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맞는 말이긴 하지 (2)
“슬슬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뭐가 말입니까?”
청유백의 혼잣말에 백소하는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기에, 청유백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 물어라도 보는 것이 좋을 테다.
“지금 칠 층에 있는 게 누구지?”
“칠 층 말입니까? 글쎄요. 오늘 출입한 사람은 총 네 명입니다만, 칠 층에 갈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지?”
“만마서고의 책들은 전부 정리된 것이 아닙니다. 마교 내부의 정세를 안정화하고, 선대가 새 편찬서의 작성에 돌입한 지 지금으로 고작 삼십 년이지요.”
“본론만 말해.”
“…만마서고에서 정리된 구역은 오 층까지입니다. 육 층 이상부터는 어떤 책이 있는지 저희도 모르죠. 그나마, 팔 층이라면 금서를 분류해서 모아둔 구획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즉, 칠 층에 갈 이유가 없다.
그 소리였다.
하지만 청유백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사흘 전에서부터 칠 층의 한켠, 정확히 저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는 누군가의 기척이.
‘역시, 이놈은 느끼지 못하는가.’
지금 칠 층에 있는 저 기척은 청유백조차 집중하지 않으면 놓쳐버릴 정도로 흐릿했다.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것이 익숙한 자였다.
‘어디에’ ‘누가’ 있는지조차 몰라 ‘이유’를 설명하는 백소하로서는, 저자를 포착하지 못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어, 어딜 가는 겁니까? 시간이─”
“금방 끝난다. 곧 돌아오지.”
백소하는 청유백만큼 명확하게 기를 인지하지 못한다.
구구절절 칠 층이 기척에 대해 지껄여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청유백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칠 층까지 올라갔다.
중간중간 층에서 다른 후계자들의 기척 또한 느껴졌지만, 구태여 상대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칠 층.
“네놈 대체 뭐 하는 겁니까? 보십쇼.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백소하는 조용한 칠 층의 광경을 가리키며 멋대로 지껄였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다.
먼지 냄새와 퀴퀴한 책 냄새로 가득한 칠 층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없이 그저 어둠만이 가득했다.
벽에는 산더미 같은 문헌과 죽간 따위가 쌓여 방치되어 있었으며, 책장에 꽂힌 책들도 순서가 중구난방하여 척 보기에도 신경 써서 정리한 티는 나지 않았다.
[불빛 하나 없구나.]
‘…필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청유백도 빛 하나 없는 동굴에서 멀쩡히 죽간을 읽어내지 않았던가.
어느 정도 수위에 오른 고수에게 시야 정도는 ‘있으면 좋은 것’ 정도에 불과했다.
꼭,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청유백, 이제 시간이….”
“조용.”
“…….”
청유백은 어둠 속으로 다가갔다.
저 아래에서는 흐릿하게나마 느껴졌던 기척이, 층계를 올라올수록 점차 사라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이 층 전체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온다는 걸 알아차렸나.’
조심성이 많은 것인가.
혹은, 청유백이 저를 찾는 것이라고 확신한 것인가.
놈은 약삭빠르게 자신의 흔적을 지웠다.
하지만.
“…분명 여기에 있었다.”
청유백은 책장 한켠에 다가섰다.
사방이 난잡하게 책들이 쌓여 있어 어디서 무언가를 했음을 유추하기는 어려웠지만, 다른 단서는 존재했다.
[먼지가 없구나. 이곳에 앉았고…저 부근의 책을 살폈어.]
청유백은 천화가 가리킨 책장의 단을 살폈다.
과연, 책 몇 권이 뽑혀지거나 눕혀진 채로 있었다.
오래된 책이라면 응당 먼지가 쌓여야만 할 터.
[…이것도 마찬가지니라. 최근에 뽑아든 책이야.]
‘이건 미처 가져가지 못한 건가?’
[어쩌면, 가장 덜 중요했던 책인지도 모를 일이지.]
‘중요한 것은 가져갔다…인가.’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무공 비급도, 그렇다고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될 마교의 비밀문서도 아니다.
대충 둘러봐도, 근처에 그런 것과 비슷한 성격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곤충 백서라… 이런 걸 왜?’
그것은 단순한, 일종의 사전.
누군가가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찾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
차라리, 정말로 ‘책’의 제목을 찾기 위해 이것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왜 나를… 아니, 사람을 피하지?’
지금은 만마서고의 모든 책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다.
어떠한 금서에 손을 뻗었다 할지라도, 공적으로 그것을 질타할 수는 없었다.
굳이 누군가를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가받지 못한 침입자일 가능성은 없겠느냐?]
‘그럴 리는 없어.’
만마서고에 소란 없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십 명의 무인들이 이곳을 둘러싸고 빈틈없이 경비를 설뿐더러, 몰래 시야 사이로 숨어들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도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숨어들었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다른 후계자들이나 무인들이 알아챘겠지.’
저 밖의 무인들은 전부 최소 마사급 이상의 실력자들인 데다, 개중에는 마두급의 무인도 섞여 있다.
마교 지식의 심장과도 같은 장소이니, 경비에 신경을 쏟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번 봤던 만면귀와 동급의 무인들이 몇이나 있다고.’
[으음….]
청유백조차도, 이곳에 잠입할 바에는 차라리 정면으로 부수고 들어오는 것이 쉬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있던 것은 분명한 후계자 중 한 명이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정체를 숨기고, 모습조차 보이면 안 될 무언가를 찾고 있던 놈이.
왜 곤충백서 따위를 펼쳐보았는가.
[그저 실수일 가능성은….]
‘없겠지. 난잡하게 책을 뽑은 게 아니야. 분명히 위치를 알고 있었고, 필요한 것들만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이 없고, 보통 없어야 할 것은 있는 꼴이니.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겠군.”
어차피 놈도 급하게 떠난 모양이니,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을 테다.
청유백은 쓸쓸히 등을 돌렸다.
* * *
엿새가 지났다.
청유백은 매일같이 만마서고로 돌아가 칠 층의 기척을 살폈지만, 놈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사물의 배치나 책의 위치 따위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신이 없는 새 다녀갔다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엿새가 지나도록 꼬박꼬박 만마서고에 출입했다는 뜻인즉─
“허억, 허억, 허억…자, 여기에… 있습니다.”
곧, 귀아대의 세 아이들도 죽어라 달리며 청유백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매일매일 내달렸다는 소리였다.
“엿새라… 나쁘진 않군.”
청유백은 일귀가 건네는 서책을 받아 들었다.
엿새 전에 말했던, 백소하에게 받아내라고 했던 그 책이었다.
동시에, 시험의 첫날 청유백이 백소하에게 찾아놓으라 요청했던 책이기도 했다.
청유백은 만마서고의 위쪽, 칠 층 부근을 향해 곁눈질했다.
‘오늘도 놈은 없는 듯 보이니….’
더 이상 이곳을 찾는 것은 무의미할 테다.
아이들의 수련도 성과를 얻었으니, 구태여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책을 찾는 일이야, 굳이 함께할 필요 없이 아이들 일곱 명만 따로 보내면 될 일이고.’
청유백은 기분 좋게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좋아. 드디어 다음 단계로군.”
쉴 틈은 없다.
고작 세 달의 시간을 극한까지 쪼개 쓰기 위해서는, 하루의 휴식조차도 아까웠다.
* * *
세 달.
길다면 길지만, 사람을 가르치기에는 결코 길다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것이 무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학사의 일─백면서생의 탁상공론과 같은 이론을 익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세 달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로서 익히는 지식은, 하루아침의 시간이라 한들 수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니니까.
그러나.
‘무인은 머리로 배우지 않는다.’
그저, 몸에 때려 박을 뿐이다.
육신이라는 것은 몹시도 단순하여, 하나를 배워 기억하는 데에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
더하여, 어느 하나의 달인이 되려 한다면 몇 달은커녕 몇 년은 넘는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무(武)에 관한 모든 것이 그렇지.’
단순한 육체로서의 기본기.
나아가, 무기를 휘두르는 방법.
그것들에 힘을 실어주는 내공.
천재라는 놈들이야 어떤 것이든 쉽게 해내겠지만, 안타깝게도 천재란 부류는 그리 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천재가 아닌 놈들을 천재로 개조할 수 있는 방법.
‘때문에, 편법이 필요하다.’
청유백은 아이들이 기어코 건넨 책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백소하에게 부탁하여 찾아내었던, 바로 그 비급이었다.
사실, 굳이 비급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모든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찌 가르쳤는지’ 따위를 추궁할 때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었다.
청유백은 책을 뒤적이며 투덜거렸다.
‘백 년 동안 변한 게 없군. 아니, 비급이 쓰여진 후로 뭔가 추가되거나 수정된 흔적도 없어.’
즉, 발전이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천화는 되려 코웃음 치며,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당연한 게지. 그 미쳐버린 마공을 연마하는 자가 얼마나 있겠느냐.]
‘생각보다 나쁘진 않다. 효험이 얼마나 좋은데.’
[효험…이라. 그렇지. 사람을 천 명쯤 죽일 혈겁을 감당할 수 있다면야 뭐, 효험이라 불릴 만하겠구나.]
‘뭐든 그렇지 않나? 큰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지. 당연한 일이야.’
청유백은 비급을 덮으며 그 제목에, 무공의 이름에 손을 가져갔다.
불구대천심공(不俱戴天心功).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를 죽이기 위해 연공하는 심공.
청유백이 아는 한, 마기의 축적에 있어서 이것보다 우월한 방법은 없었지만, 익힌 이는 별로 없었다.
익힌 이가 별로 없다.
그것은 보통 두 가지를 의미한다.
‘효과가 별로거나.’
혹은,
‘부작용이 효과 이상으로 두렵거나.’
불구대천심공은 후자에 속했다.
강함을 부르짖는 미친놈이 차고 넘치는 이 마교에서도 그 부작용이 두려울 만큼, 괴이하기 짝이 없는 마공이라는 소리였다.
천화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아이들의 고통은 범부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게야. 손을 대지 않으면 백이십 할 죽을 테지.]
‘괜찮다. 분근연혼대법도 잘 버틴 놈들인데, 뭘.’
[허나….]
‘고작 세 달이다. 세 달 만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어.’
…무엇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귀찮고.’
[그게 본심인 게지?]
‘아, 눈치 빠른 천마혼은 싫어해.’
천화의 말은 대부분 진실이다.
청유백은 천화의 딴지를 웃어넘기며 아이들에게 불구대천심공의 연공을 시작하게 했다.
청유백을 중심으로, 일귀와 이찬, 삼아가 그를 감싸듯 둘러앉았다.
그리고 청유백이 단전의 마기를 개방하여, 아이들이 그 사이함에 정면으로 노출되게 했다.
불구대천공에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부(不)의 기운.
본디 그 기운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청유백의 마기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컥, 커헉, 끄윽….”
“꺽….”
아이들의 눈과 입, 코를 포함한 칠 공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본디 운기조식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충격에도 노출되면 안 된다.
운기조식 중에는 외부의 작은 변화에도 큰 타격을 받고, 무방비하게 노출된 단전과 장기에 위협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기(邪氣)에 노출되면 응당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뭐 그 정도야.’
그깟 고통 따위는 부작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사소함’의 영역에도 포함될 수 없는, 당연히 따라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수, 숨을… 숨을 안 쉬어요…!!”
삼아는 어느새 가부좌를 풀어 버리고는, 옆에서 쓰러진 이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숨을 쉬지 않는 이런 상황도…
…사소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결 가능한 범주의 일이다.
청유백은 이찬의 맥에 손을 짚고는, 몇 번인가 돌려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봐라, 이리되지 않느냐.]
‘…상정한 상황이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었다.
청유백은 삼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괜찮은 건가요?”
“사소한 주화입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