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농담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1)
복마동의 출구.
열두 개의 문이 교차하여 세워진 귀무곡의 끝자락에는 몇 명의 사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번 시험을 감독하는 감독관들.
후계자들이 어떤 문으로 나오는지 확인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동물의 사체를 수거하는 것 따위의 일을 하는 마사급 무인들이었다.
딴에는 비리나 부정행위 따위를 막겠다고 한가락 하는 무인들을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거진 한 달째 경비나 서고 있다면, 당연하게 튀어나오는 불만도 있다.
“아니, 지금쯤 안 나오면 뒤진 거지. 대체 경비를 왜 서는 겨?”
“낸들 아냐. 높으신 분들은 생각이 있으신갑지….”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별 의미도 없는 짓에 나름 고급 인력인 저들을 경비로 세운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놈들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나왔는데 혼자 한 달이나 처박혀 있는 상황이다.
너무나 뻔한 상황 아닌가.
“생각은 무슨. 지들 새끼니까 뒤지지는 않았다는 망상이지.”
애초에 열다섯이나 들어갔는데, 한 명쯤은 뒤질 수도 있지 뭘.
정말 쓸데없는 짓에 인력을 낭비하는 짓이다.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투정했다.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서 시체라도 찾아오라고 하지, 원.”
“큭큭, 살아 있을 수도 있잖나?”
“저기서 한 달 동안? 허 참. 자네도 농이 늘었구만.”
음식이나 식수의 문제가 아니다.
저 귀기로 가득한 끔찍한 동굴 안에서는, 그냥 사흘간 숨만 쉬어도 미쳐서 뛰쳐나올 것이 분명했다.
“복마동이 괜히 복마동인가. 저기는 뭐, 생사람 잡는 귀신굴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후계자들이 저곳의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귀기만으로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간접적으로 느끼는 오한이 이 정도일진대, 저 안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뭐, 혹여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 안 나올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미 열 수 있는 문은 다 열렸는데 말이다.
동료 무사는 웃으며 대꾸했다.
“자존심 때문에 아직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무슨 자존심?”
“이미 열려 있는 문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면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안 나와서 ‘나는 시도는 해봤다!’ 같은 거라도 보여주는 거지.”
“크하하! 그거 말 되는군!”
그래, 꼴에 육대가 자식인데.
아무리 쓰레기라도 그 정도 모습은 보여주고 싶을 테지.
그렇게 사내들이 히히덕거리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즈음, 지하로부터 무언가의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한 번, 두 번 이어진 진동은 이내 지축을 흔들 정도가 되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궁!!
“지, 지진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몇 번이고 울리기 시작한 땅울림은 거진 반 각 정도 지속되었다.
서 있기 힘들 정도의 흔들림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충격.
반 각이 지나고,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발치를 툭툭 찼다.
“…멎은 것 같은데?”
더 이상 무엇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서 옅게 들려오는 마찰음이 진동을 대신했다.
확연한 석문이 열릴 때의 진동.
사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열두 개의 문을 돌아보았다.
“이봐, 저기서 누가 나온다.”
“자, 잠깐, 근데 저거 지금….”
어디를 열고 나오는 겨?
* * *
천마지회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된 지도 어언 한 달.
시간이 흐르면서 녹운각에 머무는 후계자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 갔다.
처음에는 중상을 입고 빠져나왔던 이들도 이제는 완쾌하여 가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가령, 청률이 그러했다.
이제는 일부 상태가 심각한 자들이나 용건이 있는 자들이 녹운각의 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 붉은 범이 수놓아진 장포를 걸친 소녀는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백소하 여기 있다며? 맞지?”
“예? 예, 하지만….”
적영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들어오지 말라는 고리타분한 대꾸 따위를 듣고 싶어서 이 탕약 냄새 짙은 곳까지 발걸음을 억지로 옮긴 것이 아니었다.
“야! 너 어디를 쏘다니길래 찾기가 이렇게─”
적영은 당당하게 문을 열었지만, 그 말을 당당하게 끝맺지는 못했다.
그 안에 있던 선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적영은 숨길 기색도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은 입에 발린 예의조차 차릴 줄 모르는 모양이군요. 적영.”
“…녹지연.”
하필 저년인가.
적영은 녹지연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러했다.
이제 와 얼굴을 마주쳤다고, 굳이 기분 나빠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너무 고리타분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중간에 낀 백소하는 난감한 눈치였지만, 저 둘을 제지할 힘 따위는 그에겐 없었다.
적영은 불쾌한 듯 방을 돌아보았다.
“그렇군, 여기는 네년 방이냐?”
온갖 약재 서랍으로 사방이 가득 차 있고, 중앙에서는 알 수 없는 액체가 계속해서 끓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어떠한 악취가 풍기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저것을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의 방에 말없이 들어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상당히 우스운 일 같은데요?”
“…신경 꺼. 네가 아니라, 백소하 찾으러 왔을 뿐이니까.”
“안타깝지만, 오히려 그는 제게 용무가 있어서요. 그대로 뒤돌아 나가는 건 어떠신지?”
백소하는 인기 있는 남자라고 기뻐해야 하나, 약 3초 정도 고민했다.
음, 그런데 아닌 듯싶다.
그런 것보다는 역시 이 둘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적영, 일단은 나가서 조금만….”
“지금 나더러 꺼지라는 거야?!”
“아니, 그건….”
가끔은 종종 백가의 자식인 게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그 말을 지껄인 놈의 모가지에 칼을 들이밀고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필히 시험해봐야 한다고, 백소하는 곱씹었다.
붓은 칼보다 강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칼은 붓보다 빠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백소하가 무어라 항변하기도 전에, 적영이 일갈했다.
“청유백, 그자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너는 책임감도 없어?”
“그건 확실히 문제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습니까. 나라고 멍하니 있는 게 좋지는 않습니다!”
백소하도, 적영도 채 10일 차가 되기 전에 동굴을 빠져나왔다.
아마, 대부분의 후계자들이 열나흘이 되기 전에 동굴을 나왔을 것이다.
심지어는 황돈조차도 유문을 돌파하고 빠져나왔으니, 확실히 기묘한 면이 있었다.
“역시 그때 진문에 가는 걸 막았어야 했어. 젠장! 묵태곤 녀석만 아니었으면….”
적영은 마치 청유백이 나오지 못한 것이, 그의 행동을 막지 못한 제 잘못이라는 투였다.
그 누구도 책망하지 않았음에도.
녹지연은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뭐?”
“약해빠진 사람이 죽든 말든, 당신과 대체 무슨 상관이죠? 여기 있는 백소하면 모를까, 그와 당신은 일면식도 없는 관계일 텐데요.”
그야말로 그러했다.
과거에 적영과 청유백 간에 무언가 관계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녹지연도, 백소하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약해빠진 사람이 죽든 말든, 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육대가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잖아!”
적영은 울부짖듯이 호소했다.
마교의 약육강식, 강자지존의 사회는 강자에게 권리를 부여하지만, 그만큼의 의무 또한 부과한다.
그 강자는 마교의 비호를 받는 백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그 강자의 꼭대기에 육대가가 있었으니.
그녀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글쎄.
분명 강자가 약자를 지켜주는 것은 옳을 테지만─이 경우는 어째야 할까.
“당신, 오지랖이 지나쳐요. 그 사람이 제 신경 써달라 부탁이라도 하던가요?”
단언컨대 아니다.
녹지연은 그리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성질 더러운 자가 그런 말을?
차라리 혀 깨물고 뒤지면 뒤졌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제발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에 신경 좀 끄세요.”
분명 청유백도 이리 말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걱정만큼 쓸모없는 짓이 또 없다, 였던가.
적영은 이해할 수 없는지, 씹어내듯 내뱉었다.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차갑게 말해?”
“당연히, 저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게 상관없는 일이라면, 대체 뭘 위해 수련하는 건데?”
뭘 위해 수련하느냐고?
녹지연은 그 말에 드물게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제 손을 두어 번.
검게 변색되고 흉터로 가득한 손을, 몇 번이고 쥐기를 반복했다.
“…글쎄요. 수련하는 데에 이유 같은 걸 붙일 수 있다니. 태평한 데에도 정도가 있지.”
부럽네요, 당신.
녹지연의 쏘아붙이듯 덧붙인 말에 적영의 표정 또한 크게 일그러졌다.
“역시 넌 마음에 안 들어. …빌어먹을 년.”
“피차 마찬가지랍니다.”
─쾅!!
적영이 문을 박차고 나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백소하를 찾은 것도 일종의 하소연, 잘 쳐줘야 자문을 구하는 정도였으니.
종래의 목적은 충분하다 못해 짜증날 정도로 달성한 셈이었다.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손짓했다.
“당신도 이만 나가주세요.”
“하지만….”
적영을 상대하느라 제 용건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방의 주인인 녹지연이 나가라면 그녀의 뜻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이번 안건은 그리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녹지연도 알고 있는지, 주저 없이 말을 이었다.
“그… 물어보신, 청유백의 옛 지병이었던가요? 알아보려면 좀 걸릴 거예요. 십 년도 더 전이니, 약방일지가 어디에 있을지도 몰라서요.”
백가의 서고에 있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겠지만, 녹가의 진료기록인 약방일지는 당연히 녹가가 보관한다.
매일매일 환자 치료로 바쁜 이곳에서 십 년 전의 기록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 나름대로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낸 걸 공유하기로 하죠.”
백소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득 발을 멈추고는 뒤돌아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 듣고 생각해 볼게요.”
“저거, 대체 뭡니까?”
백소하가 가리킨 것은 방 중앙에 있는 탁자.
그리고, 그 가운데에 올려져 끓여지고 있는 수수께끼의 액체였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끓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냄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냄새도 풍기지 않는 기묘한 액체였다.
대답하지 않을 줄로 알았건만, 생각 외로 녹지연은 선선히 입을 열었다.
“아, 저건….”
녹지연은 뭔가를 생각하듯 눈알을 굴리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돌렸다.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필시 독일 테다.
하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대답 말고 다른 것을 말하자면.
“…글쎄요. 곧 돌아올 누군가를 위한 선물, 정도로만 말해두죠.”
녹지연은 명확한 대답 대신, 살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는 없다.
백소하는 천천히 문을 열었─
─콰앙!!
“야!!!”
“어억!”
열기도 전에, 문 바깥에서 다시금 튀어나온 물체에 맞고 튕겨나갔다.
“뭐, 뭐야, 백소하? 왜 막고 있어! 아니, 그것보다….”
적영이었다.
숨이 가쁜 것을 보니, 어디에선가 갑작스럽게 다시 뛰어온 모양인데.
그건 알 바 아니다.
방금 그렇게 짜증을 내며 나가놓고 저리 뻔뻔히 돌아온단 말인가.
녹지연은 감정을 감출 기색도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정말이지 작작….”
“처, 청유백이 나왔는데, 그게─”
하지만, 적영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는.
“예?”
“뭐라고?”
찌푸린 정도가 아니라, 이게 사람이 내는 소리야 개가 짖는 소리야 정도를 고민하는 표정으로 적영을 째려보았다.
* * *
청유백이 진문을 돌파했다!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소식이 마교 전체에 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했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뿐더러, 당사자가 그 쓰레기 공자였으니 말이다.
각 가문의 가주들이 긴급하게 회담을 가지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기는 했지만 아직 명확한 정황이 파악된 바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적가의 장녀는 뭔가 잘못된 사실이 전해졌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그 사람이?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역시 거짓일 것이다.
무언가 착오나 수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직접 만나 진실을 확인한다면,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고 다시금 확신할 수 있으리라.
─백가의 차남은 여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생각했다.
“…믿기는 힘들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그라면….”
백소하는 청유백의 실력을 직접 보았기에, 조금의 의심은 들었지만 믿을 수 있었다.
쥐 떼를 따돌릴 때의 결단력과 판단력을 생각하면, 무력이 아니라 지성 또한 모자라지 않을 테다.
확실히, 그는 여전히 감추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녹가의 장녀는 착잡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저 받아들였다.
“그리되었다면… 곤란한데.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녹지연의 입장에서 청유백의 그 소식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손익을 생각지 않고 가정해 보았던 것.
하지만 그 가정이 현실로 나오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청유백을 찾아가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황가의 장남은.
“저, 저기. 도련님께서 아무도─”
“귀이이이인!! 내가, 내가 왔소!!”
그 소식을 듣자마자, 생각보다는 몸이 더 빠르게 움직여 청유백의 방으로 쳐들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