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열 살에 용을 잡은? (4)
황돈이 떠나간 직후, 조금 뜬금없지만, 천화는 청유백에게 물었다.
[팔은 괜찮으냐?]
황돈을 구하기 위해 칼을 던진 순간부터의 통증이었다.
청유백이 느끼는 감각은 천화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므로, 그녀가 모르는 청유백의 상처는 있을 수가 없었다.
청유백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솔직히, 안 괜찮다.’
칼을 내던진 직후부터 손목이 시큰거렸다.
귀기의 고양감 덕에 고통은 이내 사라졌지만, 그것이 몸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공보다는 신체에 의지하는 기교를 부리자마자 몸이 이 꼴이다.
앞으로도 이 모양이어서야, 사람과 진심으로 싸울 일이 찾아오면 심히 곤란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도 둘 있지.’
하나는,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보름. 나는… 여기서 기초적인 근골을 만든다.’
기초적인 근골.
몹시 당연하면서도 간단하기 그지없는 단어다.
하지만 그 말인즉, 청유백은 그 기초적인 몸조차도 가지지 못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지금껏 분근연혼대법을 통해 일반인 수준의 신체 수준으로는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무인의 그것과는 역시 궤를 달리했다.
충격을 받아내도 부서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했다.
‘본디 그 경지가 되려면 몇 달은 지새워야 했을 테지.’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라면─
‘보름이면 가능하다.’
물론 기초를 만든다 해도 여전히 다른 후계자들과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십수 년을 고작 보름 만에 쫓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동굴의 시간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허비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둘은,
‘이곳에서 날 방해할 것은 없다는 것.’
기실 이곳의 영물이 어찌 준비되었는지에 관한 사실 따위, 청유백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뭐면 어떤가? 과정이 어쨌든, 결국은 배제해야 할 장애물일 뿐인데.
중요한 것은 하나다.
그 어떤 걱정도 없이 그저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것뿐이랴?
동굴에 가득한 귀기는 피로와 고통마저 잊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분근연혼대법의 가장 큰 부작용인 그 끔찍한 고통을 무마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으윽!!”
청유백은 그동안 적정 수위를 유지하던 분근연혼대법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기맥을 열어 그동안 자극하던 혈의 강도를 몇 배로 강하게 만들었다.
근육이 옥죄여 오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이 동굴 안에서조차 선명히 느껴지는 수준의 고통.
바깥이었다면 찰나의 한순간조차 버티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청유백의 몸은, 주화입마의 아가리 앞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좋다. 이제 움직여도 좋으니라.]
대법의 조율을 마치자, 천화가 목소리로 스러질 것 같은 청유백의 정신을 지탱해 주었다.
“후우….”
청유백은 삐걱이는 관절을 시험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몹시 무거운 물건을 손가락 끝에 얹어놓은 듯, 손가락을 굽히는 것조차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동굴을 나갈 때 즈음에는 익숙해져 있어야겠지. 어찌하겠느냐? 강도를 낮출까?]
‘아니, 지금이 가장 좋다.’
─까득!
청유백은 어금니를 악물며 팔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경련하듯 떨려오는 근육이 차츰 맥동하며, 다섯 손가락의 끝이 꿈틀거렸다.
근육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하지만 견뎌내야 한다.
사지를 뜯어내는 고통이지만, 실제로 뜯겨나갈 일은 없다.
‘조금 더.’
극한까지 부풀어진 팔뚝의 근육에서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시간을 샌다.
하나.
둘.
셋.
─빠드득!
근육과 뼛조각이 한데 모여 뒤틀린 소리를 연주하는 찰나.
청유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끄윽….”
─와르르!
들고 있던 장작을 벽면에 쏟아내고 난 후, 청유백은 신음과 함께 허리를 쭉 폈다.
기지개를 켜는데도 도리어 허리가 아파오는 기괴한 일이 함께였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해주지 않으면 허리가 쑤시는 것 같았다.
천화는 어느덧 벽면 한구석을 가득 채우게 된 장작들을 돌아보았다.
[오늘로 벌써 열흘이구나. 거참, 많이도 왔어.]
열흘.
길다면 길고…
아니, 어떻게 생각해도 길다.
열흘이 안 길다고 하는 놈은 직접 체험해 보라고 이 동굴에 열흘을 처박아 버릴 것이다.
청유백은 주머니에서 육포 하나를 씹어 질겅거리며 대꾸했다.
‘아직 닷새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지. 전혀 위로가 안 되는군.’
[그래도 굶고 살지는 않잖느냐.]
‘굶기까지 했으면 진즉에 죽었을걸?’
분근연혼으로 근육의 부담이 커지니, 자연히 먹어야 하는 음식의 양도 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식량의 곤란에 처할 일은 없었다.
중앙 공동에는 이곳을 빠져나간 아이들이 방치해둔 보존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은 따로 흐르지 않아 고인 이슬을 핥아 먹는 처량한 신세이기는 했지만, 뭐.
‘굶는 것보다는 낫지.’
청유백은 어느새 하나 남은 소금 절임 육포를 전부 입안에 구겨 넣고는, 다시 중앙 공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난 열흘간─엄밀히 말하면 똑바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의 엿새 동안─ 청유백이 한 일은 단 하나였다.
장작 옮기기.
동굴 이곳저곳에 놓여 있던 보따리에 음식과 함께 들어 있던 그것이었다.
공기는 통하니까, 대놓고 불 피우라고 준 물건이기는 했다만.
중앙 공동에는 야명주도 박혀 있는 데다 불씨 지키는 것이 워낙에 귀찮아 누구도 불을 피우지 않았다.
때문에 장작은 중앙 공동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청유백은 이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분근연혼이 펼쳐지는 중에는 무슨 움직임을 하든 전부 극한의 운동이니, 무게는 상관없기도 하고.’
청유백은 뻐근한 관절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조금은 강인해진 몸을 느꼈다.
확실히, 열흘 전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게 강인해진 육체였다.
상처 나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육체가 급속도로 치유되면서 몸이 담금질되어 갔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기교에도 쉬이 몸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만족할 필요는 없지.’
물론 만족할 수도 있다.
고작 열흘에 쌓아올린 성과라고 보기에는 몹시 큰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이레나 남아 있었다.
말마따나, 아직 만족할 필요는 없으리라.
청유백은 벽에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더미를 돌아보며, 다시금 그것을 한 아름 들어 올렸다.
* * *
“이게 마지막이군.”
[그러게나 말이다. 사람은 역시 하면 되는 법이로구나?]
“내가 유능한 것이다.”
[어유, 아무렴 그러시겠지요~]
예예, 그러고 말굽쇼.
비아냥거리는 천화의 이죽거림을 가볍게 무시하고, 청유백은 마지막 남은 장작더미를 양팔에 끼워 내달렸다.
이미 수십, 수백 번을 달린 어둠은 더 이상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마냥 가볍지만은 않지만, 처음에 비하면 깃털 같은 발놀림.
청유백은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진문의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가파른 내리막의 벽을 따라 그동안 옮긴 장작이 그득히 들어차 있었다.
장작, 장작, 그리고 장작.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장작들의 나열에, 천화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결국 지난 보름간 한 일은 장작 나르기밖에 없구나. 물론 분근연혼대법 덕에 단련은 되었겠으나… 진문의 뱀을 잡을 준비는 언제 할 생각이더냐?]
“준비는 다 끝났다.”
[무슨 준비?]
천화가 지켜본 바로는, 청유백이 지난 보름간 한 일은 매일매일이 같았다.
밥 먹고, 장작 옮기고, 조금 쉬고. 밥 먹고, 장작 옮기고의 무한 반복.
그 결과 공동의 한구석을 채울 만한 양의 장작을 진문의 앞으로 가져왔지만, 저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쉬이 예상되지 않았다.
[아니, 생각나는 것은 몇 가지 있지만….]
너무 멍청한 방법이라,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하며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
장작을 무엇에 쓰겠는가?
당연히 불붙이는 데에 쓰지.
하지만, 정말이지 그건….
머릿속에서 천화의 구시렁거림이 계속해서 들려오자,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걱정 마라. 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닐 테니.”
[그렇지? 지능이 원숭이도 아니고, 고작 그만한 불로 저만한 뱀을 잡겠다는 멍청한 생각은 아닐 게야. 그렇지?]
“…반쯤은 맞을 수도 있고.”
[뭬야?]
아니, 그 무슨─
천화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청유백은 근처에 차곡히 쌓인 장작을 가볍게 발로 찼다.
다음 순간, 한순간 들썩인 장작더미는 내리막을 따라 흔들렸고, 그것이 장작더미 전체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르르르르!!
장작더미는 일제히 기세 좋게 굴러, 진문 너머로 한순간에 쓸려 내려갔다.
청유백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장작더미를 찬 직후 내달렸으니, 마지막 장작이 굴러떨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진문의 공동에 도착했다.
[미, 미, 미…!]
“미?”
[미이쳤느냐!?! 네놈은 원숭이냐! 저만한 뱀에게─]
천화는 무어라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말을 끝마치지는 못했다.
─콰과과과광!!
청유백이 반사적으로 높이 도약하고, 찰나의 순간이 지나기도 전에.
뱀의 꼬리가 청유백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크윽!]
천화는 반사적으로 분근연혼대법을 해제했다.
청유백은 한순간에 사라진 근육의 제약을 벗고 껑충 뛰어올랐다.
“역시 깨어나나?”
[당연히 깨어나지! 그만한 소음이 들렸는데!!]
“뱀은 소리를 못 듣는다.”
[본녀도 안다!! 하지만 뱀도 진동은 안다! 이걸 못 알아챌 리가 있겠느냐!]
“당연히 없지?”
이 멍청한 놈이─!
─콰광!!
천화는 당장에 귓가에 대고 쌍욕이라도 박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해 보였다.
[뭘 그리 당당한 게야?!]
하지만 청유백의 발이 땅에 닿을 찰나가 되면 거짓말같이 뱀의 꼬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한들, 저 거대한 흑사(黑蛇)의 공격은 만만히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욕도 살아 있어야 듣는 법이다.
[봐라! 장작도 저리 흐트러져 뒹굴지 않느냐. 큰불을 만들지도 못하고 꺼질 게야!!]
애초에, 화공(火攻)은 능사가 아니다.
조그마한 동물들이야 불을 두려워하겠지만, 저만한 크기의 뱀에게 고작 이 정도의 불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 거대한 공동의 백분지 일도 매우지 못하는 장작으로는, 꼬리질 한 번에 사라질 불을 만드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큰불을 만든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아무리 구마지체의 몸이라고 해도 숨을 안 쉬고 살 수 있는 몸은 아니다.
저 뱀이 죽기 전에, 청유백이 질식해서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전부랴?
심지어는─
“크윽!!”
[왼쪽에서 오니라! 한 대라도 맞으면 즉사다!!]
─콰과광!!
─저 폭력적인 크기의 뱀을 상대로는, 단 한 대의 유효타만 허용해도 한순간에 삼도천 직행 나룻배는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청유백은, 오히려 예상대로라는 듯 쓰게 웃었다.
“아니, 오히려 이게 바라던 바다.”
[뭐라?]
콰앙!
다시 한번 청유백이 있던 자리를 꼬리가 쓸고 지나갔다.
계속 어찌어찌 피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스아아아아….
[이런, 빌어먹을.]
어둠 속에서 샛노란 안광이 반짝였다.
숙이고 있던 머리를 치켜들어, 그 거대한 눈알이 똑바로 청유백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껄여 봐라. 대체 어찌할 요량이냐?]
‘죽지만 않으면 돼.’
청유백은 백월검을 한 손으로 꼬나쥐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주워 들어 불을 붙였다.
삼매진화.
하지만, 고작 이 정도 불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고나 있으라고.’
─슈왁!
청유백은 불타는 나뭇조각을 공동의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