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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33화 (33/200)

제33화. 천마지회, 개시 (3)

슈욱!

투박한 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은 한순간에 백소하의 목덜미로 쇄도했다.

아직 그리 쾌속이라 이를 수는 없는 검격.

청유백의 근력으로는, 그저 한순간 방심을 틈탄 기습을 완벽하게 실행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에게의 일격에 굳이 일류의 기습을 성공시킬 필요는 없으리라.

그저, 단 한 번의 행운이면 충분한 것이므로.

그 근력과 걸맞지 않은 미려하고 완벽한 곡선이 검의 궤도를 지나고, 그다음 순간.

─슈왁!

“뭐, 뭐야! 미친 겁니까?!”

백소하는 간발의 차로 고개를 비틀어 검을 피해냈다.

백소하는 탄식 어린 숨과 허공을 가르는 검의 소리가 허공에서 엮이며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천마지회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참가자끼리의 상해는 금지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래? 내 죽간에는 쓰여 있지 않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생각이 닿는 것이 있을진대!”

그 죽간은 천마지회가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의 오롯하게 유일한 단서지만, 그것이 규칙의 전부는 아니다.

─‘서로 죽이지 말라’.

그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하기에 굳이 적지 않은 것이었다.

천마지회가 소교주를 정하는 회합이라고 한들, 다른 후계자들을 싸그리 죽여 버리는 절차는 아니다.

결국 계속 얼굴 보고 살아야 하고, 참가자끼리의 상해, 혹은 살해가 적발되는 날에는 그 가문 전체에서의 보복이 돌아올 것이기에.

하지만 청유백은 무슨 생각인지 비웃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나도 알긴 하지요. 헌데 당신은 아닐 텐데, 내가 지킬 이유가 있습니까?”

“뭐라고요?”

어느덧 청유백의 말투는 손윗사람을 대하듯 경어로 뒤바뀌어 있었다.

“나는 백소하에 대해 압니다. 아니, 알아 봤자 주워섬긴 것 정도일 테지만.”

녹지연이 말해 주었지 않던가.

천마지회에 참여한 자들 중에서도, 그녀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인 각 가문의 인간들을.

하지만 백소하라는 인물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백가는 굳이 따지자면 지혜와 책략의 가문.

무력으로 따지자면 육대가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다.

헌데, 이 사내는 청유백의 기습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냈다.

“결과적으로는 검증부터 들어간 셈이기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고작 백가의 후계가 방금의 검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명확한데. 게다가….”

청유백은 천화가 언질했던 것을 떠올렸다.

[인기척이 두 개 느껴진다]고.

“멀리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두 개였지. 헌데, 도착해서 보이는 건 수상하기 그지없는 청년이라?”

저게 백가 놈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의심할 여지로서는 충분하다.

하지만 백소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기함했다.

“고작 그딴 이유로! 고작 그따위 이유로 칼을 휘둘렀다는 겁니까!”

그건 의심의 여지지, 확신하고 칼을 뽑아 들 이유는 아니지 않은가!

고작 그깟 이유로 검을 휘둘렀다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이유가 빈약했다.

인기척은 둘이었는데 하나만 보여서 죽인다?

그럼 그게 누군지부터 알아야지.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고 어쨌든 죽이고 나머지를 확인해 보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정말 미친 겁니까?! 못 피했으면 죽었을 텐데, 시체에 대고 사과라도 할 생각이었냔 말입니다!”

“뭐, 칼질 한번 해 봐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뭐? 나쁠 건 없어?

백소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다 주, 죽으면 어쩌시려고?”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지요. 경쟁자는 줄고, 보는 사람은 없으니. 이거 참 간편하게시리.”

청유백의 감춘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백소하의 입장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 웃음이 거짓이라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그 말, 뒷감당이 어려운 발언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천마지회의 규율은 어찌하고?

백가의 보복은?

백소하의 표정에는 수많은 질문이 담겨 있었지만, 청유백은 웃으며 단 하나의 대답으로 일축했다.

“알지요. 그런데 뭐, 제 생각이 맞은 것 같은데… 굳이 감당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청유백은 그리 말하며 피식 웃어보였다.

꺼내 든 검은 여전히 꼬나 쥔 채 눈앞의 사내를 경계했다.

하지만 방금 아무렇지 않게 모가지를 그어 버리려 했던 사람의 태도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방금 목이 따일 뻔했던 당사자인 백소하 역시, 지나치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크큭, 크허허.”

우스운 것인지, 혹은 기가 막히는 것인지 허리를 뒤트는 기괴한 웃음.

“허, 허허, 크허허허허허!!”

백소하는 연신 대소하며 얼굴을 잡아 쥐어뜯듯 비틀었다.

얼굴이 찢겨나갈 것만 같아 보이는 행동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얼굴의 피부가 서서히 찢겨나가 맨살을 드러냈고, 그 기괴한 웃음이 멈춰 손을 거두었을 때에는.

“크흐… 아, 얼마만의 웃음인가.”

목소리도, 그 얼굴도 전혀 다른 사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청유백은 그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이내 천화가 기억을 되짚어 귀띔해 주었다.

그 외톨이인 청유백의 기억 속에 있는 이라면 마교에서도 어지간히 높은 위치에 있거나 유명한 인물이라는 소리.

[백귀대의 만면귀(萬面鬼)라는 놈이다. 아주… 미친놈이야. 사람을 죽이고 살갗을 벗겨 가면으로 만드는 취미가 있는 놈이다.]

…유명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지만 말이다.

[싸움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방금에야 대놓고 적의가 엿보였으니 선수를 쳤지만, 기습이 아닌 정면 승부는 좋은 수가 아니야.]

‘알지. 가급적이면.’

일단은 싸우고 싶진 않다.

청유백이 검을 휘두른 것은, 가면 속에 숨겨진 악의와 힘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마두는 되는구나. 마사의 수준은 한참 뛰어넘었어.]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기능하는 마졸과, 그 마졸들을 이끄는 수준의 마사─그 위에 존재하는 것이 마두였다.

마두 위의 마군과 마주는 지위의 특성상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

각 검대의 대주들과 각의 각주들, 그리고 일부 문파와 가문의 수장들에게만 허락되는 지위다.

즉, 일반적인 무인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바로 마두들.

심지 눈앞의 사내는, 청가의 교두들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이상할 것도 없지. 현역으로 뛰는 고수. 그것도 만검각의 직속인 백귀대라면….’

시간이 이 년, 아니 일 년이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고작 보름 조금 넘어 수련한 이 육체 가지고는 턱도 없다.

청유백은 이죽거렸다.

‘나도 목숨 아까운 줄 안다.’

겉으로는 기세등등한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감각은 최대한으로 확장하여 도망칠 방법을 물색했다.

어느덧 웃음을 그친 만면귀는 청유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 있지?”

“글쎄요, 가령 어떻게 해야 당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당연히 허풍이다.

긴장해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때로 무엇보다 잔인하다.

하지만, 거짓은 언제나 새로운 선택을 제시하는 법.

“호오, 그래?”

만면귀는 박장대소하는 웃음을 그쳤지만, 만면의 서글서글한 눈웃음은 여전히 짓고 있었다.

흥미롭다는 듯 목을 울린 만면귀는 한순간, 전신의 마기를 끌어올렸다.

[!!]

“그렇단 말이지….”

흉흉한 마기가 만면귀의 전신을 감싸 올랐다.

대놓고 적대심을 표현하는 전투 준비 상태.

모르긴 몰라도, 저자의 마기는 청유백의 두 배 남짓은 될 테다.

육체, 내공, 무기.

그 어떤 것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없다.

그것은 청유백도 알았지만, 만면귀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만면귀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지금은 어떻지?”

“똑같지요.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허!

나도 참 만만히 보인 모양이군.

그리 뇌까린 만면귀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뚜둑거렸다.

“주제 파악도 능력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대뜸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은지라.”

되는 대로 대꾸하는 청유백에게 천화가 탄식했다.

[방법이 없다. 도망칠 수 없어! 어느 쪽으로 도망쳐도 십 보 내로 붙잡힐 게다. 차라리 처음부터 도망치지 그랬느냐!]

‘뭐가 달라지는데?’

[다섯 발자국은 더 갔을지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도 아니고 십 보, 십오 보?

그야말로 평소와는 다른 가락지를 꼈답시고 오늘 달라진 거 없냐고 묻는 아낙네만큼이나 뭐가 다른지 모를 꼴 아닌가.

‘그랬으면 저 수풀 뒤에 있는 놈과 같은 꼴이 되었겠지.’

힐끗, 그 방향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있는 것은 ‘원래의’ 백소하일 터다.

그리고 도망치다 잡혔다면, 저놈과 똑같은 꼴이 되어 쓰러지고 만면귀는 저 얼굴을 바꾸는 무공으로 제 행세를 하며 다른 희생자를 노렸을 터.

‘그럼 차라리, 혹시 모를 행운이라도 기대하는 게 낫지 않나?’

[이미 이 상황부터가 운이 좋지 않잖느냐!]

운이 좋았으면 저딴 거랑 안 마주치지!

“허, 그래? 도망, 도망이라… 큭, 크큭….”

[저 봐라! 괜히 도발해서 화만 돋웠지 않으냐!]

천화는 탄식 어린 일갈을 내뱉었지만, 그것이 무색하게도.

“크하하하하하!”

[?]

만면귀는 연신 웃음을 새어내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크큭, 크허, 그래, 좋다. 네 말이 맞다. 암, 도망이 무슨 소리냐! 내가 이리 박장대소한 게 얼마 만이지? 눈물이 다 나려 한다. 이 녀석아.”

음음. 아주 좋아.

만면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대뜸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짝짝짝짝짝!

“훌륭하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무슨 뜻입니까?”

기만인가? 아니면 비웃음?

어느 쪽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던 청유백에게, 만면귀는 웃음의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사내새끼가 그 정도 기강은 있어야지! 그래. 이 천마신교, 나아가 우리를 이끌 교주가 되려면, 그 정도 깡은 있어야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금방이라도 싸울 것만 같이 마기를 끌어올리더니, 하는 짓은 대뜸 웃는 것뿐이라니.

하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으음…?]

‘마음에 든 건가?’

청유백은 여전히 경계하며 그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지만, 만면귀는 손을 내저으며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됐다. 칼을 거둬라. 너는 지나가도 좋다.”

“싸우려는 게 아니라면 뭘 위해 여기 있었던 겁니까?”

“네가 고작 이 핏덩어리의 말을 듣고 길을 틀어가려 했다면 나의 만적편(萬積鞭)이 피를 보았겠지.”

그리고 살짝 손보는 데 실수가 조금 있었을 수도 있었겠고.

만면귀는 그리 말하며 품에서 붉은색의 채찍을 슬쩍 꺼내 보였다.

“십만 교도의 머리가 될 자가 고작 다른 이의 편협한 말 한마디 때문에 발길을 돌려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런 면에서 네놈은 합격이다!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조차 괜찮다 단언해버리는 것이, 꼭 내 소싯적을 보는 것 같구만!”

“…아, 예.”

말이 어쨌든, 청유백이 제 마음에 꽤나 들었단 소리였다.

그리고 저기 쓰러져 있는 백소하는 마음에 안 들었다는 소리일 것이고.

‘흐음.’

청유백은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뭔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하시는 김에 한 번 더 선심 쓰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선심?”

청유백은 팔을 들어 올려, 수풀 너머의 인기척을 가리켰다.

“저놈도 제게 주시지요.”

백소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옅게 들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이고 안정된 것이, 죽지는 않고 그저 기절한 듯 보였다.

상태는 확인해봐야 알 일이지만, 그리 위중한 상황은 아닐 터다.

“왜? 저놈은 불합격이다. 잡아 죽이려던 것도 겨우 참았다.”

“빚은 지워 두어서 나쁠 일이 없다 하지 않습니까. 창창한 후배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 고놈 참… 이걸 당돌하다 해야 할지….”

만면귀는 머리를 긁적이며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곧장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진 않는 것을 보니, 고민의 여지 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안 된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하려 했는데, 다행이군.’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이더냐? 또 등쳐서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당연하지. 내가 미쳤냐? 아무 대가 없이 그런 짓을 하게.’

[아니었느냐? 본녀는 네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

천화의 시비가 어찌 되었든, 청유백은 제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지 공공의 이득 따위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익은 철저하게 계산한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정보다.’

그리고 마교의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당연하게도 백가.

저 백소하라는 놈은, 못해도 제 목숨값만큼은 제게 정보를 지불해줄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없으면?]

‘있게 만들어 줘야지.’

동서고금 언제나 양심은 맞으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뭐, 청유백은 저 백소하 놈 정도는 무리 없이 패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청유백의 생각을 어디까지 간파한 것인지, 혹은 아무 생각 없는 것인지 미묘한 시선을 유지하는 만면귀는 청유백에게 대뜸 삿대질하며 물었다.

“네놈, 청유백이지? 그 소문 자자한 그 쓰레기 말이다.”

청유백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긍정하고 싶은 호칭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만면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리고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보란 듯이 쫙 펼쳐 보였다.

“자. 와라. 네가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쳐 보거라.”

간단한 표현이었다.

이것까지 제 마음에 들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소리일 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청유백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검으로 가도 됩니까?”

“누굴 죽이려고? 주먹으로 해라. 소싯적이면 몰라도, 지금은 젊은이의 눈먼 검을 받아줄 기력까진 없다 이 녀석아.”

‘지금도 충분히 소싯적으로 보이는데….’

아쉽네.

청유백은 옅게 자조하며 자세를 잡았다.

양다리를 넓게 벌리고, 무릎과 허리를 숙여 한 팔에 힘을 모으게끔.

“기준은 뭡니까?”

“기준? 무슨 기준? 그냥 노부가 만족하면 그걸로 된다.”

“그래도 명확하게 하시죠. 딴말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어허 참.

만면귀는 혀를 찼다.

말하는 꼴이, 정말로 본인을 이겨 보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렵게 가느냐.’

마음에 들었으니, 형식상으로나마 한 번 실력이나 볼까 했더니만.

‘허허, 요즘 놈들이란.’

“한 발짝… 아니다, 그냥 내가 이 자리에서 두 촌(4cm) 이상 물러나면 네가 이긴 걸로 쳐 주마!”

“사나이가 두말하기 없깁니다?”

“허이구 참! 그래, 그래! 열심히 해 봐라!”

‘흥, 불가능한 일이지.’

만면귀는 확신하고 있었다. 끽 해봐야 주먹.

하물며 약관도 넘지 못한 핏덩이의 주먹 따위 그냥 맞아줘도 좋으리라.

그런데 두 촌을 물러난다?

허허, 꿈속의 꿈이다.

혹시 또 아는가?

‘이 아이가 적가의 적철진이나 청가의 청명휘 수준의 기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이 나이대 애들 중에 지금 자신과 그나마 붙어볼 만한 것이 그 둘이라 들었다.

만면귀는 그리 생각하며 오른손을 쫙 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약 10초 정도, 그렇게 생각했다.

‘……?’

─고오오오오!

바람이 뒤틀린다.

가만히 침묵하며 펴고 선 청유백의 오른손에 칠흑색의 강기가 응축되어 물들었다.

땅을 딛고 선 발을 중심으로, 형언할 수 없는 파동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손에 응축되었던 강기는 손 위로 떠올라 작은 구슬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약 10초.

1초에 1년씩, 청유백의 단전에 담긴 마기가 응축되어 솟아올랐다.

청유백의 이마에서 땀이 구슬져 흘러내렸다.

“가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동시에, 만면귀의 표정도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잠까─”

─ㄴ.

만면귀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단, 한 방.

─콰드드드득!!

청유백의 주먹이 만면귀의 손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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