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천하의 명검이면 뭐 하나 (2)
세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향한 곳은 신문(申門)─원숭이 문의 안쪽.
이쪽에도 갈림길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때마다 아래쪽으로 가는 길에 표식이 새겨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장 깊은 곳에 다다랐다.
[그렇구나. 이런 구조더냐?]
천화는 호승심에 젖은 탄성을 내질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대한 문.
출발한 공동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이 생긴 석문이었다.
하지만 크기는 그 세 배는 되어 보였다.
그 전체에 수많은 쇠사슬이 둘러져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저것이 이번 시험의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긴 문을 열고, 라 하였지.’
저 문을 여는 것이 바로 천마지회의 첫 번째 시험.
그리고 저 문을 열기 위해 뚫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저 공동 중심에 있는 존재이리라.
[저건 무엇이냐? 원숭이?]
신문, 원숭이의 문이라고 하였으니 원숭이가 있는 것이 타당하기는 하다.
하지만 저것은 옷을 빼입은 모양새나, 가지런히 앉아 있는 태도를 보아하니 도저히 동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청유백의 의문에 대답하듯 적영은 공동 한가운데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인영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야. 우리는 신문호(申門護)라고 불러.”
백소하는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원숭이라면서요?”
“아무래도 원숭이 영물은 구하기 좀 힘들었던 모양이더라고. 영물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미묘하게 납득이 가는 말이다.
“어쨌든 문을 지킬 수 있는 장애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상관없단 것이었겠지. 해서, 저 자에게 정보를 얻어냈다는 건가?”
“저래 봬도, 아니, 이렇게 말하면 실례인가? 아무튼 말이 통하는 사람이야. 질문하면 대답해 줘. 과격해서 그렇지.”
과격하다?
자연스러운 의문이 청유백의 뇌리에 스쳐갔지만, 그 의문을 입에 담을 시간은 없었다.
입술을 떼기도 전에 적영이 불쑥 달려들어 청유백의 양 뺨을 잡았다.
“그런데 당신, 청가의 청유백…이 맞지?”
“구로토.(그렇다)”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하는 청유백.
적영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청유백을 살피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뜸 청유백의 팔뚝이나 종아리를 만지작거려가며.
“흐음, 흐음흐음….”
흥미인지, 고민인지 모를 신음은 몇 번인가 계속되었지만, 이내 흥미가 동했는지 적영은 두 손을 들며 물러났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일까?
적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언질했다.
“분위기를 타서 덤벼들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거야.”
“어째서지?”
“저 사람 상당히 강하거든. 당신 정도로 들을 수 있는 건… 오늘 아침에 먹었던 것 정도?”
흐음.
청유백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자신은 그 정도의 평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청유백은 제 뒤에 서 있는 백소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놈은?”
“놈이라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도 이름이 있는데.”
백소하의 투정을 가볍게 무시한 적영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가볍게 대답했다.
“…어제 저녁에 먹은 거?”
“나보다 평가가 후한데.”
뒤에서 들려오는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겁니까?’ 따위의 발언을 상큼하게 무시하며, 적영은 나름의 이유를 들어 대답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어. 청가의 ‘쓰레기 공자’. 소문과는 달리 나쁘진 않지만… 글쎄, 청가의 후계는 보통 그 수준은 아니지 않나?”
“청률과 청명휘 말인가?”
적영은 글쎄?라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확답은 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어찌 보면 얄미웠지만, 청유백은 화내지는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몸은 분근연혼대법으로 보름 만에 어거지로 끌어 올린 몸이고, 내공도 단기간 내에 온갖 편법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이미 십수 년간의 수행을 쌓아 온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잡는 게 그리 먼 미래는 아니겠지만.’
뭐, 지금으로서는.
더욱이, 전투 중이 아닌 ‘지금의 상태’로서는 저 평가가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청유백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큭큭, 그래, 노파심에 마지막으로 묻는데, 그럼 너는 어떤가?”
“너희가 들은 정보를 누가 알아냈겠어.”
바로 나!
…그렇게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그런 환청이 들릴 것만 같은 자세를 잡으며 적영은 한껏 뻗대었다.
“뭐, 노력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글쎄, 쥐 따위에게 쩔쩔매는 사람 둘이 뭉쳐서야… 미래라고는 뻔하지 않나?”
뻔하지. 뻔한 일이지.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판단하는 것은 천치들이나 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도 많다.
적영은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약자는 약자 나름의 생존 방식이 있는 거야. 그냥 그렇게 살면 돼. 발버둥 치지 말고.”
적영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더니, ‘나는 갈게? 열심히 해 봐!’ 따위의 말을 남기며 떠나갔다.
적영이 어둠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백소하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청유백의 표정을 살폈다.
“화내지 않는 겁니까?”
“내가 왜?”
“당신 성정이라면 그녀를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것 같았는데요. 제가 잘못 알았습니까? 청궁우를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는데.”
“왜 애먼 사람을 살귀로 만들어.”
[애멀진 않지. 네놈이 무어 그리 당당할 게 있다고 그러느냐?]
청유백은 능청스레 대꾸했다.
‘그놈은 그럴 만한 놈이었고.’
저 적영이라는 아이가 한 것이라고는, 말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걱정이다.
누구는 모욕으로 듣는 언행일지도 모르지만, 글쎄.
청유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린아이의 무지를 책망할 수는 없지 않나.”
“어린아이요? 허, 도대체가….”
기가 차다.
백소하는 그런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상 경솔하게 나오지 않는 것은, 저것은 진심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심 때문이었다.
지난번 보였던 그의 무위.
섬뜩하게까지 느껴지는 마기는 결코 우연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묘하다.
‘그때는 그만큼 강렬한 기운을 느꼈는데, 어째서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은연중에 풍겨내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내공을 끌어내지 않고 얌전히 갈무리하고 있다고 해도, 그 편린 정도는 평상시에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고수들은 그것을 통해 서로를 가늠하고,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유백에게는 그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정말, 단 티끌만큼도.
“너, 아니, 당신. 정체가 뭡니까? 나는 네 그 흉악한 기운을 직접 보았습니다. 도저히 ‘청가의 쓰레기’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힘은 아니었죠.”
처음이나 지금이나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천하의 백가가 자랑하는 정보력이 이만치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던가.
저런 인간에게 ‘쓰레기’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는 간 큰 놈이 누군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허나.
“…하지만 지금은 또 다릅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마치 귀신처럼. 처음에도 그랬구요. 대체 무슨 수를 쓰는 겁니까?”
자신은 모를 수 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백소하는 자신의 무공이 그리 고강하다 생각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저 자신이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기에 그쳤다.
저자가 실력을 감추지만, 자신이 미숙하여 알아채지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사실일 테니까.’
하지만, 적영의 반응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야만 했다.
‘적영도 나와 같은 반응이라고? 그 적가의 여자가, 저자의 실력을 알아차리지 못했단 건가?’
적가는 육대가 중 마교의 대외 개입, 전쟁에 대한 배분을 맡는다.
청가가 마교 내부의 관리와 교육이라면, 적가는 마교 외부의 개입과 전쟁.
즉, 무공과 그에 관한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문이 바로 적가다.
적영은 그 적가의 후계 중에서도 천마지회에 참가할 정도의 유력한 후기지수.
항상 정의와 포용을 외치는 그녀가 일부러 남을 헐뜯는 표현을 할 리가 없으니, 그녀는 진실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이리라.
정말로, 청유백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반박귀진의 경지가 아니라면 그런 것은 불가능할 텐데요.”
반박귀진(返璞歸眞).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고수임에도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백소하가 그것을 예로 든 것은 청유백이 그 경지라고 추측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리어 반대다.
‘반박귀진도 아닐진대 적영을 속여 넘겼다.’
그렇다면, 대관절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단 말인가?
‘백가의 정보망을 속일 정도의 수작이다. 알아낼 수 있다면….’
백소하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계획을 생각했다.
청유백은 그 꼴이 우습다는 듯 대꾸했다.
“왜 네가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라 생각하지는 않지?”
“오만하군요. 자신은 이미 그 경지다, 그 말입니까? 하, 생쥐 떼에게서 도망가는 사람이요?”
반박귀진의 경지는 어떤 천재라고 해도 십대의 나이에 이룩할 수는 없다.
무공의 고강함이나 육체의 강건함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정신과 내공에 관한 깨달음.
더 나아가 육체와 정신에 대한 통제를 온전히 감당해 내어야만 내디딜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을 쌓기 위해서는 실로 오랜 세월이 필요하고, 이것은 재능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강대한 무력이 몸이 쌓여가기 마련.
청유백의 주장은 그야말로 얼토당토 없는 것이었다.
‘헌데도 저토록 당당하다니, 저게 연기라면 녹가 사람들이 저자에게 배워야 하겠군.’
하지만 그럼에도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백소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하고는 등을 돌렸다.
“뭐, 됐습니다. 대답하기 싫다면 관두도록 하지요.”
입을 안 여는 상대의 의견을 억지로 듣는 기술 따위, 자신에게는 없다. 그저 지금은 한 가지 정보면 되었다.
청유백은 강하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상당히.
자신에게 보인 것이 전부가 아닐 테니, 어쩌면 방금 보인 태도처럼 적영조차 만만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청유백은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백소하에게 물었다.
“너는 그냥 가는 건가?”
알고 싶은 게 없는 건가.
백가의 사람으로서, 충족하지 못한 지식에 대한 호기심은 없느냐.
그런 질문이었다.
백소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난 영약에는 관심 없습니다. 쥐 정도 잡고 나가면 그걸로 되겠죠. 가서 다시 진법을 준비할 겁니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말이죠.”
백소하는 제 철필을 꺼내들며 덧붙였다.
“행운을 빌죠.”
“마찬가지다.”
청유백은 검을 들어 올려 주먹을 부딪치는 시늉을 하며, 신문의 문지기를 향해 돌아섰다.
* * *
[진실을 말해 줘도 진실로서 듣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니라.]
‘보통과 상식의 경계 내에서 생각해야 하니까.’
백소하의 추측은 상당 부분 적중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믿지 못했기에 진실에 다다르지 못했다.
반박귀진의 경지.
청유백과 천화는 이미 오래 전에 그 경지에 오른 달인들이었다.
지난번 청궁우의 재판 때, 그리고 결투의 때─어떠한 의심도 사지 않았던 것 또한 그 경지의 덕이었다.
반박귀진은 어떠한 무학도, 체술도 아니다.
그저 한 종류의 깨달음.
신체나 정신의 능력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그저 깨달음이었기에,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몸으로 반박귀진의 요령은 펼칠 수 있었다.
반박귀진의 경지에 오른 자를 간파하려면 몹시 드문 경우의 이변이나, 같은 반박귀진의 고수가 필요하다.
간혹 천마 중에서도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자도 존재하니, 그 경지의 희소성이란 몹시 컸다.
누구도 청유백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일인 이유였다.
청유백은 멀어져가는 백소하의 발소리를 들으며, 신문의 문지기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신문호?”
신문(申門)의 수호자(護)이기에 신문호.
그야말로 적당하기 그지없는 이름이지만, 그 실력은 적당하지 않다.
반박귀진의 경지─실력을 누구도 간파할 수 없게 만드는 경지라는 것은, 반대로 상대방의 실력은 완벽하게 간파할 수 있다는 것.
청유백의 시야로 보았을 때, 그는 결코 만만한 자는 아니었다.
“질문이 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물러날 정도도 아니다.
“…….”
청유백의 말이 끝나자, 신문호는 느릿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허리춤에 패용된 박도가 야명주의 빛을 반사하여 예리하게 빛났다.
“질문, 은?”
무겁고도 지긋한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한 음절 한 음절에 힘이 실려, 대놓고 상대를 압박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해져 왔다.
하지만 청유백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청유백은 태연히 대꾸했다.
“여기서 가장 귀기가 짙은 곳이 어디냐?”
“귀기가, 짙은 곳?”
“그래. 이 동굴 내에서 가장 지독하고 음습한 곳 말이다.”
“궁금해한다? 왜? 그것, 필요, 없는 것.”
신문호는 산발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미친 듯이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야말로 기인(奇人).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응수했다.
“질문인가? 내 질문에 대답하면 나도 알려 주지.”
“큭큭, 크하학!”
청유백의 대답이 퍽 우스웠던 것일까, 신문호는 가열차게 웃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허리춤의 박도를 뽑아들며 청유백을 향해 내세웠다.
“일곱 합, 버텨라. 답한다. 질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