 격장지계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이 되면, 분노는 그저 불이익으로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것은 그저 어린아이, 기교와 재능이 꽃피지 못한 애들 싸움에서나 성사가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고작 백 일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아이들을 저렇게까지 개조할 수완이 있어야만 가능한 전술이기도 했다.

청유백의 생각은 이러했다.

합공(合攻)이라는 것은 결국, 꺾기 힘든 한 사람을 상대로 여럿이서 공격하는─속된 말로 다굴 친다고 표현하는 행위인데.

꺾기 힘든 상대가 없으면, 그걸 굳이 합공을 해야 하나?

둘, 혹은 셋이서 한 명을 잡으면 더 수월하지 않겠느냐고?

그걸 다섯 번 반복할 시간에 한 명이 세 명씩 맡아서 조지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가.

아주 단순하고도 훌륭한 계획이다.

최소한, 스스로는 그리 자부했다.

청유백은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쳤고, 실제로 능히 그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허나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모자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 하나뿐.

분노였다.

장로들은 방금 전보다도 일신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어디선가 웃고 있을 청유백을 부러워했다.

“청유백은 웃고 있겠구려. 하나하나 전부 제 뜻대로 되고 있으니.”

“저 아이가 다친 것도 계략의 일부일지도 모르지요. 무서운 재능입니다.”

“지금껏 그런 보옥을 숨겨왔다니. 청가도 어지간히 독하구만.”

장로들은 분명 청유백이 웃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벽하게 아이들을 키워냈으니 말이다.

나아가, 어제의 그 어리바리하던 아이들에 비해─지금의 저 움직임은 분명 누구라도 만족스러워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당사자인 청유백은.

“…천화, 보았나?”

[똑똑히 보았느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경악에 찬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결투는 결국 청유백 측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종반에는 거의 압살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며 아이들은 환호와 찬사를 받았지만, 그 표정에서 기쁨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귀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즉시 녹운각으로 실려 갈 정도로 중상을 입었으니.

승리의 기쁨과 아직 삭지 않은 분노를 비교한다면, 아직은 아무래도 분노 쪽이 더 강렬하게 사고를 불태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녹운각으로 몰려갈 수 없었고, 어찌 되었는지 모를 일귀의 생사를 그저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청유백에게 그런 인내심은 없었다.

‘믿을 수가 없군…….’

제가 길러낸 아이가 다쳤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 사실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키워냈다 한들, 한순간의 방심은 승부를 뒤엎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테다.

그저 그 미련한 것이 방심한 것에 책임을 돌리고, 한 번 돌아보는 것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방심이 아니라면, 나아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겁한 이유라면.

청유백은, 굳이 그것을 좌시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청유백은 녹운각의 복도를 걸었다.

천마지회 탓인지, 혹은 다른 용무가 있는 것인지, 생각보다도 다양한 가문의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개중에는 청유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도 있었다.

더욱 정확히는, 일귀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테다.

“주화입마겠지요. 쯧쯧, 그런 마공을 익혔으니, 부작용이 없으면 그야말로 기이한 일 아니겠습니까.”

“무어, 과욕이 화를 부른 게지.”

청유백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코웃음 쳤다.

주화입마?

‘그럴 리가.’

고작 세 달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아이들은 충분히 격렬한 마기에 적응했다.

당연했다.

파괴와 고통은 육신을 강하게 하고, 하물며 그것이 죽음 직전의 고통이라면 그것에 적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였다.

이미 수십 번이나 사경을 헤매어 청유백이 그것을 고쳐냈고, 갈수록 그 빈도가 줄어 근래에 와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헌데, 운기조식 중도 아니고 전투 중에 갑자기?

하, 그럴 리가 없지.

청유백은 우습다며 무시했지만, 천화는 신음을 흘리며 의견을 짚었다.

[저들이 저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 이미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 주화입마를 고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말이다.]

‘뭐든 간에 상관없어.’

저들이 어찌 생각하든 간에 그게 알 게 뭔가.

그것이 진실이 아니고, 일귀가 쓰러진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느냐 묻는다면 정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비약.

그저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도, 거진 억지에 가까운 추측 말이다.

지극히 낮은 가능성.

그러나, 불가능은 아닌.

청유백은 그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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