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열 살에 용을 잡은? (2)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싶은 심정이 표정에 드러나려는 찰나.
그 말을 한 제 딴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알기는 하는지, 황돈은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잠깐, 당연히 공으로 그리해 달라는 것은 아니오. 반드시 상응하는 보상을 하겠소.”
“보상이라 함은?”
그 말에 황돈은 청유백의 눈치를 살폈다.
‘살살 구슬릴 수 있을까?’
그 대답은 한편으로는 보상이라는 것에 솔깃하여 답한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유백은 보상이 탐나 대꾸한 게 아니었다.
‘짖어는 봐라. 수작질 부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야.’
이 새끼가 뭘 믿고 이리 짖나 들어는 보자 싶어 말한 것이지.
‘망할, 사기 치면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의 눈빛이군.’
이내 청유백이 만만한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숨을 깊게 내쉬며 아쉬운 듯 대답했다.
“은원보 하나를 약속하지.”
은원보라 함은 은자 50냥 무게에 달하는 화폐다.
금으로 바꾸면 두 냥 반.
원보 하나면 한 가정이 몇 년은 놀고먹을 돈이 되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유백에게 만족스러운 돈이냐 묻는다면.
‘글쎄….’
청유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리고?”
“그리고라니? 내 알기로, 귀인께서 무시할 만한 금액은 아닌 것으로 아오만….”
황돈도 ‘청유백’에 대해서는 아는지, 귀인이라 꼬박꼬박 존칭하면서도 무시하는 태도였다.
확실히, 대외적으로도 실제로도 청유백은 운용할 수 있는 돈의 양이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 굳이 돈 따위를 구해 어디 쓰겠는가.
“그게 무언가 청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재밌군그래. 만담을 해도 되겠어.”
애초에 천마지회에서 승리하여 소교주 자리만 얻는다면 은이든 금이든 마음 가는 대로 얻을 수 있으리라.
황돈은 청유백의 강압적인 태도를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보기는 했지만, 이내 태세를 가다듬으며 재차 물었다.
“허면 무엇을 원하시오, 금?”
금이라, 그것도 결국 돈 아닌가.
청유백은 지금 당장 확실하게 제게 이득이 되는 물건을 원했다.
“문의 보상을 내게 양도해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돈 따위 필요 없다.
더욱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할 뿐.
황돈은 투실투실한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러지요.”
“뭐라?”
“그리하겠습니다. 문의 보상을 양도하도록 하지요.”
미친놈, 사기를 친다고 광고를 하지.
보상으로 무엇이 나올지도 모르는데도, 마교를 떠받치는 황가(黃家)의 자식이라는 장사치가 이리도 쉽게 수긍한다라.
심지어 천마지회의 보상─아무리 닭의 문이라고 해도─그 보상이 지대할 것임이 분명한데도?
[이리 수상하기도 힘들겠구나.]
‘동의한다.’
그만큼 절박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했다면 애초에 고작 은원보 따위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리라.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구두 약속으로는 안 되지.”
“허면, 무엇을 원하시오?”
청유백은 품속에서 죽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디서 났느냐 하면, 동굴에 들어올 때 던져 주었던 그것.
청유백은 그것의 뒷면을 조각하여, 방금의 내용을 새겨 넣고는 마지막에 작은 여백을 남겼다.
“혈장.”
제 피를 내어 지장을 찍으라고, 청유백은 그리 말했다.
황돈의 미간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굳이 그래야만 하겠소?”
“왜,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을 테고. 무엇이 두려워 그러는가?”
“우리 둘의 이야기로 끝나야지, 남의 귀에 들어간다면 좋을 일이 하등 없소.”
물론 그렇겠지.
자격을 검증하는 시험에서 사적인 거래가 오갔다는 이야기가, 누구에겐들 나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글쎄, 보통 그것을 들킬 걱정부터 하던가?
“약속이 똑바로 이행된다면 이것도 태워 없어지겠지. 장사치가 혓바닥이 길면 짧아지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아나?”
“…….”
어차피 지켜질 약속이라면, 혈장을 찍든 안 찍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찍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음을 제 입으로 증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황돈은 인상을 찌푸리며 제 투실투실한 손가락을 쥐어뜯는 듯하더니, 성난 손길로 죽간을 찍어 눌렀다.
선명한 핏자국, 그리고 그 위로 황돈의 지장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대신, 내가 유문을 돌파하는 것을 도와주시오. 그게 조건이오.”
“조금만 쉬고 출발하지.”
청유백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죽간을 받아들었다.
처음에는 분명 나가기만 하면 입 싹 닫고 딴소리할 생각이었을 터.
하지만 이리 혈장을 찍어가면서까지, 제가 불리한 것을 감안하면서까지도 이리 매달린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소리겠지.’
적영이 말했었다.
‘남이 돌파한 문으로 나가도 상관은 없다’라고.
하지만 보상을 받을 수 없어 뒤의 시험에서 뒤처질 테니, 낙오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 일렀더랬다.
‘즉 시험에서 중요한 건 보상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황돈의 행태는 몹시 기형적이었다.
황돈은 지금도 약해빠졌다.
다른 이들이 다 빠져나간 지금도 혼자 남아 낙오될 정도니,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런데도 더 강해지기 위한 수단을 기꺼이 내놓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뭐, 상관없는 일인가.’
황돈에게 무언가 의도가 있음은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에 굳이 자신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테다.
어차피 청유백이 잃을 것은 없다.
‘이 동굴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에 비하면, 까짓 문을 돌파했다는 명성 정도야.’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황돈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 이런 거래를 제시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천화는 근심 어린 목소리로 언질했다.
[그래도 조심하거라. 아 다르고 어 다른 족속들이다. 처음부터 뒤통수 칠 생각….]
‘쓸데없는 걱정이다.’
물론, 당연히 전부 알고 있다.
제깟 놈이 응큼한 흉계를 꾸민다면, 뭐 청궁우 놈의 옆에 사이좋게 눕는 정도로는 만들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모를 리가 없지.’
그런 청유백에게, 쉬려고 벽에 등을 맞대는 황돈이 고통을 호소해왔다.
“허, 헌데 허리가 이상할 정도로 아픈데, 뭔가 아시는 바 있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정말로.
* * *
하루가 지났다.
정확히는, 황돈의 배꼽시계가 세 번 울린 시간이 지났다.
빌어먹게도 정말로, 그 배꼽시계가 ‘정말로’ 정확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뒤로하고.
청유백과 황돈은 유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청유백은 제 몸의 상태를 점검하며 문득 든 의문을 입에 담았다.
“한데, 나를 힘으로 제압하고 유문을 차지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굳이 입에 담기에는 멍청한 질문이었다.
‘나 뒤통수 칠 생각 없냐?’ 따위의 질문에 ‘내일쯤 칠 예정이야’라고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머저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경고였다. 동시에, 황돈이 무슨 대답을 할지 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황돈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나 따위가? 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알겠소만, 그리 경계하지 마시오. 뒷골목의 시정잡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소.”
“흥미로운 대답이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청유백은 지금 ‘허튼짓하지 마라’라는 표현을 에둘러 말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제 표현이 부족함을 알았는지, 황돈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수준의 격차가 있다는 것은 아오.”
“오호라. 왜지?”
청유백은 한편으로는 흥미로우면서도, 이놈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직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도 열흘 동안이나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인데.’
아무리 이놈이 약해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고 한들 이상하다.
보통은 자신이랑 동급이니 만만하게 보고 업신여기지 않던가?
하지만 황돈은 무슨 근거인지 운 좋게도 단번에 제 주제를 파악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인가 싶더니, 황돈은 청유백의 검, 백월을 가리켰다.
“그 검이오.”
“검?”
“계속 무시하기만 하지 마시오. 나도 엄연한 황가의 자식이오.”
그래, 안다. 이 돼지 놈아.
그래서 어쩌라고?
청유백이 말이나 하라며 황돈을 째려보자, 황돈은 황급히 설명했다.
“큼, 큼. 강호 천하 모든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알고 있고, 그건 검묘 안의 물건들도 예외가 아니오.”
“그리고?”
“하지만 내가 아는 그 검은, 이런 흉측한 기운을 뿜는 검이 아니었는데…. 고작 열흘 만에 그 신검을 이리 원한에 찬 마검으로 벼려온 인간을 내가 무어라 보아야 하겠소?”
[호오.]
‘흐음.’
예상외의 제대로 된 답에 청유백과 천화는 동시에 흥미로운 듯 목청을 울렸다.
뭔가 뒷수작이라도 꾸미려나 싶었더니만, 생각보다도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던가.
‘저 정도로 주제 파악이 잘 되면 뒤통수 칠 일도 없지.’
굳이 그랬다가 피만 볼 것을 알 테니 말이다.
기실, 청유백에게 이 검에 담긴 마기는 아직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최소한 연 단위의 시간을 소모하거나, 마기를 품은 또 다른 신물을 사용하여 다시금 벼려내는 정도를 거쳐야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리라.
‘하지만 뭐, 지금 당장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금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청유백과 황돈은 머지않아 유문이 있는 공동에 다다랐다.
‘비어 있다?’
유문은 특이했다.
지금껏 다른 문들은 공동 앞에 서자마자, 혹은 공동에 다다르기도 전에 수호자가 보였다.
문을 지키는 동물이 말이다.
하지만 유문에는 문을 지키는 동물이 보이지 않았다.
숨어 있는가 싶어 시선을 옮기던 찰나, 황돈이 떨리는 손끝을 들어 유문의 상부를 가리켰다.
“자, 저것이오. 저것이 유문을 지키는 수호계(鷄 : 닭)….”
유문의 위.
동굴의 벽과 걸쳐 있는 석문의 상부에 지어진 거대한 둥지가 보였다.
‘저것인가!’
과연, 그 안에는 확실히 평범한 닭과는 다른 무언가가 날개를 접은 채 청유백과 황돈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눈 속의 먹과 같은 백과 흑의 깃털과, 강철이라도 쪼아 없앨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부리.
황돈은 저것의 정체를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것은….
“아니 수호응(鷹 : 매)이라고 해야 하나?”
…송골매였다.
아니, 저걸 닭으로 치나?
“어딜 봐도 닭이 아니지 않나?”
“원숭이 문에도 사람이 있었잖소.”
“그건… 그렇다만.”
그리 말하면 또 틀린 말은 아니다.
어이없는 것은 분명 자신일진대, 황돈은 저가 되려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닭 영물이면 뭔지 아오? 봉황이오, 봉황. 그런 걸 어디서 구하오? 귀인이라도 농이 심하시오.”
“…….”
[맞긴 하지.]
천화까지 거드는 한편, 청유백은 정말로 굳이 저걸 닭이라 불러야 했나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닭이든 봉황이든, 뭐 매든 뭐든 간에 결과적으로 죽일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런 청유백의 눈에, 기묘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이상한 것이 있었다.
문 위에 둥지를 튼 저 매는 저만큼이나 멀쩡한데, 이상하게도 문을 칭칭 감은 쇠사슬은 넝마가 되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거진, 한 번만 내려치면 끊어져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청유백은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어떻게 된 거지?”
“저 닭은 둥지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소. 저리 노려만 볼 뿐이오.”
“노려만 본다고?”
황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의 성향에 대해 청유백이 아는 것은 없었으나, 지금의 저 매의 움직임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공격을 하더라도, 문 바깥까지 쫓아오지도 않소. 아마도, 제 알을 지키기 위함인 것 같소.”
“그럼 저 쇠사슬은 그 틈을 타서 끊었다는 건가?”
“맞소. 네 번 정도 시도한 것 같구려.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확실히 쇠사슬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가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보상은? 저 닭을 잡지 않으면, 보상은 어떻게 되지?”
설마 정말 나가기만 하고, 자신과 약속한 것은 입 싹 닦을 생각인가?
보상을 못 받았으니 다른 것도 없다, 라면서?
그렇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청유백이 검병을 꼬나쥐는 찰나, 황돈이 대답했다.
“문제없소. 애초에 다들 착각하는데, 왜 저 동물을 잡을 생각을 하는 거요?”
“뭐라?”
“젠장, 그 동물들을 사는 데에 얼마를 썼는데 그걸… 쯧.”
천마지회의 준비에는 육대가가 관여하고, 자연히 경비에 관련된 부문은 황가의 전담이다.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면, 황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곳의 영물들을 황가가 사들여 준비했단 건가?”
청유백의 질문에 황돈은 당황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젠장. 말하면 안 되는데…. 아무튼,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받은 것은 죽간 하나이고, 그것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저것을 잡아 죽이라 명령하지 않았소.”
“허….”
“방해된다면 죽이는 게 가장 빠르지. 맞는 말이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오.”
청유백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저걸 안 잡아도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건가?’
가능성은 있다.
확실히, 죽간에 쓰여 있던 조건은 ‘문을 열고 나와라’지, ‘문을 지키는 동물을 죽여라’가 아니니까.
그저 지키는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문을 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다.
허나, 동물을 죽이지 않고 문을 열기만 해도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용 사냥, 안 될 것도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