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26화 (26/200)

제26화. 누가 결정했느냐 물었다 (6)

청유백이 향낭을 던지자, 녹지연은 행동의 판단보다도 먼저 반사적으로 독의 여부를 확인했다.

청가의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곧장 검을 잡듯, 녹가의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하면 독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십수 년 동안이나 배우고, 또 반복한 일이었으니 그녀에게 독의 감별 따위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 결과를 말하려니 좀처럼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이 정신 나간 남자가….’

이건 독이다.

녹운표가 말했듯, 칠공독이라는 이름의 극독.

반박할 여지도 없이 명확한 사실이었다.

우연히 조금 섞인 정도도 아니고, 확실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용독한 것이 대놓고 보일 정도의 일품이다.

하지만 청유백이 이 향낭을 던져주며 제게 지은 자신만만한 웃음은, 이 섬뜩한 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직접적으로 전음이나 속삭임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청가의 최고수들이 모인 이 공간에서, 혹여 전음을 훔쳐 들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무어 필요할까.

그가 등 뒤로 지어 보이는 눈웃음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확실히 그의 속내를 전달했다.

‘알지? 똑바로 대답해.’

알기는 뭘 알아.

‘미친 인간.’

대체 저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그냥 허세도 아니고, 이 찻잎으로 저리 대놓고 독차를 타 놨다.

도망칠 구석을 제 스스로 막은 격이니, 저 행위가 뜻하는 바는 명료했다.

저가 지껄이고 있는 것을, 지금 바로 증명하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것은 독이 분명하고, 저걸 마시는 순간 골로 갈 것이 뻔한 일.

당연히도, 그 정신이 똑바로 박힌 누구라도 저 미친 짓에 동조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

‘…그래서 나를 부른 거겠지.’

그래, 칠공독이 뭐 어쨌다고?

저 사내는 지난번에 천주혈독을 아무렇지 않게 삼켜 버리지 않았던가.

정신이 똑바로 박히고서 그 광경을 진실로 여길 리가 있을까?

칠공독이 아무리 위험한 물건이라고는 쳐도, 천주혈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물건이다.

이번에도 필시 무언가를 준비해 두었을 터.

한번 저를 믿고, 미친 척해 보라는 속뜻이 잘 전해졌다.

‘당신, 나한테 빚진 거야.’

녹지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숙,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라고?”

“대체 무엇을 받기로 하신 거죠? 녹가의 명예를 팔아 가면서까지, 받아야 할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 거짓을 고하는 건가요!”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하늘에 맹세코 나는 진실만을 말했다!”

녹운표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진실로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의 개탄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 녹지연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한껏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녹가는 태생부터가 독과 기만의 전문가다.

어느 쪽이고 간에 억울함의 진위를 가리기 어려웠다.

허나 이번에는 진실만을 말했다고?

‘물론 그렇겠지.’

녹지연은 거짓의 가면을 쓰며, 속으로 코웃음 쳤다.

진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녹지연은 녹운표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안다.

어찌 되었든 한 가족 아닌가.

그렇기에, 그가 독에 관련된 것에서 거짓을 고할 정도로 영악한 인간이 아니란 것 또한 안다.

저 평 총관이라는 작자와 작당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차라리 진짜로 하독을 하고 말지 없는 독을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터다.

근데, 그래서 뭐?

‘그게 뭐 어쨌다고?’

거짓말이 질책받는 때는, 그 말의 진위 여부가 거짓으로서 입증되었을 때다.

누구도 진실을 모를 거짓말 따위 알게 뭔가?

그저 ‘진짜다!’라고 우겨 버리면 그뿐인 일이다.

청걸명은 근심어린 신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 말인즉?”

“녹가의 장녀가 제 아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이것은 독이 아닙니다.”

“무슨! 무슨 소리를! 저것은 분명한 독이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청가의 가정사는 순식간에 녹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결국은 다른 사람을 또 불러 세 번째 감별을 맡기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움은 거기까지 퍼지진 않았다.

한순간의 소란이 멎고 소란 대신 찾아온 것은 고요.

그리고 한 사내의 조용한 목넘김 소리였다.

좌중의 시선은 청유백에게 집중되었다.

청유백이 조용히 은그릇을 두 손으로 들더니, 그것을 꿀꺽꿀꺽 삼켜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

“무, 무슨!!”

장내의 소란이 일거에 침묵했다.

평 부인은 손톱을 까득이며 ‘제발 죽어라’ 따위의 생각으로 청유백을 노려보았고, 유 부인이나 청걸명은 기실 그대로 행동 자체에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반쯤 청유백의 행동을 확신하고 있었던 녹지연조차 저리 대담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챙, 채챙!

우렸던 찻잎의 조각조차 전부 비워진 은그릇이 쨍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한순간, 평 부인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독이 돌았구나!’

하지만 평 부인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청유백이 다음에 뱉은 것은 토악질이나 핏물 따위가 아니었다.

일 초,

이 초,

삼 초.

그리고,

“꺼어어억.”

“……?!”

한 번 거나하게 더부룩한 폐를 비워낸 청유백은 무슨 일 있냐는 양 팔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흠, 평 부인께는 안타깝게도, 제가 칠공에서 피분수를 뿜으면서 죽어가지는 않는군요.”

모두의 눈빛에 당혹, 혹은 경탄이 스쳐 지나갔다.

“배는 좀 부르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것은 그것을 독이라 증언한 녹운표였다.

“마, 말도 안 돼! 칠공독을 그릇째로 마시고 살아 있을 리가 없소!”

“하지만 멀쩡하지 않습니까.”

청유백의 말마따나, 그의 안색, 박동음, 호흡의 규칙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

혹여 중독이 되고, 그 독기를 내공으로써 억누른다고 하더라도 그 증세나 막고 있는 영향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 보통.

하물며 칠공독은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효과를 보는 살인용의 극독이니 더한 설명이 필요가 없다.

“도, 독을 내공으로 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네!”

“말이 되는 소릴 하게. 자네는 내공으로 독을 억누르며 저리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는가?”

“그건…!!”

“심지어 유백이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리는….”

급기야 가문의 어른인 장로들끼리도 의견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야 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십 년간이나 포기하고 있던 청유백이 어찌 저리 강성하게 자라 저런 기도를 품고 있는지부터, 저것이 독이 아니라면 대체 평 부인이 아까부터 주장하던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이미 수십 년을 가문의 정치 싸움에서 구르고 구른 인물들은 이다음의 일까지도 고민해야만 했다.

과연, 평 부인이 아직도 견고한 동아줄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주판을 튕길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청걸명이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평택을 돌아보았다.

“그 말인즉슨….”

마치 불변하는 진실을 선언하기라도 하듯, 옅게 뇌까리는 목소리.

“평 총관이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이로군. 그렇지?”

“하, 하지만 청가주! 나는 진실을 말했소! 저것은 분명 독이란 말이오!”

녹운표는 당황하여 그렇게 외쳤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저 찻잎의 독성을 향만으로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녹운표와 녹지연뿐.

한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녹지연은 청유백의 편에 붙었고, 청유백은 녹지연의 말을, 그 차를 직접 마심으로서 증명했다.

분명 독일 것이 분명한 그 차를!

‘대체 이게 어찌 된 조화란 말인가!’

해독약을 미리 준비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계획을 청유백이 미리 알았을 리도 만무할뿐더러, 해독약을 입속이나 그릇에 감춰두었다 한들 칠공독은 그리 쉽게 중화할 수 있는 독도 아니다.

이해할 수가 없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肢體)가 아니고서야 저럴 수는 없는데!’

자신은커녕, 현 녹가의 가주조차도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해 절차탁마하고 있는 것이 십수 년째다.

가주는 곧 그 경지에 오를 것 같지만, 일단은 현재의 자신조차도 요원한 경지가 바로 만독불침.

독공을 끝없이 갈고닦아, 비로소 모든 독이 통하지 않게 되는 몸을 얻는 경지다.

하지만 저 어린, 하물며 쓰레기 공자라 불리우며 멸시받는 소년이 그런 경지에 이르렀을 리도 없지 않은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녹가의 일원인 자신도 이럴진대, 그저 방관하고 종용만 할 수 있을 뿐인 청가의 장로들은 어떠할까.

“청가주! 믿어주시오! 청가주!”

자신이 이리 목 놓아 부르짖어도, 가주와 장로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독의 전문가인 자신도 저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고, 증거조차 내밀 수 없거늘.

저쪽은 저리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내밀었는데 어찌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녹운표가 그리 좌절하는 사이, 평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박한 것.”

그리 말하는 평 부인의 눈빛에 담긴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는 경멸.

동시에, 이 흐름 속에서도 아직 그녀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평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유백의 앞으로 다가섰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나, 네놈이 한 짓을 내가 못할 것 같으냐?”

“부, 부인.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저놈이 직접 몸으로서 증명했다면, 저 또한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허, 허나….”

“독이 아니라면서요? 하면, 제가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편을 들어주는 장로의 걱정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어조는 이미 반 이상이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저럴 리가 없어. 저것에 직접 하독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는데!’

“물을 가져오거라! 어서!”

하지만, 그것이 상당히 충동적인 행동임과 동시에.

청유백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행동이기도 했다.

‘…호오.’

얼핏 청유백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두통과 근육통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있는 것에서 발원한 이유가 반.

평 부인의 생각지 못한 행동에서 발원한 이유가 반이었다.

저것이 독임을 알고 있음에도, 저를 몰락시키기 위해서는 제 몸 따위 사리지 않는다는 것인가.

‘조금은 평가를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그저 평택의 능력에 묻어가는 쓰레기인 줄로만 알았거늘, 제 목숨을 담보로 얹는 결단력 정도는 있는 듯 보였다.

재밌는 흐름이었지만, 청유백에게 좋은 흐름은 결코 아니다.

‘외통수군. 어떻게 한다.’

녹지연을 불러 증언하게 하고, 자신이 증명하는 수.

이것은 지금 들고 있는 패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초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이 일의 전말조차 알지 못했으며,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은 단 반각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 평 부인이 저것을 마시면 그녀는 확실하게 쓰러진다.

독에 저항할 생각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리라.

그녀가 준비한 독이니만큼 해독제도 분명 있을 테고, 저것이 독이라는 것만 확실하게 증명하고 퇴장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의 흐름만이라도, 제게는 충분히 위험했다.

어찌할까.

당장에 이 찻잎을 불태워 없앨까.

‘아니, 아니다.’

방금 평택을 압박하느라 너무 많은 마기를 소모했다.

안 그래도 마기의 총량이 많지 않고, 여기서 삼매진화를 펼친다 해도 이 찻잎을 전부 불태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다음에는 청궁우를 손봐줘야 하는 일이 남지 않았는가.

“여기 있습니다.”

어느덧 하인이 물이 가득 든 은그릇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것은 곧 평 부인의 손에 전해졌고, 이제 평 부인은 청유백을 바라보며 당당히 손바닥을 펴고 있었다.

“내놓아라.”

청유백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방법은 없지만, 그렇다 하여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추하게 벌 생각도 없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할까.’

두통을 억지로 억지로 견뎌가며, 청유백은 단지 한 순간을 수백 조각으로 쪼개어 생각했다.

─빠직.

수많은 상념과 고민이 오간다.

마치 번갯불이 튀기듯이, 척수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전신을 내달렸다.

그리고, 평 부인의 손 위에 그 작은 향낭을 올려놓은 그 순간.

“크윽!!”

청유백은 향낭을 쥔 채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뇌리가 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슨 일인가!”

“혹여 내공으로 막고 있던 독기가 새어나온 것은…!”

“그것 보시오! 독이라 말하지 않았소!”

‘망할, 이건…!’

독이 아니다.

오히려, 독은 이 몸을 내달리며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 주고 있었다.

이건 전혀 다른 것.

지난 보름간이나 저를 괴롭혔던─

‘크윽!’

─선명한 고통.

녹지연과 녹운표가 다가와 급하게 맥을 잡아 보려 했지만, 청유백은 그것을 뿌리치며 울리는 머리를 안정시키려 온 힘을 쏟았다.

“크윽, 허억, 허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시간? 며칠?

아니, 혹은 단 일 초도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올려다본 청유백의 시야에 당혹으로 물든 시선이 한가득 비춰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청유백은 어느새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흐음.]

작은, 하지만 선명한 목소리가 뇌리에 청명하게 울렸다.

그것은 조금은 어린 여인의 목소리. 소녀라 부르기에는 성숙하고, 처녀라 부르기에는 미숙한 연령대의 목소리였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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