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복수는 과할수록 좋다 (2)
‘끝까지 가지고 놀다가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청궁우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있었다’라는 말의 의미란, 즉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다는 소리다.
혹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말하는 쪽도 괜찮겠다.
조금 말이 돌아가기는 했는데, 다시 말해서 무슨 소리냐 하면.
“카…학.”
누구든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는 있다는 소리다.
처맞기 전까지는.
[으음….]
“꺼억, 컥…자, 잠까…꺽!”
공허한 비명이 허공에 토해졌다.
청궁우는 막는 데 급급하여 팔을 올리고 방어하는 데 힘을 쏟고 있었지만, 청유백은 웃으며 더욱 가속하여 청궁우의 사각을 찔러 들어갔다.
“왜 그러냐? 조금 더 분발해보지. 쓰레기 같은 실력이지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잖나.”
─빠악! 빠악!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청궁우의 머리가 좌우로 돌아갔다.
분명 처음은 진검승부로 시작한 결투였을 터인데, 그것은 어느새 결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무언가로 변질되어 있었다.
“세상에, 천자마(天子魔)시여….”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이 결투에서 검이 사용된 것은 단 한 번, 그 소리가 울린 것도 단 한 번이었다.
한순간, 청유백이 활시위를 끌어당기듯 팔을 크게 휘둘러 검을 뽑아든 ─그다음 순간에서부터.
그리고 그것에서 치솟은 검은 검기가, 청궁우의 칼을 날려 보내기까지의─단 한 번.
그것이 이 결투의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결코 결투라 부를 수 없는 폭행이 이어질 뿐이었다.
“컥, 커헉, 억!”
청궁우라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반격을 해 보려 주먹을 뻗기도 하고, 피하려 몸을 비틀거나 방어를 위해 팔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기묘할 정도로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말도, 말도 안 돼. 이게 대체 뭐냐? 이게… 이게?’
뻗은 주먹은 찰나도 지나기 전에 궤도가 비틀려 옷깃을 가까스로 스치는 정도에 그쳤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던 주먹은 기묘한 궤도로 휘어 언제나 급소를 가격했다.
“끄아아아아악!!”
허공을 찢는 비명과 함께, 청궁우가 팔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나려타곤(懶驢打滾)?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목적이라도 있는 행위다. 저것은 그저 고통을 누르지 못해 바닥을 구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저, 저거!”
구경하는 훈련생들 중 하나가 청궁우의 팔을 가리켰다.
결코 꺾일 수 없는 각도로 휘어져 있는 청궁우의 팔.
청궁우는 이미 푸르게 부어올라 형체조차 알 수 없게 된 얼굴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청유백을 피해 도망치려 뒷걸음질 쳤다.
누가 봐도 이미 승부는 난 상황.
이 결투의 결과가 이리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예상은커녕 고려조차 하지 못한 장로들은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눈알을 부라릴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결투를 극렬히 반대했던 평택이나마 청걸명의 앞에 나서서 말했다.
“가주! 멈춰주십시오. 이미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까!”
승부가 났다?
그 말로는 모자라다.
승부는 오래 전에 났다.
작금의 상황을 멈추라 말한다면, 저 일방적인 폭행을 멈추어 달라며 있지도 않은 ‘협의’에 기대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가주!!”
“크음….”
그러나 아들을 공평히 사랑한다 말했던 가주는 그저 침묵할 뿐.
유 부인은 이번만큼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총관, 결투의 규율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천마신교의 결투는 숭고하다.
강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강자존(强者尊)의 원칙을 지키는 마교는 그 근간이 되는 결투의 규율을 몹시 엄중하게 여겼다.
작은 승부나 교류를 위한 비무라면 모를까, 목숨과 권리를 건 생사결에서의 규칙은 몹시 단순명료.
죽거나, 죽이거나.
혹은, 제 의지로 수치를 무릅쓰고 패배를 인정하거나.
“결코 타인의 개입은 없어야 할 것을 아실 텐데요.”
“알지요, 잘 압니다. 하지만 저것을 어찌 결투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굳이 상대의 검을 쳐내어 날려 보내 놓고서는, 자신도 검을 놓고 주먹으로 팬다는 행위를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하겠는가.
그저 청궁우가 아직까지 패배를 외치지 않은 것이 용하다 할 정도로 승부는 압도적이었다.
평택은 저리 얼굴이 붓고, 이빨도 몇 개씩이나 나가고, 사지 중 한 부위도 성치 못해 벌벌 기어 청유백에게서 도망치는 저 꼴을 도저히….
볼… 수…?
‘…도망치는 꼴?’
평택은 잠깐 이성을 되찾고는 둘의 결투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허, 어어, 허어억, 어, 커억!!”
청궁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힘 빠진 바람 소리.
결코 기합음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싸울 의지가 없는, 공포와 도주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비명이다.
‘왜 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냐?’
사나이의 근성인가?
혹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오기인가?
아니, 아니다.
청궁우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다리를 어떻게든 후들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고, 부러진 팔을 감싸 안은 자세는 도저히 싸우는 이의 자세라 보기 어려웠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시인은 하고 있지 않았다.
‘서, 설마….’
아냐. 아니다.
평택은 잠깐 무언가 하나의 경우가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마, 인두겁을 쓰고서 어떻게 그딴 일을 벌이겠는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복기하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호소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가주, 이미 궁우가 졌습니다. 결투를 멈춰 주십시오!”
“아직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네.”
“가주!!”
“무인에게 있어 자신의 패배를 남이 재단하게 두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치욕스러운 짓임을 알 터. 궁우가 무언가 생각이 있어 저리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평택은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말마따나, 전부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강함, 그리고 그에서부터 비롯되는 명예.
마교의 십만 교도의 마음가짐의 근간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그 정점인 육대가의 자식은 어떠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 결투를 끝내버리고 싶었지만, 명분도 권력도 없으니 평택은 그저 하릴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 * *
이제는 승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모두의 이목을 끄는 관심사는 단 하나였다.
도대체, 청궁우는 왜 패배를 시인하지 않는가.
“…카악, 어아아악…. 꺼억!!”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기는 고통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훈련생들은 진귀하게도 지금껏 궁금했던, ‘복장 터지는 소리’가 대체 무엇인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거진 북소리와도 비슷한 그것은, 때로 비명 대신 허공을 메웠다.
어쩌면 스스로 인간 악기라도 되어 후배들에게 진귀한 경험이라도 시켜 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자가 청궁우에게 그 오기의 이유를 묻는다면, 청궁우는 단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이리 대답할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니라고.
‘목소리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
시야는 이미 초점이 흐려져 눈앞의 물건조차도 똑바로 분간할 수가 없다.
그저 눈을 뜨고 있으면, 한쪽 시야가 검게 메워지면서 극심한 충격이 가해진다.
그것이 전부다.
차라리,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는데, 대체 무슨 연유인지 이리 죽도록 맞아도 정신은 여전히 뚜렷했다.
아까, 청유백이 제 목과 가슴팍의 혈도를 친 이후부터 이러했다.
‘그만… 그만….’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청유백이, 그 청유백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청궁우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 청걸명을 향해 흔들려 했다.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이 결투를 멈추라 몸짓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딜 보는가. 집중해야지?”
“칵….”
청유백은 방긋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청궁우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청궁우가 팔을 들어 올려 흔들려는 찰나, 청유백은 신속하게 또 한 번 청궁우의 혈도를 점했다.
“자, 여기가 구미(鳩尾), 여기가 척택(尺澤)이다.”
보름 전과는 다르다.
먼지만 한 내공도 없이 단 한 순간 마혈을 점해 움직임을 멈췄던 그때와는 달리 십 년 치의 마기가 있다.
넉넉하다 말할 수는 없으나, 지금 이 청궁우 하나를 처리하기에는 충분하고 남는 양이었다.
“팔을 못 들겠지? 나도 안다. 그러게 왜 이 즐거운 시간을 멋대로 끝내려고 하나?”
정말 슬프기 그지없는 일이다.
분명 저놈이 기대하라고 말해서 한껏 기대했건만, 청률 같은 의외의 한 수도 없고, 녹지연 같은 잘 단련된 지성도 없다.
정말, 패는 맛 하나 없는 놈 아닌가.
청유백은 쓰러진 청궁우의 몸 위에 올라타 앉았다.
청궁우의 왼팔은 아까 기형적으로 부러졌었고, 오른팔은 방금 점혈당해 어떻게 저항할 방법이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제압하여 패배감을 박아 넣는 것만큼 사람을 효율적으로 길들이는 방법이 또 있을까.
자존심을 부수고, 자신감을 부수고, 때로 사람으로서의 존엄 그 자체를 박살내며.
“나는 너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었으며.”
청유백은 청궁우의 무방비한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속죄의 기회를 주었고.”
꽤나 볼만했던 귀공자의 얼굴은 오래전에 부어오르고 함몰되어 더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둔탁한 소리가 더 오가도, 청궁우는 정신을 잃지 못했다.
“또한, 최후의 자비를 베풀었다.”
청유백이 때리는 와중에도 계속 훈혈(暈穴)로 기운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훈혈을 점하면 정신을 잃어 쓰러지게 되지만, 반대로 훈혈의 기운이 강하게 돌아 제 일을 과하게 하게 되면 신경이 일부 마비되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하지만 청궁우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단지 혈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내공을 불어넣어 상대방의 흐름에 간섭하는 것.
그것은 초일류의 무인이라도 함부로 펼칠 수 없는 기술이니 말이다.
어찌 그것을 청유백이 쓰겠는가.
“아프냐? 아파? 그럼 빌어 처먹을 자식아, 고작 열댓 살 계집아이 혈도를 점하고 패는 것은 안 아팠겠냐?”
청유백은 슬슬 저려오는 팔목을 저으며 숨을 내뱉었다.
분근연혼으로 몸을 단시간에 강화했다고는 하나, 역시 한계는 있는 법이다.
고작해야 일각, 조금 더 있다면 숨도 벅차오를 것이다.
어차피 청궁우는 이제 저항할 능력이 없겠지만, 굳이 무리해서 한계가 유력하다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으리라.
청유백은 숨을 내뱉으며 뇌까렸다.
“뭐 어려운 말 할 필요 없이, 참을 인(忍) 자 세 개 새겼다 이 말이다.”
참을 인 석 자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그럼 그 말인즉슨, 네 자째면 죽여도 된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오늘만 네 번째다.
원래의 청유백이 참았던 횟수를 생각하면 네 번째는커녕 사십 번도 아득하게 넘었을 터.
청궁우의 침묵은 단지 고통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죄에 대한 속죄이며 동시에 처벌이기도 했다.
“치욕스럽게 목숨만 연명해라. 걱정 마라, 후에 병이라도 걸리면 성심성의껏 치료해 줄 테니.”
죽이지 않는 이유?
단순하다.
이빨도, 팔도, 다리도 없이 그저 살아만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을 게 무어 있겠는가.
“이리도 공들여 사지의 근육을 갈기갈기 찢어 주었거늘, 금방 죽어 버리면 내 수고가 빛바래지 않은가.”
청유백은 오늘날까지의 어떤 웃음보다도 맑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자, 아혈을 풀어줄 테니 말해라. 꼴사납게 목숨을 구걸하면, 저기 저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네 외숙이 당장에 달려올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대체 네가 뭔데, 그런 처벌을 멋대로 집행하냐고.
네가 그리 잘났냐고.
그리고, 청유백은 대답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
천마란 그런 존재다. 십만 마교도의 정점에 군림하며, 모든 처벌과 행상을 아우르는 존재.
천마신교 정의의 기준은 천마가 결정하며, 당연히 그가 유죄라 일컫는 것은 유죄가 된다.
그리고 지금껏, 청유백은 자신의 판결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
청유백의 눈에서 이채가 빛나며 청궁우의 눈과 마주하고, 청궁우는 이빨도 다 나가 겨우겨우 벌어지는 입으로 짧은 음절을 내뱉었다.
“살려…주….”
* * *
결투는 싱겁게 끝났다.
청궁우가 입을 열자마자 난입한 평택과, 그를 제지하기 위해 곧장 달려든 무사들.
그 누구도 청궁우가 이겼다 입을 열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청유백이 이겼다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청궁우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을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청궁우는 포기하지 ‘않던’ 것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못한’ 것이지.
이 결투라고도 부를 수 없는 폭력 사태에, 청천각의 문이 다시 열려야만 했고, 청유백은 잠시 동안 방치되었다.
“소혜는 어떻게 됐지?”
청궁우가 의약전으로 급히 실려 가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악웅이 풀어주라 명하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그 이후로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이었다.
청유백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천마혼이 툭 언질했다.
[아까 의약전으로 실려 가는 것을 보았느니라. 퍽 두려웠었는지, 풀려나자마자 실신하더구나.]
‘그래? 다행이군.’
청유백은 인질극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자신이 쓰는 것도 싫고, 남이 쓰는 것도 싫어한다.
자신이 쓰는 것은 고작 그깟 계책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몰려 있다는 상황이니 싫어하는 것이었고,
남이 저에게 쓰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인질극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흔여섯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친우와, 가족과, 수하를 잃었던가.
이제 그에게 인질은 그저 숫자로 세는 물건의 개수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지금껏 산 삶과 전혀 다른 인생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자신은.
소혜가 끌려갔다는 발언에 그토록 분노하던 자신은, 여전히 과거의 패도천마처럼 어떠한 이변 속에서도 철인처럼 일관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장로든, 가주든, 유 부인이든 저에게 할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피곤하다는 말로 전부 일축했다.
‘자, 천마혼. 너랑은 할 말이 많지. 그렇지 않나?’
[흐음, 사랑 고백은 받아줄 수 없는데….]
‘치매로군. 의원을 찾아가 봐라.’
청유백과 그녀가 옥신각신하며 방으로 향하려던 찰나.
공교롭게도 청유백의 방 앞에서 불청객이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훌륭하더구나. 몹시.”
유 부인의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위로 치솟아 올랐다.
마치, 이 어여쁜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