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머리는 뜨겁게, 가슴은 차갑게 (3)
사흘이 지났다.
목구멍으로 넘겨주는 미음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던 놈들은 이제야 숟가락을 직접 들 정도가 되었다.
대법의 부작용으로 잠도 못 이루던 놈들이었지만, 지금은 썩 안정되어 밤이면 색색거리며 안정을 취했다.
천화는 가당찮다는 듯 헛숨을 삼키며 이죽거렸다.
[생각보다 빠르구나. 한 달은 걸릴 줄 알았건만. 심지어 세 놈 다 살아 있구나. 대단타 해야 할지.]
‘처먹인 게 있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나.’
아이들이 빠르게 대법에 적응한 것은, 순전히 청유백이 아이들에게 먹였던 환마단의 조각 덕이었다.
아니, 순전히는 아니더라도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황돈이 청유백에게 넘겼던 것.
그 환마단의 삼분지 일을 떼어 다시 삼등분한 뒤 아이들에게 먹였다.
‘역시 아깝긴 하군. 고작 시험 하나를 위해서….’
[어차피 네가 전부 먹어도 온전한 효과를 보기는 힘들지 않더냐.]
‘그건 그렇다만.’
청유백은 마기를 갈무리한 제 단전을 살폈다.
저놈들을 살피며 남은 환마단을 취한 뒤, 이제 청유백의 몸에 깃든 마기는 총 오십 년.
본래 남은 환마단을 취하면 이십 년을 획득하여 일 갑자를 채웠어야 함이 옳았지만, 같은 종류의 영약을 반복해서 취하면 그 효능이 떨어진다.
때문에 청유백이 얻은 효능은 정상의 반분 정도뿐이었다.
물론,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 아이들에게 떼어 주는 판단을 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다른 후계자들은 어찌하겠나?’
[글쎄다. 아마 그 아이들도 한 번쯤은 환마단을 취한 적이 있겠지. 누가 뭐라 해도, 결국 육대가의 자제들이 아니더냐.]
아마 거리낌 없이 받은 환마단을 전부 투자했을 공산이 컸다.
교주 위를 진심으로 노리는 이일수록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일수록 환마단 정도는 그리 귀히 여기지 않으며 자랐을 터이고, 심하면 너덧 개까지도 먹어 보았을 테니까.
물론, 환마단이 아니라 신마단을 받은 두 사람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간에.
받은 환마단을 온전히 투자한다면, 고작 세 달이라도 다른 조의 아이들과는 완연한 차이를 보이며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뭐, 저야 그런 차고 넘치는 환경이 아니니 있는 것도 쪼개 쓰는 형편이었지만 말이다.
‘상관없는 일이지.’
이 정도 되어도, 고작 후계자 놈들과 천마를 감히 같은 판에 올리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란 처사 아닌가.
“자, 그럼….”
움직여 볼까.
청유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천화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달리 할 일이 있느냐?]
‘있지.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해야 할 일이 많아.’
아이들의 몸이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당장 일으켜 세워 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다시금 깨어날 때까지는 할 일이 없다.
그렇기에,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몇 가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급한 것은 명확했다.
‘고칠 물건이 좀 있지.’
* * *
친구라는 건 참 좋은 것이다.
위기와 고난의 상황에서 서로 도우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그런 관계가 참 친구 아니던가.
청유백은 그런 친구를 찾아가고 있었다.
뭐, 위기에서의 부탁이 좀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친구라면 나름 친구라 부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동의어로 노예나 부하 따위의 단어가 있다만, 아무래도 듣기 좋은 쪽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은가 싶다.
“황돈은 안에 있나?”
“황… 아, 일공자 말씀이시군요. 예, 본인 집무실에 계십니다. 2층의 제일 바깥쪽 방입니다.”
청유백이 향한 곳은 황가의 금성각(錦城閣)이었다.
녹가의 녹운각이 약의학과 독학을 주관하고, 백가의 백서각((白書閣)이 정보 관리의 총체이듯─금성각은, 마교의 재정을 담당하는 장소였다.
동시에, 황가가 운영하는 금성상단의 총괄지이기도 했다.
녹지연을 보러 녹가의 가장이 아니라 녹운각에 가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여긴가?”
환자 등의 취급 탓에 언제나 조용하던 녹운각과는 달리 금성각은 전체에 활기가 있었다.
여러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문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가 유독 비대한 것이 하나.
청유백이 그 방의 문고리를 잡았고, 그 순간 방 안쪽에서 소란이 전해졌다.
아무래도, 선객이 있는 듯 보였다.
“묵 공자, 우리의 거래는 거기까지였지 않소. 그 이상을 요구해도─”
“뭐라고? 이 새끼가, 지금 내 걸작이 고작 집 대여비 따위로 퉁쳐질 만한 물건이라고 말하는 거냐?”
“그것이 아니지 않소. 우리는 분명 거래를….”
─쾅!
─쾅!
소란스러운 소리가 겹쳐 울렸다.
하나는 방 안쪽에서 울렸다.
보나 마나 황돈에게 시비를 거는 사내가 책상이라도 내리친 것일 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소란스럽군.”
아랑곳 않고 문을 연 청유백이, 발을 내디딘 소리였다.
“……?”
“……!”
방 안에 있는 것은 두 사람.
한 명은 황돈이었고, 한 명은 묵색 거북이가 수놓아진 옷을 입은 또래의 사내였다.
얼굴이 기억에 있었다.
[복마동에서 봤던 아이로구나.]
‘아, 그 시비 걸던 놈.’
[시비까지야….]
그리 큰 연관이 있지는 않았다만, 일단 일면식은 있다.
이름이… 묵태곤이던가.
그리고 그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황돈은 청유백을 발견하고는, 묵태곤을 무시하고 뛰쳐나왔다.
“귀인! 어서 오시오. 어인 일로….”
“볼일이 조금 있어서.”
청유백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행동이었으나, 묵태곤은 그 둘을 몹시 기이하다는 듯 쳐다보며 황돈을 향해 쏘아붙였다.
“귀인? 허, 병신이냐? 지금 이런 놈을 주군이랍시고 모시는 거야? 어쩐지, 지난번에도 이놈을….”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그 늘인 길이만큼이나 아래로 시선을 옮긴 그가 발견한 물건 탓이었다.
“…만났다더니.”
청유백의 허리춤에 있는 두 자루의 검.
그리고 묵태곤의 시선은, 그중 최근에 그 집을 지니게 된 백월검을 향해 있었다.
“…그렇군. 어쩐지 익숙한 크기다 싶었어. 백월검을 위한 것이었나?”
“이걸 만든 장인이 너인가?”
“검도 없이 만든 물건치고는 드물게도 걸작이었지! 씨발, 내가 검장(劍匠)이 된 이후엔 최고의 작품이었어. …그게 네놈을 위한 것인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쾅!
탁상을 내리친 묵태곤은 슬쩍 시선을 흘려 청유백과 마주 보았다.
결코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방을 통찰한 것은 청유백도 마찬가지였다.
[마사급… 상위 정도. 어린 나이치고는 제법이구나. 검장이라 소리칠 정도는 되겠어.]
‘약관도 안 된 검장이라.’
묵가는 철장(鐵匠)의 가문.
그리고 개중에서도, 농기구가 아닌 도검을 벼리는 것을 검장이라 했다.
굳이 마교만의 문화는 아니었다.
검장이야 중원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있으리라.
다만, 마교의 검장은 그 질이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검이 아니다.
내공이 담긴 신검을 벼리고, 마검을 벼리는 대장장이.
‘그를 위해서는 당연히 장인 본인도 기를 다룰 수 있어야만 하지.’
묵가는 대대로 그런 일을 해 온 가문이었고, 작금에 와서는 대체조차 불가능한 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유능한 만큼, 능력에 대한 기준도 엄격했다.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이 검장(劍匠)이라는 말은 보통 믿을 수 없을 테다.
그러나 저 말이 사실이라면, 결코 그 재능이 범상한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저리 방만한 것을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탐나는데….’
황돈을 돌아보느라 고개를 돌린 묵태곤은 청유백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다만 청유백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황돈만이 그 눈빛을 소름 끼치며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음모를….’
황돈의 근심 어린 속마음이 묵태곤에게 전해졌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멍청한 놈! 다루지도 못할 검에 그만한 사치라니. 돼지와 머저리, 딱 어울리는 짝이군.”
묵태곤은 코웃음을 치며 책상을 내리쳤다.
깽판 치는 놈 따로, 의심하는 놈 따로, 걱정하는 놈 따로 있는 꼴이다.
개중 걱정하는 놈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화였다.
[어찌하겠느냐?]
‘무얼?’
[네놈 성격이면 일단 반쯤 죽여 놓고 생각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 보겠지. 그렇지 않더냐?]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청유백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나는 폭력을 좋아하지 않아.’
[무슨 그런 눈에 훤히 보이는….]
‘사랑하지.’
[…….]
거짓말을.
이라는 단어가 목구멍 너머로 넘어 가버린 천화가 잃어버린 어이를 찾을 무렵,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보고나 있어.’
하지만, 말과는 별개로 청유백은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물론 주먹이 말보다 빠르고, 대부분의 일을 간편하게 해결해주는 요술의 몽둥이라지만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욱 좋은 해결책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다.
“…….”
청유백은 대꾸 없이 묵태곤의 옆을 지나쳤다.
물론 묵태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묵태곤은 한껏 인상을 찌그러뜨리며, 청유백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 머저리, 내가 먼저 왔어. 네 검집이야 이미 넘어간 거니 내 알 바 아니지만, 시발 눈앞에서까지 얼굴 붉힐 필요가 있냐?”
“그럴 필요 없지.”
“그럼 꺼져. 가서 느그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오라고. 알어?”
“글쎄….”
가만있어 봐 이 새끼야.
청유백은 홍련검을 끌러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묵태곤의 주먹이 청유백의 멱살을 틀어쥐기도 전이었다.
─철그럭.
옅은 마찰음과 함께 청유백은 검의 손잡이를 뽑았다.
그리고 이내 뽑혀 나온 그 검의 정체에, 묵태곤보다 먼저 황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귀인, 이건 무슨….”
“이 머저리 새끼가, 정말 미쳐서….”
그래, 손잡이 위가 전부 산산이 부서진 검 따위를 보고 감탄할 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미쳐서…?”
직후, 청유백이 이어 꺼내든 녹슨 검신에 묵태곤은 헛숨을 들이켰다.
황돈은 여전히 모르는 눈치였다.
상인이 온전한 검의 가치는 알아도, 녹의 뒤에 숨겨진 부러진 검날의 가치를 어찌 알아보겠는가.
하지만 묵태곤의 반응을 눈치 빠르게 확인한 황돈은 검신을 받아들며 물었다.
“이걸… 어찌 해 드려야겠소?”
“수리. 완벽한 모습으로.”
청유백의 내공은 이제 오십 년.
일 갑자에 근접하게 되었으니, 슬슬 육도홍련신공의 두 번째 길을 걸을 때가 되었다.
옛 전쟁에서 청유백의 여섯 검 중 다섯은 부러지고 진천검 하나만 남았으니, 나중에 그것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빈자리를 채울 것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홍련검은, 그 빈자리를 메꾸기에 모자람이 없는 일품이었다.
칼날을 벼리고 손잡이를 달아 본 모습을 되찾는다면, 결코 청유백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최고의 장인에게 맡기고 싶군. 네 수완이라면 가능하겠지?”
“무, 물론입니다. 한데….”
황돈은 묵태곤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최고의 장인이라서가 아니라, 눈에 띄도록 명확한 노기를 내뿜고 있어서였다.
“장인? 장인이라고?”
뭘 그리 빡이 쳤나.
얼굴이 붉게 물들어 말도 아니다.
우리 강산은 푸르게 푸르게인데 저놈 얼굴은 불그레 불그레더랬다.
묵태곤은 감탄하며 홍련검의 검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리고는, 열망에 찬 눈동자로 말했다.
“그 장인! 네놈 눈앞에 있다!! 내가 하지, 내가 하게 해 줘!!”
방금 전까지 그리 멸시하던 태도는 어디로 갔나.
묵태곤은 홍련의 자태에 취해 청유백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본래 처음부터 이러한 상황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놈이 묵가의 자식이고 검장이라면 명검을 벼린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턱이 없다.
그러므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싫은데?”
“?”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