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맞는 말이긴 하지 (3)
불구대천심공.
청유백이 아는 한 내공의 축적에 있어서는 그 어떤 심공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심공이었다.
설령 역대 천마들이 익혔던 심공이나, 청유백 본인의 육도홍련신공을 대상으로 비교해도 우월하면 우월하지 결코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주아주, 사소한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었다.
[사기꾼 새끼.]
천화가 옆에서 계속 온갖 비방과 욕설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청유백은 이것을 연공한 인간이 이 심공을 나쁘다 말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일흔여섯 번의 생 전부, 불구대천심공의 수련자는 한 번도 청유백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다.
언젠가, 청유백의 동료였던 누군가는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는데─
‘당연하지, 실패하면 살아 있는 새끼가 없으니까.’
그렇다.
아주 조금, 사소한 부작용.
그것은 바로,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조금 높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마 조금이 아니라 많이?
…….
…….
……정확히 말하자면, 거진 구 할 구 푼은 실패하고 죽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만큼 효능이 뛰어나니까!’
청유백은 그리 토로했다.
본디 마공에 포함된 심공은 성취가 빠른 것들이 많지만, 불구대천공은 개중에서도 매우 이질적이다.
아주, 매우, 많이.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한 달의 운공으로, 일 년의 내공을 취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그리 답할 수 있으리라.
일 년을 한 달로 줄이는 수준의 축적이다.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를 죽이기 위한 마지막 수단.
그렇다면, 이 정도의 부작용은 실로 사소한 것이 아니던가.
비록, 주화입마에 걸려 미치거나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거나의 상황 중 하나에 빠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 매력은, 실로 달콤하다 할 수 있었다.
허나.
“사소하다고요…?!”
누군가는, 그리 생각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가령 청유백의 눈앞에서, 저도 지금 고통스러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동료의 어깨를 붙잡는 이 소녀가 그러했다.
어느덧 첫 번째의 고통은 잊은 것인가.
혹은, 지금의 분노가 지난날의 공포를 덮어씌운 것인가.
삼아는 원망을 담은 눈초리로 청유백을 죽일 듯 쏘아보았다.
“당신이, 당신이 칠 다섯을, 이찬을…!! 죽인 거나 마찬가진데!!”
귀아대의 아이들은 가혹한 수련 환경 탓에 그리 많은 지식을 기억하며 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조차도 주화입마의 위험성은 안다.
당연했다.
아이들에게 내공의 연공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위험성이기도 하거니와─
“정신 차려! 괜찮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괜찮았으면서….”
─무엇보다도, 주화입마로 죽어간 친구를 몇 번이고 보며 자라니까.
‘귀아대는 부모가 버린 아이, 납치한 아이 따위로 이루어진 칼받이 집단이나 마찬가지지.’
지금, 그 세가 많이 축소된 것으로 보이는 마교로서도 그들의 목숨은 그리 중하지 않을 터다.
있어도 그만, 없으면 본래 없었던 것 취급하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죽어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녀석이 바로 우수한 칼잡이가 되는 것이니, 마교는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놈들에게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소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하나하나 신경을 쓸 이유는 없어.”
“그게… 오늘이어야만 했나요?”
삼아는 울먹이며 말을 토해냈다.
씹어 뱉듯 내뱉은 말.
하지만, 청유백의 거죽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힘없는 말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약자는 동정을 받겠지만, 세상은 강자의 것.
정의는, 강자의 전유물이다.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네놈들이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나아가 죽는 날까지도.”
“…죽는 날까지도요?”
“물론, 그게 오늘일 수도 있겠지.”
청유백은 옅게 코웃음 쳤다.
삼아는 싸늘해져 가는 이찬을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대로 죽는다면 나름 호사에 속할 테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사흘 밤낮을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 산 채로 죽어가거나,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광인(狂人)의 경계에서 목숨만 부지하는 꼴이 되는 것도 부지기수.
하지만, 저대로 내버려 두면 죽음은 확정적인 일일 테고, 그것은 그저, ‘이미 죽었다’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소한 삼아는, 이미 그리 결론지은 듯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삼아의 외침과 접근은 거의 동시였다.
그러나 무기는 없다.
아무리 분근연혼대법으로 조금 육체를 강해졌다고는 하나, 고작 열 살배기 어린애의 권격이다.
청유백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는 어려웠다.
삼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악!
“!!”
삼아는 첫 번째로 눈을 노렸다.
왼팔을 내질러 당장이라도 저 두 눈깔을 후벼 파버리고자 손을 뻗었다.
하지만─속도가 모자라다.
관절이 한 번 삐걱댈 때마다, 근육 사이사이에서 찢어지는 고통이 엄습했다.
분근연혼대법에 익숙해졌다 한들,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삼아의 손가락이 눈의 지척까지 다다른 찰나, 청유백은 그 손목을 잡아채며 비틀었다.
“나쁘지 않군.”
“크윽!”
하지만, 그것은 예상했다.
이런 저급한 수에 당해 줄 정도로, 이 빌어먹을 작자가 녹록하다 생각지는 않았다.
노림수는, 전혀 다른 것.
삼아는 그대로 내질러진 주먹의 가속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몸을 회전시켜 백월의 검병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뽑아든다.
팔이 짧고 거리가 모자라 검신을 채 전부 뽑아낼 수는 없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죽어!!!”
검이 반쯤 검집에서 뽑아진 채로, 삼아는 그것을 청유백의 팔목으로 밀고 들어갔다.
청유백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팔이 잘리거나, 빠져서 물러서거나.
청유백이 물러선다 하더라도, 검을 쥐고 있는 것은 삼아가 될 테다.
대단히 영리하고, 감정에 물든 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한 수였다.
그러나.
냉철한 판단이고, 나쁘지 않은 기술이다.
하지만, 충분한 힘 앞에서─
기술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휘둘러지던 칼날은 어느새 우뚝 멈춰섰다.
그것을 멈춰 세운 것은 다른 칼날도, 무언가의 호신구도 아니었다.
그저 청유백의 두 손가락.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의 수.
검지와 중지의 사이에 우뚝 멈춰선 칼날은,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이익…!!”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하지만 조금 더 조심하는 게 좋겠군.”
청유백은 다른 손을 들어 검병을 쥐곤, 칼날을 밀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집까지 강제로 날을 밀어 넣었다.
삼아의 저항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의 차이다.
청유백이 아닌 다른 후계자 누구를 상대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청유백은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일귀 놈은 제 기를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한계인 모양인데. 먼저 떠난 친구 외로울까 봐 말동무로 보내줄 생각인가?”
“……!!”
삼아는 그제야 일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그의 상태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찬은 이미 쓰러졌지만, 일귀도 크게 다른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버티는 정도라 할 수 있으리라.
일귀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지금도 청유백이 해방한 짙은 마기에 저항하고 있었다.
삼아를 돕고 싶어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유백은 검을 쥔 삼아의 손을 떨쳐내며 말을 이었다.
“윽!”
“그렇다곤 해도, 의외군. 아무래도 네가 제일 자질이 있는 모양이다.”
일귀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삼아가 기이한 것이다.
보통은 덤벼들기는커녕, 강렬한 마기에 짓눌려 일어서는 것도 고작일 터인데.
‘재능인가, 혹은 그저 운인가.’
설령 운이더라도 상관없다.
운 또한 가장 중요한 실력의 한 요소일 따름이다.
설령, 우연찮게 그 운이 다해 저 아이도 주화입마에 빠진다 해도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사소한 문제니까.
“자, 돌아가 앉아라. 집중해.”
청유백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점차 가까워져 오는 청유백의 위협에 삼아는 절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목표가 자신이 아니라 쓰러져 있던 이찬임을 알아챘을 때에는.
이미, 청유백이 이찬의 팔을 잡고 끌어올려 그 심장에 귀를 가져대 대고 있었다.
호흡은 없지만, 아직 맥박은 옅게 살아 있다.
“아직 죽지는 않았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누가 그리 말했지?”
“아닌가요?! 미치거나, 죽거나! 그렇게 떠나간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당신이 알기나 해요? 당연히 모르시겠죠! 쓰레기 공자 소리나 들을 정도로 빈둥거리며 지낸 사람 따위가…!!”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뭐라고, 요?”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알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 드는군. 시간이 아깝지 않거든, 설명해 보겠나?”
청유백은 화를 내지 않았다.
무지는 죄가 아니다.
분노한다는 것은, 자신과 동등한 대상에게나 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람 같지도 않은…!”
“어린아이와 언쟁을 나누는 것은 즐겁지 않군. 욕을 해도 좀 맛깔나게 하는 게 있어야지 원.”
청유백은 삼아의 말을 듣는 체도 않으며 말을 이었다.
손가락을 하나 펼쳐 뻗으며, 잘 보라는 양 그것을 삼아를 향해 내밀었다.
“내가 지금 알고, 네가 알아야 하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손가락의 끝에, 옅은, 그리고 부드러운 마기가 한데 모여 회전하며 빛을 발했다.
‘천화, 다 되었나?’
[음, 언제라도.]
안 그래도 열 중 셋밖에 되지 않는 귀중한 놈들이다.
죽을 정도로 굴리기는 한다만, 정말로 죽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었다.
청유백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그 날이 오늘일 수도 있겠지.”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말.
설령 자신이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섭리일 테지만,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되었든 간에, 어차피 사소한 일일 뿐이다. 네놈들은 사람이 아닌, 내 명령에 복종하는 병사일 뿐이니까.”
“……!!”
삼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귀는 반응할 여력이 없는 듯 보였지만, 그리 탐탁지는 않은 생각인 것이 눈에 보였다.
귀아대에서 수많은 가학과 학대를 반복하고서도, 그 끔찍한 근육을 찢는 고통을 맛보고서도 여전히 꺾이지가 않는다.
이찬과 삼아의 번호가 차례로 다섯과 일곱이라는 것은, 그 무의 재능은 별 볼 일 없었다는 것이겠지만─
육체의 재능과 정신의 재능은 별개인 법이다.
삼아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청유백을 향한 적의를 내비쳤다.
“하, 그래서요? 우리는 사람도 아니니까… 그냥 얌전히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지. 뭐, 바라지도 않는다만. 죽는 것도 물론 네 자유가 아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
“하! 무슨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청유백은 옅게 웃었다.
일부러 한번 덤벼 보라고 대답을 모호하게 하기는 했다만.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도 좋을 것이 없는 일이다.
청유백은 손가락을 이찬의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것을, 몇 번인가 그 자리에서 돌리며 손가락에 집중한 기운을 유지시켰다.
그리고, 직후.
“큭, 커헉!!”
청유백은 붙잡았던 이찬의 팔을 놓아 풀어주었다.
“방금… 이게 무슨….”
이찬은 눈을 크게 뜨며 제 목과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뒤늦게 통증이 밀려오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찬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삼아는 기함하며 이찬과 청유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지난날, 귀아대를 가르치던 교관들이 입이 닳도록 호통치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호통대로 수백 명의 친구들이 그리 죽어나갔다.
헌데, 어떻게?
“말도 안 돼….”
“사소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죽는 것?
물론,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죽지 않게 고치는 것도 또한 사소한 일이었다.
[예상대로구나. 큰 부담이 없어. 아니… 부담이 없기는커녕, 꽤나 큰 힘이다. 세 달 동안 반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마기를 축적할 수 있겠어.]
청유백의 구마지체.
그리고, 마기로 물든 선천진기.
이 둘의 조합은 완벽했다.
구마지체는 본디 타인을 마(魔)에서 구원하고 스스로가 죽어가지만, 지금의 청유백은 도리어 그 마기를 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
심법의 위험성인 주화입마는 어렵잖게 치료할 수 있고, 그 치료한 주화입마의 마기는 청유백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청유백은 옅게 웃음 지었다.
‘나쁘지 않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