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 하지만… (2)
“…아뇨, 당신께 좋은 때가 어디 있겠어요.”
녹지연은 그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독극물로 탈색된 쥐색의 수염, 그리고 온몸이 부식의 흉터로 가득한 기분 나쁜 인상의 중년인.
목부터 쇄골까지 가로지르는, 상처 입은 녹색 뱀의 문신.
녹가의 가주, 녹운룡이었다.
“…그저 명령할 뿐인데.”
녹지연은 슬쩍 눈을 굴려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지지는 시간에 맞춰 내보냈다.
설마 제 자식인 이상 녹지지를 죽이지야 않았겠다만, 무언가의 독으로 기절시키는 정도는 거리낌 없이 할 인간이었으니.
녹운룡은 그런 싸늘한 녹지연의 태도가 불만이라는 양어깨를 으쓱였다.
“아비라 부르지 않는 것은 여전하구나. 내 딸아.”
그러나 그 말투에 진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농이라 부르기에도, 진심이라 부르기에도 어딘가 뒤틀린, 마치 감정이 메마른 듯한 목소리.
녹지연은 소름이 끼쳐오는 팔의 떨림을 억지로 참아내며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그 또한 명령하시면 되지 않나요?”
“클클클, 필요하다면 그리 했겠지.”
움찔.
한순간 섬뜩하게 가슴을 옥죄어온 압박에, 녹지연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덜컥, 탁상의 끄트머리에 손이 부딪쳐 갈 곳이 없음을 인지한 다음에야, 가쁜 숨을 내쉬며 녹운룡을 마주 보았다.
“바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청유백, 그 사람이 이번에도 뭔가 저질러 줬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한가하신가 봐요?”
“계획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적철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수준이야. 하지만 글쎄, 나는 네 결과가 더 흥미롭더구나.”
녹운룡은 어둠에서 나와 탁상의 먼지를 쓸었다.
그러다 손가락이 멈춘 것은, 책상 한 켠에 놓여 있던 곤충 백서였다.
녹운룡은 그것을 펼쳐 뒤적이며, 녹지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네 패배를 보았다. 아이들에게 전혀 신경도 써 주지 않았더구나. 마치….”
그리고, 한순간.
어느 장에서 그 손길이 멈추었다.
녹지연이 그 장에 무언가 표시를 해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서책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녹운룡은 그것을 덮으며, 찢어버릴 듯 움켜쥐었다.
생각해보면 기이하지 않았던가.
우리 녹가 제일의 기재라 불린 아이가, 고작 가르치는 능력 하나 없을 리가 없거늘.
그 행동은 마치….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 아악!!”
녹운룡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괴한 목소리에, 녹지연은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웅크려 쓰러졌다.
심장이 옥죄었다.
척수에서, 그리고 혈관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머리를 향해 내달렸다.
“흑, 끄으으….”
목에서, 손등에서, 쇄골에서─
무엇인지 모를 기괴한 형체가 신음과 함께 꿈틀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이 고통의 원인인 것은 자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기괴한 비틀림은, 녹운룡이 한숨을 내쉬며 책을 움켜쥔 주먹을 편 이후에야 서서히 안정되었다.
“이런… 딸아, 어리석은 나의 딸아.”
녹운룡은 천천히 녹지연을 향해 걸어갔다.
무릎을 꿇은 채 심장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내쉬는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미련한 저항 따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전부 쓸데없는 짓이다. 전부….”
녹운룡은 움켜쥔 책에 더욱 힘을 주어 그대로 구겨버렸다.
그리고 찰나, 손끝에서 타오른 작은 불씨가 책에 옮겨붙어, 먼지로 가득한 낡은 책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잠시도 지나지 않아 책은 검은 그을음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녹운룡은 그것을 그녀의 앞에 흩뿌리며 비웃듯 말을 이었다.
“알고 있겠지, 나의 딸?”
“…….”
“대답이 작지 않니.”
녹운룡은 다시금 주먹을 움켜쥐었고, 그 결과는 명료히 나타났다.
짧은 비명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고, 잠시 후 그 고통이 몸을 놓아 주자 녹지연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알, 고… 있어요….”
“좋아. 부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녹운룡은 다시금 그림자에 숨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녹지연이 정신을 찾아 구석의 작은 목함 하나를 찾아 꺼내들 때까지.
그 누구도 그녀의 방에 고개를 들이밀지 않았다.
그녀는 목함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손에 꼭 쥐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 * *
“귀찮아 죽겠군….”
청유백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청천각의 문을 닫고 나왔다.
안쪽에서는 여전히 청유백이 벌인 짓에 대한 처우에 대해 열띤 토의가 한창이었다.
불구대천심공.
그 단순한 단어는 청가의 고매한 장로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 해야 할까.
처벌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청유백의 평판이 어떨지언정 청유백은 청가의 일원이고, 어떤 허물이건 간에 안고 가야 할 문제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토의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청유백이 어떻게 불구대천심공을 운용케 했고, 어떻게 그것을 성공시켰는가.’
청유백이 입을 열었다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겠지만, 당사자가 침묵하여 버렸으니 일이 곤란하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저 추론해서는 그 편린조차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 극악한 마공을 가르치고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필시 모종의 특별한 방법이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그 극악한 마공을 본래의 연공법 외의 방법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이 알아낼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청가의 장로들은 득달같이 청유백을 불러들여 취조했더랬다.
‘마음 같아서는 엿 먹으라 하고 싶지만….’
정치란 기본적으로 수지타산이다.
적에게도, 아군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굳이 청가의 눈 바깥에 나는 것에 비하면 반나절 정도의 수고쯤이야 큰 것이 되지 못했다.
천화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왜 굳이 비급을 찾았느냐? 승냥이 피하려다 범굴에 제 발로 머리를 들이민 꼴이로다.]
‘나한테 접촉하기도 전에 정보가 샐 줄 어찌 알았겠나.’
엄밀히 말하면, 찾아낸 비급을 내미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언젠가, 어떻게 아이들을 저렇게 강하게 키웠느냐는 질문이 온다면, 수많은 둘러댐 끝에 끝끝내 건넬 마지막 수였단 말이다.
물론 보통이라면 침묵으로 일관하면 그만이겠으나, 언젠가는 대답을 거부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될 테고, 그때의 대책이었다.
가령─천마 앞에 세워진다든가.
무리한 가정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청유백도 애초에 그만큼의 파급은 예상한 바였으니까.
뭐, 괜히 금술이겠는가?
‘백소하 놈 입이 이리 가벼울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무얼… 확실히, 이야기가 샌다면 그 아이밖에 없기야 하겠구나.]
청유백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상관없는 일이다.
번거로워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시달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끝끝내 대충이나마 마무리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말 무언가의 묘안이 있다면 마교는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소! 저대로 보낼 수는….”
“우연이라지 않습니까! 약관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대체 뭘 바라시는 겁니까?”
등 돌린 청천각에서 열띤 고함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왔다.
‘…다음엔 유 부인한테 감사라도 전해야겠군.’
지난번에 눈도장을 찍어둔 것이 퍽 잘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리 나오게 된 것도, 유 부인이 저 아이도 피곤하지 않겠느냐며 사정을 봐준 덕에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뭐, 그것은 그것이고.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청유백에게 천화가 행선을 물었다.
[아이들에게 갈 테냐?]
‘아니. 나름대로 승전의 분위기 아니겠나. 굳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겠지.’
무언가 필요한 상황에 이유가 있듯, 불필요한 것에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불필요한 걱정만큼 쓸모없는 일도 없지 않던가.
내일, 싸움의 직전에 한 번 정도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그래, 이겼다고 들떠 있는 놈들 한 번 정신 차리게 하는 정도면 내 역할은 충분할 거다.”
─라고, 생각했던 게 지난밤.
“이 새끼들은 정말….”
아, 혈압.
아.
청유백은 당겨오는 뒷목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놈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구나 하는 것이 보였던 탓이다.
거진 광대까지 내려온 눈그늘을 그것 말고 어찌 설명하겠는가.
“하하하…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
그래, 좋다.
승리에 취해 간밤에 잠 못 드는 것은 아이들의 특권이니, 그까짓 거 이해를 못할 것도 없다.
하룻밤 못 잤다고 해서 결투에서 질 정도로 가르치지도 않았으니, 그리 큰 문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하아….”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승리에 취해 들떠 있어?
빌어먹을, 차라리 그랬으면 뭐라 하지도 않았을 테다.
저가 이놈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차라리 자만을 하든가!
“왜 그리 자신이 없나! 한 번 이겼으면 아, 나 좀 세구나! 하고 자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청유백은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로 타박했다.
빌어먹게도, 이 녀석들이 잠을 설친 이유는 흥분이나 승리의 도취가 아니었다.
긴장, 혹은 그에 가까운 공포와 비슷한 이유였다.
어찌 그것을 아느냐 묻는다면, 그야 저 웃음기 하나 없이 굳어버린 얼굴을 보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도 할 말은 있다는 양, 삼아는 우물쭈물하다가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 하지만 선생님, 다음 상대는….”
“다음 상대는 뭐.”
“그… 선생님의 형님께서 가르친 아이들인 걸요.”
“…….”
형님?
그 말에, 청유백은 재빨리 기억을 되짚어 대진표를 떠올려 보았다.
어차피 누구든 간에 이길 거라 생각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천화는 한숨을 내쉬며 청유백의 기억을 짚어 주었다.
[삼아의 말이 맞구나. 넷째 시합은 청률과 백소상의 것이었지. 청률이 이겼다면, 다음 상대는 네놈이니라.]
“…….”
그러니까, 대충 청률이 제 형이니까 더 대단한 뭔가를 가르쳤을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인가?
청유백이 ‘이건 무슨 개소리야’로 시작하는 일장 육두문자를 씹어넘길 찰나, 천화가 이죽거렸다.
[무리한 생각은 아니지 않더냐. 어제 싸웠던 아이들을 기른 것이 고작 황돈이다. 고작 그 황돈 말이다.]
‘…….’
[그보다 훨씬 우월할 청률의 아이들은 더 강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일단 호적상 네놈의 형이기도 하고 말이다?]
‘안다. 탓할 생각 없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어젯밤에 잘 했다고 격려하러 찾아가는 것이 나을 뻔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 행하지 않은 것인데, 과연 세상 모든 사람이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청유백은 몇 번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게도, 딱 하루만 시간을 돌리는 편리한 기술은 보유하지 않았으니까.
천화는 한심하다는 양 쏘아붙였다.
[허면 뭔가 응원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대로는 곤란할 것이 뻔할 테지.]
‘응원의 말이라.’
청유백도 안다.
아무리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 놨다고 한들, 단체전은 결국 기세다.
이 마음가짐으로 나가는 것은 심히 곤란했다.
어제는 그야말로 초견(初見)이었다.
상대방도 방심했기에 일기토로 단숨에 기세를 꺾었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난전으로 흘러간다면, 백이면 백 무조건 이 녀석들이 이긴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도 가능할까?
청유백은 단언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겠지.’
다른 후계자들은 머저리가 아니다.
화제가 되었던 만큼 당연히 가능한 선에서나마 대책을 강구할 테고,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일기토도, 난전으로의 흐름도 기꺼워하지 않으리라.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해줘야 하나.’
아이들은 어쩔 줄 모른 채 그저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나 기세가 넘치던 이찬조차 밤새 다른 아이들에게 물들었는지, 할 말을 참는 듯 우물쭈물하는 모양새였다.
청유백은 머리를 굴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
이긴다고 생각하며 싸운다면 당연히 이길 것을, 굳이 풀어서 이길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문득, 청유백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래, 이기는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이 심각한 것도 좋지 않으리라.
“…간단하게 설명해주마.”
청유백은 구석에서 땔감으로 쓸 법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내밀었다.
전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뭇가지였다.
“이건…?”
“나뭇가지잖아요.”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뭘 어쩌라는 투였다.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것을 삼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대표는 한 명이면 되었으니, 다른 아이들은 그저 뭘 하냐는 투로 삼아를 지켜보았다.
청유백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냥 나뭇가지지. 부러뜨려 봐라.”
청유백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혀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삼아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또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반으로 분질러졌다.
이것과 승리가 무슨 상관이라는 것일까. 삼아는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로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했어요.”
“자,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 그렇지?”
“네.”
“그리고 이렇게….”
청유백은 다시 구석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대충 양손으로 들어 뭉쳐 모았다.
둘레가 장정의 손아귀보다도 커서, 삼아가 들기 위해서는 팔목을 넘어 팔꿈치 부근까지 써서 감싸 안아야 겨우 들릴 듯이 보였다.
“열 가지를 뭉쳤다. 자, 부러뜨려 봐라.”
아!
그 행동을 보고서야, 일귀는 이제야 알았다는 양 화색을 띠었다.
알고 있는 속담이었다.
하나의 나뭇가지는 잘 부러지지만, 세 개를 엮으면 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인원은 열 명이니 열 개를 묶은 듯 보였다.
뭐면 어떤가?
어차피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일 터인데.
일귀는 알겠다는 듯 손뼉을 치며 앞으로 나섰다.
뭉치면 강하다!
협동하면 강해지니까, 방심하지 말고 싸워라!
‘분명 그런 의미시겠지!’
일귀는 확신했다.
지금이야말로, 청유백을 거들어 자신이 아이들을 독려할 때!
하지만, 일귀가 앞으로 나서서 무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빠각!
“……?”
앞으로 나선 일귀의 뒤에서, 기습적이고도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라, 이거 기묘할 정도로 둔탁한 것이….
일귀의 목이 삐걱이며 돌아갔다.
그리고, 설마 하던.
“…….”
“…왜? 부러뜨리라 하셨잖아.”
삼아는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귀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유백이 쥐여 줬던 열 개의 나뭇가지는, 너무나도 무력하게 반으로 꺾여 삼아의 발치를 나뒹굴고 있었고 말이다.
“어….”
일귀는 한순간 생각이 정지해서는, 청유백과 삼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삼아에게 된통 화를 내지는 않을까 순간 걱정했지만, 청유백의 표정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던 것이었다.
분노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표정.
청유백은 의기양양하게, 마치 선언하듯 외쳤다.
“자, 이제 알겠나?”
“네?”
“나약한 것들이 아무리 뭉쳐 봐야 나약할 뿐이라는 것을!”
“……?!”
마치, 고오오오! 라는 의성어가 어울릴 법한 멋들어진 자세를 잡는 청유백이었다.
일귀도, 천화도 이해하지 못해 청유백의 귓가에 속삭였지만─
[그게 맞느냐…?]
청유백은, 그리고 최소한 일귀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깊게 감명받은 듯이 눈을 반짝였다.
“자, 가서 조져라! 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