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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72화 (72/200)

제72화. 맞는 말이야, 처맞는 말 (2)

“이 씨발 새끼가…!”

“아, 그래도 가르쳐 준 전음을 곧잘 사용하는 것은 기특하구나. 하긴, 저런 구더기 때문에 능력을 아끼는 것은 멍청한 짓이지. 그래, 네 말이 옳다.”

“하! 이제 보니 어지간히도 미친놈이었군. 내가 누군지 아나?”

아니, 거…알아야 하나?

코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청유백으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고,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리 지껄이니 문득 궁금해지기는 했다.

아무리 제 가문이 잘 나간다 한들 보통은 이렇게까지 방만하게 나올 수는 없지 않던가.

“지금 당장! 네놈들 전부, 당장 머리를 땅에 찧으며 사죄한다면, 목은 몸에 붙어 있게 해 주겠다.”

‘좀 머리가 나쁜 것 같긴 한데….’

허나, 겉으로 보기에 빡대가리 새끼라고 한들 일단은 배워 처먹은 ‘윗놈’들이다.

대가리에 똥만 찬 새끼라도 기름칠 된 똥이라, 그 말이다.

즉, 몹시 놀랍게도 사리 분별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

그렇기에 대체로─다른 가문에 시비를 걸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통은 알고 있다.

[자기 가문 안이라면 또 모를까. 머저리가 따로 없구나.]

설령 그 망나니 청궁우라고 할지라도 다른 가문에 가서 시비를 걸지는 않을 테다.

가문 간의 불화는 어떤 것이든 공공연한 불씨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개인이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힘든 것이니까.

“…….”

다행히도, 저 놈이 멍청한 이유를 굳이 찾아 헤매지는 않아도 되었다.

제 놈이 자신을 엄지로 척, 하고 가리키며 득의양양하게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로 적철민이다! 적가의 대공자, 적철진이 내 친형님이다, 이 말씀이다. 알아듣나?”

“적철진의 친동생?”

“그래! 원래는 적우각이 꿰찬 천마지회의 자리도 내 것이었지. 장로님들이 순간 잘못된 평가를 내리시긴 했지만, 차기 적가주는 내가 될 것이다. 적우각 놈이 가주를 해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군?”

가주와 교주를 동시에 할 수 없으니, 적철진이 교주가 된다면 적가주의 자리는 비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런 흔한, 환자인 것 같은데.

‘적철진의 동생이라.’

청가의 부인이 네 명 있듯, 훨씬 부유한 적가이니 그 이상의 부인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과대망상증 환자의 불쌍한 발언은 뒤로 해두더라도, 실제로 그의 동생이라는 자리는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이 되긴 할 테다.

미래에 어찌 되든 간에, 지금 이 시점에서 마교에서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이니까.

‘당장 쳐 죽이는 것은 곤란하고….’

권력과 연관된 놈이라면, 먼저 때리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정치와 권력이라는 것은 몹시도 세밀하게 얽혀 있어, 별것도 아닌 원한이 언제 제 발목을 붙잡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나중에 가서,

‘난 그저 사람을 죽였을 뿐이에요!’

라고 항변해 봤자, 안타깝게도 피해자가 권력자와 관계되어 있다면 변호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런 사소한 일 가지고 이런 온갖 권모술수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 비탄스럽기 그지없지만, 지금은 힘도 권력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청유백은 대꾸했다.

“사죄하라고 했나?”

“그래. 그리고 당장 꺼져라. 이곳은 우리의 쉼터니 말이야.”

마치 머리를 찧을 공간을 마련하기라도 해 주는 듯이, 적철민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득의양양한 웃음은 덤이다.

청유백은 그 꼴을 잠시 지켜보고는, 세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음… 하지만 미안하군. 이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친 적은 없어서 말이야. 사과가 조금 서툴러.”

청유백은 그 말과 동시에 이찬에게 전음을 쏘아 보냈다.

{자, 복창한다. 미.}

“미, 미…?”

이찬이 주춤거리는 사이, 천화가 한심하다는 듯 이죽거렸다.

[미안해요, 따위의 사과를 시키기라도 할 셈이더냐? 그리 도발해 놓고, 줏대도 자존심도 없이 이제 와서?]

청유백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이찬에게 보내던 전음을 마저 이었다.

{미….}

“미….”

{미친 새끼야, 내가 사과를 왜 해.}

[?!]

“미친 새끼야! 내가 사과를 왜 해!!”

‘아이고 잘한다, 우리 새끼.’

[잘하긴 뭘 잘해?!]

곧이곧대로 따라하는 이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청유백은 적철민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놈을 포함한 다른 일당들도, 다들 저가 뭘 들었는지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쩜, 안쓰럽게도 귀에도 장애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는데.”

“젖비린내 나는 애새끼가 겁이 없구나!”

적철민은 미간을 팍 찌푸리고는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목표는, 청유백보다는 이찬.

과연─편을 드는 청유백보다도 만만한 이찬을 조지려 든다는 점에서, 참으로 비겁하기 짝이 없다 말할 수 있었다.

적철민의 거리를 좁히는 세 발짝.

이찬을 포함한 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며 팔을 들어올렸다.

검을 뽑을 필요는 없다.

청유백이 가르친 적은 없으니, 그것은 아마도 본능에서 우러나온 지식의 하나이거나, 경험의 산물이리라.

눈앞의 인간은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

그리 판단한 것이었다.

“천것 주제에…!”

적철민이 먼저 팔을 뻗었다.

신속하지도 않고, 무언가의 묘리도 없는 단순한 한 수.

하지만 갑작스러웠는지, 이찬은 그대로 멱살을 틀어잡혔다.

─파악!

“다시 한 번 지껄여 봐라. 비천한 길가의 버러지가…. 제 출생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

여기까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어른이 아이를 핍박하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은, 그 근력과 체격의 차이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기교가 무어 필요할까.

사자가 생쥐를 상대할 때 발톱을 뽑아들지 않듯, 그저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익… 이거 놔!!”

“?!”

다음 순간, 적철진의 손이 단번에 떨쳐내졌다.

너무나도 단순하게, 이찬이 크게 휘두른 팔짓 한 번에 적철민이 밀려난 것이다.

한순간의 정적.

그리고, 멋쩍은 웃음이 찾아왔다.

“하하, 오~ 꽤 하는데~?”

“큭큭, 뭘 봐주고 있는 거야. 저 놈도 성격 존나 나쁘다니까.”

적철민의 친구들은 하찮다는 듯 웃으며 구시렁댔다.

설마 적철민이 진짜로 저것을 놓쳤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고작 약해빠진 어린아이의 팔로, 아무런 기술도 없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팔에 어른의 손이 떨쳐질 리가 없지 않은가.

“하, 이 새끼가….”

한순간, 저릿해진 팔목에 적철민은 이찬을 쏘아보았다.

방금은 방심한 것이다.

저 애새끼가 자신의 손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자신이 방심해서 일어난 우연에 불과하다.

혹은, 방금까지 훈련을 하고 와서 팔에 힘이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적철민은 단 한 순간에 그리 판단하고는 곧바로 다시 반대편 팔을 뻗었다.

─파악!

하지만 이번에는 닿지 않았다.

적철민의 느릿한 손이 이찬의 옷매무새에 닿기도 전에, 이찬이 본능적으로 휘두른 팔에 튕겨져 나갔다.

“…….”

“…….”

다시금 흐르는 정적.

벙벙한 태도를 속으로 갈무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찬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이…새끼가.”

명확한 적의와 분명한 적대.

빠드득, 적철민의 이빨이 거세게 부딪혔다.

“조금 만져주는 정도로 끝내려 했거늘, 천한 놈이 제 분수를 모르는군. 피를 보여 달라 악을 쓰는구나.”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인가.

그래도 칼을, 허리에 패용한 도(刀)를 뽑아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금 쥔 주먹은 결코 금나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번에 뻗는 주먹은 멱살 따위가 아니라 미간에 틀어박힐 것이다.

천화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쯧, 아이 상대로 어른이 먼저 칼을 뽑아들면 모양새가 좋을 리는 없을 테지. 어쩔 테냐, 네놈이 막지는 않을 테냐?]

‘굳이?’

[굳이라니? 위험한─]

‘아주 좋은 기회 아닌가.’

예정에 있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아주 좋은 교육의 기회가 스스로 굴러들어온 꼴 아니던가.

저 뒤의, 네 명의 머저리들은 끼어들지 않고 있으니, 이대로 내버려 두고 지켜보아도 꽤나 재밌는 꼴이 나올 것이다.

‘이기든, 지든 간에 말이지.’

이기면 자신감이 생기니 그건 그것대로 좋다.

오만(傲慢)은, 때로 분노 이상으로 훌륭한 힘의 양식이 된다.

지면, 뭐.

그 또한 그것대로 좋다.

목표가 명확하고 ‘닿을 수 있는’ 복수심은 때로 증오보다도 명확한 성장의 계기를 선사한다.

[네놈을 향한 분노로는 충분치 못한 게냐?]

‘그건 좀 다르지.’

청유백을 향한 증오는 공포의 일종이다.

그건 그저 도구다.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도구.

아무리 무리한 훈련이라도, 이를 악물고 수행하게 하는 도구.

그 공포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청유백을 뛰어넘겠다’는 집념까지는 만들어 낼 수 없다.

격차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의욕이 생기기도 전에 꺾여버리지. 뭐, 좋게 말하면 제 주제를 잘 파악한다고 할 수 있겠다만.’

하지만 저 머저리들은 다르다.

주먹을 뻗으면 분명히 닿고, 뻗어오는 주먹은 막을 수 있다.

저 ‘명확한 목표’는 훌륭한 성장의 이유가 되리라.

충분한 복수심을 품는다면 말이다.

“……!!”

빠악!

다음 말은 없었다.

참으로 삼류 악당의 표본답게도 ‘죽어라!’ 따위의 기합이라도 외칠 줄 알았다만, 어린아이를 상대로는 수치임을 아는 모양이었다.

“큭!”

“막아? 감히?”

이찬의 미간을 향해 내질러진 주먹은 양 팔에 의해 가로막혔다.

적철민의 친구들은 ‘그럼 그렇지’ 따위의 안도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적철민은 ‘막혔다’라는 사실 자체로도 불만인 모양이었다.

청유백이 막아서거나, 이찬의 얼굴이 뭉개지기 전에는 분노는 끝나지 않을 듯 보였다.

한두 대 맞는 것도 꽤 괜찮은 자극이 되겠지만─

안타깝다 해야 할까.

[충분히 시간이 지났구나.]

“적철민!!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

고막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고함이 방 안 가득 울렸다.

방 안에 있던 적철민의 일당들 모두가 반사적으로 바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족히 팔 척은 될 법한 근육질의 거구.

즉, 열 명의 아이들을 대동하고 방 앞에 선 적가의 후계였다.

“…적우각.”

적철민은 인상을 팍 구기더니, 들었던 주먹을 내리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다른 일당들도 이찬과 적철민을 몇 번 번갈아 바라보기는 했지만, 이내 혀를 차며 적철민을 따랐다.

“귀청 나가겠군. 목소리 낮추지 그래? 뭐가 그리 문제라고.”

“네놈의 손찌검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 적가의 아들이 어찌 명예를 모르는가!!”

“쓰레기들 따위와 어울릴 명예 따위는 없다.”

“뭐라…?!”

─콰득.

한순간, 적우각의 기운이 폭발하듯 공간을 감쌌다.

단번에 밟은 진각에 땅이 움푹 파이는 것이 보였다.

팔짱을 끼고 있음에도─당장에라도 닿을 것 같은 위협이, 적철민의 피부를 따끔거리게 울리고 있었다.

“적철민! 혈육이라 하나, 친우를 모욕하겠다면 검을 들어라!!”

“머리까지 근육으로 찬 놈이…!! 뒷일이 두렵지도 않나? 형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것이다!!”

“그 또한 좋지! 형님의 칼이 먼저 내 목에 닿을지, 내 주먹이 먼저 네놈 면상을 으깨놓을지 내기라도 해 볼까!”

“우, 웃기지도 않은…!!”

적철민은 주춤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의지는 아직도 자존감과 자만심으로 가득 채운 채 뻐기기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육신은 여실히도 본능에 충실했다.

적우각과 적철민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으나─

“도를 뽑을 용기조차 없는가.”

적우각이 먼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무, 무슨. 난…!!”

“썩 꺼져라. 싸울 의지도 없는 고양이에게 볼일은 없다.”

─팍!

적우각은 적철민의 어깨를 밀치며 청유백과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적우각을 따라 온 열 명의 아이들이 뒤를 따랐고, 그들은 익숙한 눈치로 방 바깥에서 대기했다.

[냉철한 아이들이구나. 혹은, 진중한 것인가?]

‘…아니, 익숙해진 거겠지.’

청유백의 세 아이들도 어느새 공포를 희미하게 기억하고 청유백에게 익숙해질 만한 시간이다.

다른 후계자의 아이들 또한 비슷할 것이었다.

“크흠!”

적우각이 소리 없이 방문을 닫았다.

문틈 사이로 입술을 악무는 적철민의 모습이 보였지만, 적우각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 무어라 더 언질하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청유백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었다.

약속을 잡은 적은 없다.

일언반구의 언질조차 나눈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마치 미리 계획한 듯이, 청유백이 찾아왔다는 말만을 듣고 이리 찾아왔다.

이유는 명백했지만, 적우각이 방금 한 말이 떠올라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언제부터 친우가 된 거지?”

“사나이라면!! 주먹을 처음 맞부딪친 그 순간부터 친우 아니겠는가!”

“웃기는 놈이군. 적가 놈들은 아주 한결같아.”

이 인외마경의 수가 넘치는 마교에서 각자의 명예를 찾는 멍청한 종자들.

그럼에도, 그 이상하다 못해 괴팍한 사고방식을 고수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지닌 가문.

그 일원인 적우각이, 청유백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눈을 반짝였다.

“자, 그러면 청유백. 설마 술잔이나 기울이려 찾아온 것은 아닐 터!!”

책임자에게 약속이 있었다고 둘러대긴 했다.

실제로 적우각이 청유백을 만나러 왔으니, 모종의 볼일이 있는 것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시콜콜한 담소 따위를 나누기 위함은 결단코 아니리라.

적우각은 고양된 웃음을 지으며 전신의 기를 끌어올렸다.

흉폭한 마기가 방 전체를 진동시키는 듯 울려댔다.

“자네는 싸움을 거절하지 않겠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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