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천마지회, 개시 (2)
─콰광!!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이런 망할!’
그래, 천마를 정하는 시험인데 설마 하하 호호 하며 사이좋게 만나지는 않겠지 싶기는 했다.
어쩌면, 예상했어야 하는 것을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청유백은 가까스로 몸을 던져 피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방은 이미 ‘방이었던 것’이 되어 숯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녹지연의 ‘조심하세요’가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 여자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어쩐지,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더라니.’
[큭큭, 걱정이 쓸데없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낄낄대며 좋아하는 천화에게 청유백이 쏘아붙였다.
‘좋냐?’
[쓸데없는 걱정이라면서? 왜, 그 아이에게 감사할 거리가 늘었구나.]
‘문제없다. 저딴 눈먼 암기에 맞아 죽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아.’
[그래? 엄청 당황해서 피하던데?]
‘안 맞았잖나!’
방금 전의 폭탄, 벽력탄(霹靂彈)이라 부르는 그 물건은 강호에서도 금지되는 암기에 속하는 것이다.
대외적인 이유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진짜 이유는 황궁의 대외 견제를 위해, 라는 소문이 도는 물건.
진실이 어느 쪽이건 간에 아무 말 없이 사람한테 던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했다.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직격하면 막아낼 도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청유백이 투덜거리며 옷에 붙은 검댕들을 털어낼 무렵.
산화되어 불타는 방 앞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죽간?]
청유백은 곧장 그것을 펼쳐 확인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천마지회의 시작, 그리고… 시작 장소인 것 같군.’
장소는 귀무곡(鬼霧谷).
시간은 해 질 녘.
그리고 도착하지 못한 자는 실격.
아주 간단한 규칙이다.
‘도착하지 못하면 실격’이라는 뜻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으며─ 또한 무엇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다면 방금 폭탄은 인사 대신이었다는 건가?”
감히 천마의 후계를 시험 따위로 뽑는다 하여 우스워하고 있었건만, 생각보다는 꽤 흥미로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청유백은 입꼬리를 올리며 재빨리 몸을 날렸다.
* * *
옛 마교에는 여러 중요 식전들이 있었다.
마교가 모시는 신인 천자마를 기리기 위한 신마번제(神麻燔祭)라든가, 마교의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리는 복마제전(伏魔祭典) 따위가 그러했다.
마교의 정점은 천마라는 확고한 인물이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그 아래의 모든 행사가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것들은 단 하나의 식전의 뒤로 미루어졌다.
천마지회.
마교가 천마라는 단 한 명의 절대자를 기준으로 돌아가니, 그 천마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아무리 지존의 후예를 뽑는 일이라고 한들 그 일을 맡는 책임자들은 존재했다.
육대가의 아이를 소교주로 추대하는 일이니, 그 일의 담당을 육대가의 사람이 맡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그 육가의 사람들 중 가장 정점에 위치한 자들이 이곳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호위를, 누군가는 편의를 봐줄 하인을 대동하고서.
여섯 명의 사람이 원탁에 둘러앉은 이 장소야말로 마교 권력의 중추라 일컬어도 무리가 아니리라.
“‘선물’은 잘 도착한 것 같나?”
“예. 총원 열다섯 명 모두에게 확실히 전달되었습니다.”
“클클클, 그 핏덩이들이 뒈져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보냈나? 아깝게시리.”
“뭐, 죽으면 명이 거기까지였다는 거겠지. 게다가, 설마 교주가 되겠다는 것들이 그깟 벽력탄에 눈 껌뻑이나 하겠나?”
“크하하하! 그건 그렇겠군!”
거대한 원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는 여섯 명의 중년인들.
적, 청, 황, 녹, 묵, 백.
여섯 가문의 가주들이 둘러앉아 천마지회의 진행을 논의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청가주 청걸명 또한 그 자리의 일석을 차지했다.
‘허어, 이거 참.’
청걸명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녹가와 적가의 가주들이 농지거리를 지껄이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언뜻 열 번은 넘은 것 같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마음에 바람 불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든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심호흡하던 찰나, 백가주가 무언가의 서류를 팔락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총원이 모자라군. 백 년 전에는 모든 가문이 세 명씩 보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백가주는 그리 말하며 황가주를 응시했다.
이번의 천마지회에서 황가의 참가자는 단 한 명.
이 인원의 부족이 누가 원인인지는 명확했으므로.
하지만 그녀, 황가주 또한 가만히 듣고 있지만은 않았다.
“…당신네 가문도 고작 두 명 보내지 않던가요? 형편 좋게 남 말 할 처지가 아닌 걸로 아는데.”
“아니, 그저 궁금할 뿐일세. 우리 백가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만, 황가는 입양한 아이들이 많지 않던가. 지금을 위한 선별이 아니었던가?”
“하, 제 일가의 일입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요?”
“글쎄, 의심될 일을 하니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그 황금 귀신이 돈 될 기회를 아무 이유 없이 포기했겠는가?”
모종의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지.
백가주는 그리 뇌까리며 코웃음 쳤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모종의 계획을 두 눈 뜨고 방관해 줄 정도로 사람 좋은 인격자가 아니었다.
황가주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애초에 이루지 못할 일, 장사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요. 당신도 아실 텐데요? 직접 보지 않아도 답을 아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라 했나?”
“예. 제 ‘입양한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가주께서는 배우지 못하셨나 봅니다?”
“흥, 돈 한 푼을 위해 명예를 저버리는 방법 따위는 배우지 못했지. 그것참 아쉽게 되었어.”
“최대 이득을 위한 최소한의 희생입니다.”
애초에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것에 공을 들이겠다는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적가주는 폭소하며 동의했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니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황가는 마교의 재정을, 백가는 마교의 정보 및 내정을 담당한다.
당연히도 다른 가문에 비해서 무공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애초부터 도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닌 법.
백가주와 적가주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상황이 더 험악해지려는 찰나 황가주가 적당하게 화제를 돌렸다.
“자자, 살벌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본제로 돌아가서. 지금 검묘에는 누굴 보낸 거죠?”
고작 시험 하나하나의 감독 전부에 가주들이 움직일 수는 없는 일.
큰일이 아니고서야 아랫사람들이 움직였고, 이번 검묘의 시험의 감독을 위해서는 개중에서도 무공이 특출난 자들이 필요했다.
대답한 것은 적가주였다.
“우리 쪽에서 적당히 지원자를 보냈네. 생각보다 많더군.”
“그쪽이라면, 만검각(萬劍閣)?”
“음. 그중에서도 백귀대(百鬼隊).”
─백귀대?!
적가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지만, 그 한마디로 가주들이나 그 호위 할 것 없이 한순간 모두가 웅성였다.
그 파장은 어마어마하여, 듣다 못한 청가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함했다.
“자네, 미친 건가?! 애들을 죽일 심산이 아니고서야! 전쟁 때에나 쓰는 광인들을 애들 앞에 풀어놓았단 말인가!!”
“진정하게 걸명이. 무슨 큰일이라도 있겠나? 그저 실력 검증일 따름일세.”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아이들은 아직 그들을 당해낼 수 없어!”
만검각은 마교의 총 방위를 맡는 무력 개입 집단이었다.
만검각의 예하에만 있는 대가 총 열여섯 개.
그리고 개중 백귀대는 마교의 대외 무력 개입에만 투입되는 살육 병기로 악명이 자자한 십인대였다.
‘아무리 육가의 후예라고 한들 수련을 쌓아온 시간과 실전의 경험 차이가 있는 법인데!’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그들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적가주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래? 이상하군. 우리 맏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자네 큰아들도 할 수 있을 듯싶던데. 뭐가 두렵던가? 차라리 저이들이라면 모를까.”
적가주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백가와 황가를 향해 턱짓했다.
하지만 황가주는 애초에 상관없는 일인지 태연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고, 직접 지목당한 백가주만이 이빨을 뿌득이며 대답했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만검각은 결국 적가의 수족. 적가의 아이들에게까지 자비 없이 대하지는 못할 터인데 말이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내 약속하지. 설령 우리 딸아이를 마주친다고 해도, 그들은 전력으로 임할 걸세. 결코 예외는 없어.”
“그걸 어떻게 믿나?”
“어떻게 믿냐고?”
백가주의 이죽거림에 한순간 적가주의 미간이 팍 찡그려졌다.
“내 말을 신뢰하지 못하겠다, 그건가?”
“…….”
“이 내가, 핏덩이들 목숨으로 장난질이나 칠 것 같아 보이던가?”
다소 억지스러운 의견 피력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제재하고 나서지는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부대낀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적가주 적무혁이 이런 장소에서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거짓말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백가주 또한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저, 항상 신경을 긁어대는 생각 없는 언동 탓에 짜증이 치밀 뿐.
다시금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황가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누가 갔나요?”
“만면귀와 귀살마.”
…오….
그들의 이름이 거론된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순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어떤 생각인지는 자명했다.
어떻게 할까. 굳이 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가며 자신도 가야만 할까, 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녹가주였다.
─짝짝!
그는 제 발로 움직이는 대신 손뼉을 두 번 쳤다.
익숙한 행동이었다. 그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내려오며 고개 숙여 읍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는 명령한 것만을 충직하게 실행하는 것이 직무의 전부였지만, 때로는 주인의 의사를 미리 파악하고 있는 쪽이 좋기도 했다.
어쩌면, 이 대화의 흐름이라면 당장 아이들을 구하러 가라, 그런 명일지도 모른다.
사내는 조금 기대를 품으며 고개를 숙인 채 명을 기다렸다.
“거….”
“예.”
“거 뒷산 아무 데나 땅 좀 파놔라.”
“예?”
“오늘 애들 몇 묻을 것 같구나.”
* * *
[네놈, 귀무곡이 어느 방향인지는 아느냐?]
“알지, 백 년 만에 지명이 바뀌지 않았다면 말이야.”
청유백은 익숙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마교가 위치한 십만대산이 끔찍할 정도로 넓다지만, 결국 다 사람 사는 곳이다.
그 말인즉, 사람이 가는 장소는 다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귀무곡은 그의 기억 속에도 있는 장소였다. 마교 본산에서 북동쪽에 있는 협곡.
그 지역의 특성과 인적이 적다는 특징 탓에 수련의 장소로 자주 사용되는 곳이었다.
청유백이 향하는 방향을 보더니 천화도 무언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아아, 쏙독새 골짜기? 이젠 이름을 귀무곡이라 부르느냐? 세상에, 무슨 이름을 그리 험하게 지어?]
‘…험한 곳이니까?’
귀무곡.
말 그대로 귀신이 안개와 같이 둘러싼 골짜기라는 뜻이다.
그 음기와 사이한 기운이 마공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되어 옛날에는 청유백도 애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뭐 그건 그거고, 귀신 나오는 동네를 험하다 하지 아니면 무어라 하겠는가.
빈말로도 안전하다 할 수는 없지 않나?
청유백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천화의 말을 듣고는 더욱 의문에 빠졌다.
[그 아름다운 동네가? 험해? 허, 이해가 안 되는구나.]
‘보면 납득할 거다.’
하긴, 그녀가 어느 시대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백 년 전에는 그 끔찍한 골짜기가 꽃밭이었을 수도 있고.
[한데 이 방향이 맞느냐? 도저히 사람이 다닐 만한 인도는 아니거늘.]
‘인도로 다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건… 맞는 말이구나.]
아무렇지 않게 벽력탄이 날아오는 상황인데, 매복한 살수 한두 명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청유백은 산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짐승들이 다니는 길, 오솔길 정도라면 눈에 안 띄고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천화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시야에 들어온 무언가에 눈가를 좁히며 경고했다.
[잠깐, 저기 누군가 있구나. 인기척이 두 개 느껴진다.]
오솔길의 중턱에서 누군가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대략 청유백의 또래로 보이는 수수한 인상의 청년. 깊은 산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광적인 순백색 장포를 두른 청년이었다.
“저건….”
눈살을 찌푸리는 청유백과 청년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청유백을 발견했음에도 그는 무언가 움직임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청유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백가의 후예가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평범하게 휴식 중입니다. 네 눈은 장식입니까?”
“말 한번 곱게 하는군.”
청유백은 이죽거렸지만, 저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 백가의 인간이 맞는 듯 보였다.
마교 내에서도 사무 처리와 내정 업무를 도맡는 백가의 특성상, 다른 가문 사람들을 무식한 놈들이라며 무시하는 성정이 유명했으므로.
게다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청년의 가슴팍에 새겨진 백색 쥐의 문양은 그가 백가의 자손임을 명명백백히 드러냈다.
청가의 늑대나 녹가의 뱀과도 같은 백가 후계의 상징이었다.
[유백, 저자는….]
‘나도 안다.’
대놓고 미심쩍은 청년과 굳이 만담을 나눌 이유는 없다.
귀무곡은 본산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고, 여유롭게 가려면 걸음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
청유백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청년이 팔을 들어 올리며 청유백을 막아섰다.
“…그쪽으로는 안 가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굳이 가려면, 계곡 쪽으로 돌아서 가는 게 좋을 겁니다.”
“퍽 감사한 친절이군.”
“진실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요.”
백가 청년은 피식 웃으며 팔을 내렸다. 굳이 하겠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표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교 사람은 알고 있다. 백가 사람들을 백면서생이라 까 내리며 비웃기는 하지만, 결국 마교 정보의 집대성은 백가의 일이라는 것을.
때문에, 보통 백가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믿고 넘어가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물론, 청유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글쎄.
청유백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는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 이름이 뭐지?”
“…소개를 원할 때는 자신 먼저, 상식 아닙니까?”
상식이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조소를 흘리며 이죽거렸다.
“너는 나를 알고 있지 않은가. 백가의 아들이 차마 모른단 말은 하지 않을 터다.”
맞는 말이다.
백가는 하는 일도, 맡은 업무도 많지만 그에 비례해서 열등감도 상당했다.
기본적으로 문(文)에 비해 무(武)를 중요시하는 마교의 풍조 때문이기도 그렇거니와, 학문이 뛰어나다 자칭하면 항상 정파의 제갈세가와 비교당하기 일쑤였으니.
그 비대한 자존심과 합쳐져, 백가의 사람들은 아는 것을 모른다 말하지를 못했다.
“하, 그렇게 나오깁니까? 좋습니다. 우매한 놈에게 떡 하나 준다 치죠. 나는 백소하입니다. 백가의 장남, 백소하요.”
“백소하? 그래?”
백소하. 백소하라.
청유백은 그 이름을 뇌리에서 두어 번 굴렸다.
그리고 어느덧, 녹지연이 대충이나마 말해 주었던 육대가의 후기지수들 중에 그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 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카칵!
찰나, 관리가 되지 않아 녹슨 검이 검집과의 마찰음을 내며 백소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