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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24화 (24/200)

제24화. 누가 결정했느냐 물었다 (4)

청천각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수많은 의견과 의혹이 오가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직 없으니 이렇다 할 결론은 없이 의심만이 오갔다.

본래대로였다면 이곳에서 논하는 의제는 청유백과 청궁우의 처우에 대한 것이었을 테다.

과연 누가 천마지회에 나가는 것이 옳은가.

하지만 지금의 논제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독살이라니, 대관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똑바로 설명해야 할 걸세, 평택!”

“전부 사실입니다. 청유백 놈이 제 놈의 시비를 시켜 평 부인의 선물에 독을 탔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았을지언정 엄연한 어미일진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자, 자. 진정들 하게. 뭔가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웃기지 마시오! 모든 정황이 들어맞지 않소!”

평 부인의 편을 드는 장로는 독살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가주의 편을 드는 장로는 오해라는 쪽으로 의견을 펼쳤다.

가주인 청걸명은 그저 침묵한 채, 진실을 확인하겠다며 중립을 지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평 부인은 그저 고고하게 앉아 아무 의견도 없이 듣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어차피 제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하는 것처럼.

‘곧 올 때가 되었는데.’

지금쯤, 청유백을 잡으러 보낸 병사가 돌아올 때가 되었다.

과연 어떤 꼴일까.

왼팔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손에는 수갑이 묶인 채로, 온몸이 포박당한 채 형편없는 몰골로 끌려올까.

‘곧이다. 곧… 모든 게 끝난다.’

이미 천무지회의 자리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저, 그 녀석을 얼마나 비참하게 끝장내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다름 아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 일이었다.

평 부인의 비소를 뒤로 하고, 청걸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흠, 온 것 같군.”

문 바깥에서 오는 기척을 느낀 것일까, 혹은 다른 무언가의 직감일까.

가주의 언질과 동시에 장내의 시선이 문으로 집중되었다.

평 부인과 평택도 다를 것은 없었다.

과연 청유백이 어떤 몰골로 들어올지 궁금할 따름이었을 테다.

그러나, 찰나.

─쾅!!

“무, 무슨?!”

조심스레 열릴 것만 같았던 문은 마치 터지듯 거세게 열어 젖혀졌다.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는 이야기들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소자도 끼워 주시지요.”

평소와는 다르게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의 목소리. 얼핏, 조금은 분노가 섞여든 어투였다.

저벅이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청유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이나 상처 따위는 없었다.

청유백과 함께 들어오는 사람은 더 없이 문이 닫히는 것으로 보아, 동행한 사람 또한 없는 듯했다.

평택은 작게 혀를 찼다.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보냈던 무사들은 보이지 않는군. 역시 가주가 붙여준 의문의 고수에게 당했나.’

뭐, 상관없다. 예상한 바다.

중요한 것은 청유백을 이곳으로 끌어내는 것.

그리고 완벽하게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자수하러 왔나?”

“아니.”

평택의 질문에 청유백은 덤덤히 대답했다.

마치, 쓸데없는 일에 입을 놀리는 것처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을 들으러 왔다.”

변명? 무슨 변명 말인가?

그 말에 일순 장내가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저 당당한 태도에 장로들도 뭔가 사실이 잘못 전해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평택은 인상을 찌푸렸다.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평택은 청유백을 압박하기 위해 내공을 힘껏 끌어올렸다.

“허, 기세등등하군. 평 부인을 암살하려 한 죄인 주제에.”

평택의 내가기공은 그리 심후한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었지만, 쓰레기 공자 정도의 일반인을 압박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혹여 가주가 청유백의 편을 든다면 곤란해지겠지만, 가주는 그저 가장 상석에서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볼 뿐 움직일 기색은 없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자신이 기를 끌어올려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개입하지 않는다.

즉, 일단 방관하겠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일 테다.

평택은 계속해서 추궁했다.

“대답해라, 청유백. 네가 죄인의 신분임을 알고는 있는 것이냐?”

“웃기지도 않는군.”

“뭐, 뭐라?”

청유백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대꾸했다. 흥, 하고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택의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청유백은 전신에서 기를 끌어올렸다.

“내가 죄인이라? 누가 정했지?”

“누, 누가 정했냐고?”

무슨 그런 멍청한 말을.

“현행범으로서 범인이 잡혔거늘, 추하게 발뺌하는 것이냐!”

이미 이 회의의 모든 사람에게 사실을 납득시켜 놓았다.

자초지종부터 범인, 증거까지 모든 게 전부 다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반박하는 것은 그래 봐야 함정에서 추하게 발버둥 치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뭐라?”

청유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지만, 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놈, 대체 뭐지?’

청유백의 말투가 어딘가 기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개조차 들지 못해 우물쭈물하던 그 청유백이 맞는가.

평택이 대답하기도 전에, 청유백이 말을 이었다.

“다시 묻지. 내가 죄인이노라고, 누가 결정했느냐 물었다.”

결정?

결정은 당연히 이 청가의 가전회의 전체의 총의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평택은 대답했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그야 당연히─”

“당연히?”

“다, 당연, 히.”

─이 가전회의가.

덜컥.

무어라 말하려 했던 평택의 입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공허하게 달싹였다.

‘뭐지?’

입을 벌려 무어라 말하려 해 보아도, 입술이 덜덜 떨리며 다시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마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이 각인시키듯 입을 다물었다.

“뭐, 뭐야. 이, 이,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평택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지금 말해야만 한다.’

지금의 분위기는 완벽하게 저가 주도하고 있었다.

계획과 증거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며, 계획된 덫에 따라 청유백을 몰아넣기만 하면 그걸로 끝인 일이었다.

그러나.

덜컥.

그리 말하려 했던 평택의 입이, 저도 모르게 닫혔다.

청유백이 추궁했다.

“대답해라, 총관. 누가 결정했지?”

“그, 그, 그….”

입을 벌리려 노력해 보아도, 나오는 것은 허탈한 단음절뿐.

“뭔가? 평택. 말을 하게.”

평택의 옆에 있던 장로는 답답해졌는지 평택을 재촉했다.

평택은 눈동자를 굴려 장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두 팔은 여전히 탁상에 붙은 채,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해 당황한 눈동자만이 재빠르게 주변을 굴렀다.

수많은 시선이 전부 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즈음, 평택은 그제야 몸을 감싸고 있는 기묘한 감각을 눈치챌 수 있었다.

등과 뒷목에는 식은땀이 금세 흥건하게 옷을 적셨다.

이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오한? 아니. 아니다.

조금 더 본질적인 무언가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리듯 피부를 뚫고 전해지는 감각.

‘공포?’

내가? 저깟 놈에게?

평택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주먹을 쥐었다.

반사적으로 더더욱 내공을 끌어올려 청유백을 압박했지만, 마치 무언가에 튕겨 나오듯 전혀 반응이 없었다.

저, 쓰레기 공자를 상대로 말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정확히 그때 즈음이었다.

청유백이 천천히 평택에게 다가갔다.

“질문을 바꾸지.”

한 걸음.

한 걸음.

별것도 없는 뚜벅거림이다.

다른 장로들은 청유백의 움직임에서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내공을 담은 진각(鎭脚)도 아니었고, 신묘한 묘리가 담긴 경공도 아니었다.

그저 뚜벅이는 발걸음임에도, 평택에게는 더할 것 없는 공포로 느껴졌다.

그렇게, 고요하게 긴장이 오가던 찰나.

청유백은 조용히 속삭였다.

“내 물건을 건드린 놈을 살려 두어야 하는 이유는 뭐지?”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

마치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네놈 따위는 죽여버릴 수 있다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것을 듣는 다른 장로들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정녕 청유백이 맞는가 의심하는 표정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평택은 그리 여길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점점 심장이 옥죄어져 왔다.

이것이 대체 무슨 조화인지, 정녕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그 청유백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이건, 이 감각은, 마치….’

그분.

천마를 배알했을 때와 같지 않은가.

미지의 힘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컥, 커흑….”

평택이 이윽고 심장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려 하던 찰나, 둘 사이에 끼어든 일갈이 둘 사이의 압박을 끊어지게 했다.

“그만!”

* * *

“컥! 커헉!!”

평택은 제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청유백은 아쉬운 듯 혀를 차며 평택의 심장을 조이던 마기를 거두었다.

‘아쉽군. 죽여 버릴 수 있었는데.’

아직 제 실력을 밝히지 않은 지금이 적기였다.

모두가 청유백이 아무것도 못 하는 쓰레기라고 여길 때.

지금이라면, 감춰둔 마기로서 압박하여 심장을 옥죄여 죽여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터다.

오늘, 제 실력을 전부 밝힐 것이기에, 오늘 이후라면 ‘네놈이 저질렀구나’라며 의심하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닌 것이다.

‘뭐, 상관없다. 차례가 조금 미뤄졌을 뿐이니.’

청유백은 아쉬운 얼굴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평 부인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추궁했다.

“거기까지 하라. 네놈은 그 시비가 한 짓과 네놈이 관련이 없노라고,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관련? 당연히 없다.

그것은 둘째 치고, 대체 뭘 근거로 저를 이리 추궁하는지조차 모른다.

대충 듣자 하니, 평 부인에게 뭔가 선물이 왔고, 소혜가 그것에 독을 탔다─라고 우기는 상황인 듯한데.

“당신이 받았다는 선물이 뭔지도, 진짜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어미를 의심하는 것이냐?”

어미?

가계상 어미가 맞긴 하지.

청유백은 친모를 옛날에 여의었고, 계보상 일단 계모기는 해도 어미는 어미다.

근데, 저년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싶었다.

“그 말은 밖에서 놀고 있는 머저리 새끼한테 들려주시지요. 그러잖아도 어미의 사랑이 많이 모자라 보이더이다. 그러게 어릴 적에 가정 교육 좀 잘 하지 그럽디까?”

“네 이노오옴!!”

“세상에, 자식새끼 교육을 얼마나 못했으면 십 년이나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놈보다 못하답니까? 안쓰럽지, 안쓰러워. 어쩌다 저런 어미를 두어서는?”

“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청유백은 방긋 웃었다.

‘알지. 아주 잘 알지.’

열닷새나 입을 닫고 살다가 오랜만에 혀 좀 푸니까 기분이 좋을 따름이다, 이 년아.

“알지요. 어미를 잘못 두고 태어나 빛도 못 보는 천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고 어쩌나. 이제는 천마 뭐시기 하는 대회까지 못 나가게 생겼는데.”

“네 이노오옴!!”

평 부인은 고작 그것을 참지 못하고 탁상을 내려치며 일어났다.

아이고 세상에.

평가 놈들은 왜 저리도 인내심이 없는지.

청유백이 힐끗 유 부인을 돌아보자, 입가가 꿈틀대며 경련하는 것이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전력으로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깨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저 유 부인이었다면, 주먹을 쥐는 대신 예를 다섯 가지는 들면서 제 말에 반박했을 터인데.

아쉽기 그지없는 여자다.

청유백은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손가락 다섯 개 다시 펴는 게 좋다 충고해 드리겠습니다. 남은 인생 남편도 아들도 없이 적적하실 텐데, 취미생활 하실 손 정도는 남겨두어야 쓸쓸하지 않게 살다 가지 않겠습니까?”

“이, 이….”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평택은 차라리 무엇을 준비하고, 반박이라도 했다.

그놈의 패인은 주제에 맞지 않는 도발을 했다는 것뿐이다.

조금 더 제 주제를 알았다면, 뭔가 준비해 두었던 것들은 전부 씨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딴 것은 없이, 그저 감정에 호소하여 행동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위에 설 가치가 없는 인간이군.’

이 여자의 치세는 그저 평택이 만들어낸 것뿐인가.

청가의 부인이라는 위치와, 자금적 지원이라는 명분을 이용해서 말이다.

‘평택 놈은….’

평택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연신 기침을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의 장로들이 괜찮으냐며 물었지만, 그것에조차 대답할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다른 장로들은 가주의 눈치를 보느라 제 의견을 피력할 상황이 아닌 듯했고, 정작 가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청유백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상황이 이제 어떻게 되는가 보려는 순간,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자, 자. 그만들 하시지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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