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맞는 말이긴 하지 (1)
“어허, 엉덩이가 내려온다?”
“끄읍…!!”
청유백의 불호령과 동시에, 귀아대의 세 아이는 힘이 달려 내려오던 엉덩이를 다시금 들어 세웠다.
팔은 등허리에, 머리는 돌바닥에.
다리는 꼿꼿이 펴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대가리 박고 엎드려’다.
만마서고의 앞, 돌로 포장된 광장에서 이것을 반복하기를 어언 일각.
자세가 흐트러지면 뒤에서 불같은 매질이 날아오고,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죽을 맛이니.
‘망할 놈.’
‘거지같은 새끼!!’
‘나가 뒤져버려!’
세 아이의 생각은 누구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그나마,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고 있는 탓에 표정에 그것이 드러나지 않기는 했지만─
“다른 생각 하는 게 얼굴에 쓰여 있다, 이놈들아.”
─빠악!!
“악!!”
청유백은, 어떻게 또 알았는지 아이들이 반항적인 생각을 할 때마다 귀신같이 목검을 휘둘렀다.
근처의 나뭇가지를 적당히 분질러 가져온 것이었다.
“아악! 악!!”
애처롭게 비명을 질러 봐야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대 맞고 한 번 비명 지를 때마다, 원한만 깊게 쌓여 갈 뿐이다.
맞고 정신 차리지 않겠냐고?
맞는다고 정신이 차려지면 세상에 범죄자가 왜 있겠는가.
‘천지신명이시여….’
‘죽인다. 꼭 죽인다.’
‘저 새끼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어쭈, 이놈들이 맞고도?”
“아악!!”
청유백의 목검은 신묘할 정도의 속도로 아이들의 엉덩이를 강타했다.
물론, 때리는 걸로 훌륭한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붓은 칼보다 강하다….
…그리고 칼이 붓보다 빠르다.
눈앞의 놈을 참사람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바로바로 행동을 고쳐잡는 것은 주먹이 제일인 법이다.
엉덩이가 터져나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화는 한탄스레 입을 열었다.
[헌데, 어찌 그리 아이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느냐?]
‘뭘?’
[아까부터 절묘하게 매질하고 있지 않으냐. 아이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정확하게 절정에 치달을 때 그것을 꺾어버리고 있어.]
천화는 청유백과 같은 감각을 느끼지만, 청유백도 천화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청유백은 느끼지 못하는 것.
육신의 제약에 걸려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가령, 사람의 감정 따위가 그러했다.
[본녀는 상단전에 거하는 영(靈)이니 느끼는 것인데… 네놈은 어찌 그것을 아는 게냐?]
보통 고수가 사람의 생각을 알아채는 것은 얼굴 표정을 통해서다.
순간적인 표정의 변화, 눈썹의 꿈틀거림, 입꼬리의 각도.
그런 것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네놈, 지금 얼굴도 안 보고 있지 않으냐?]
청유백의 위치에서는, 지금의 시야로는 아이들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려면, 쭈그려 앉아 고개라도 숙여야 할 테다.
[본녀가 모르는 새에 중원의 무공은 관심법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는가?]
‘무슨 소리야. 그딴 게 어딨어.’
얘가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청유백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코웃음 쳤다.
[그리 당당하게 패고 있지 않으냐? 저 아이들의 속내를 알기 때문이 아닌 게야?]
‘그딴 걸 어떻게 알아?’
알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알 계획도 없다.
속내?
그런 걸 알아서 뭐 하는가.
어차피 제 생각대로 할 건데.
천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계속 추궁했다.
[그럼 대체 무어냐? 폭력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굴리는데 욕 안 하는 새끼가 있으면 그게 더 신기하겠다.’
[아…?]
‘그리고 없었더라도 이젠 생겼겠네. 짜잔.’
폭력에 이유가 필요하다고?
‘이젠 생겼으니까 괜찮겠네.’
짜잔.
살의가 있던 놈이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
* * *
일귀와 이찬, 삼아는 청유백의 명으로 곧장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나라가 망하거나 하늘이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를 절실히 원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멀쩡할 예정이다.
위안거리가 될 말이라면 뭐,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라는 것 정도인데.
‘수틀리면 굴러서라도 도착하겠지.’
그 아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청유백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쯤 제 욕을 한 걸음마다 내뱉으며 증오를 무럭무럭 꽃피우고 있을 것 같긴 한데….
‘오히려 바라는 바다.’
세 달.
길어 보이지만, 사람을 기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육체적인 부분은 분근연혼대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으로써 미래의 강함을 사고 있을 테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전의 경험.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진짜 목숨을 빼앗는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싸움이 필요하다.
청유백이 깊게 새겨놓은 공포를 뛰어넘어 칼을 겨눌 정도가 된다면, 고작 제 또래 놈들에게 지레 겁먹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말이지만.’
청유백은 걸음을 돌려 만마서고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만마서고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꽤 많았다.
자신의 책을 찾겠다고 책장을 뒤지는 이들도 있었고, 아직 아이들을 가르칠 방식을 정하지 못해 유야무야 시간을 보내는 놈들도 있었다.
다만, 그 기척의 대부분은.
“대협. 문자의 모양이 비슷한 책을 세 권 찾았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청유백이 데려온, 귀아대 아이들의 것이었다.
─ 대략, 한 시진 전.
세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청유백은 남아 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이놈들은 이제 짐이다.
가르칠 의리도 없고, 생각도 없다.
하물며 그럴 가치조차 없으리라.
‘고작 세 놈의 대법을 시술한 것뿐인데 선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어. 이 이상은 할 수 없다.’
청유백의 분근연혼대법을 이루는 선기는 소환단을 취했을 때 얻은 삼십 년 치, 그것 하나뿐이었다.
더 이상은 늘어나지 않고 줄어들기만 했으니, 지금도 청유백의 근육을 압박하는 힘은 조금 약해져 있었다.
육체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어떤 수련도 크게 의미가 없다.
제 의지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천화는 감정도 없이 그저 오열을 맞춰 인형처럼 선 아이들을 씁쓸히 바라보았다.
[이제 어찌하겠느냐?]
‘글쎄….’
가르칠 것은 없다.
다만,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고 밥만 축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청유백은 어쩔까, 하는 생각에 잠시간 잠기다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금세 고개를 쳐들었다.
[뭐야, 좋은 생각이라도 났더냐?]
‘나쁘진 않은 생각이지.’
어차피 가르치는 방식이 자유라면, 뭘 해도 괜찮다는 것 아닌가.
의지 없는 인형에게 자율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럼, 완벽하게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일을 시키면 될 일이었다.
“너희는 따로 할 일이 있다.”
* * *
청유백은 귀아대의 나머지 일곱 명을 이끌고 만마서고로 향했다.
서고 안에서 몇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제 책의 제목을 찾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비급을 찾고 있을 터.
칠 층의 흐릿한 인기척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청유백은 고개를 돌려 먼저 보내놓은 일귀와 이찬, 삼아의 기척을 살폈다.
“세 놈은… 아직이군.”
하긴, 분근연혼대법이 몸을 찢어놓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 시진은 족히 있어야 이곳에 다다를 테다.
다른 일곱 명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킬 일이 있지만, 그 세 놈이 왔을 때의 준비도 해야 할 터.
청유백은 한순간 올라가서 백소하를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 이게 낫겠군.’
굳이 발걸음을 옮기기도 귀찮은 일이었다.
청유백은 슬쩍 마기를 끌어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기감이 좋은 놈들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겠지만, 안타깝게도 백소하는 그리 능력이 출중한 놈이 아니다.
청유백은 끌어올린 마기를 다리에 담아, 슬쩍. 바닥에 내려놓았다.
진각이라 부르기에는 좀 뭣하고, 점잖은 발길질 정도라 불러야 할까.
─궁.
청유백이 다리에 실은 마기는 약한 진동이 되어 만마서고 전체에 퍼져나갔다.
곧, 진동을 느끼고 헐레벌떡 층계를 내려온 백소하가 성큼성큼 청유백에게 다가왔다.
“…청유백! 네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꼴에 서고라고, 목소리 크게 내지 않게 소곤소곤 말하는 꼴이었다.
청유백은 대충 주변의 책을 꺼내 들며 대답했다.
“독서.”
“…….”
“지금부터 하려고.”
백소하는 한숨을 내쉬며 일사불란하게 책들을 펼쳐가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책장 한 구획을 통째로 점거하고는, 책들을 순서대로 살피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보이기도 했다.
“허면, 저 아이들은 뭡니까?”
“책 탐색.”
“책 탐색이라고요? 무슨…?”
“말 그대로다. 내 시험 말이다.”
“그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만마서고에 와서 책을 찾는다면 저를 부르면 될 터인데,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무제 책의 원본을 찾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만마서고의 이용은 자유로우니, 이곳이 열려 있는 동안이라면 언제 이곳을 이용하든 그것은 청유백의 자유였다.
하지만.
“수련은 어쩌구요?”
“쟤네는 필요 없어.”
“예…?”
“수련 방식도 자유, 만마서고의 사용도 자유라면, 저놈들을 어디서 어떻게 굴릴지도 내 마음이지. 안 그런가?”
“그렇…긴 하지요.”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듯 대답하는 청유백의 대꾸에 백소하는 저도 모르게 벙찐 소리를 내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맞는 말이긴 하지.]
정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시험의 규칙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부리지 마라, 따위의 규칙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말마따나 이런 방식으로 부려먹어도, 하다못해 식모나 하인으로 부려도 기초체력을 위한 훈련이다─따위로 변명하면 안 될 것도 없으리라.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그럼 뭐가 문제라고?”
“아니, 통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개나 주라지. 봐라. 경비 서는 무인들 중에 막아서는 놈이 있나?”
백소하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발 누구라도 이 미친놈을 막아 줬으면 하는 일말의 희망이 담긴 시선이었다만.
“…….”
바깥을 포함해서, 만마서고 안과 밖을 지키는 무인이 거진 스무 명.
경비를 서는 무인들이 한두 번쯤 곁눈질로 아이들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막아서지는 않았다.
“아, 빌어먹을.”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소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물렀다.
뒷정리는 결국 제 몫 아니던가.
“…그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아예 포기하신 겁니까?”
“아니. 둘 다 한다.”
“예?”
“책 찾기, 애들 가르치기. 별도의 문제라면, 점수도 당연히 합산되겠지.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하지요.”
일단은 그렇다.
책의 제목을 찾은 후계자들 사이에도 차등을 둬야 할 테니, 일단 그 두 문제의 점수는 합산되는 것이 맞다.
일단은… 그렇다.
‘근데 그걸… 보통 같이 할 생각을 하나?’
어느 쪽이고 보통 시간을 쏟아서 해결될 만한 일이 아니다.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당연한 것이며, 책 찾기 쪽도 만마서고의 장서가 기만에 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녹록지 않다.
아무리 청유백이라도 이것은 무리다.
백소하는 그리 확신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치는 꼴이 될 텐데요.”
“토끼가 아니다.”
“허면?”
“과일이지. 눈앞의 사과와 배 중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나? 둘 다 먹으면 그만인데.”
“허어….”
토끼는 도망친다.
하지만, 과일은 이미 손에 있다.
설령 한쪽의 과일이 떫어 뱉어 버리게 되더라도, 일단은 입안에 쑤셔 넣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오만이군요.”
“확신이지.”
청유백은 그리 대꾸하며 들고 있던 책을 책장에 꽂아 넣었다.
어차피 결과로 증명하면 될 일, 입 아프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생각 따위는 없다.
“아, 그리고 한 두 시진쯤 있으면 거지꼴인 애가 셋 올 텐데, 그놈들이나 안내해 줘라.”
“…알겠습니다.”
* * *
그리고 지금, 두 시진 후.
터덜터덜 떠나가는 그 ‘거지꼴인 아이’ 세 명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백소하는 청유백에게 말했다.
“청유백, 곧 출입 통제 시간입니다. 내일은 좀… 소란이 줄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규칙은 지켰으니, 안 될 것은 없다.
사람이 없으니, 소음 공해라고 문제 될 것도 없다.
그건 좋다만….
“저놈들이 어질러놓은 책은, 다름 아닌 내가 치웁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만마서고는 백가 관할이라는 것 말입니다. 정리도 우리가 합니다.”
“알지. 하인들 시키면 되지 않나.”
“기밀 구역이라 직계밖에 못 들어오고, 백가 직계는 저와 제 형님밖에 없습니다….”
백소하는 눈물겨운 목소리로 애원했다.
지금도 책장 너댓 개가 난장판이 되어 어질러져 있었다.
꼴에 정리한답시고 차곡차곡 쌓아놓기는 했다만, 애들이 글월을 알겠는가 순서를 알겠는가.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 꼴이 눈에 훤하다.
“노력은 해보지.”
“빈말로라도 알겠다는 말 한 번 해줄 수 없습니까? 이건 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아무렴, 그러시겠지요.”
백소하는 투덜거리며 주변의 책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꼴을 보고만 있던 천화가 끼어들어 쏘아붙였다.
[거짓말쟁이.]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사기꾼을 순서대로 줄 세우면 분명히 첫 번째로 올 놈 주제에.
…그런 맥락이었지만, 청유백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추궁이었다.
‘진짠데?’
[네놈의 심장을 열어 보면, 양심이 둥글둥글해서 목화솜처럼 생겼을 게다.]
‘거짓말은 안 한다. 이건 진짜야.’
[허이구야.]
진실도 말하지 않을 뿐이지.
진실이 아니라고 하여,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뭐, 그건 그거고.’
─턱
청유백은 살피던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제 곧 해가 지고, 만마서고의 출입도 통제될 시간이다.
이 이상 같은 책을 붙잡고 있어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청유백은 흐음, 하고 옅은 신음을 흘리며 천장 너머의 다른 이들의 기척을 살폈다.
“슬슬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