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천마지회, 개시 (4)
‘허허, 이거 참….’
만면귀는 그 꼬맹이가 떠나간 뒤의 광경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친 듯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바닥에 새겨져 지워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는, 태풍이 그린 그림을 어지럽히는 것만 같은 두 개의 굵은 줄이 2장(6m) 정도 되는 길이로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는 바로 그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서 있었고 말이다.
‘계속 자존심 세우면서 한 손으로 막았으면 진짜로 갔겠구먼.’
청유백이 아니라, 자신이.
‘그냥 골로 가버렸겠어. 아주.’
만면귀가 착잡한 심정으로 방금의 상황을 복기하는 동안, 어느덧 수풀 너머에서 다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소하와 같은 흰색 도포가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
백원철(白原哲)은 만면귀를 보자마자 기함했다.
“선배님!! 대체 뭘 얼마나 저지르신 겁니까!!”
“내가 뭘?”
“산등성이까지 여파가 전해졌습니다. 진짜 애를 잡을 생각이십니까?! 이러면 가주들한테서 항의 서한이 빗발친다구요!! 저 생각도 좀 해주십쇼, 예?!”
백원철의 주 업무는 만검각의 서류 보조 및 현장 수습이다.
대충 말하면 높으신 분들이 잡무에 발 벗고 나설 수는 없으니, 귀찮은 일은 도맡아 하고 남들의 투정도 들어주는 위치.
그것이 딱 백원철의 자리였다.
가주회합에서 결국 어찌 되어 가나 보러 가라는 결론이 나와서 왔건만, 상황이 이따위라니!
정말로 애 하나 잡아 죽이려던 현장이 아닌가.
아이는 다행히도 도망간 모양이었지만, 이 근처의 흔적들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면귀는 싹 잡아떼며 단언했다.
“내가 한 거 아니다.”
“어휴, 됐습니다. 또 거짓말은…. 그래서 누구였습니까? 적철진? 청명휘? 아니면 뭐, 녹지연 그 아이가 장난질이라도 친 겁니까?”
백원철은 당장에 떠오르는 육대가의 후계들을 대충 입에 담았다.
적가의 철진이라 하면 현 소교주에 가장 가깝다 평가받는 아이고, 청가의 명휘 또한 그에 밀리지 않는 천재라 명성이 자자하다.
그 둘을 제한다면, 녹가의 장녀인 녹지연 정도가 만면귀를 이 정도로 도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꼬맹이는 사람 속 뒤집는 게 특기니까….’
그들을 제외하면 만면귀가 이만큼씩이나 힘을 들일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성정의 문제든, 힘의 문제든 간에.
만면귀가 힘을 쓰게 만들 일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의 것이었다.
“청유백.”
“청유백이요? 청가의 쓰레기?”
만면귀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원철은 바닥의 소용돌이 흔적을 대충 훑어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제가 대충 느낀 것만 해도 십 년은 되는 공력이 한 번에 폭발했던데, 청유백에게 그걸 막을 내공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거, 그냥 싸우고서 상대도 누군지 모르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백원철은 그리 판단했다.
“아니, 하물며 있다고 해도, 뭐? 십 년 내공의 기공을 막아요? 뭐 그놈은 천마의 환생이라도 된답니까? 약관도 안 된 꼬맹이가 그딴 걸 어떻게 합니까? 적철진이라면 모를까… 변명 좀 하지 마십쇼.”
“아니….”
하더라고. 그게.
막는 것도 아니고, 쏘더라.
솔직히 만면귀로서도 말로 들으면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내공은 그것을 쌓는 것만큼이나 조절하는 것도 어렵다.
보통은 내공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 양에 따라 다음 경지로 나아간다.
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마치 벽에 막힌 듯 새 경지를 보지 못하고 멈춰 서는 때가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보통 세 번.
하나는 소년이 청년이 되어 처음 ‘고수’로서의 깨달음을 얻을 때.
둘은 청년이 지천명(知天命)을 깨달아 처음 ‘삶’으로서의 깨달음을 얻을 때.
그리고 마지막 셋은, 비로소 종심(從心)에 닿아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도 깨달음이 따를 때이다.
말로서는, 그 위의 네 번째 경지가 있다고는 전해지나─
만면귀로서도 오르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경지였다.
하지만 기록으로서 전해지기를, 옛 패도천마와 그에 맞서던 무신이 그 깨달음을 깨우쳤다는 기록이나마 남아 있을 뿐이다.
헌데 어쨌든 간에, 청유백은 그 중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하기에조차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물며 십 년 동안이나 은거하며 재능이 썩어 나갔다고 하던데….’
흠. 분명 무언가 있다.
최소한, 백원철이 말하는 ‘쓰레기 공자’로서의 청유백은 분명 누군가의 다분한 의도일 터다.
실력을 숨기기 위한, 모종의 술수.
‘허허, 마교의 판도가 바뀔지도 모르겠구만.’
하지만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아까부터 진실만 말하고 있는데 듣지를 않는구먼.
당장에 저 백원철도 ‘청유백이 공격했다’라는 가능성은 개미 눈곱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만면귀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새파란 놈이 말 좀 들으라고 경을 칠까 했지만, 그래도 아무 힘 없는 노친네들 모임에서 솔선수범 일하는 놈 구하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빨리 귀무곡 쪽으로 가 주십쇼. 벌써 반은 도착한 모양이덥디다.”
“알겠다. 알겠어. 그놈 참 구박은….”
“어유, 뭐 이렇게 깊게 패인 거야.”
발로 바닥을 휘저으며 흔적을 없애려 노력하는 백원철을, 만면귀는 그저 짠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 *
[그놈이 이리 쉽게 보내줄 줄은 몰랐구나.]
‘나도 예상 못 했다.’
오히려 졌다고 수틀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건만, 만면귀는 꽤 호쾌하게 웃으며 보내 주었다.
현재 청유백의 단전에 쌓인 마기의 양은 총 사십 년.
이번에 환마단을 흡수하면서 삼십 년이 더해졌지만, 그 사분지 일을 때려 박아도 몇 발자국 밀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방심한 틈을 타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겠거니 생각했건만 과연 현역 고수는 다르다.
지금의 몸 따위로는 싸움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었다.
[몸은 괜찮으냐? 상당히 무리하지 않았더냐.]
‘당연히 안 괜찮지. 너도 알면서 뭘 물어보나.’
단번에 십 년치의 마기를 끌어올려 터뜨렸다.
방법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끌어올릴 실력도, 조절할 능력도 있으니 그저 실행하면 그뿐인 일이다.
문제는 몸이다.
아무리 내공의 조정이 완벽의 경지라고 하더라도, 나약한 몸까지는 어쩔 수 없는 법.
기술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할 육체가 받쳐주지 않았고, 그 반동은 오롯이 몸의 고통으로서 받아야만 했다.
청유백은 어쩔 수 없이 분근연혼대법까지 해제하여 조금이라도 고통을 더는 쪽을 택했다.
물론, 사람을 멋들어지게 업거나 안고 갈 체력이 없다는 것 정도는 당연하리라.
“으음….”
청유백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볼품없이 질질 끌려가던 백소하는 어느덧 정신을 차렸는지 신음을 흘렸다.
“여, 여긴…?”
“일어났나? 그럼 네 발로 걸어라.”
“그게 무슨─으악!”
청유백은 백소하의 뒷덜미를 놓으며 땅바닥에 내던졌다.
땅바닥에 구른 백소하의 옷은 흙먼지로 더러워졌지만, 방금까지 끌려온 탓에 애초에 황토색에 가까워졌으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마, 망할. 이게 무슨 일입니까? 너는 누구고요?”
“내가 누군지는 네가 알아낼 일이고. 대충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해 두지.”
청유백의 말에 백소하는 청유백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청색 늑대 자수와 아직 앳된 얼굴. 어딘가 사나워 보이는 표정까지.
처음 보는 인물이었지만, 소거법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 있을 만한. 그럼에도 청률이나 청명휘는 아닌.
“너, 청유백이군요. 네가 생명의 은인이란 말입니까? 왜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왜요’라니.
웃기지도 않는 질문이다.
무슨 일이 불가능한 경우인데 그게 왜 되냐는 물음 아니던가.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만면귀. 기억나지 않나?”
“…아!”
청유백의 한마디에 백소하는 뭔가 떠올랐는지 탄식했다.
“젠장, 그랬었죠. 간파했어야 했는데, 형님의 얼굴이라 한순간에… 후, 기억났습니다. 일단 감사하다고는 말해 두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것이 있는지, 옷을 털며 일어나면서도 청유백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왜 구했습니까? 이득 될 것도 하나 없을 텐데. 어차피 전부 경쟁자 아닙니까.”
경쟁자라.
흥미로운 말이다.
때로는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는, 심장 뛰는 단어이기도 했다.
허나, 글쎄.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경쟁자? 네가? 꿈도 크군.”
경쟁자도 급이 맞아야 어울려 주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음에도, 백소하에게서는 이렇다 할 위협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비교한다면, 청궁우보다도 아래.
청가의 수련생들 정도나 백소하와 비슷할 것이다.
허나 제 놈도 자존심이 있는지, 백소하는 인상을 팍 구기며 대꾸했다.
“나는 위협도 되지 않는다, 그 말입니까? 네놈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요.”
“백가의 후계인 주제에, 상황 판단이 너무 느리지 않나? 내가 너를 누구에게서 데려온 것인지 잊을 정도로 말이야.”
“……!”
만면귀.
아니, 그 상대가 누구였든 간에, 백소하는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기절까지 한 상대다.
그것을 청유백은 돌파하고, 저까지 구해왔다는 점에서 둘의 차이는 이미 극명했다.
백소하는 자존심이 상한 듯했지만, 무어라 할 말은 없었다.
빌어먹게도 사실이었으니까.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이제 쓸데없는 의심 따위는 접어두고, 목숨 빚 갚을 생각이나 하면 좋겠군 그래.”
“…걱정 마시지요. 내 목숨값도 모를 정도로 철부지는 아니니까.”
백소하는 작게 혀를 찼다.
“중요한 건 결과니까요. 네가 나를 데려왔고,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다. 그것이면 됩니다. 지금은 그저 너의 방심에 감사하면 되겠지요.”
“방심이라. 자신이라 부르는 게 듣기 좋지 않나?”
“오만이라 부르도록 하지요.”
“승자의 포용은 어떤가?”
“행운아의 방만도 좋겠군요.”
“혀는 참 길군, 백가 놈다워. 네놈이 갚을 빚도 네 혀만큼 가치 있는 것이겠지?”
“아무렴, 네놈의 미래보다는 휘황찬란하지 않겠습니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받아치는 백소하와의 언쟁이 잠시간 이어졌지만, 둘 모두 시간이 그리 넉넉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늘 저편에서는, 벌써 태양이 뉘엿뉘엿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서둘러 움직일 때였다.
* * *
북동산맥, 귀무곡의 입구.
이곳은 사시사철 언제나 안개가 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뿐이랴.
협곡 사이로 불어드는 바람이 귀신의 울음처럼 들려와 안개와 함께 낮이고 밤이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실제로 귀신이 있을지, 없을지는 만나 봐야 알 일이겠지만─이곳에 가득 서린 귀기 어린 불길함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녹지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녹가의 여식으로서, 어지간히 오싹한 상황은 전부 경험했다 생각했는데….’
그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분명히 섬뜩한 무언가가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기분.
하지만 녹지연은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자 거대한 협곡의 입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럿의 남녀가 보였다.
적, 청, 황, 녹, 묵, 백….
각자의 가문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서, 각자의 친분이 있는 자와 담소를 나누거나 각자의 무기를 점검한다.
나름의 휴식 시간이었지만 이것도 길지는 않으리라.
녹지연은 눈대중으로 이곳에 앉은 청년들의 숫자를 세었다.
‘열하나, 열둘… 열셋.’
녹지연 자신을 포함한 숫자.
오는 길에 조금의 장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천마지회에 참가할 수준의 실력자들이 돌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머지 둘도 머지않아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임시로 피워진 화톳불 앞에 털썩 주저앉자, 맞은편에 마주 앉은 적색 옷의 여인이 비웃듯 말을 건네 왔다.
“몰골이 엉망이네, 불여시. 귀한 집 아가씨한테 산길은 좀 험했나봐?”
가슴에 새겨진 것은 적색 범의 문장. 녹지연은 그녀와 아는 사이였다.
적가의 장녀인 적영(赤瑛), 결코 친하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름 정도는 안다 말해도 될 것이었다.
물론, 친절히 응대해 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게요. 저는 선머슴과는 달리 준비할 게 많기 때문에… 뭐, 조금 늦게 되었네요. 적영 당신이야말로 자빠진 흔적을 보니 다람쥐라도 만나셨나 봐요?”
녹지연의 말마따나 적영의 옷차림은 그녀보다도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헤지고 찢어지고, 베인 흔적까지 있는 것이─ 분명한 전투의 흔적으로 보였다.
“귀살마, 그 인간 미쳤어. 완전히 미쳤다고. 진짜로 죽이려고 달려든다니까? 네가 뭘 알아?”
“으음, 별로 알고 싶지도 않네요. 냄새나는 주둥이 좀 닫아 주시겠어요?”
“이 미친년이….”
적영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차피 혀로는 녹지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굳이 지금 화내지 않아도, 저년과 자신 중에 누가 더 우수한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일.
적영은 분을 삭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
─부스럭
수풀 너머에서 두 사람의 사내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만.”
“근처에 불빛은 이곳밖에 보이지 않으니, 정확하겠지.”
청유백과 백소하였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을 늦었다고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들 덕에 저 끔찍한 협곡에 들어가는 시간이 미뤄진 것이었으므로.
이제 어찌 되나 모두가 상황을 지켜보는 찰나, 협곡의 안쪽에서 늙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모였군.”
귀무곡의 그림자 안에서 걸어 나온 것은 한 명의 노인.
다른 이들은 그가 처음 보는 그가 누군지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청유백만은 그가 만면귀라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샌가 이곳에 먼저 도착해서 또 한 번 얼굴을 바꾼 듯 보였다.
“아슬아슬하지만… 아직 태양이 보이니 인정해주겠다. 지각한 놈들이 있지만, 그래도 한 놈도 낙오되지는 않았군. 하마터면 실망할 뻔했어.”
앞으로 일각만 더 있어도 노을도 보이지 않게 될 터였는데.
노인은 아쉬운 것인지, 혹은 우스운 것인지 코웃음 쳤다.
“귀무곡은 넓다. 사람 몇 명 정도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향해 백 년쯤은 못 찾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넓지.”
귀무곡은 그 입구만큼이나 전체의 크기도 거대한 협곡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만장단애의 높이만 하더라도 거진 오십 장(150m)은 되어 보였으니, 그 크기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그 협곡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짐작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이봐, 거기 노란 돼지 놈.”
“어, 예?!”
멀뚱히 서 있던 황가의 사내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야말로, 돼지라는 말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투실투실한 사내.
황가의 장남인 황도식, 줄곧 황돈(黃豚)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귀무곡의 끝에 뭐가 있지? 네가 말해 봐라.”
“어, 거… 귀무곡의 끝에는 저희 천마신교의 검묘(劍墓)가 있는 줄로 압니다.”
황돈의 어수룩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찼지만, 일단 대답은 맞는 말이었기에 넘어갔다.
“그래, 검묘가 있다. 신교의 역사 천 년, 본교의 수많은 고수들이 사용했던 신병이기(神兵利器)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지.”
그냥 무구들도 아니다.
하나하나가 무림의 지보 소리를 들을 만한 보검이나, 전설 속에나 전해져 내려오는 호신구들도 산재하여 있다.
최소한, 청유백의 기억에는 그런 장소였다.
“너희는 이제부터 검묘에서 각자가 원하는 무기를 가져올 권리를 받을 것이다. 검이든, 도든, 창이든 무엇이든 좋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노인의 입이 몇 번 열리기를 반복하고, 노인의 말이 청년들의 뇌리에 새겨지듯 각인되었다.
“그 무기를 들고 이 귀무곡을 나올 때에는, 그 무기의 주인이 되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