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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20화 (20/200)

제20화. 내가 방법을 줄 수 있다 (5)

유 부인이 설명해준 곳은 청가 내에서도 몹시 구석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건물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처음부터 창고로 만들어진 건물은 아니었다. 유 부인의 말마따나, 전쟁 이후 물자의 보관을 위해 건물을 개수한 모양새였다.

‘경비는 없나?’

가문 내부인 만큼 지나다니는 사람들 몇몇이 저를 슬쩍 훑고 가고는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가지는 눈치는 아니었다.

딱 ‘얘가 왜 여기 있지’ 정도의 생각을 하는 눈빛이다.

청유백은 외출한다 하니 말릴 새도 없이 저를 따라온 소혜에게 물었다.

“소혜야, 이 창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

“으음, 대충은 알아요. 전쟁 당시 썼다는 장비의 여분이나, 분류되지 않은 기록 서적 같은 것들이죠.”

“헌데 관리를 왜 이리 소홀히 해?”

“백 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이미 어지간한 것들은 다 빼내서 병기창이나 서고에 넣었다고 들었어요. 지금 안에 있는 건 잡동사니나 못 써먹을 쓰레기들뿐이래요.”

“흐음.”

청유백이 생각하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마교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옛 유산들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써서 발악한 끝에 지금의 이 꼴이 된 것인지.

혹은, 그 이상으로 몰락해서 물건들의 가치도 못 알아보고 창고에 처박아두는 탓에 이 지경이 된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전자였으면 하는군.’

후자라면 당장에야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제가 쌓아 올린 업적도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소리일 테니,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창고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태양빛이 창고 안을 비추는 순간, 숱한 먼지가 바람에 일어 날렸다.

“콜록, 콜록!”

“…어지간히도 관리를 안 한 모양이군.”

청유백은 소매를 펄럭여 먼지를 걷어내며 창고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십 개의 선반에 수천 개의 상자나 보따리 따위가 올려지고도 자리가 없어 온갖 공간에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다.

딱 한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을 통로를 빼면, 바닥이고 벽이고를 구분하지 않고 온갖 물건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광경.

“그래. 이 정도까지 난장판이 나 있으면 뭔가 못 보고 지나칠 만도 하지.”

뭔가 있을 법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그렇지.

소혜는 연신 먼지에 시달리며 물었다.

“콜록, 콜록. 도련님, 뭘, 콜록. 찾으면 되나요?”

“나도 모른다.”

“예?”

“대충 그럴싸하게 생긴 물건이 있으면 가져와 보거라. 뭐 고급진 함이라든지, 잠긴 상자라든지….”

청유백은 그리 언질하며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거나,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상자를 헤집어 보거나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멀쩡해 보이는 것이 없었다.

벽에 기대어진 검이나 창은 오래도록 관리되지 않아 형편없이 녹슬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습기를 잔뜩 머금어 이미 대부분이 반쯤 썩어나간 이후였다.

그나마, 보따리나 상자 등으로 보호된 서책류가 조금 삭은 것을 제외하면 제일 멀쩡해 보였다.

‘책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군.’

전쟁 당시 혼잡해진 물건들을 쑤셔 박아 둔 창고라면, 전쟁 이전에 자신이 정파 무림에서 강탈했던 물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대 문파의 비급 같은 것들은 대체로 그 문파의 영약과 함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강탈 당시의 상태가 온전하다면 책과 함께 있는 영약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청유백은 보따리와 궤짝을 열어젖히며 책들을 대충 훑었다.

대부분은 전쟁 당시의 장부나 인명록, 점호일지 따위였다.

청유백은 책들 사이를 신속히 헤집으며 책들의 제목만을 확인했다.

‘마병육조 인원 편성록?’

옛 마교 편성 체제의 기록인가? 필요 없다. 다음.

‘장강 16호 작전 입회안’

옛날에 있었던 무슨 계획의 계획서인가 보군. 이것도 필요 없다. 다음.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쌀밥을 주었을까?’

웃기지도 않는군. 이건 챙겨두고.

“도련님, 뭔가 찾으셨어요?”

“아니, 하등 쓸모없는 것뿐이구나.”

이후, 청유백은 쓸데없이 먼지만 쌓인 책들을 뒤적이며 선반을 두 개쯤 뒤졌지만, 그럴싸한 물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충 자물쇠로 잠긴 상자라도 하나 나온다면 희망찬 생각을 가지며 우주에게 빌어 보기라도 할 텐데, 그런 물건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백 년 동안 누군가는 찾았었겠지.’

이런 창고에서 그렇게 수상해 보이는 물건을 그냥 둘 리가 있나.

청유백이 차라리 이럴 시간에 돌아가서 독이나 더 구해 볼까, 하고 생각할 무렵.

소혜가 청유백의 어깨를 두드리며 책을 한 권 내밀어 왔다.

“왜?”

“말씀하신 대로, 제일 그럴싸하게 생긴 물건이라….”

청유백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이게 뭐시당가’ 하는 표정으로 책을 받아들었다.

어디에 들어 있던 것인지 확연히 다른 책들과는 상태가 달랐다.

게다가 그 표지에 적혀 있는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의 제목은 그 자체로 이 책이 뭔가 범상치 않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그리 적힌 책은 마치 어둠 속에서 혼자 발광하듯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소혜는 그리 느끼고 있었다. 마치 운명 같은 뭔가가 자신을 이끄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 엄청난 물건인 거죠?”

소혜는 기대감, 아니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 창고의 물건들을 전부 다 합쳐도 이 책 하나의 가치만 못할 것처럼 보였다.

청유백은 그 희망에 친절히 호응해 주었다.

“아니, 쓰레기야.”

“네?! 왜, 왜요?!”

“이게 누구 거더라, 아마 하북의 팽씨 놈들 도법이었던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분명히 강탈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하북까지 가지는 않았고, 마교를 정벌하기 위해 서로 무학의 심득을 나누기로 했던 무림맹 놈들의 일행을 습격하여 빼앗아 왔던가.

중원 무림에서 하북팽가를 팽씨 놈들이라 이르며 오호단문도를 쓰레기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냐만─

안타깝게도 청유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것보다 쎈 거 많다. 본교의 섭혼도법(懾魂刀法)이나, 서융의 도황(刀皇)이 쓰는 절패왕도(絶悖王刀)같은 것도 있지.”

“그래도….”

“훨씬 강한 게 있는 순간부터 나머지는 쓰레기야. 알아 두어라. 일등, 아니 많이 봐줘서 이등까지 빼고는 싹 다 쓰레기다.”

“으음….”

소혜는 아쉬운 듯한 얼굴로 오호단문도를 다시 서책들 사이에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여럿이 탄식할 일이었지만, 청유백이 저리 말하는데 갖고 나가겠다 우길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가 찾는 것이 아니라지 않는가.

잠시 후, 소혜는 또 다른 책 한 권을 찾아내어 청유백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건 뭔가요?”

이번 것은 아까의 오호단문도보다도 빛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소혜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소리다.

이번에는 정말로, 분명히 그가 찾는 것이 이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는 이리 쓰여 있었다.

나한신권(羅漢神拳).

하지만 청유백이 그것을 받아들자, 이번에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왜, 왜요?”

“아니, 백가 놈들이 진짜 일 안 하는구나 싶었을 뿐이다.”

마교 내의 모든 기록과 물자의 취급은 백가의 일이다.

다른 가문 내에 있는 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마교의 재산인 이상 백가의 영역.

아까의 오호단문도 하나 정도는 못 찾았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냥 기록도 아니고 비급이 두 개씩이나 창고에서 썩어가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청유백의 기준에서 쓰레기인 물건일지라도, 어떤 식으로 사용되든 가치는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창고에서 이리 쉽게 발견된다는 건, 그냥 담당자가 태만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이었다.

“이것도 쓰레기인가요?”

“아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쓸만한 정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니 관심 가지지 말거라.”

“으음….”

청유백은 미묘하게 짜증이 뻗친 상태였다.

백 년이나 직무태만한 정황이 뻔히 적발된 백가에 대한 짜증인가.

아니면 쓸데도 없는 비급이 두 개나 나왔는데 영약 비스무리한 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짜증인가는 알 수 없었다.

소혜가 들고 오는 것이 아까부터 뭔가 묘하다는 기시감이 조금 들기는 하는데, 결국 하등 쓸모없는 물건 아니었는가.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책 말고 목함이나 보따리 같은 걸 찾아보려무나. 기왕이면 약 같은 것 말이다.”

“으음, 그런 건 보이지 않는데요….”

소혜는 그리 말하며 책을 빼내었던 상자에 책을 다시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유백이 굽은 허리를 펴며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소혜의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작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그것은 작은 불상이었다.

대략 한 뼘 반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목각 불상.

도저히 마교의 물건 같지는 않은 경건한 분위기가 서려 있었지만, 크게 귀해 보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금이 가 있는 것이, 그 상태가 영 좋지 않았으니 그동안 어떻게 취급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청유백은 그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달려가 목상을 잡아들었다.

청유백은 소혜를 돌아보며 물었다.

“소혜야, 이것 어디서 났느냐?”

“이 궤짝 안에서요. 다른 책들이랑 같이 멀뚱히 담겨 있던데요? 하지만 이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소혜는 시큰둥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이 창고 안에 대놓고 비싸거나 좋아 보이는 것은 없고, 그나마 가치가 있다 할 만한 것을 찾아도 거부한 청유백이 왜 저런 지저분한 불상을 들고 흥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청유백은 그 여느 때보다도 흥분한 모양새였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청유백은 내공을 끌어올려 손에 응축하고는, 그것을 서서히 불상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빠각!

찰나의 순간, 표면에 불이 일 듯 반짝이고는 불상의 정수리에 금이 가 갈라졌다.

이런 목각 불상을 힘으로 깨부술 만큼 악력이 좋은 몸은 아니었지만, 굳이 큰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이 불상은 애초에, 부수기 위해 만들어졌던 물건이니까.

잠시 후, 불상 안쪽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기운과 함께 불상은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고, 주먹 쥔 청유백의 손에는 그 불상의 작은 조각만이 남겨져 있었다.

불상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던 것.

동그란 구슬 모양에, 조금은 붉은 기운을 머금은 상서로운 영단.

“도련님, 그건…?”

“이게 내가 찾던 물건이다.”

솔직히 이것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이 옳을까.

끽 해봐야 4년이나 5년짜리, 화산의 매화단(梅花丹)정도나 기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청유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것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소림 소환단(小環丹)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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