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70화 (70/200)

제70화. 맞는 말이긴 하지 (5)

“하나.”

“중상모략…은!”

“둘.”

“비밀스럽…게!”

이찬은 청유백의 구령에 맞춰 죽을힘을 다해 팔을 굽히고 펴는 것을 반복했다.

닥치고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던 일귀와 삼아는 재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친우가 비명을 지르며 고문받는 모습을 관람하는 것은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팔굽혀펴기를 고문이라 이르기에는 썩 모자란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 횟수가 어느덧 오십 번을 넘어가고, 백 번을 넘어가 목소리가 거진 비명이 되어 간다면.

“하나.”

“중상모르아악은…!”

그것은 어느덧, 훌륭한 고문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둘.”

“비밀스럽게에에엑!!”

─빠악!

“어딜 언성을 높여. 조용히 해.”

“[email protected]#@!^#!”

이찬은 고통으로 벌겋게 부어오르는 정수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은 원한이 아니었다.

탓하려면 제 주둥아리를 탓해야지, 뭘 어쩌겠는가.

오히려 들킨 순간, ‘아! 난 좆됐구나!’라는 불변의 사실을 인식해 버렸기에, 정작 원한은 옅었다.

야밤에 산길 올라서 호랑이 만나면, 밤에 산 오른 제 탓이지 야식 찾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 탓은 아니지 않던가.

오히려, 지금 느끼는 것은 일종의 편안함이었다.

‘…조, 조금만 더 뒹굴자.’

죽겠다.

진짜, 어깨가 반으로 쪼개질 것 같다.

그나마 산을 올라 만마서고로 향할 때에는 언제 쉴지라도 정할 수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 팔굽혀펴기는, 그만뒀다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물론─

‘이놈이 꼼수를….’

─청유백의 눈에는, 단 한 순간도 지나지 않아 발각되었지만.

청유백이 당장에 머리끄댕이를 붙잡아 올리려 하자, 천화가 황급히 나서 입을 열었다.

[인석아, 애 잡겠다.]

‘뭘, 다행인 줄 알아야지. 옛날이었으면 녹가의 충굴(蟲窟)에 사흘쯤 던져놨을걸.’

이 웃기지도 않는 체벌이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망가뜨리면 안 되니까.

괜히 한도를 넘어 자극을 줘 봐야, 저기서 청소나 하고 있는 나머지 일곱처럼 되기 십상이다.

가령, 청유백이 말한 충굴은 그런 ‘자극’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소였다.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견딜 수 있다.

차라리 죽여달라 울부짖는 수준의 벼랑 끝에 매달린 상태에서도, 살 수만 있다면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정신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의 ‘자극’은,

‘사람을 망가뜨리지.’

수십만 마리의 지네가 바닥을 바스락거리며 기어 다니고, 바위틈에서는 전갈과 개미가 저들의 집을 쌓아 올린다.

벽에서는 스멀스멀 어둠을 타고 올라오는 거미가 눈을 빛내며 사냥감을 기다린다.

충굴은 그 형벌의 방식, 던져 넣는 방식 또한 몹시 단순했다.

그 항아리 형태의 동굴의 꼭대기에서 결박한 사람에게 줄을 매달고, 그 아래로 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더욱 단순하다.

상상하기도 쉬울 것이다.

발가락 끝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잘그락거리는 섬찟한 감각이 발등을 타고, 무릎을 타고, 등허리를 지나서─턱을 타고 올라간 것을,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입으로 어떻게든 쫓아내려 용을 써 보지만.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벌레들은, 고작 그것만으로는 결코 쫓아낼 수 없음을.

무력하게 통감하는 것이다.

그 벌레들에게 독은 없다.

독이 있다면, 너무 쉬이 안식을 찾아주게 될 테니까.

그저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눈을, 코를, 입을, 귀를, 어깨를, 팔꿈치를, 손목을, 손가락을, 가슴을─

그 모든 것을, 조금씩 갉아먹어 피부가 전부 벗겨질 즈음.

시간으로는 사흘이 지난 다음에야 꺼내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 되는가?

방법이 단순한 만큼, 답 또한 단순하다.

죽는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에도, 어느덧 등허리를 타고 오르는 섬찟함과 수십 개의 다리가 반복해서 피부를 간질이는 감각이 신경을 지배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마교에서 ‘죄인’에게 형벌을 내린다는 것은, 최소한 그러한 정도의 고문을 가리켰었다.

지금의 이 따위 팔굽혀펴기 따위는, 고문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차렷.”

“!!”

청유백의 구호에 이찬은 곧바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팔이야 아프지만 다리는 비교적 멀쩡하다.

하지만 아프다고 일어나지 않으면, 아마 다리도 성치 않게 될 것이다.

청유백은 흐음, 하고 이찬을 조금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불만이 많은 것 같고.”

그리곤, 일귀와 삼아를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그래, 너희도 같은 생각이냐?”

작금의 이 상황.

하루의 반은 그저 앉아서 주화입마의 위험과 함께 내공을 쌓아올린다.

남은 반은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쓸데없이 무기를 휘두르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불만이 많냐고?

세 아이 중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만족스러워하지는 않을 테다.

당연한 사실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 지루해 빠진, 변화조차 없는 나날을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보는 이유는, 아이들이 아직 자신의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뭐, 이찬 놈은 확인할 필요도 없겠고….’

청유백은 먼저 삼아를 바라보았다.

“그, 저는….”

삼아는 쭈뼛거리며 손을 떨었다.

지난번에 한 번 덤비고 난 이후 현실을 알았는지 조금은 순종적이 되었다만, 반대급부로 의견도 잘 말하지 않게 되었다.

해결하는 방법이야 뭐,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때도 큰일 난다는 것을 한 번 각인시켜주면 되겠다만.

‘시간도 없고 하니….’

그래도 불만 없다, 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거짓말을 할 정도로 영악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청유백은 혀를 차며 일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조금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껏 무공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진 뭘 했지?”

“언젠가 무공을 배우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위해 수련한 것이 전부입니다. 본래는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교관들이 가르쳐 주었을 겁니다.”

모종의… 무공을요.

일귀는 그렇게 덧붙였다.

“흠.”

나쁘진 않은 대답.

나름 기대대로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청유백이 준비한 대답은 아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리 안타깝다 말해야겠군. 난 너희에게 그런 걸 가르칠 계획이 없고, 생각도 없다.”

한순간, 아이들의 눈빛에 실망이 스쳐갔다. 일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시간이 없어.”

아주 단순한 이유다.

시간이 없다.

고작 세 달.

삼 년도 아닌, 세 달이다.

세 달 만에 특정한 검법이나 도법 따위를 익히게 하여 통달케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설익은 검법으로 적을 상대하게 하는 것은, 굳이 사서 실수를 부르는 행위이고 말이다.

저 중원의 저명하신 무당파 나부랭이들조차, 제자들에게 기초 중의 기초인 삼재검법(三才劍法)을 가르치는 데 일 년을 소모한다.

가장 단순한 기초라는 삼재검법조차 일 년이 걸리는데, 뭐?

신공절학?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세간에 그런 말이 있지.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고. 뭐, 당연히 개소리다만….”

창을 통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백일.

도를 통달하는 데에는 천일.

검을 통달하는 데에는 만일.

당연히, 검이 만병지왕(萬病之王)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종자들의 안줏거리 정도 되는 말이었다.

무기에 그만큼 확실한 우열이 있다면 중원의 양가(楊家) 놈들의 양가창법은 병신 중 병신이며, 팽가(彭家) 놈들의 오호단문도는 거기서 덜 병신 정도인 무공이란 말인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 가십거리 씹기 좋아하는 놈들의 말로도 가장 쉬운 창을 익히는 데에 백일이다.

그런데 지금 남은 시간이 어디 백일이나 되던가?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가 못 한다는 말은, 다른 놈들도 못 한다는 소리다. 통달하지 못한 무기는 일 할이나 구 할이나 피장파장이야.”

완벽하지 못한 기술은 실수를 낳기 마련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생존을 향한 본능을 믿는 것이 낫다.

지금껏 쓰던 무기, 손에 익은 것으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낫다는 것이다.

청유백의 그런 설명이 이어졌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실력의 진전 따위도 없으니, 앞으로의 두 달이 막막하기만 할 테다.

청유백은 아이들의 표정을 주욱 훑어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너희의 불만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바….”

이 상태로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반복해 봐야, 의욕도 없고 목표도 생기지 않을 테다.

조금은,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가 있을 터.

“오늘은 야외수업을 하도록 하지.”

* * *

마교의 중추가 위치한 천산(天山)─즉 십만대산의 넓이는 몹시도 광대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땅을 개간하고, 집을 새로이 짓고,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쉬운 공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히 대부분의 영역은 마교의 중요 건물들이 중심이 되어 바깥쪽으로 넓혀가는 형태였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은 육대가들의 장원이었다.

강한 자는 권력을 갖지만, 그만큼 헌신하는 위치에 있는 일반 백성을 보호할 의무 또한 가진다.

때문에 그들의 거처는 마교의 가장 바깥쪽, 전쟁 시에 가장 앞에서 적을 맞아 싸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외곽에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장원에 필요한 거대 부지의 마련 탓이었지만.

뭐… 듣기 좋은 이유는 언제든지 있는 법 아니겠는가.

거주지인 장원이 외곽에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근무하는 장소, 즉 권력의 중심은 중추에 위치했다.

가장 중심에 교주전이 있었고, 만검각이나 녹운각, 철웅각 따위의 주요 기관들이 그 근처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버티었다.

전쟁을 지휘하는 적가의 만검각.

의약의 총체인 녹가의 녹운각.

단야의 중심인 묵가의 철웅각.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기관까지.

비록, 장원은 외각에 있으나─

육대가는 마교의 중심이라는 간판만큼이나 실제로 그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황가는 조금 특이한 경우라, 이 부근이 아닌 관도(官道)의 근처, 가까운 마을에 본관이 위치했지만.

아무튼 간에.

청유백이 아이들을 데리고 향한 곳은, 충분히 외곽에 위치한 그들의 숙소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자, 여기다.”

“우와….”

청유백과 세 아이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은, 거진 팔 척은 될 법한 크기의 석재 맹호상.

당장이라도 움직여 달려들 것만 같은 기세의 호랑이들로 장식된 거대한 정문이었다.

적(赤)이라 수놓아진 붉은 배자를 입은 무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짐을 실은 수레와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무사들의 옷에 새겨진 문자가 황(黃)이 아니라 적(赤)인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의 인파였다.

삼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 사람들은 다 뭐예요? 여기가…뭐하는 곳이길래?”

“육대가 중 적가의 장원이다.”

청유백은 대충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인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놈들은, 글쎄다….”

적가에는 본디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다.

설령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전쟁의 물자는 마교의 바깥으로 나가지 적가의 안으로 들여오지 않기 때문이다.

청유백은 수레들을 힐끗 곁눈질로 살피며 걸었다.

‘저건 비단이고, 저건… 금인가? 많이도 준비해 왔군.’

하물며 저것들은 쌀도, 철도 아닌 그저 사치품들.

청유백은 절로 나오는 비소 어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줄을 대겠답시고 환심을 사려는 놈들이지. 멍청이들이니 신경 쓰지 마라.”

“아하.”

말로는 적가의 적철진과 청가의 청명휘가 가장 우수하다고들 하는 말을 듣고는 했다.

하지만 청유백은 지금껏, 청가로 오는 저런 인파를 줄곧 보지 못했다.

청가에 출입하는 인간은 청가의 내부인이거나, 교두각에서의 전령, 혹은 식자재를 전하는 하인 정도가 전부였다.

작은 ‘성의’라.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하기사, 저런 성의가 계속 들어왔다면 재정난에 처할 일도 없었겠군.’

청유백은 평 부인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청가에 돈이 많았다면 그런 상황이 오지도 않았을 테니, 이런 ‘성의’의 파도가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즉, 말로야 청가를 높게 쳐 주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적가의 승리를 점치고… 아니.

확신하고 있다는 뜻.

‘안타까워서 어쩔는지.’

청유백은 혀를 차며 줄지어 있는 인파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들은 이렇게 순서를 무시해도 되나 당혹해하긴 했지만, 일단 청유백의 뒤를 쫓았다.

“이봐…!! 헙, 아, 아니….”

간혹 누군가가 멋모르고 손을 뻗으려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청유백에게 닿기도 전에 스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정문에 다다르자, 무언가 명부 따위를 작성하며 내객들을 안내하는 책임자가 보였다.

내객은 안으로 들이고, 재물은 수레가 다니는 옆문으로 돌리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를 명부에 작성하여 옮기고 있었다.

‘과연, 누가 어떤 성의를 보였는지조차 하나하나 기억해 두겠다는 소리인가.’

바친 재물의 양을 기록하는 것은, 많이 성의를 보인 이에게 많은 보답을 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바치지 않은 놈은, 반드시 기억했다가 족쳐 버리겠다는.

뭐, 그런 의미다.

‘청가에 재물이 안 오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군그래.’

저만치도 적가의 장자께서 교주의 자리를 이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꼴이라니.

과연 이미 한 번 적가에 성의를 보인 이들이 조만간 태도를 어찌 바꿀지 생각하는 것 또한 재밌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책임자는 청유백을 발견하자, 작성하던 명부를 아래로 내리고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충! 청가의 후계께 인사 올립니다. 혹, 약속이 있으셨습니까?”

“있었지. 적우각을 불러라.”

적우각.

그 이름이 거론되자, 책임자의 눈썹이 흠칫 떨리더니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청유백이 그와 무언가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책임자는 재차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적우각 공자님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어떤 일로….”

“그냥 가서 전해. 내가 왔다고.”

까라면 까야지, 말이 많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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