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30화 (30/200)

제30화. 복수는 과할수록 좋다 (3)

청유백은 의외라는 듯 유 부인을 바라보았다.

분명, 청궁우의 상태와 자신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있었을 터인데.

“가전회의에 참석해야 하지 않으십니까?”

“회의? 회의라. 대관절 그것이 무얼 위한 회의란 말인가?”

유 부인은 하찮은 사실을 굳이 언급하듯 웃음 지었다.

“그것은 공정한 결투였고, 비등한 경합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았으매, 자네는 단 하나의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어.”

부정.

그것은 증명할 수 있고, 그것을 거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중 무엇도 성립할 수 없는 시점에서, 부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 부인은 싸늘하게 웃음 지었다.

“─그렇지?”

“물론입니다.”

청유백도 그녀를 따라 웃어 보였다. 혹자가 보면 비열하다거나, 사악하다 말할 웃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 부인에게는 너무도 마음에 드는 미소였다.

‘아아, 훌륭하구나.’

유 부인은 청년의 눈동자에서 온몸에 어리는 전율을 느꼈다.

아, 이 얼마나 비정한 눈동자인지.

자신의 아이가 이리 자랐다면 퍽도 좋았겠건만, 청률은 이리될 수 있는 심성을 지닌 아이가 아니니.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잘 크면 그만이지.’

유 부인은 마음속 한쪽에서 서성이는 청률에 대한 생각을 접어 버리고는,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었다.

“굳이 긴말을 나눌 필요는 없겠지. 자네와 나는 그저 거래를 했고, 나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선물할 뿐.”

검은 목함이 상서로이 반짝였다.

유 부인이 약속했던 물건.

환마단이었다.

“그게 전부인 일이지.”

딸깍 소리를 내며 목함이 조용히 열렸다.

며칠 전 보았던 그것은 온전히 그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청유백은 아무 대답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내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반 갑자의 내공이라면, 당장 눈앞의 내공 부족은 해결할 수 있다.

청유백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했는가, 혹은 다른 무언가의 생각인가.

유 부인은 대뜸 겸양을 떨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도 되겠는가?”

“얼마든지요.”

“방금 의약전에서 청궁우에 대한 진단을 듣고 오는 길일세. 앞으로 검을 잡기는커녕, 사지 멀쩡한 생활은 단 하나도 기대할 수 없겠다더군.”

당연한 일이다.

청유백은 굳이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자비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번 한 번 전력을 담아 분질러 주었다는 쪽이 옳을 테다.

그러게 어떤 것이 좋으냐 물을 때 대답 좀 하지.

쯧쯧, 세상은 역시 인사성 밝은 놈이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어쨌든, 하지만 그 와중에 목숨은 붙어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라─.

유 부인은,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남은 생을 상상하기도 했다.

앞으로 팔도, 다리도 제멋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평생을 누군가의 수발을 받으며 살아야 하리라.

유 부인은 언뜻 물었다.

“자네는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청유백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그리고 진실로,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유 부인은 말을 이었다.

“나는 좋은 일이지. 그 아이에게 애정이 있을까, 사랑이 있을까. 그 아이가 살아서 내게 주는 것이라고는 증오와 분노밖에 없음이야. 또한, 이 일로 하여금 내게 어떠한 비난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옳은 말이었다.

작금의 일과 유 부인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지금의 당사자 둘을 제외하면 없다.

아들인 청률조차도 모르는 꼴이었으니, 유 부인에게 비난이나 책임을 물을 사람 또한 없었다.

“하지만 자네는 어떨까.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아이의 삶을 끝내 버렸다는 멍에,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분노, 멸시….”

유 부인은 짐짓 말끝을 흐렸다가, 숨을 들이쉬며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죄책감이 들지는 않냐는 말일세.”

죄책감.

죄책감.

죄책감이라?

청유백의 귓가에서 그 말이 세 번 정도 맴돌았다.

길다 할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만, 나름의 결론을 내릴 만한 시간은 되었다.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글쎄올시다?’

“글쎄요. 저는 나름의 자비를 베풀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죽이지도 않았잖습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정도의 상처라던데 말일세.”

“제 알 바입니까? 죽고 싶으면 자살하든지 하겠지요.”

혹시 모른다.

자신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민간인을 잡아 죽이고, 그 가족의 원한을 샀다면 일말의 죄책감 정도는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청궁우는 검을 뽑아 든 무인이다.

“무릇 검을 뽑은 자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고, 남을 베고자 하는 자는 자신도 베일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일 터.”

그것이 무인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이다.

검과 검, 생명과 생명을 놓고 싸운 결투에서 싸운 결과를 내었을 뿐.

그저, 그것이 전부였다.

“맞찔러 죽일 각오를 하고 있는 자를, 살려 달라는 소원대로 죽이지도 않았건만. 어디의 죄책감의 요소가 있단 말입니까?”

[…….]

천마혼은 탐탁지 않았는지 침묵하고 있었지만, 청유백은 진심이었다.

대체 지금껏 얼마나 많은 피를 이 손에 묻혀왔던가.

이제 와서 그깟 놈팽이 하나 쳐 죽였다 하여, 이 붉은 손이 무언가 다르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큭큭, 그렇군.”

유 부인은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청유백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그녀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대답, 잘 들었네. 언젠가 한번 차라도 함께 하기로 하지, 청유백.”

“살펴 가시지요.”

청유백은 꾸벅 고개를 숙였고, 유 부인은 굳이 뒤돌아볼 필요도 없이 금세 떠나갔다.

한적한 바람만이 떠도는 공허한 자리에서, 천마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야.]

‘왜.’

청유백이 대꾸했지만, 천마혼은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혹은 청유백이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몇 초간 그리 침묵하다 말했다.

[죽이기 위한 검은 너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너는 언젠가 네 이상에 잡아먹히고 말 게야. 어찌하여,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각오를 논하는 세상이 되었더냐?]

세상이 그래서는 아니 된다.

어린아이는 아직 꿈을 품고 뛰놀아야 할 나이지, 결코 각오 따위를 입에 담아서는 아니 된다.

천마혼은 그리 언질했고, 청유백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각오? 이미 수십 번은 했었지.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고.’

[어린놈이, 그게 대체 무슨─]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와 자신의 대화가 어딘가 엇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 어린놈?

이 천마혼이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대체 얼마나 나이를 먹었건 자신에게 나이가 적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일흔여섯 번의 삶을 살면서 거친 시간을 생각하면, 신선쯤 되지 않고서야 제게 어리다 말할 수 없다.

청유백은 문득 떠오른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아, 그렇군. 내 기억은 볼 수 없는 건가?’

[네 기억? 무슨 소리냐. 이미 모든 것을 보았다. 네 불우한 과거와, 청궁우라는 놈의 악행. 그리고 저치와의 거래.]

천마혼이 말한 것들은 전부 청유백의 기억들이었다.

‘천류하’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마혼은 그것을 모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를 도운 이유는 네 과거를 동정했음이야. 결코 살육의 길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흠, 글쎄….”

청유백은 그제야 이 천마혼과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냥저냥 소통이 되었던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쌍방이 노련한 경험과 긴급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숙련되어 있었던 것일 따름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천마라는 직함은 공기놀이로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즉.

지금의 그녀는 이 ‘청유백’의 원주인이 살아왔던 기억을 읽을 수 있을 뿐, 지금의 ‘천류하’의 기억은 읽을 수 없는 것일 테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게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리 웃느냐.]

‘그냥, 긴 밤이 될 것 같다고.’

청유백은 즐거이 대꾸했다.

* * *

남은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사흘, 고작 3일의 시간.

결코 빈말로도 길다 할 수는 없는 시간이지만, 고작 그 시간 만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느 때와 같은 풍경, 여느 때와 같은 바람임에도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거, 말 좀 해보게. 자네가 그나마 좀 마당발 아닌가. 그 총관 나리는 괜찮으시단겨?”

“몇 번을 말하나, 며칠 전에 쫓겨나고 본 사람이 없다고! 당최 내가 그걸 어찌 아누?”

“마님은? 평 부인 마님은 뭐 하고 계시는디?”

“몰러.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으신단다. 뭐가 됐든, 앞으로는 좀 팍팍하시지 않것어?”

가문의 어디를 가도 소문의 화두는 대부분이 같았다.

평 총관은 경질되어 쫓겨났으며, 평 부인은 평천상단과의 관계를 생각해 계속 청가에 머무르겠지만 앞으로는 그 권세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앞으로 며칠이면 잠잠해질 소문이기는 할 터이나, 고작 그러한 소문만으로도 가문 사람들의 평판이 오르내리기에는 충분했다.

무릇 평판이란 작은 소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누군가는 그나마 전 상관으로서 대우하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개인적인 울분까지 담아가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리는 무슨 나리, 소혜 그 기집애 얼굴이 반쪽이 났더구만! 그 인간 때문이라며? 경을 쳐야지 아주!”

“어유, 그러고 보니 소혜는 일어났대? 어린놈이 괜찮을는지 몰라.”

“뭘. 걱정혀? 유백 도련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지. 이틀이나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셨잖여.”

“당연한 거지 그럼! 그간 소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어유, 그러게 진즉에 주방으로 오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걸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득바득 우기더니 말이여!”

“좀 가만히 있게. 애가 좋다는 걸 왜 자네가 뭐라 하나!”

“내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다른 얘기나 하세. 그것보다는….”

사람들의 입담은 그칠 줄을 몰랐고, 그 소문은 어느덧 장본인들의 귓가에까지 흘러갔다.

* * *

그 시각, 청유백.

[아니, 그 기맥이 아니래도! 선조의 말을 좀 귀담아 들어라!]

‘시끄럽다, 천화. 알아서 한다니까 왜 굳이 신경질이냐?’

[네놈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도 모르느냐? 본녀의 말만 들으면 자면서도 떡이 나온다, 이 핏덩어리 놈아!]

‘그건 모르겠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알지. 세상이 발전하듯 무공도 발전하거든.’

[도통 말이 안 통하는 놈이로다! 어찌하여 네놈 같은 망나니가 교주의 업을 계승했을꼬?]

천마혼, 어느덧 통성명까지 한 그녀 천화(天華)는 말 안 듣는 후대 놈을 질책하며 탄식했다.

처음에는 ‘나 때는 말이야, 내 이름을 부르는 놈은 모가지가 날아갔어요’로 시작한 서른여섯 종류의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놈은 도통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리 죽이면 안 된다고!

살육은 안 된다고!

업보 쌓지 말라고!

하지만 어림도 없었더랬다.

게다가 어느새 제 이름을 친구 부르듯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그 정신머리부터 마음가짐까지, 천화는 청유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정말이지 하나도 없었다.

더 나아가, 그의 기억까지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말해라. 거짓이지? 윤회전생(輪迴轉生)이라니, 그것도 뭐? 일흔여섯 번? 그게 말이나 되느냐?]

허, 참.

천자마(天子魔)를 섬기는 천마신교에도 물론 윤회전생의 교리는 있다.

사바세계와 극락, 지옥을 오가며 인간은 계속해서 태어나고 죽어간다.

그리고 그것에서 초탈하여, 생과 사의 경지를 넘볼 수 있는 자─

그러한 자를 천마(天魔)라 부르며 교주로 숭상하는 교리가 바로, 이 마교의 주체였다.

즉, 그녀로서도 마냥 생뚱맞은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좀 정도라는 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흔여섯 번의 회귀라니.

그것도 같은 생을?

무슨 회귀를 부모님 막걸리 심부름 하듯 한단 말인가.

천화는 어이가 없다며 연신 이죽거렸지만, 청유백의 입장으로서는 전부 진실이었기에 무어라 더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도 따질 것은 있다.

‘말이나 되느냐고? 말이 안 되는 건 너지. 전생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냐 소냐?’

전생의 기억.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을 제외한 주변의 기억이다.

보통이라면 강림한 천마혼이 뭐 하던 놈이었는지 신경 쓸 가치도 없다 느꼈겠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청유백의 기억에, 마교에는 여성 교주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모든 소교주는 천마 자리에 오르기 전에 마교와 중원의 역사, 그리고 중원 진출의 염원을 주입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천화’라는 이름의 천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여성이라면, 그 특이성이라면 대번에 기억이 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문에 청유백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시대의 사람인지.

몇 대 교주이며, 그때의 마교는 어떠했는지 따위의 것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모르겠다.]’

였다.

당연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모르긴 뭘 몰라.

아침상 반찬 까먹듯 까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나라 국호(國號)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게 말이나 되나?’

[네 체질 탓인 것 같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 네 구마지체에 안 맞는 상단전을 억지로 열어젖히고, 본녀씩이나 되는 사람을 불러들이니 부작용이 날 수밖에!]

즉, 용량이 너무 커서 본인의 기억을 전부 수용하지 못했다.

이 빡대가리야.

라는 소리.

청유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뇌까렸다.

‘너 씩이나? 너 ‘밖에’겠지. 한 게 뭐 있으시다고?’

[아까부터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으냐! 이 배은망덕한 녀석아!]

‘내가 알아서 한다! 거참, 고작 환마단 가지고 더럽게 쪼잔하네.’

[뭐?! 나 때는 말이다!!]

서역의 언어로 라떼 이즈 홀스.

또 한 번 천화는 주저리주저리 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고, 청유백은 귀를 막을 수조차 없어 묵묵히 눈물을 머금으며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몹시 기묘했다.

보통 천마혼과 현대 천마의 관계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기 마련이었다.

선대의 심득과 요령, 인생철학(…) 따위를 전승하며 더욱 완벽한 천마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천마혼의 존재 의의니 말이다.

즉, 쌓여간 세월의 힘이라는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청유백은 천마로서 이미 완성된 존재였으니, 무어 새롭게 끼어들 요소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유 부인이 주었던 환마단을 어떻게 단전에 녹여내느냐─ 그따위 일로 싸우기를 어언 반나절.

말싸움을 하면 귓구멍을 틀어막을 수가 없는 청유백이 필패일 수밖에 없으니, 청유백은 그저 눈물을 머금고 침묵으로 일관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익숙한 목소리가 인기척과 함께 들려왔다.

“도련님, 수련 중이신가요?”

[세상에, 우리 귀염둥이 왔구나! 아니라고 대답하거라, 빨리!]

‘…….’

청유백의 기억을 본 천화는 소혜가 퍽 마음에 드는지, 소혜를 볼 때마다 제멋대로 몸을 움직이려 하고는 했다.

가령, 눈앞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팔을 올리려는 것을 청유백이 전력으로 저지해야 했다던가.

어느덧 들어와 평소처럼 상차림을 하는 소혜를 바라보며,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쉬어도 된다 하지 않았느냐.”

“아니에요! 크게 다친 곳도 없었고…. 저 없으면 도련님 밥은 누가 챙겨 주겠어요?”

겉보기에도 이렇다 할 외상은 없기는 했다.

그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충격이 컸던 것일까, 혹은 어린 마음에 배신당한 것이 두려웠던 탓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표정이 어두웠건만, 어느새 딛고 일어났는지 여느 때처럼 활기차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 그리고 손님이 오셨는데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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