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열 살에 용을 잡은? (3)
용 사냥. 좋다.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지만, 우선 눈앞의 매 사냥이 먼저였다.
‘어차피 저놈의 일. 내가 나설 일은 없겠지만….’
만약의 상황이 온다면, 칼 한 번 정도는 뽑아야만 할 테다.
애먼 사고에 황돈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만큼 골 때리는 일도 또 없다.
하지만 아직은 그저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청유백은 황돈이 어찌 쇠사슬을 저만큼이나 끊어냈는지, 그것부터 볼 요량이었다.
“자, 어디 보자….”
황돈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제가 먼저 움직였다.
품을 뒤적거리던 황돈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종이에 조심스럽게 싸인 무언가.
몇 번이고 곱게 접혀 감싸진 그것을 펼치자, 이윽고 붉은 핏물이 떨어지는 생고기가 드러났다.
상태가 영 좋지는 않았지만, 아직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았다.
즉, 이 동굴 안의 것이라는 소리.
어디서 난 것인지는 쉽사리 추측할 수 있었다.
[다른 문의 동물들의 고기겠구나. 뼈의 생김새를 보니, 말인가?]
그것을 어디에 쓰나 싶더니, 황돈은 곧 고기를 저 멀리 던져 매의 눈길을 끌었다.
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다가와 고기를 물어뜯는 모양새였다.
‘황돈 저놈….’
영리하다면 영리하다 해야 하나.
[고생할 몸이 없으니, 머리가 나쁠 수도 없는 꼴이로구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지만, 저놈은 고생할 몸이 저 모양이다.
머리가 나쁜 순간 윽 하고 죽을 팔자였다.
잔꾀라면 잔꾀, 지략이라면 지략.
매는 황돈이 문에 가까이 갈수록 그를 쏘아보며 경계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저항은 없었다.
‘저걸 몇 번이고 반복한 건가.’
저렇게 눈길을 끌고, 몰래 다가가 사슬을 부순다.
아마 이제는 단 한 번만 내리쳐도 끊길 정도로 넝마가 된 사슬이었으니, 황돈은 지체 없이 내려치리라.
“흐읍!”
황돈은 품에서 몹시 값져 보이는 단도를 꺼내 들었다.
아니, 단도라기보다는 보도(寶刀).
마치 여인들이 지니는 은장도의 모양새였다.
천화는 그 단도가 퍽 마음에 든 것인지, 혹은 그 자체가 흥미로운 것인지 휘파람을 불렀다.
[호오, 무기가 안 보인다 싶더라니 저런 걸 골랐더냐. 안목이 좋구나.]
‘…하지만 황가의 가전 무공은 단도술이 아닐 텐데?’
황가의 무공은 창술이다.
그것도 얕은 정도가 아니라, 다른 가문의 무공에 꿇리지 않을 정도로 전통이 있다.
‘설마 청률 놈처럼 황가에도 뭔가 이변이 있었나?’
황가가 멀쩡하다면 굳이 가전 무공을 두고 하잘것없는 단도술을 배울 리가 없었다.
‘설마 황가의 가전무공이 맥이 끊겨버린 것은….’
청유백은 한순간에 온갖 끔찍한 가정을 고려했다.
하지만 황돈이 단도를 내려치는 꼴을 목격하고 말았고.
청유백은 제 걱정이 하등 쓸모없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깡! 깡!
“헉, 헉!”
무어라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 자세와 단도술.
검을 쥐는 것부터 휘두르는 자세까지 정말 모든 게 완벽했다.
‘대단하군, 저건…….’
[그래, 정말….]
‘정말이지….’
황돈의 저 움직임은 진실로, 청유백이 지금껏 보아왔던 것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한 것이었다.
천화는 헛숨을 들이켜며 탄복했다.
[정말… 완벽하게 틀려먹었구나.]
‘…음.’
진심으로, 한 손에 꼽을 만큼 등신이었다.
“우와아악!”
─쾅! 쾅!
이제는 타격하는 지점까지 틀려먹어, 애꿎은 석문을 때리기까지.
‘…저리 못 치는 것도 능력이겠군.’
[최소한 휘두르려고 저 칼을 고른 건 아니겠구나.]
‘비싸 보이는 걸 골랐나?’
[음, 그렇다면 본녀는 칭찬할 만하다고 보니라! 훌륭한 안목이다!]
‘무인이 물건 보는 안목 좋아서 어디에 쓰겠냐마는….’
황가의 후계가 병신인 것에 심심한 위로를 해야 할지, 황가가 멀쩡한 것에 안도를 해야 할지.
하기사, 이상할 것은 없다.
후계자들이 저 나이대인 지금의 시기, 황가에게는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의 시기일 테다.
가문의 후계자들을 가문 바깥으로 내보내어, 황가가 영향을 떨치는 지역이나 상단, 주루, 점포 등의 세를 확인하고 소유권을 인계하는 시기.
‘황가의 참가자가 저놈 혼자인 것도 그 이유겠지.’
아무리 백 년이 지났겠지만, 그 시기가 변했을 리는 없다.
황가의 후계자들이 늘 계승하는 것이었고, 전통에 전통을 이은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즉, 그 ‘중요한 시기’에 홀로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은.
‘황가에서도 버림받은 머저리. 저런 놈이 유능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신랄하구나. 실제로 본 것은 아닐진데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최선의 추론이니.’
무어, 쏘아붙인 천화로서도 청유백이 말이 틀리다 말하지는 않았다.
분명 대부분은 사실이리라.
저 멍청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이 그 의견을 사실이라 증명하고 있었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슬 두들기는 소리가 네댓 번쯤 울려 퍼졌다.
꽤 나쁘지만은 않게 보이는 작전이었지만, 황돈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끼르르르….
새대가리라는 멸칭이 있다.
머리가 텅텅 비어 맑은 호수 같은 놈들에게 쓰는 관용어인데.
안타깝게도, 정말 날아다니는 새들은 그 관용어를 쓸 만한 빡대가리들과는 다르게 꽤나 똑똑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황돈 따위가 허구한 날 내려친다 한들 사슬이 부서지진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영물이 괜히 영물이던가?
─끼에에에엑!!
“우, 우아악! 도, 도와주시오!”
매는 곧장 솟구쳐 날아올라 황돈을 향해 하강했다.
황돈은 단도로 무언가 막으려는 시도조차 없이 팔로 머리를 감쌌다.
‘멍청한 놈.’
거리는 멀었다.
대략 열 장은 될 법한 거리.
지금 이 거리를 넘어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허공을 격해 저 거리를 타격할 검기나 탄지공 따위는, 지금의 몸과 마기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콰득.
청유백의 관절이 삐걱이며, 백월검의 손잡이를 역수(逆手)로 꼬나쥐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활시위를 당기듯 젖혀진 팔이 크게 내리그어지며.
검이 매와 청유백 사이의 공간을 한순간에 내달렸다.
─쐐액!
다음 순간에 검은 청유백의 손을 떠났다. 그것은 어느새 매의 목전에 다다라 있었다.
─! ──!!
검이 목에 틀어박힌 매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했다.
하지만 검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매의 목을 뚫어 관통한 검은 그대로 황돈이 내리치던 쇠사슬의 틈을 꿰뚫었다.
[호오.]
쇠가 부딪히는 둔중한 마찰음이 몇 번인가 울리고, 한순간에 문을 감쌌던 쇠사슬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청유백은 덤덤히 다가와 매의 목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황돈은 머리를 감쌌던 팔을 내리며, 시체가 되어 나뒹구는 매와 청유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 대체 무슨….”
* * *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이었다. 혹은,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는 시선일까.
“뭐, 뭘 한 것이오?”
“검을 던졌지. 보면 모르나?”
“아니, 그 무슨….”
던졌다고?
눈알은 제게도 달려 있다.
그따위 사실은 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게 가능한가?’
아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마교의 마사급 무인이라면, 저 정도의 기예는 능히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청유백인데?
‘그 청유백이?’
황돈의 시선에 단번에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것이 대놓고 드러났다.
뭔가 범상치 않다.
무언가 다르다.
그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저 추측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법이었다.
‘기묘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게 정녕 청가의 쓰레기라 불리던 그 사내가 맞단 말인가?
황돈은 다시금 확신했다.
소문과 다른, 사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이 사내에게 있다.
황돈은 생각 끝에 그리 확신했다.
‘어쩌면, 이 동굴에서 이자와 만난 것 자체가 신이 내려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
방금 전의 무위?
그건 그리 뛰어난 게 아니다.
물론 저는 못하지만, 다른 가문들의 날고 기는 후예들이라면 충분히 시도할 법한 기예다.
그들은 충분히 마사급, 혹은 마두급에 다다른 자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의 가치는, 전혀 다른 것에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보석을 모른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
그딴 건 아무 상관도 없다.
구명의 은혜를 갚겠다며 봉사하는 머저리 따위는 상인이라는 명함을 달 자격이 없다.
그저, 이 사내에게 투자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청명휘도, 적철진도 이미 떠나간 배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에서 충만하며, 힘이나 권력, 돈, 그 어떤 것에도 모자람도 없다.
즉 그들에게는 투자의 가치가 없다.
‘남은 유력 후계로는 녹지연 정도가 있었지만….’
그녀는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으니 떠나갔다 봐도 좋으리라.
하지만 청유백은 다르다. 완연히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이것은 기회다. 황가의 떨거지에서, 확실하게 제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
고작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여 가문의 눈길을 좀 사겠다는─
그딴 허접한 계획 따위는 짜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기회!
황돈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며 청유백에게 물었다.
“귀인은 이제 어쩌시겠소? 나와 함께 나갈 테요?”
이제 실질적으로 공동에 남은 문은 없다.
청유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차피 이미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가는 것 하나뿐.
달라지는 것은 그 시기일 뿐이다.
황돈은 그리 확신했다.
남아 있는 문이라면 진문, 용의 문 하나일진대, 그것을 열고 나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뜻밖의 대답을 내뱉었다.
“나는 조금 더 남아 있겠다. 마지막으로 나가도록 하지.”
그 뜻밖의 대답에 황돈은 잠시간 벙찐 표정으로 청유백을 응시했다.
‘이 끔찍한 동굴에 더 남아 있겠다고?’
하지만, 왜….
‘아니, 아니다.’
황돈은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껏 저리도 철저히 실력을 숨겼던 사내다.
또 무언가 계획이 있을 테다.
일개 장사치인 자신이 사족을 붙여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정도는 언질해도 괜찮겠지.’
굳이 붙일 사족은 없지만, 오류에 대한 첨언 정도는 괜찮을 테다.
황돈은 넌지시 운을 띄웠다.
“이 동굴에 남은 사람은 우리가 다요. 즉, 귀인께서 마지막이시란 소리지.”
“…이 동굴에 남은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다른 사람이 필요한 계획인가?’
하지만 안타깝게 됐다.
이 동굴에 이제 사람은 없으니까.
“없소. 내 단언할 수 있소.”
“어째서? 사람은 열다섯인데 문은 열둘. 자연히 세 명은 낙오되어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 그 문제였나.
확실히,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그것을 고려해 볼 것이다.
먼저 나간 이들은 ‘내 뒤에 몇 명 더 있구나’ 정도의 생각에 그치겠지만, 정말 마지막이 되면 제 뒤보다는 제 옆의 사람을 찾는 법이다.
하지만….
“그건… 아, 젠장.”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아니, 투자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내가 발설했다고 누가 알겠나.’
황돈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요. 귀인은 나 말고, 다른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이고. 알겠소?”
“물론이지.”
청유백의 싸늘한 눈웃음.
빌어먹을, 보면 볼수록 쓰레기 공자라는 이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오히려, 미친놈.
딱 세 글자가 어울리는 위인이다.
“사실 이 동굴의 동물은, 전부 황가가 준비한 것은 아니오. 녹가가 길러낸 것이 일부 있지.”
“녹가가?”
“그렇소. 그리고 기른 장본인들은 녹가의 후예들이지. 이 동굴의 구조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그들은 전부 다 아오.”
황돈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아니었으니, 청유백은 곧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시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건가?”
“맞소. 때문에 문도 열두 개만 준비되었을 따름이지. 직접 키운 개가 주인을 물 리는 없지 않소.”
이 사실은 자신과 청유백을 제외하면 어떤 참가자도 모른다.
황돈 자신도 이 1시험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황가의 사람이라 가까스로 정보가 닿은 것이지, 본래였다면 결코 알지 못할 사실이었다.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적절한 보상이 예정되어 있소. 그들은 애당초에 전부 나갔을 테니, 처음부터 동굴에서 시험을 보는 자는 열둘이었다오.”
그러니, 동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소.
황돈은 그리 이야기를 마쳤다.
“…흐음.”
뜻밖의 이야기에 청유백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계획이 망쳐졌다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 텐데, 도리어 히죽인다는 것은 오히려 이 상황이 더 좋다는 뜻일 테다.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어차피 청유백은 이곳에 있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이 섬뜩한 장소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으리라.
황돈은 매 사체를 질질 끌어 석문 밖으로 내던졌다.
“그건 뭣에 쓰게?”
“이만한 매를 이리 깔끔히 죽였으니, 박제하면 이것도 다 돈이오. 굳이 땅바닥에 내버릴 이유가 있겠소?”
청유백은 수긍했는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는 굳이 무어라 더 말하지 않고, 대충 바깥을 향해 턱짓하더니 등을 돌렸다.
황돈은 제 목적을 달성했고, 청유백은 아직 이 동굴에 볼일이 남은 듯 보였으니.
굳이 무어라 더 이야기할 거리도 없는 셈이었다.
근본적인 호기심으로서, 대체 이 동굴에서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문 득 의문이 들기는 했으나─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너무나 허황된 가능성이었기에 금세 황돈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