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귀무곡의 검묘 (3)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은 어렵잖게 가늠할 수 있다.
설령 잠에 빠지더라도 천화가 있었으니, 시간에 큰 오차는 없으리라.
“니기미, 지도라도 주고 던져놓지. 당최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런 대책 없이 아래쪽으로 내려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겉으로 보였던 것보다 동굴이 훨씬 더 거대했던 탓이다.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길이 험해지는 탓에 그것도 느려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벽을 부수면서 나아갈까, 싶기도 했었지만.
[아서라. 파묻혀 죽을 게다.]
‘…나도 안다.’
이 아래에 한 층이 더 있다면, 바닥을 깨부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애초에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만에 하나라도 동굴이 무너지는 날에는 그걸로 끽.
고작 사십 년의 내공으로는 무얼 할 새도 없이 파묻혀 죽고 만다.
멀쩡한 무기가 있다면 섬세한 조정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고철덩어리 검─지금으로서는 그렇다─으로는 무리였다.
청유백은 투덜거리며 보따리의 내용물을 흔들었다.
“하지만 사흘 동안 찾은 게 육포 두 덩어리인 건 너무하지 않나! 이 표시, 이 표시 보여?! 다섯 번째라고!”
청유백은 언젠가 짜증나서 벽을 주먹으로 강타했던 흔적을 가리켰다.
어둠 속인 데다 지도도, 목적지도 모르니 그저 어딘지 모를 곳을 계속 헤맬 뿐이었다.
그리고 저 흔적을 보는 게 지금으로 다섯 번째.
그나마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헤매고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청유백은 짜증스레 육포를 씹으며 계획을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검을 제대로 벼려 내기만 한다면, 그리 큰 충격 없이도 벽을 부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한 그 찰나.
─아아아아악!
“!!”
저 먼 어둠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메아리.
흔적밖에 찾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청유백은 신경을 집중하여 메아리치는 목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수많은 갈림길과 교차로의 너머─확실하게, 이곳보다는 아래쪽.
[어찌할 테냐?]
“가야지.”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청유백은 검을 주워들고 내달렸다.
사람 목숨이 귀하니 그것을 구하기 위해 달려야만 한다! 같은, 웃기지도 않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이 어둠을 헤매는 것이 이미 지긋지긋할 뿐.
더 아래로 내려갔다가 무언가에 쫓겨 올라오는 중인 녀석이라면, 그 녀석에게서 아래쪽으로 가는 길을 들을 수도 있으리라.
─아아아아악!
청유백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비명을 길잡이 삼아 아래로 내려갔다.
─아아아아악!
하지만, 그 비명이 다섯 번쯤 반복되었을 즈음.
천화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상하구나, 지나치게 작위적이야.]
‘뭐가?’
[비명이 들려오는 간격, 비명의 길이, 들려오는 위치. 모든 게 일정하다. 결코 도망치는 사람이 내고 있는 소리가 아니니라.]
그 말에, 청유백은 발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했다.
메아리치던 발소리가 멎어들고, 한순간에 고요가 찾아온다.
‘…….’
─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고요를 찢고 다시 찾아오는 누군가의 비명.
메아리쳐 돌아오는 명음이 아닌, 확실하게 다시 한번 들려오는 생음이었다.
‘…확실히, 처음 들었던 비명과 똑같다.’
호흡 하나, 간격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같은 비명이 반복된다.
천화의 말대로, 이 비명소리의 주인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상황은 아닌 듯 보였다.
‘폐쇄된 동굴이니 말이다. 어딘가에 갇히거나 고립되어 도움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뭔가… 뭔가 기묘하구나. 사람을 부르는 것 같지는 않아.]
타인의 구조나 도움을 바란다?
아니다, 그것은 이상하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을 부르는 것이라면 말로서 부르면 된다.
도와 달라, 살려 달라.
귀곡성 닮은 비명 따위를 대체하는 단어는 얼마든지 있었다.
실로, 기묘한 상황이다.
청유백은 천화가 문득 떠올린 가능성을 부정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귀신은 아니다. 분명한 사람 목소리야.’
[본녀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구나.]
‘무엇을?’
[네가 만면귀를 주저없이 베어 버리려 했듯, 다른 아이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으냐.]
즉, 지금 부르는 자가 악의를 지니고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가치 없는 말이라면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 일축했겠지만, 청유백도 이번에는 그리하지 않았다.
‘…참고하지.’
미지에 대한 대비란, 아무리 많더라도 과함이 없는 법이니.
* * *
백소하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느껴지는 것은 서늘한 감각, 손끝에 만져지는 투박한 돌의 감촉.
그리고 이 기묘한 서늘함.
‘어딘가의 동굴인가?’
백소하는 곧 눈에 힘을 집중하여 주변을 돌아보았고, 죽간과 작은 보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달 내로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죽간을 확인한 백소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문?
문이 뭔데.
그야말로 불친절의 극치 아닌가.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데, 대뜸 문을 열라 하면 그게 무엇인지 어찌 알겠는가.
‘이쪽은 막혔으니, 이 무너진 벽이 ‘문’은 아니겠고….’
후우.
절로 한숨이 나온다.
‘분명, 검묘에서 나온 뒤…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그다음부터 기억이 모호하다.
상황으로 봐서는, 지금의 상황이 천마지회의 시험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죽간에 적힌 내용대로 안쪽 깊이 내려가는 것뿐.
백소하는 귀기에 몸을 떨며 보따리에 들었던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래도 당장에 죽지는 않겠지.’
백소하는 이 순간에도 으슬으슬 살갗을 에는 귀기에 적응을 할 수 없어 몸을 떨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모닥불이라도 쬐고 있는다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고작 이 정도의 나무토막으로는 한 시진도 채 불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뻔한 일.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면서 안쪽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벽곡단 세 알로는 도저히 서른 날을 버틸 수 없어. 반드시 뭔가를 찾아야만 한다.’
백소하는 그리 생각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이 어둠 속 동굴의 탐사는 백소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백가의 가풍은 비교적 무력에서 뒤처질지언정, 지성과 책략으로 그것을 무마한다.
‘이쪽은 지난번에 갔으니, 이쪽이 그 공동과 연결되는가.’
올바른 길을 찾는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한 번 간 길은 전부 외울 수 있었으니까.
중간중간 길목에서 육포나 건식 따위가 담긴 보따리도 발견했으니, 식량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갈수록 귀기어린 오한이 몸을 좀먹어왔지만, 때때로 불을 피워 몸을 덥히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다.
문제는, 이틀이 지난 후에야 찾아왔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군.’
하층으로 가는 길목.
백소하는 이틀째에 그것을 찾아냈다.
체력과 오한 탓에 많이 움직이지 못해 늦은 것일까, 길목은 이미 사람 여럿이 오간 흔적이 있었다.
최소한 다섯, 아니면 여섯 이상.
그 정도의 숫자가 저보다 먼저 아래로 내려간 것일 테다.
백소하는 지체 없이 하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찌 생겨먹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상 계속 동굴을 탐색해야만 했다.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뒤는 막혀 있고, 앞은 복잡하지만 길이라도 있으니.
뭐, 어쩌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이런.”
육대가의 자제들끼리, 서로 검극을 맞대는 일은 이 안이더라도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동물이 아니다.
최소한의 이성과 판단이 있고, 이 천마지회가 끝난다면 다시 평범한 친우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글쎄.
동물이라면 어떨까.
─────!!
“착하지. 진정, 진정 좀 할까?”
귓가에 한없이 메아리치는 무언가의 아우성과, 어둠 너머 흉흉하게 빛나는 적색의 안광.
결코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기괴한 울음소리.
그것은, 결코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
백소하는 그것과 시선을 마주했다.
결코 원한 일은 아니었지만, 눈을 마주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보내주지 않겠다는 양.
─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백소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젠장할!”
─칵!
백소하가 반사적으로 꺼내든 철필(鐵筆)이 그것의 이빨과 부딪혔다.
강철로 만든 붓은 짐승의 이빨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
그리고 손목을 휘저어, 그것의 입천장을 쑥 뚫고 들어가 철필이 미간을 관통해 솟구쳤다.
그것은 한순간에 전신에 힘을 잃고 축 늘어졌지만, 백소하는 안심하지 못했다.
관통한 철필을 뽑아내어 시체를 어둠 너머로 던져 버리고는,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뿌리치며 다시금 뒷걸음질 쳤다.
‘크윽!’
때로 달리고.
때로 덤벼오는 것을 뿌리치고.
때로 숨으며, 적당한 공터를 찾아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것은 어느덧 추적을 포기했는지 뒤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한나절? 아니, 이미 하루가 지났나?’
모른다. 정신없이 도망친 탓에, 시간을 샐 만한 여유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일단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만이 뇌리에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는 건가.’
어둠 너머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백소하를 주시했다.
‘아니면,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저것은 야수다.
저것의 본질에 걸맞지 않은 체구와 집념. 그야말로 영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괴물.
백소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대로 정신을 놓을 수는 없다.’
이대로 안도하고 쓰러지면, 저것은 다시금 자신을 덮쳐올 것이 분명했다.
단지 지금은 기회를 노리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막무가내로 덤벼들면 계속해서 도망칠 뿐이라는 것을 학습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백소하에게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 공동만큼 넓은 공간은 별로 없다. 이 뒤로 계속 물러나면, 결국 무너진 벽으로 몰릴 뿐이겠지.’
어둠 너머의 저것은 기회를 노릴지언정, 포기하고 물러나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곳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난다면, 저것도 똑같이 따라올 터.
‘이곳에서 결판을 지어야만 해.’
하지만 어떻게?
백소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정답을 찾아 헤맸다.
백소하는 무술의 천재가 아니었다.
그 명성 자자한 적철진이나 청명휘라면, 하다못해 자신의 형이었다면 저것을 그저 무력으로 뚫고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있는 것은 며칠 정도 버틸 음식과, 검묘에서 들고 나온 자신의 이 무기, 그리고 모자라지 않은 나뭇조각.
그래, 빌어먹을 힘은 없더라도, 이곳에서 무력하게 뒤져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백소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몇 놈을 죽여 없앤 탓일까, 저놈은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이상 다시 덤빌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일단 깨어 있는 동안은 저에게 시간이 있을 터.
어둠 속에서, 시간을 헤아릴 수도 없는 채로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지난 거지? 놈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나?’
허억, 허억, 허억.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강제적으로 폐부의 공기가 토해졌다.
땅을 긁고, 바위를 파헤친 손끝에서 진물 어린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이것을 완성해야만 했다.
죽기는 싫으니.
조금의 시간만 더 벌 수 있다면, 저것을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