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맞는 말이야. 처맞는 말 (5)
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자를 향한다.
그것은 일종의 생리였다.
간혹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에는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강자가 약자를 핍박할 때 사용하는 도구─그것이 바로 힘이다.
그 행위에 기교 따위는 필요 없다.
당연한 결과를, 당연한 행위로서 이루어 내는 것이다.
충분한 힘은, 그 자체로써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렇기에 적우각은 힘을 추구했다.
그저 순수한 강함.
마교의 백성을 지키고, 마교의 명예를 지킬, 적가의 아들로서의 힘.
적우각은 그렇게 생각했다.
팔 척은 되는 키의 근육질 거한이 노려보고 있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싸움은 손쉽게 정리가 된다.
무릇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강자라고.
뭐, 물론 조금 다른 의미의 말이지만… 어쨌든 간에.
그러나 기예와 기교라는 것은, 그야말로 익어가는 벼와 같다.
여물수록 고개를 숙이며, 일견의 외견으로서는 그 자가 고수인지 하수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이는 좋은 일이지만… 적가의 아들로서는, 글쎄올시다?
적가는 전쟁의 가문이다.
마교의 모든 전쟁, 모든 외부 무력 개입에 대한 지휘권이 적가에게 일임된다.
적가는 언제나 싸운다.
적가가 나서는 것은 싸움이 확정된 순간뿐, 싸우지 않고 끝날 수 있는 일이라면 청가와 백가의 선에서 끝맺어진다.
때문에, 적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마주쳐 군사가 대면하고, 그 힘을 서로 확인한 이후에서야 일을 끝맺는다.
적가의 지휘관이 내면에 얼마나 고강한 힘을 지니고 있든 간에, 전투는 반드시 벌어진다.
안타깝다 해야 할지, 마교에 반기를 드는 머저리들은 그것을 확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가에 필요한 것은 겸손이 아니었다.
그저 마주쳐 그 기세를 보이는 것만으로 싸움을 종식시키고,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에 담을 수 있는 순수한 힘.
그것이 적우각이 이루어 낸 이 육신의 증명이었다.
자신의 형님인 적철진을 제외한다면, 마교의 후계 중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그 청명휘에게도!
시간이 이십 년, 아니, 십 년만 주어진대도 마교의 후계 중이 아니라 마교 전체를 통틀어서도 승리를 호언하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적우각은 그만큼 제 힘을 맹신했다.
그 근거가 무엇보다도 명확했다.
자신의 이 육체가.
바로 그 증거였으므로.
“……!!”
적우각은 오른팔을 뻗었다.
고작 이미 검수의 손을 떠난 목검 하나를 잡아채는 데에, 양 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청유백! 그리 믿었건만, 어찌 그런 오만을 보이는가!!”
검을 던지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
이미 손을 떠난 검은 그 힘에 한계가 있고, 방향 또한 일관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검을 뽑게 만들어 주마. 고작 이딴 장난감 따위는 집어치우고….”
고작 서른 량도 되지 않을 나뭇가지가, 아무리 강하게 던져 봐야 어떤 힘이 있겠는가.
틀릴 리가 없는 판단이었다.
분명 그러했다.
헌데.
─콰득!
“무, 무슨?!”
허나 한순간, 적우각의 오른손이 목검에 맞부딪치는 바로 그 순간.
목검이 가속했다.
그 무엇에도 닿아 있지 않고, 그 무엇에도 힘을 받지 않을 터인, 그 작은 나뭇가지가.
돌연 힘을 얻어, 적우각의 오른손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분명 한 손으로 충분하고도 남았을 그 충격은 어느덧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차마, 왼손을 더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크윽!”
─쿠드득!
목검은 허공에서, 그 어떤 것에도 받쳐지지 않고 있음에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적우각의 양손과 부딪혀 그 힘을 잃을 법도 하건만, 마치 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양 짐승처럼 허공을 헤엄쳤다.
모두의 이목이 그 목검에 집중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적우각은 적우각대로─그 의미는 달랐으나, 그 시선에 담긴 것은 분명한 경악과 당혹이었다.
“저, 저게 뭐야?!”
“사, 사부님이 나뭇가지에 밀릴 리가 없잖아. 장난치시는 것 아냐? 나뭇가지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아이들의 시선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었다.
그러나, 적우각은.
‘말도 안 되는…!!’
분명히 알고 있는 수임에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불신.
보다 정확히는, 청유백이 저 경지의 무공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나온 경악이었다.
‘이기어검(理氣馭劍)이라고?!’
적우각은 한순간 그리 생각했지만, 밀려나는 다리와 함께 그 생각을 떨쳐냈다.
아니,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청유백이 한 수를 숨겨놨다고 한들, 저치가 이기어검을 쓸 수는 없다.
이기어검은 모든 검수가 꿈에 그리는 지고의 경지.
검(劍)이 육체의 한계라는 속박을 벗어나, 투로(鬪路)에서 자유로워지는 경지였다.
몸에 묶여서는 결코 불가능한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기어검이다.
‘하지만, 어떻게?’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다.
저 경지의 이름을 알고 있음에도, 적우각은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크으윽!!”
한 걸음, 한 걸음이 밀려나, 허공에 뜬 목검에게 뒷걸음질당하는 지금에도 말이다.
─콰득!
한 순간에 일어난 균열.
적우각의 양 팔과 맞서던 목검은, 이윽고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한순간에 갈라졌다.
그리고, 찰나.
“하아!!”
적우각이 마기를 담아 휘두른 양 팔에 목검이 산산이 깨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가능성이 적우각의 뇌리를 스쳐갔다.
결코, 이기어검을 쓸 수는 없다.
‘그래, 어기동검인가! 대단한 속임수구나, 청유백!’
정말 이기어검이라면, 움직임이 이리 단순할 리가 없다.
인지를 초월하여, 속박을 벗어나 기존의 투로(鬪路)니 초식이니 하는 것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가 바로 이기어검이었다.
그런 경지의 검술을 부리면서, 이렇게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을 쓸 리가 없었다.
심지어, 결국 목검은 부서지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것은 인외(人外)의 경지다. 어기동검이 틀림없어.’
적우각은 그리 확신했다.
이기어검이 아닌 어기동검이라면, 내공만 충만하다면 부릴 수 있는 술수다.
이기어검과 어기동검.
손대지 않고 검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경지의 무공이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른 경지의, 상이한 무공이었다.
이기어검은 생각, 즉 의념(疑念)으로 검을 다루는 경지다.
검과 하나 되어 몸의 일부로 느끼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를 넘어서, 떨어져 있는 검과도 완벽하게 교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그 결과로서, 이지를 벗어난 움직임을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유백이 그런 경지는 아닐 테지.’
이기어검을 부리는 데에 필요한 깨달음의 수준?
말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적우각은 태어나 지금까지 이 마교에서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이기어검을 부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므로.
하지만 어기동검은 다르다.
막대한 내공이 있다면, 수십 년의 내공을 한 번에 쏟아붓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그저, 허공섭물의 일종일 뿐이었으므로.
‘그래, 청유백은 진문을 통과했었지…. 신마단을 받은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제야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 한 번의 수, 어기동검에 모든 마기를 쏟아부었다면.
이런 위력을 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적우각은 손을 털며 웃음을 흘렸다.
“크윽… 큭큭, 그래! 청유백! 믿고 있는 수가 있었구나, 오만했던 것은 나였던가!! 인정한다!!”
일순간 이기어검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어기동검이라니!
하지만 이미 술수는 전부 파악했다.
저만큼이나 검에 마기를 실었다면, 아무리 신마단을 취했다 한들 이제 두 번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반면, 적우각 자신은 조금 놀란 것만 빼면 별다른 타격도 없는 상황.
적우각은 눈을 감고 숨을 다시금 가다듬고는, 청유백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제 같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검을 뽑아라, 청유백!”
하지만, 어느 샌가.
“글쎄.”
청유백은, 또 다른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그것은 또다시 한번, 한순간도 지나지 않아 투박한 목검으로 변했다.
적우각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허세인가?’
방금의 그것이 한 번 더 가능하다고?
아니, 그럴 리 없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미 한 번 뚫어냈다.’
허세든, 허세가 아니든 간에 파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방금 것, 한 번 더 보여 봐라! 허나, 이번엔 쉽지 않을….”
“말이 많군.”
─쐐액!
다시 한 번 청유백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목검은 일순간에 손을 떠났고, 한 순간에 허공을 찢으며.
적우각에게 쇄도했다.
“크윽!!”
기실, 이기어검이 아닌 어기동검이라는 것을 간파한 시점에서 그저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기어검은 그야말로 날짐승처럼 자유자재로 날지만, 어기동검은 그 움직임에 한계가 있다.
저 속도로 날아드는 검이, 일순간에 방향이 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깟, 이깟… 잔재주로!!”
물러서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물론 맞설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는 것 또한 가르쳐야겠으나─최소한, 지금이 물러설 때는 아니었다.
“하아!”
─쩌적, 콰드득!
다시 한 번, 날아온 목검이 갈라져 산산이 조각났다.
적우각은 확신했다.
방금 날아온 목검은, 중간에 힘이 빠져 기세가 시들해졌다.
‘내공이 다했구나, 청유백!’
적우각은 그리 확신했다.
그리고 남은 나뭇조각을 주먹으로 으스러뜨리며 청유백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슬슬 숨이 가빠왔지만 상관없다.
놈은 이미 한계일 테니까.
“하…!! 하!!! 그래, 이제 정말 끝일 테지, 청유백!!”
허나.
청유백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모래먼지뿐.
적우각이 청유백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청유백의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였다.
“그래,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빠아악!!
시야가 반전했다.
* * *
바닥에 대(大)자로 뻗은 거구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천화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네가 부르짖던 ‘힘’의 승리는 아니지 않더냐?]
이기어검이라니.
이 기나긴 마교의 역사에서도 저 경지를 이룬 검수가 몇이나 될까.
힘은커녕 기술의 극치에 오른 한 수였다만, 청유백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양 대꾸했다.
‘결국 주먹으로 때려눕혔으니까 힘이 맞잖나.’
[으음…그러한가?]
‘잘 먹혀들었으면 되었지.’
사실, 반쯤은 도박이었다.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다고 한들, 결국은 나뭇조각이다.
죽이지 않으려면 검기도 사용할 수 없는 노릇이니, 목검으로 열심히 때려 봤자 찰과상 정도가 고작이었으리라.
저렇게, 미련할 정도로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리 되면 결국 머리가 뜨거운 쪽의 패배가 된 게 아니더냐?]
‘다르지. 저놈은 가슴까지 뜨거워서 그렇다. 가슴은 차갑게. 알겠나?’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천화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청유백이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목적은 이게 아니었다만….”
뭐, 상관없다.
최소한 하나는 달성했다.
내공이 비로소 일 갑자가 넘어, 이기어검을 운용할 수 있는 최저한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네놈들 선생이니, 뒷정리는 너희가 알아서 하겠고…”
청유백은 적우각의 아이들에게 그리 언질한 뒤, 일귀와 이찬, 삼아를 돌아보았다.
“너희는 어떻지? 그렇게 목 놓아 부르짖던 야외수업이었다만. 느낀 바는 있나?”
청유백의 질문에, 아이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모르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니 씨부럴, 대체 뭘 배우라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도의 마음가짐일 테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번 즈음 숨통을 틔워 줬으니 다른 상념을 버린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문득, 일귀가 고개를 들었다.
“…알았습니다.”
“무엇을?”
“저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청유백이 바라본 일귀의 눈빛은 결연했다.
어느새 그를 따라 고개를 든 이찬과 삼아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과연, 아이들이 저를 보고 무엇을 보았을지,
혹은 무엇을 느꼈는지─
그것을 알 길은 없으나.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저, 대답을 했다는 사실.
그것이면 되었다.
“그거면 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