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61화 (61/200)

제61화. 머리는 뜨겁게, 가슴은 차갑게 (1)

군왕에게 가장 중요한 기질이 무엇인지 아는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좋다. 나쁘지 않다.

과거, 유현덕이 자애로써 백성들을 보살펴 수많은 백성의 민심이 그를 향했으니, 그 또한 오답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면 뭘까?

감히 군왕의 명령에 불복할 여념을 없게 만들, 철혈의 힘?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정복을 원한다면 서초패왕 항우의 그것처럼, 직접 나서 당장의 나라를 부흥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개인이 무능하여 힘을 가진 자를 주변에 두더라도, 동탁이 그러했듯 개인의 치세만큼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항우도 동탁도, 그 종장의 결과가 좋다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답은 단순하다.

군왕에게, 군림하는 자에게 필요한 기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사람을 부려먹는 능력이다.

* * *

“구해 와.”

청유백의 단순하다 못해 폭력적일 정도의 한마디에, 황돈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귀아대의 인원, 아이 열 명이 머무를 숙소와 훈련 장소.

명령은 단순했다.

알아서 구해 와.

방법?

그건 네가 생각하셔야죠.

군왕은 못 하는 것이 있어도 괜찮다. 잘 하는 놈을 부리면 되니까.

황돈은 신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언제까지…?”

“한….”

청유백은 고민하며 슬쩍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황돈은 금세 화색을 띠며 대답했다.

“아, 사흘이오? 충분히 가능하오. 이 황도식, 결코 귀인을 실망….”

“무슨 소리냐? 삼각 준다.”

“예?”

사흘 같은 소리 하네.

그동안 애들 밤이슬 맞으면서 재울 일 있나?

왜 그런 당연한 질문을 굳이 하냐는 듯한 대꾸였다.

“그건 좀 어려운….”

“네가 쓰려던 장소가 있을 것 아닌가.”

“그, 그건 그렇소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황돈은 이미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으니까.

시작하는 날짜만은 알지 못해 그저 준비에 그칠 뿐이었지만, 청유백의 말마따나 장소와 식사, 그 모든 것을 준비해놓은 이후였다.

‘아니라고 말했다가 확인이라도 하면 끝장이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울고 싶은 지경이다.

만만한 호구 놈이면 모르겠는데, 눈앞의 청유백은 앞으로 오래도록 뜯어먹을 호객님.

‘찰나의 거짓말로 신뢰 관계를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청유백은 말없이, 그저 지긋이 황돈을 지켜봤다.

마치 제 생각이 전부 읽히는 것 같은 감각이 피부를 내달렸다.

소름인가, 오한인가.

황돈은 머지않아 대답했다.

“드, 드리겠소. 당연히 드려야지.”

‘망할, 내가 귀인이 아니라 귀신을 모셨나?’

어차피 투자라고 생각하면 아쉽지는 않다.

돈은 좀 쓰겠지만, 다시 한 번 구하는 건 어렵지 않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 분명 이득을 위해 이 자의 옆에 붙기로 한 것일진대─

‘이 불길한 예감은….’

왜인지, 벌어먹는 것보다 뜯어 먹히는 게 더 많을 것만 같았다.

* * *

[아직 우리가 내려 준 은혜도 없다만, 벌써부터 그리 쪼아도 괜찮겠느냐?]

천화는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황돈의 충성은 영원하지 않다.

그의 충성은 대가를 바라는 종류의 것이고, 대가를 받을 수 없다 판단되는 순간 배신하는 부류의 인간.

가장 알기 쉽고 부리기 쉬워 좋지만, 부릴 능력이 없다면 가장 곤란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지난날 복마동에서의 일은 거래였지, 은혜가 아니었지 않더냐. 저치에게 마음의 빚 따위는 없을 게야.]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번 ‘부탁’으로 전부 해결했다고 생각할 테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황돈은 저들을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다.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괜찮다. 저놈은 이제 뒤가 없으니.’

[뒤가 없다라?]

‘저놈은 이미 많은 후계자들 앞에서 나와 친하다는 것을 보였지. 오늘도 그렇지만, 애초에 사적으로 나를 찾아왔었다는 정보를 각자 얻었을 거다.’

발 없는 말은 하루에 천 리를 가고, 마교는 천하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비록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다른 후계자들이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즉, 저놈은 너무 성급했다.’

누구의 편인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지금, 박쥐마냥 여기 붙고 저기 붙고 하는 놈을 좋아하는 놈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 물론 있을 수도 있지.

대표적으로 청유백이 그러했다.

박쥐 같은 인간?

눈치 좋고,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아낼 줄 아는 유능한 인재라는 것 아닌가.

청유백은 그 박쥐들을 떠나보내지 않을 자신이 얼마든지 있었으니, 그들은 제게 있어 배신자가 아니라 유능한 일꾼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청유백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은 분명히 있고, 그런 자들은 황돈을 포용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글쎄.

‘황돈이 유능한 일꾼은 아니지.’

이미 저에게 투자하기로 해놓고, 숙소를 내놓는 것에 머뭇거리는 시점에서 탈락이다.

인생을 걸 것이라면 확실하게.

걸 것이라면 목숨을 포함한 전부를 걸어야 할 테다.

하지만 황돈은 그조차 주저했다.

청유백을 아직 그만큼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의 편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신뢰가 온전치 못한 것 자체가 무능의 증거였다.

눈앞의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소리니 말이다.

‘그 무능으로 인해 나를 골랐고, 무능으로 인해 이 이상의 선택의 기회를 잃었다.’

잘못된 선택을 한 장사치의 말로는 실로 비참한 법이지만, 황돈은 실로 운이 좋다.

다른 이에게 붙지 못하니, 박쥐처럼 선택을 종용하여 자신에게 붙었다.

그러한 성급한 선택은 본디, 파멸을 부르기 마련이나─

‘운이 좋지. 정말 운이 좋아.’

어찌 다른 말로 표현할까?

그 성급한 선택을 후회하기는커녕, 황금으로 만든 동아줄을 붙잡았다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될 테니.

[다 온 것 같구나.]

황돈이 청유백을 인도해 간 곳은 만마서고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산을 내려가고 숲을 넘어, 거진 반 시진은 걸어 다다른 곳.

커다란 마당을 중심으로, 적당한 건물 대여섯 개가 있는 장원이었다.

‘오래되지 않은 생활감이군. 버려진 건물은 결코 아니야.’

[그렇다고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닌 듯하구나.]

아무리 황가라고 한들, 천마지회 하나만을 위해 집을 새로 만드는 것은 낭비다.

애초에 그들은 천마지회에 그리 큰 관심이 없기도 하고.

자연히, 이 장소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긴?”

“마교 하부 문파의 장원이오. 그리 큰 세력은 아니지. 적절한 돈을 주고 빌렸소.”

과연.

역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모양이다.

백 년 전의 내전에서 독립하지 못한 하부 문파라면, 육대가의 명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기도 하고.

“그럼 난 이만 가보겠소. 어차피 가르칠 뜻은 없었으니, 이왕 이리된 거 더 가까운 장소를 찾아야겠구려.”

“그래, 더 좋은 거 찾으면 내놓고.”

“큭큭, 농담으로 듣겠소.”

황돈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이내 사라졌다.

황돈은 제 할 일을 하러 갔으니, 이제 청유백도 제 일을 해야 할 시간.

청유백은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귀아대의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다행이군. 지친 놈은 없는 것 같아 보이니 말이야.”

“…….”

자, 어떻게 할까.

여기까지 지치지 않고 쫓아올 수 있는 것을 보면, 다들 기본적인 체력 정도는 준비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 귀아대가 자라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나약한 놈은 이미 죽었을 터.’

귀아대의 대다수는 버려진 아이들이다. 납치도 일부 있지만, 어쨌든 마교의 내부 인원과는 달리 그리 아까운 목숨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의 시작부터 극한의 상황에 몰리고,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무인으로서 마교에 소속되는 것은 일 할에 불과하다.

이 아이들은, 최소한 그 일 할에 드는 정도의 수준은 되는 것이다

다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눈이 죽었구나. 의지가 없어.]

삶의 이유도, 목적도 없는 그저 명령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아이들의 대부분은 그런 상태였다.

‘다른 조는 대부분 눈빛이 살아 있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살아 있다 못해, 의욕이나 집념까지 느껴지는 아이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쯧.’

지금은 열 중 셋 정도인가.

청유백은 혀를 차며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지나간 것을 아쉬워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의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건설적일 것이다.

‘어떻게 주물러 볼까.’

기간은 세 달.

세 달 후에 벌어지는 귀아대의 대리전.

아마도 그 대리전에 후계자들은 관여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오롯이 아이들을 강하게 수련시키는 것이 정공법이겠지만, 그 방법 또한 수 개로 갈린다.

싸운다.

간단하다.

하지만,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맞붙어 싸우고, 승자가 계속 싸워나가는 연승전인가?

아니면, 열 명 전부가 한 번에 붙는 단체전일 수도 있다.

어떤 싸움을 어찌 준비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방법이 있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효율도 판이하게 달랐다.

‘가장 간단한 건, 당연히 개인 각각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겠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부 강하게 만든다.

너무 단순하고 쉬운 방법이다.

차륜전이든 단체전이든, 어쨌든 일신의 무력이 강하면 어떻게든 해결된다.

하지만, 신경이 너무 많이 쏠리는 데다,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었다.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겠지. 하지만 저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못 하겠지.’

의지가 있고, 목적이 있는 놈들이라면 능히 그리 할 수 있다.

강해지고 싶다는 염원이 있다면, 그것을 들어줄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염원조차 없는 꼭두각시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방법을 주입시킬 뿐이었다.

필요한 것은, 그런 놈들을 데리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광마환(狂魔環)?’

청유백은 한순간 뇌리에 스친 가능성을 한 번 떠올리고는, 귀아대의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청유백은 약의 제조법은 모르지만, 독의 제조법은 확실히 안다.

그리고 광마환은, 그러한 독 중에서도 상당이 특이한 물건이었다.

복용자의 목숨을 불태워, 짧은 시간 강력한 힘을 얻는 일종의 기폭제.

기경팔맥과 단전에 잠재된 선천진기를 한순간에 해방하여 단시간에 끌어다 쓰고, 한 시진이 지나면 온몸이 말라 비틀어져 비참하게 죽는 독이다.

반드시 환약의 형태로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암살의 가치는 없었지만, 지금 이 아이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단연 그것.

‘세 달이면 만들 수는 있겠군.’

녹지연의 도움을 조금 받는다면 안 될 것도 없다.

인륜적인 문제가 있기야 하겠다만.

[어찌 그런 생각을 하더냐? 제 인생도 없는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그럴 생각이 들더냐?]

‘…가만히 내버려 둬도 그리될 텐데 뭘.’

애초에 귀아대의 아이들을 무사로 키워 가장 많이 써먹는 방법이 광마환을 복용시켜 전장에 내모는 것이었다.

청유백 본인이 직접 한 적이야 없다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불우한 인생, 천당 일찍 보내주는 셈 치면 될 일 아닌가?’

[무슨 그런…!]

‘됐다, 됐어. 성내지 마라. 애초에 진짜 할 생각도 없었으니.’

광마환은 마교에서도 너무 파멸적이라는 이유로 대대로 사용의 선택이 갈렸던 물건이었다.

청유백은 물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쓰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역시, 위험 부담이 크다. 시험의 주제가 너무 애매모호해.’

싸우는 방식도, 판결의 기준도 없다.

‘이기면 장땡’ 식의 진행이면 또 모르겠다만, 확실치 않는 상황이다.

만약 기준이 ‘향후 마교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따위의 것이라면, 상당히 골 때리는 수가 될 것이다.

향후 마교고 뭐고, 살아 있는 놈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봐요.”

“음?”

누군가의 목소리.

청유백은 고개를 틀어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눈빛이 아직 살아 있는 아이였다.

“어차피 뭘 하든 같을 텐데. 그냥 빨리 시작하죠. 매질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머리를 박을까요?”

…아닌가?

아이는 마냥 포기했다는 투로 시비를 걸었다.

“당신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요. 저희를 가르쳤던 마졸들이 지껄이곤 했죠. 쓰레기 공자 청유백, 맞죠?”

소문이 느린 놈이로군.

청유백은 정정해줄까 싶다가, 일단은 웃으며 긍정했다.

이놈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만?”

“그럼 어차피 끝장이잖아요. 저희는 다 죽을 거예요. 뭘 하든 어차피 고통받다 죽을 거라면, 빨리빨리 하시죠.”

“고통받다 죽는다라….”

원한다면 그리 만들어 줄 수도 있지.

하지만, 썩 달가운 방향은 아니다.

오히려, 이리 개기는 놈이 나오니 조금 더 재밌는 것이 생각났을 따름이다.

“…왜 웃는 거예요?”

“재밌어서.”

청유백은 아이의 팔과 다리 따위의 근육을 매만졌다.

‘나쁘지 않군.’

그래, 가끔 이런 놈이 있다.

어릴 적부터 붙잡혀 오면 서서히 희망을 포기하고, 그저 명에 순순히 따르는 인형 같은 놈들이 되기 마련인데-

가끔씩,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이렇게 적개심을 불태우는 놈이 말이다.

저 죽어버린 눈빛 속에 숨은 복수심을 알아보지 못할 청유백이 아니었다.

“그래. 결정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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