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귀무곡의 검묘 (5)
─끼에에에에엑!!
수십의 쥐 떼가 청유백과 백소하의 뒤를 바짝 쫓아 따라왔다.
[왜, 고작 쥐 아니냐면서?]
‘저만큼은 좀 그렇지!’
대부분의 상황에서, 숫자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둠 속을 내달리는 백소하와 청유백의 등을 향해 쥐 떼가 달려들었다.
고작 쥐 따위가 무어 무섭겠느냐 싶지만, 그 하나하나의 크기가 장정의 장딴지만 한 쥐가 수십 마리다.
게다가 공격성마저 갖추었으니, 거진 수십의 맹견에게 공격받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쥐 떼의 이빨이 옷을 뚫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크윽!”
크고 작은 열상이 등을 난자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고통 속에서, 천화가 느지막이 물었다.
[분근연혼대법을 해제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아니, 그대로 둬.’
[어째서더냐? 호신강기를 펼치면 고작 쥐새끼의 이빨 정도는 능히 막을 수 있을 터니라.]
‘마기가 모자라다. 어차피 머지않아 끊겨버릴 거야.’
청유백의 내공은 소환단의 선기 삼십 년과, 환마단을 포함한 마기 사십 년.
이제 절대량으로 따지면 결코 적다 말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지만, 그 성질이 상이한 탓에 많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 성질이 몸 안에서 반발하는 탓에, 쓸 수 있는 내공의 양은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반발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비술이 바로 분근연혼.
몸을 일부러 망침으로써 굳건하게 만드는 비술이니, 지금의 청유백이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분근연혼을 해제하여 그것에 사용하는 마기까지 호신강기로 돌린다면 당장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이대로 도망친다 하여 마땅한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닐 텐데? 몸이라도 온존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게야.]
‘방법을 찾아야지.’
어차피 고통은 익숙하고, 이리 다친 채 달려도 체력은 모자라지 않다.
이 동굴 안에 가득한 귀기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에 전능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분’일 뿐, 결코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결국 근육에는 한계가 찾아오고, 전부 소모된 내공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끼에에엑!!
지금 이 순간에도 쥐들은 계속해서 뒤를 쫓으며 덤벼왔다.
물론 계속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달릴 수 있는 만큼은 달리며, 죽일 수 있는 만큼은 죽였다.
백소하는 철필을 휘둘러 쥐의 머리를 뚫어 버리곤 했고, 청유백은 모포로 둘러싼 검으로 날아오는 쥐들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몇 번을 그리 해도 쫓아오는 쥐 떼의 수는 전혀 줄지 않았다.
‘역시, 고작 몇 마리 정도로는 눈에 차지도 않는가!’
수가 너무 많다.
궁극적인 이유는 그것이다.
하지만 줄어드는 속도가 느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백소하는 청유백의 검을 곁눈질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왜 검도 뽑지 않고, 그리 둘러 싸매고만 있는 겁니까? 검은 장식이 아닙니다!”
“글쎄, 반쯤은 장식일걸?”
“그건 또 무슨….”
백소하의 입장에서 청유백의 말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검이 장식이라니?
하지만 백소하에게 그것을 추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쥐가 다시금 덤벼들었다.
백소하는 덤벼드는 쥐의 머리를 후벼 파며, 힘들게 숨을 토했다.
“큭, 곧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 말인즉?”
“젠장, 선택해야만 한단 말입니다! 하나는 상층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이곳보다 더욱 아래로 가는 길입니다. 어쩔 겁니까?”
청유백이 왜 그런 걸 묻냐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왜, 내 고르는 반대로 가게?”
“쥐들이 전부 네놈을 쫓아가면 나는 살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겠지만, 아뇨.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요.”
현실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쥐들의 저 지능을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더 지치고 사냥하기 쉬운 자신을 향해 오리라.
‘도망치게 두어서는 안 돼. 같이 움직여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청유백의 실력이 어쨌든 간에 함께 있는 것이 이득이었다.
혹여, 청유백이 눈치를 채고 도망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백소하는 경련하는 표정을 조절하려 애쓰며, 떨리는 말을 이었다.
“둘이 같이 가야 한다는 소립니다. 어차피 떨어져 봤자 각자 추격당해 죽을 뿐이겠죠.”
떨리는 말끝.
청유백은 백소하를 돌아보며 무슨 뜻인지 모를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렇군.”
하지만 의외로 청유백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백소하의 의견에 긍정했다.
‘먹힌 건가?’
백소하는 청유백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저를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할 것 같은 눈치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역시 그저 청가 놈인 모양이군.’
행동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면이 많은 것 같더니만, 결국 무식한 청가의 본성 어디로 가지 않는 것인가.
백소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조금이나마 가볍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한편, 천화는.
[어쩜, 저 아이… 제 생각이 전부 표정에 드러난다는 것을 알까?]
그것이 귀엽다는 듯 웃음 지었다.
대놓고 속이려 들다가 안심하여 표정이 가라앉는 꼴이란!
‘모르겠지. 뭐, 어울려 주자고.’
청유백은 그런 것은 관심 밖의 일이었지만, 죽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아니었다.
어차피 저놈에게는 이미 지워둔 빚이 있다.
저승까지 쫓아가서 떼먹힌 빚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의 덤쯤 얹어준다 생각해도 좋으리라.
“굴이 어디로 향하는지 안다는 건 가 봤다는 소리겠지. 하층으로 가는 길은 쥐 굴로 통하나?”
“…….”
백소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제 기억을 되짚는 반증이었다.
백소하는 몇 초간을 그리 찡그리고 있더니, 이내 눈을 뜨고는 대답했다.
“…그 안쪽에도 갈림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쥐 굴로, 하나는 가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하지만, 하층으로 향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 그리로 가지.”
“하지만 저놈들은 계속 쫓아올 겁니다. 앞에서 다른 적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끝장이다.
백소하가 굳이 말을 끝맺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았다.
당장에 저 쫓아오는 쥐 떼도 어쩌지 못하는데, 저 아래에서 무엇이 나올 줄 안단 말인가.
청유백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대충 이쯤이던가?”
“뭐가 말입니까?”
“그것 좀 빌리지.”
“또 무슨 말을─”
백소하는 대답과 동시에,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철필이 청유백의 손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손재간.
백소하가 놀라는 것도 잠시, 청유백이 마기를 끌어올렸다.
끌어올려진 마기는 철필을 휘감았고, 이내 검은 묵빛의 검기로 화하여 철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목격한 백소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무, 무슨…!!”
자신이 방금 느꼈던 그 살기.
그것의 응축이 청유백의 손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백가의 정보에 이런 말은 없었는데!’
고작해야 청궁우를 꺾을 정도의 실력, 기껏해야 마졸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대체 저것의 어디에 청가의 쓰레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저 마기의 양은 그다지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그 탁함의 정도.
그 끔찍하게 뒤틀리고 응축된 악의는─그야말로 마(魔)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청유백은 경악을 찢어발기며 철필을 바닥에 꽂아 박았다.
─쿠웅!
“그래, 여기였지.”
충격으로 인해 뒤쫓던 쥐 떼들이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득!!
청유백은 바닥에 꽂힌 철필에 다시금 마기를 한껏 불어넣으며, 진각을 밟아 바닥에 박힌 철필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저항은 없었다.
철필은 마치 두부를 가르기라도 하듯 부드럽게 바위를 뚫고 들어갔다.
백소하는 그제야 청유백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알아챘다.
“무, 무슨 생각입니까?! 다 죽습니다! 잘못하면 동굴 전체가 무너질 거라고요!!”
벽이나 바닥을 무너뜨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했다가는 천장이고 벽이고 할 것 없이 무너져 내려, 손 쓸 새도 없이 압사당할 테니까.
하지만,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말은 곧─ 잘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지 않던가?
“걱정도 태산이군.”
정련하지 않은 백월검에는 마기를 담을 수 없으니 잘못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마기를 담아 내지를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하!!”
─콰과과과광!!
적절하게 바닥을 무너뜨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청유백이 무너지는 바닥에서 철필을 뽑아듦과 동시에, 쥐 떼 아래의 바닥이 무너져 아래쪽의 굴로 굴러 떨어졌다.
백소하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너진 바닥의 돌무더기와, 거진 일 장은 되어 보이는 구덩이 너머에서 저들을 응시하는 나머지 쥐 떼들을.
“무슨 농담 같지도 않은….”
“시간을 번 것뿐이다. 다시 기어 올라올 거야.”
청유백은 철필을 백소하에게 던지듯 건네며 다시 발을 놀렸다.
구덩이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고, 무너진 잔해도 그대로다.
떨어져 죽지 않은 쥐들이 곧장 잔해를 타고 올라오리라.
그리고 머지않아 그 예상은 현실로 찾아왔다.
─끼에에엑!!
채 수십 초가 지나지 않아서 쥐들이 다시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벗어나야만 했다.
가파른 내리막 비탈길을 거진 달려 내려가고, 쿵쿵대는 발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려댔다.
그리고 찰나, 청유백과 백소하는, 어둠 너머의 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다.
“말도 안 됩니다! 무슨…!”
“막혀 있다고?”
그것은 벽이었다.
하지만 동굴의 투박한 석벽이 아닌, 매끄럽게 가공된 누가 보아도 인위적인 석문(石門)이다.
[어쩔 테냐?]
‘부수는 수밖에!’
청유백은 마기를 끌어올려 주먹에 담았다.
분근연혼대법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방금의 한 방까지.
이제 더 이상 끌어올릴 것도 없어 전신에서 마기를 짜내야만 했지만, 한 번 정도는 더 뻗을 수 있다.
청유백과 백소하가 석문에 다다라, 청유백이 그 주먹을 내지르려고 할 때.
─철커덕, 쿠웅!
석문 너머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울려왔다.
백소하는 희망 어린 눈빛으로 문을 올려다보았고, 청유백은 뻗으려는 주먹을 잠시 멈추었다.
잠시라 할 것도 없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석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밀어졌다.
“빨리 들어와, 어서!!”
들려온 것은 여인의 목소리.
밀려나온 틈 사이로 연녹색의 불빛이 새어나왔고, 청유백과 백소하는 석문의 틈 사이로 몸을 던졌다.
쥐 떼가 그들에게 다시금 도달하기 전에 석문은 다시 움직였다.
─쿵! ─쿵쿵쿵쿵쿵!!
석문이 굳게 닫히고, 뒤이어 석문에 달려드는 쥐 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가 되어서야 석문의 진동과 소음이 멎어들었고, 청유백은 석문에 귀를 가져다 대어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멀어지는군. 물러났어.”
하기사, 고작 쥐 떼여서야 수백 마리가 있어도 돌을 부술 수는 없을 테다. 곰 따위라도 오면 또 모를까.
“후우….”
숨을 고르는 청유백과 백소하에게, 적색 옷을 입은 여인이 다가왔다.
방금 문을 열어 준 여인이었다.
“후, 동굴이 시끌벅적하게 울리던걸. 무슨 난리를 치고 다니는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