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귀무곡의 검묘 (4)
─아아아아악!
비명을 쫓는 발소리가 울려 퍼진 지 어언 일각.
청유백은 점차 선명해져 가는 비명을 쫓으며 동굴 안을 내달렸다.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비명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아아아악!
[바로 근처니라!]
이제는 지근거리.
그다지 멀지 않은 어둠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열 장 이내─저 어둠 너머에 이 비명소리의 주인이 있으리라.
청유백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는, 몸을 숙이고 어둠 속을 걸었다.
방심하고 몸을 내던지다 초살당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러다, 문득.
‘잠깐.’
[?]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천화는 한순간 의문을 표했지만, 즉시 주변을 살피고는 질문 대신 옅은 탄성을 내지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둠이 짙어졌다. 아니, 시야가 어두워진 건가?’
아니, 아니다.
어둠에 변화는 없었다.
달라진 것은 분위기.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계속 들려오던 비명이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마치 시야에 안개가 낀 듯이, 뿌연 연무가 시선을 가리고 안 그래도 짙은 어둠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청유백과 천화는 동시에 뇌까렸다.
[진법이구나.]
‘…백가 놈들의 장기지.’
진법.
먼 옛날, 촉의 승상이 축공했다는 석진(石陳)으로부터 말미암아─사람의 감각을 뒤틀고, 일정한 공간 안에 가두어 행동을 제약하는 기술로 전해졌다.
그리고 옛날의 석진을 계승하고, 또 갈고닦아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만든 것이 바로 현재의 진법.
준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진법이 펼쳐진 장소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 환상을 보고 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강적, 혹은 군대를 상대하기에 그만인 비술이 바로 진법이었다.
제대로 발휘된 진법은 마군 급의 고수조차도 헤매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언제부터였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정확하게 다섯 보째야.]
‘그렇다면 이미 늦었군.’
진법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닌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감각을 흐트려 길을 잃게 만드는 경우라면 대부분이 그렇다.
이제 와서 똑바로 뒷걸음질을 친다고 해서 나갈 수는 없으리라.
‘파훼할 수 있겠나?’
[글쎄….]
진법은 그 방식이 무궁무진하다.
짙은 안개 속을 한없이 헤매는 미로 속을 걷는 환상을 보게도 만들 수 있고,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칼바람에 몸을 난도질당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처할 때까지, 자신이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진법의 무서움이었다.
천화는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는 대꾸했다.
[네놈이 간파했으니, 네놈이 할 수 있지 않더냐?]
‘그쪽은 내 분야가 아니라서.’
아무리 일흔여섯의 삶을 살았다고 한들, 모든 분야에서 만능은 아니다.
항상 도외시했던 것쯤은, 그에게라도 있기 마련이다.
청유백은 대꾸했다.
‘여러 우물을 파는 것보다는 하나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효율이 좋지. 그렇지 않나?’
[퍽이나. 말은 잘하는군.]
청유백의 싱거운 대꾸에 천화는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일흔여섯 번씩이나 살았다면서? 그 경험은 엿장수와 쎄쎄쎄하며 판돈으로 뜯긴 모양이지?]
‘사람이 꼼수에 익숙해지면, 굳이 다른 길을 찾지 않게 되더군.’
[무슨 꼼수?]
‘열 갑자의 내공을 한 번에 터뜨리면, 아무리 강한 진법이라도 대강 해결이 된다.’
[열…‘갑자’?]
허, 천화는 어이없는 한탄을 내뱉었다.
열 갑자가 뉘 집 개 이름이냐?
[그게 사람이더냐?]
‘무얼, 공청석유(公淸石油)로 세수를 한 적도 있는데.’
[미친놈….]
공청석유가 무엇이던가.
딱, 단 한 방울만 취해도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전설 속의 영약이다.
단 한 방울이 간직한 세월이 일 갑자의 내공이라 하던가.
전설이 괜히 전설인가?
천지의 누군가는 처먹고 살 산삼 따위와는 달리, 누가 먹기는커녕 본 사람조차 없는 것이 바로 공청석유다.
근데 뭐? 세수?
[그게 거짓이 아닐 것 같다는 게 더 두렵구나. 세상은 불공평해.]
‘원래 그런 법이지.’
천화는 대충 예상이 간다는 듯 숨을 들이쉬더니, 청유백의 몸을 움직여 어둠 너머를 가리켰다.
[네 왼발치에 있는 돌을 던져서, 저기 넉 장 뒤에 있는 돌탑의 맨 위 돌만 떨궈라.]
‘저것 말인가?’
[그래. 그리고 저것, 벽에 새긴 홈을 따라서 선을 하나 더 그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천화의 지시에 따라 주변을 어지럽히던 청유백은 이윽고 마지막 숨을 들이쉬었다.
진법은 주변을 아무렇게나 헤집는다고 파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조차 허상일 수 있으니, 진짜와 거짓을 구분하여 이 진법에 관여하는 요소만을 정확하게 배제해야만 했다.
[나쁘지 않군. 대가리가 완전히 돌은 아니구나.]
‘칭찬으로 듣지.’
어둠 너머에서 느껴지던 기시감은 거짓말같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사라졌다기에는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방금 전에 비해서는 확연하게 옅어졌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진입한다.’
청유백은 전신에서 마기를 끌어올려 근육을 강화했다.
동굴 안에 소용돌이치는 귀기가 마기와 하나가 되어, 근육에 스며들어 강력하게 수축시켜 갔다.
굳이 기를 숨겨 여유를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이상, 무엇이 튀어나오든 반응할 준비를 해 두어야만 했다.
청유백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마기의 기운이 청유백의 몸을 덮어 나갔다.
* * *
“으아아아아악!!”
백소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동굴 너머로 흘려보냈다.
저 빌어먹을 놈을 이리로 끌어내어, 이 장소에서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다.
도발이라면 도발이라 말할 수도 있으리라.
‘진법은 완성되었다. 저놈이 오기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몇 번이고 소리치며 신경을 긁어 보아도, 놈에게 변화는 없었다.
마치 진법이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영리하게 저 어둠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진법은 이 공동 전체를 둘러 이곳이 무대가 되게끔 설계했다.
이 공동에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순간, 유의미한 시야를 얻지 못하게 될 터.
그리고 그리 된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놈을 끌어들여야만 하는데….’
영 여의치가 않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렇게,
‘…살기!!’
백소하는 반사적으로 느껴진 끔찍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동굴에 가득 찬 귀기 가운데에서도 뚜렷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극악한 기운.
하지만 그 기운은 자신이 도망쳐 왔던 굴이 아닌, 반대 방향의 통로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뒤를 돌아 포위했다고? 그 정도의 지능을 지녔단 말인가?’
백소하는 당황했다.
저것이 지금껏 보인 지능적인 행동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영물 수준의 동물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법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살기만 품은 채 전진해오지는 않았다.
‘진법을 이 공동 전체에 둘러친 게 다행이었군.’
저 입구 하나만을 막으려 했다면 지금쯤 저 살기의 희생양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이 진법은 애초에 저 빌어먹을 것을 잡기 위한 덫이니까.
스스로 이 진법 안으로 들어와 주었다면, 두려워할 것 없이 찔러 죽일 뿐이었다.
그것은 천천히 진법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방향을 잃지 않는다. 우연인가?’
드물게도 똑바로 앞을 향해 전진했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리라.
백소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네 걸음.
“하!!”
“!!”
내공을 실은 철필을 휘둘러 놈에게로 쇄도해 들어갔다.
본디 철필은 상대방의 혈도를 점하여 공격하는 무기였다.
시야가 파악되지 않으면 제힘을 발휘할 수 없는 불편한 무기.
하지만 혈도를 점할 필요도 없이, 그냥 모가지를 찢어 버려도 생물은 이미 움직일 수 없다.
“죽어라!!”
백소하는 전력으로 철필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울린 것은 피육이 튀는 파열음이 아니라 금속의 마찰음이었다.
-파칵!
어둠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금속의 마찰로 인한 한순간의 발광에 백소하와 상대의 눈빛이 교차했다.
“…네놈은…!”
그는 백소하가 기다리던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다가온 것은 괴물이 아닌 사람.
청유백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우리 구면 아니던가?”
“빌어먹을,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청유백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청유백의 팔이 풍차처럼 휘둘러져, 검병에 가로막혔던 암기가 퉁겨져나가 백소하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글쎄, 누군가의 다급한 비명을 듣고 달려와 준 사람에게의 반응치고는, 상당히 박하지 않나?”
“내가 부르려던 것은 네가 아닙니다! 젠장, 네놈이 이리 멀쩡히 있다는 것은….”
백소하의 갈 곳 잃은 시선이 청유백의 뒤쪽 어둠을 응시했다.
무너져 엉망이 된 돌탑이나, 잔뜩 금가 흉측하게 변한 벽이 눈에 들어왔다.
“진법을 파괴했다고? 어떻게?”
우연인가?
아니, 우연으로 그 복잡한 진법을 해체할 수 있다고?
백소하는 당황했다.
체감 시간으로는, 거진 하루를 꼬박 쏟아 부은 진법이었다.
헌데 그것을 백가도 아니고, 진법에 대해 무지할 청가의 쓰레기가 파훼했다니.
백소하의 의문에 청유백은 단순하게 대꾸했다.
“하다 보니 되더군.”
“웃기지 마십쇼. 우연히 될 만한 일이 아닌데….”
‘아니, 그건 그것대로 이해가 안 되지만….’
방금 느낀 살기.
그 끔찍하게 어두운 기운은 어디로 갔지?
백소하는 청유백의 어깨를 밀며 그의 뒤를 응시했다.
하지만 당연하다 해야 할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면….
“그 살기가 네 것이었단 말입니까? 그 끔찍한 마기가?”
백가에서 자라 수많은 고수를 보고, 마교의 각 고수들의 무공에 대한 정보들도 접한 백소하다.
하지만, 방금 느낀 그것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운 종류의 그것이었는데.
“대답하십쇼. 당신이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장난칠 기분이 아닙니다! 당신, 그 유명한 청가의 쓰레기 아닙니까? 대체 무슨….”
백소하는 납득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청유백을 추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르르르르르….
어둠 너머의 울음소리가 그 시선을 끊어냈다.
완전히 적의로 가득 차고, 이제 백소하에게 남은 힘이 없다는 것까지 알았는지 점차 다가오는 것 같기까지 하다.
“망할, 네놈이 다 망쳤습니다.”
“무엇을?”
“이 진법은 저놈을 유인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단 말입니다!”
진법 안에서라면 무리 없이 척살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불가능했다.
진법은 이 공동 전체를 둘러 효과를 보이게 만들어 놨었고, 그 한쪽 구멍이 통째로 무너진 이상 나머지 한쪽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었다.
-크르아아….
저놈들도 그것을 아는 것이리라.
어둠 속의 안광은 점차 백소하와 청유백에게 다가왔다.
‘청유백의 실력에 대해서는 안다. 아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자를 믿는 건 너무 도박이야.’
엄밀히 말하면 백소하 자신이 아는 것은 ‘청가의 쓰레기’라 악명 높은 청유백이다.
만면귀에게서 자신을 구출할 만한 실력을 지닌 청유백 따위는 모른다.
만에 하나, 청유백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저것을 전부 죽여 없앨 수는 없으리라.
“도망쳐야 합니다. 죽기 싫으면!”
백소하의 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무언가 뛰쳐나왔다.
─찌에에엑!
그것은 곧장 지쳐있던 백소하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피할 힘이 없다.
피로 물들고 부어오른 손끝은, 이미 긴장이 풀려버려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빠아악!
청유백이 휘두른 검이 그것을 강타하여,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껙… 끄엑…….
그것은 작은 단말마와 함께 쓰러진다.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가 쳐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더니, 한심하다는 듯 백소하를 돌아보았다.
“뭐야, 고작 쥐새끼 따위에 쫄아서 그런 거창한 걸 만들고 있었나?”
그것은 쥐였다.
크기가 거진 팔뚝만하여, 조금 기묘하리만치 크지만─분명한 쥐.
‘아무리 백가라지만, 이건 좀 심각한 실력 아닌가?’
청유백의 시선에, 백소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대꾸했다.
“설마 그랬겠습니까?”
“허면?”
-크르르르르르….
마치 그 물음에 대답하듯이 저 너머의 어둠 속에서 다시금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 수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수십을 넘어, 셀 수가 없이 많아진다.
어둠 너머 번쩍이는 붉은 안광에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청유백은 머쓱하게 검을 둘러메며 고개를 돌렸다.
“…아, 하나가 아니군?”
“망할, 달리십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