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 하지만… (1)
황색과 청색이 한데 섞여 격돌했다.
검을, 도를, 창을.
이렇다 할 구분 없이, 그저 눈앞의 적을 향해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저것이 장로들이 바라던 ‘마교의 위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압도적인 힘.
저 광경을 본 그 누구도, 마교의 후대를 의심하지 못하게 할 만한 격차의 싸움임은 확실했다.
“미, 밀어붙여!!”
“으아아아아아!!”
분명 같은 움직임, 별로 다를 것 없는 미숙한 어린아이의 움직임일진대─
─콰광!!
그 손짓 발짓 하나의 결과는 결코 어린아이의 주먹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파괴를 데려왔다.
워낙 난전인지라, 저 전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달려들었고, 밀어붙였으며, 저항의 여지조치 없이 순식간에 밀려났다.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그것은 기교의 우열을 가리는 비무도 아니었고, 생사의 벽을 가르는 결투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탄압.
마치 어른이 아이를 어르듯이, 당연하다는 듯 찍어 누르는 과정이라 이를 수 있으리라.
“저, 저, 저….”
“허, 어찌 저런…?”
장로들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적여문이나 황소종인들 예외가 아니었다.
적여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장로나 대주들도, 자신과 별다를 것 없는 표정을 짓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지간한 정도라면 ‘그래봤자 청유백이지. 운이 좋았을 뿐일 게야.’ 같은 삼류 악당의 대사를 지껄이며, 두 번쯤 더 싸운 이후에야 ‘제법이군.’ 정도의 평가를 내렸을 테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러기에는, 결과가 지나치리만치 충격적이었다.
‘…청가의 아이들이 황가의 아이들을 이긴다?’
그건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황돈이 꼼수를 쓰지 않았더라면 도리어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청유백은 최근의 일들로 묘한 기대감을 받기도 했으니, 이번에도 의외의 결과를 보일 법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기느냐.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기술과 전략의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한다면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아니, 조금이라도 싸움이 되었다면 납득했을 테다. 하지만 저건….’
격이 다르다.
출발선이 다른 수준이다.
기술도, 기교도 필요가 없다.
심지어, 황가가 저토록 수작을 부렸음에도!
창과 창을 맞부딪치는데 한쪽의 창대만 꺾여 나간다면, 대관절 그것을 어찌 이겨야 하겠는가?
황소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은 청가의 아이들을 향해 삿대질했다.
“마, 말도 안 되오. 이럴 수는 없소! 무슨 수작을 부려야 고작 귀아대를 저 정도까지 키워낼 수 있단 말이오. 심지어….”
“고작 석 달 만에?”
“그래! 말 잘 하셨소. 고작 석 달 만에!!”
“그건 나도 동감이오만….”
허 참.
적여문은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가 일었다.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어보니, 다른 이들도 대충 같은 생각인 듯 보였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형편없구려. 공통된 움직임이 하나도 없소.”
“움직임에 군더더기도 많고… 필요없는 동작도 여럿. 하지만 강하군. 도대체 어떻게?”
“허어….”
검극의 신묘한 묘리도, 궤도의 변화무쌍한 압박도 저 아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했다.
압도적으로.
그 이유 또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였으니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힘.
그저 힘이다.
‘충분한 힘 앞에서 기교는 그 의미를 잃는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핍박할 때,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 정도의 격차가 있다면 기교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
힘이 기교를 압도해야만 하며, 둘 전부가 극한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무조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기교가 승리한다.
무기술이란, 무공이란─
애초에,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를 꺾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행운 없이 힘이 기술을 이기는 때는, 그 힘이 기술을 완벽하게 압도할 정도로 우위가 벌어지는 경우뿐이다.
장로들과 대주들이 말하는 ‘어떻게’란, 저게 ‘어떻게 강할 수 있느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힘은 가장 단순한 무력의 표본이었으니, 저게 왜 강한지는 당연히 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저걸 저기까지 키워놓을 수 있느냐.
고작해야 조금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를, 어떻게 해야 완숙한 성인 수준의 신체로 끌어올려 놓을 수 있느냐다.
적여문의 귓가에 다른 대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정말로 저걸 청유백이 키웠다면….”
“거짓은 없을 거요. 청유백에게도 감시자가 붙어 있었고, 별다른 말이 나온 적은 없소.”
“…그것이 진실이라면, 저는 무릎을 꿇고서라도 비밀을 배우고 싶군요.”
“너무 과하지 않소?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오.”
“무릎이 문젭니까? 발바닥을 핥으래도 핥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적여문도 좀 과하다 싶어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도리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고작해야 칼받이 정도로 쓸 귀아대 아이들을, 십 년 후에는 마두도 넘볼 만한 재목으로 키워 놓았는데요.”
“크흠….”
맞는 말이었다.
적여문도 그리 생각했다.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야.’
적가가 청가만큼 일반 무인들의 수련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적가 직속의 검대는 적가가 직접 길러내야만 한다.
가문 간의 알력 싸움을 넘어서, 모든 아이들을 저 정도 수준으로 키워낼 수만 있다면, 다시금 전성기의 마교를 바라보는 것도 마냥 꿈은 아니리라.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말하며 저 충격적인 결과에 대해 복기하던 중, 갑자기 황소종이 앞으로 나서서는 강력히 주장했다.
“필경 무언가 편법을 쓴 것이 틀림이 없소. 당장 청유백을 소환하여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요!”
솔직히, 퍽 추한 거동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저 상태에 흥미를 가지는 부류도 있는가 하면, 황소종처럼 의구심을 품는 부류도 물론 있을 터였다.
확실히, 너무 이상하기는 했다.
청유백이 지금껏 알려진 것과는 달리 숨겨진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 성장은 일반적인 것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종류였다.
분위기가 기묘하게 흘러가려는 듯 보였지만, 다른 장로가 그것을 막아섰다.
“허허, 대관절 무엇을 추궁한단 말인가?”
“당연한 것 아니오! 약을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금술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조사해 봐야지!”
“퍽 우스운 말이군. 그런 제한이 어디에 있었다고? 아니, 설령 있었다고 해도….”
그는 힐끗, 눈을 돌리며 녹가의 장로에게 답변을 넘겼다.
안면이 있는 자였다. 이름이 아마, 녹운표라 하였던가.
녹운표는 씁쓸하게 침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약은 아니오. 방법이야 있겠지. 광마환(狂魔丸)이나 필생단(必生丹)같은….”
두 쪽 모두, 백 년 전을 마지막으로 금지된 물건이었다.
복용하면 복용자의 잠재력과 선천진기를 모두 끌어다 폭발시켜, 단 한순간이나마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는 물건.
마교의 사람이 많고, 세력이 파죽지세로 뻗어 나가던 그 시절에는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의 마교는 저런 물건을 사용할 여력이 없었다.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복용시킬 사람이 넉넉지 않으니까.
녹운표는 말을 이었다.
“그런 것들은 반드시 겉으로 표가 나기 마련이오. 절정을 넘어, 화경에 이른 고수라도 그것은 감출 수 없소. 생을 대가로 힘을 불태우는 것이니 말이오.”
녹운표의 말이 끝나자, 그는 들었냐는 양 황소종을 향해 코웃음 쳤다.
“솔직히 말하시게. 위기감이라도 느끼는 것 아니오?”
“허! 말을 가리십시오, 장로!!”
소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번져갔다.
황소종을 변호하기 위한 황가 측의 항변과, 이유야 어쨌든 좋으니 청유백의 답을 들어보고 싶은 무리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이미 지금껏 있었던 이변이나, 곧 있을 다른 이들의 차례에는 관심이 사라진 이후였다.
가령 녹지연의 아이들이 상정한 것 이상으로 무력했다는 것이나, 그녀가 아이들의 결투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등의.
방금까지만 해도 퍽 흥미로운 술안주가 될 법한 이야기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옛 율법에 따라 그것은…!”
“아니,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의 소란이 지나가고, 결국 장로들은 그럴싸한 합의를 보았다.
물론….
“옛날 같았으면 칼부림부터 났을진대, 참 좋은 시대 타고나셨소.”
“누가 할 말인지 모르겠군. 끌끌끌….”
…따위의 자존심 세우는 한마디 정도는 덕담처럼 나눈 후에 말이다.
합의를 내놓은 것은 백가의 장로였다.
“이렇게 합시다. 청유백은 첫날,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 정보를 얻고 만마서고에 있었다고 하오. 허면 그곳에 있던 우리 아이들이 청유백을 보았겠지.”
“그렇다면.”
“아이의 식견이라 한들, 직접 눈으로 본 것에 거짓을 고하지는 않을 터. 직접 진실을 묻는 것은 어떻겠소?”
즉, 백소하를 부르자.
그 소리였다.
마침 백소하는 이미 제 순번이 끝나 할 일도 없을 터였으니─적영에게 참패당했었다─불러도 큰 지장이 없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백소하가 장로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형식적인 수준의 짧은 대화가 오가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장로들의 인내심은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시험의 결과는 어땠냐느니, 조금 더 정진하라느니 하는 덕담 따위는 조금 미루어도 늦지 않았다.
장로들은 여전히 흥분한 채 백소하에게 온갖 질문을 남발했다.
청유백이 무엇을 했는가.
대체 어떤 것을 가르쳤길래 아이들이 저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지만 결론적으로 백소하가 그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입니다.”
더 이상, 그 표정에 분노나 흥분이 담겨 있는 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 * *
이후로, 훈의 시험 첫째 날은 별다른 화젯거리 없이 덤덤하게 끝났다.
총 일곱 번의 결투가 치러졌고, 청유백 이후의 네 번은 이렇다 할 이변이 없었던 탓이다.
청명휘나 적철진이 길러낸 아이들이 잠깐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전부 상정한 이내의 것.
그들은 본디 유능함을 알았고, 딱 그 정도 수준에 맞는 결과를 내었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화제는 전부 청유백을 향했다.
청유백의 전이든 후였든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차피 모든 관심이 그에게 향했으므로.
그리고 그것은, 처음 화제를 불러왔던 녹지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그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녹지연의 아이들이 기이할 정도로 쉽게 상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잊히게 만들었으니까.
덕분에, 녹지연은 본디 시달려야 할 잔소리와 타박에서 벗어나 제 방에서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걸… 한 방울만. 그렇지, 됐다.”
녹지연은 조금씩 연기가 올라오는 단지에 무언가 모를 식물의 즙을 짜 넣었다.
그녀의 방 한 켠에 위치한 끓는 단지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방을 청소한 시비가 기억하기를 석 달 정도 된 물건이었다.
대충 시기를 보자면, 첫 번째 시험이 시작하고 다른 후계자들이 복마동에 들어간 직후부터였다.
그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무언가가 끓어대고 있는 것이다.
나름의… 불의 조절은 있었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조금인가.’
이 연구도 막바지였다.
수년이나 이어오던 이 연구, 이 배합이 정확하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터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말이다.
─드르륵.
갑작스레 들려오는 문 여는 소리에 녹지연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녹운각의 오 층, 침입자일리는 없겠으나, 기척을 내지 않고 갑작스레 들어올 만한 인간은 많지 않았다.
갑작스런 방문자는 문을 열어 녹지연을 발견하자마자 타박하듯 입을 열었다.
“누님, 또 그거야?”
“…그렇지 뭐.”
녹지연은 녹지지에게 기척 좀 내고 들어오라고 타박할까 잠깐 고민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듣지 않을 말, 턱만 아플 일일 테다.
“잠은 자고 있는 거지?”
“대충은.”
녹지지는 근처로 다가와 대충 근처의 물품을 치우고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제 누님이 뭔가에 몰두하면 정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익숙했으니, 별로 특이하게 반응할 것도 없었다.
누가 난장판을 만든 것 같은 기구들이나,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진 약초들 ─물론 그녀 본인은 ‘그게 원래 위치거든’이라며 우기곤 하지만─따위가 있기는 했으나, 뭐 평소와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중, 이질적이게도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이 있었다.
펼쳐진 책 한 권.
녹지지는 그것을 들어 장을 몇 개 정도 넘기고는 코웃음 쳤다.
“이건 뭐야, 곤충 백서? 뭐… 충독(蟲毒)연구라도 하는 거야? 옛날에 다 뗀 것 아니었어?”
충독.
벌이나 거미, 지네 따위의 독충에게서 나는 독들을 종합하여 이르는 말이었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만든 독을 포함해서 말이다.
“나한테는 아직도 어렵긴 해. 근데 누님은 열 살쯤 뗀 것 아니었나? 이런 낡은 책은 왜 보는 거야?”
“필요한 일이 있어서.”
“어유, 물론 그러시겠지요.”
관리와 제조가 어려운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녀라면 진즉에 다 떼었을 테다.
굳이 이런 것을 보고 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할진대.
‘그래,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옛날부터 그랬다.
말을 걸면 대답해 주기는 하지만, 결코 먼저 말을 걸어오지는 않는다.
대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간직하고 있는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비밀스럽기 그지없는 누님이었다.
그 와중에 둘도 없는 천재랍시고 주위에서 떠받드니, 그녀 또한 중압감이 어지간하긴 했겠다마는.
‘웬만하면, 문제라도 생기면 좀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누구한테도 제 마음을 드러내지를 않으니, 원.
녹지지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것뿐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괜찮아. 네가 걱정할 일은 아냐.”
“…….”
그래, 또 그 대답이지.
근래 만나러 가지는 않았지만, 그 청유백이라면 차라리 당신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녹지지의 상념이 머리를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본래 찾아왔던 이유도 순간 잊을 만큼 말이다.
녹지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자, 녹지연은 살풋 웃으며 녹지지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뭔가 할 말 있어서 온 것 아냐? 빨리 말이나 하고 가.”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대놓고 매정한 그녀의 태도에 녹지지는 곧 정신을 차렸다.
“아니 뭐… 그냥, 보이질 않길래. 혹시나 졌다고 의기소침해 있진 않나 싶어서 왔지.”
그런데, 뭐….
의기소침이라.
녹지지는 시선을 돌려 방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여유 넘치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하며, 무슨 필요인지도 모르겠는 곤충 백서.
잠깐 잊고 있었나 보다.
‘처음부터 이길 생각이 없었나보지, 뭘. 언제부터 그리 누님 걱정을 했다고.’
애초에 걱정이라는 게 필요 없는 인간 아니던가.
뭔가 하고자 하는 게 있었다면, 어련히 알아서 할 수 있었을 테다.
최소한, 자신이 걱정할 만한 인간은 아니리라.
“…뭐, 괜찮은 것 같네.”
“그래, 빨리 나가. 뭐 언제부터 그리 걱정을 해줬다고?”
녹지지는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녹지연은 막지 않았고, 그는 곧 방문을 닫고 왔던 길로 다시금 떠나갔다.
한순간, 녹지연의 눈가에 주저 어린 기색이 엇비친 듯 보였지만,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방 안에는 고요히 끓기를 반복하는 냄비의 달그락거림만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적막, 그리고 고요.
조용히 내쉬어지는 녹지연의 한숨 너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좋지 않은 때에 왔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