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62화 (62/200)

제62화. 머리는 뜨겁게, 가슴은 차갑게 (2)

“네놈, 이름이 뭐지?”

“그런 걸 알아서 뭘…읍!”

반항적인 태도로 대꾸하던 아이를 밀어내며, 그 뒤에서 다른 아이가 나와 고개를 조아렸다.

덥수룩한 머리칼이 눈을 가려, 앞이 제대로 보이기는 할지 의심스러운 아이였다.

“뭐, 뭐야! 이거 놔!!”

“죄송합니다. 동료의 무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방금의 아이와는 달리, 조금은 상황을 판단할 줄 아는 놈인 듯했다.

아니면, 상황을 ‘파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길러졌던가.

고개를 조아린 아이는 머리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이름이 없습니다. 조의…몇 번째 소속원인가가 이름이 됩니다.”

“그럼, 넌 몇 번째지?”

“칠 하나입니다.”

칠 하나라.

청유백은 아이들의 가슴팍에 수놓아진 칠(七)자를 그제야 발견했다.

‘그렇군. 칠 조의 첫 번째인가?’

귀아대의 번호는 대체로 유능한 순으로 매겨진다.

그리고 대게, 마교의 ‘유능’이란 강함이다.

이 아이는 첫 번째인 만큼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일 테지.

육체적인 강함이든, 정신적인 강함이든 간에 말이다.

청유백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칠 하나. 동료의 무지를 용서해달라고 했나?”

“예.”

“그럼 말해봐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 내가, 너희들의 말을 듣고 참작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건….”

칠 하나는 말끝을 끌며 잠시 시간을 벌더니, 이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당신께 이익이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익이라.”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다.

저 대답이 ‘청유백’이라는 사람을 통찰하고 꺼낸 대답이든, 우연히 꺼낸 궁여지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괜찮은 답을 냈다는 결과다.

운도 중요한 실력이니까.

청유백은 짐작보다는 이 조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짜악!!

“이상하군, 내가 왜 이익을 좇는다고 생각하지?”

조금 더, 잔혹해지기로 했다.

“…….”

거세게 왼쪽으로 돌아간 칠 하나의 머리가 돌아간 채 우뚝 멈춰섰다.

쓰러지지도 않았고, 아프다며 울부짖지도 않았다.

아픈 상처를 쓰다듬으며 고통을 달래지도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눈앞에 있는 마귀의 분노를 더욱 살 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숫자를 보니 칠 다섯인가? 저놈의 말마따나, 쓰레기 공자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뭣 하나 얻지 못할 텐데.”

─짜아악!!

“내가, 왜 이익을 좇겠나?”

이번에는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칠 하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익을 좇지 않으십니다.”

“그런가? 그럼, 주인의 뜻을 섣불리 지레짐작하고 입을 열어서, 주인의 기분을 더럽게 한 개는 어찌해야 할까?”

“…….”

칠 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지금부터 너를 패 죽이겠다는 말을 점잖게 돌려 한 것뿐이었으니까.

‘자, 어찌할 테냐?’

용서를 구하나?

아니면, 최후의 발악을 할까?

청유백은 다른 칠 조의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처음 나섰던 칠 다섯은 분노와 공포가 반쯤 섞인 표정으로 청유백과 칠 하나를 돌아보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저들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저들 중 한 명이었다면 용서든 발악이든 하나 정도는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칠 하나는, 과연 첫 번째 아이라고 해야 할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치켜든 채로 대답했다.

“부디, 좋으실 대로.”

“용감한 대답이야.”

청유백은 손가락을 하나 폈다.

그리고 제 몸속에 흐르던 기운을 응축시켜, 한순간, 칠 하나의 가슴을 꿰뚫었다.

[네놈, 방금 그건….]

‘쉿.’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당사자인 칠 하나조차, 한순간 눈을 껌뻑이더니 제 몸을 곁눈질했다.

“너희들을 가르치던 것들이 이런 건 보여주지 못했나 보군,”

“대체 무엇을….”

다음 순간.

칠 하나의 혈관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붉고 푸른 혈관이 돋아올라 흉측하게 피부 위로 들끓었다.

“끄윽, 끄아아아아아악!!!”

고통, 그리고 비명.

청유백이 뺨을 후려칠 때조차 비명 한 조각 흘리지 않던 칠 하나의 목청에서 터질 듯한 괴성이 터져나왔다.

“꺽, 끄어어….”

칠 하나의 자세는 머지않아 무너졌다.

차렷 부동을 유지하던 몸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바닥을 뒹굴었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

그 와중에도 칠 조의 대다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들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단, 한 놈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만! 그만해!! 나를 때리면 되잖아!! 왜 그러는 거야!!”

칠 다섯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칠 하나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나서지 말라 막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놈을 막아 줄 조장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멍청한 놈, 네놈들의 장이 너희를 대표해 벌을 받거늘, 깨닫는 것이 하나도 없군.”

청유백은 다시금 손을 들었다.

한 번 손가락을 놀릴 때마다, 한 번씩 기운을 다시금 모아 칠 하나의 사지를 찔러 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악!!”

“괴로우냐? 괴롭겠지. 근육이 끊어지는 감각이란 그런 것이다.”

청유백에게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미 익숙한 그에게는, 지금도 몸을 조여오는 감각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저 어린아이에게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었다.

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결코 연기라고는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당신… 당신…!!”

“학습 능력이 없는가?”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칠 다섯을 돌아보았다.

저놈의 눈에는, 이유도 없이 고문을 자행하며 즐거워하는 광인이 비쳐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아직 생각을 할 능력이 있다면.

생각으로써, 상황에 반응하고 분노할 여지가 남아 있다면─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굴복이요.

둘째는,

“그만둬!!”

무얼 숨기랴, 반역이다.

─카각!

청유백이 비스듬히 들어올린 검집이 칠 다섯의 박도를 받아쳤다.

지난날의 청유백보다는 나았지만, 아무리 수련을 쌓았다고 한들 청유백보다도 어린 나이의 몸이다.

막는 것도, 흘려내는 것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무, 무슨…!”

“눈치도 없고, 상황 파악도 못 하는군. 너는 좀 실망이다만….”

청유백의 시선이 돌아갔다.

칠 다섯과, 나머지 여덟 명.

결론을 내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다른 놈들보다는 낫겠지.”

“아아아아악!!”

칠 다섯은 순식간에 칠 하나의 옆에서 같이 뒹굴었다.

아이들 중에서 이 상황을 이해하는 녀석은 없었다.

그다지 강하게 때린 것도 아닐진대 이리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꼴이라니.

지금껏 보아 온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으리라.

조금이나마 경험이 있는 무인이라면 저것이 고문의 일종인 분근착골(分筋錯骨)이라 짐작하며 혀를 내두르겠지만, 이제 열 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그런 지식은 없다.

그저 무언가 손가락으로 신묘한 수작을 부렸고, 왜인지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는 보이는 결과뿐이다.

이유조차 모른 채로 말이다.

보다 못한 아이들 중 하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호오.”

감탄 어린 탄성.

감정은 없는 경탄이었다만, 청유백은 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제 더 없는 줄로 알았다만.’

한 놈 정도는 의지가 남아 있는 놈이 있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나선 아이는 칠 일곱이었다.

가슴께까지 닿는 머리칼을 대충 하나로 묶은 여자아이.

신체적인 무력은 영 볼품없었지만, 용기만큼은 가상하다 해야 할 테다.

“왜냐고?”

질문한다면, 응당 대답해주어야 하겠지.

청유백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온 아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네놈들이 아직 질문을 할 수 있지 않나.”

“그게 무슨….”

“이해가 느리군.”

그 아이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아아악!!”

이젠 굳이 비명을 서술하는 것이 피곤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고통, 파멸, 악몽.

그러나 죽음은 허락되지 않는 그 광경에, 더 이상 나서는 아이는 없었다.

아니, 더 이상 생각하는 아이가 없다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자신의 일이 아니므로,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이 아니므로 공감 또한 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감정이 없다.

고로, 더 이상 다그쳐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게 전부인가.”

청유백은 한심한 눈초리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움찔하는 아이도, 원망하며 타박하는 아이도 없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열 중 셋.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고통에 죽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청유백을 타박했다.

[꼭 이래야만 했느냐? 그냥 말로써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지 않느냐.]

‘이게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합리적이고 신속한, 그리고 완벽한 교육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재능?

아니다.

노력?

그 또한 아니다.

‘재능이든 노력이든, 몸에 때려 박아 각인해주면 그만.’

질문은 필요 없다.

의문도 필요 없다.

명령에 지체 없이 복종하는, 그러나 뜻 없는 인형과는 다른 것.

바로, 공포다.

고작 세 달 만에 최대한 많은 것을 때려 넣기 위해서는, 그러한 선행 조건이 필요 불가결하다.

이유 하나하나를 일일이 설명할 시간도, 필요도 없다.

그저 명령한다.

그리고 복종한다.

그것은 청유백 자신에 대한 공포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목전까지 들이친 죽음에 대한 공포이기도 했다.

청유백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기 싫다면, 지금부터 내가 이끄는 대로 기를 운용해라. 만약 편해지고 싶다면….”

그런 방법은 없다만, 뭐 굳이 하나 정도를 이야기해 주자면.

“혀 깨물고 뒤져버리던가.”

* * *

‘…셋은 좀 버겁군.’

[당연하지. 애초에, 그것은 그리 약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더냐.]

‘연출이 좀 필요했다.’

청유백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기맥을 흐르는 분근연혼대법을 정비했다.

몸에 흐르는 선기는 소환단으로 얻었던 그것뿐, 더 이상의 축적은 없기에 절대량이 바뀌면 당연히 손을 볼 필요가 있었다.

고작 일 년에서 이 년 내공의 차이일지라도, 작은 조정이 몸을 바꾸는 법이었다.

그것들이 어디로 갔느냐 하면, 대답은 뻔했다.

천화가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버틸 수 있으리라 보느냐?]

‘모르지.’

청유백이 아이들에게 행한 것은, 약식으로나마 그 아이들에게 분근연혼대법을 펼친 것이었다.

뭐, 겉으로 드러나는 꼴이야 고문과 다름이 없지만, 본래가 그런 대법이다.

고통에 익숙하던 청유백도 신음하게 만드는 것인데, 어찌 아이들이 그것을 참아내겠는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셋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도 있느니라.]

‘그래도 상관없다.’

[상관없다고?]

‘살아남은 한 놈이 일당백, 아니 일당십만 해주면 되는 일 아닌가.’

간단한데?

뭐가 어렵다고.

[…….]

‘애초부터 열 명 전부를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간 낭비야.’

단체전이든, 차륜전이든 알 게 뭔가.

그냥 한 놈 빡세게 키워서, 혼자서 십 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면 귀찮게 전략 따위 알게 뭔가?

‘그리고….’

청유백은 무표정한 채 칠 조의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청유백의 명으로 그 세 명을 방 안으로 옮기고, 몇 놈은 물을 길어 오거나, 몇 놈은 마당을 쓸거나 하는 소일거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음에도, 표정에는 일말의 공포나 충격도 머무르지 않았다.

‘저것들을 가르쳐 봐야 뭘 하겠나.’

[…그야말로 인형들이구나.]

자아는 없이, 그저 명령한 바를 충실히 따르는 인형.

훈련을 소화하는 것은,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보다도 저들이 더 잘 견뎌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간에, 군소리 하나 않고 몸이 망가지고 무너질 때까지 그저 강행하리라.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반복하고, 그저 움직임으로서 몸에 경험을 쌓겠지만, 결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다음은 무엇을 할까요?”

“저놈들 이부자리나 정리해 줘라.”

“존명.”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강해지려는 의지도,

살아남으려는 의지도.

그렇기에 저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의미가 있다면, 저 반항아들에게서 찾아야만 하리라.

청유백은 아직 기절하지 않은 놈들의 전신 곳곳을 툭툭 쳐대며 계속해서 의식을 붙잡았다.

“그래, 계속 숨 쉬어라. 알려준 기맥으로 계속 기를 순환시켜라, 죽기 싫다면 말이야.”

고통에 굴복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방법은 단순하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아니면, 빠르게 혀 깨물고 뒤져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러지 않는다.

아득바득 버티고, 이승에 발을 붙이고 구른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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