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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8화 (18/200)

제18화. 내가 방법을 줄 수 있다 (3)

“청궁우를 죽인다, 라.”

청유백은 속으로 웃었다.

방금까지 지끈거리던 머리는 즐거움에 조금이나마 고통이 가셨다.

재밌는 말이다.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라 재밌기도 했지만, 더욱 재밌는 것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유 부인이라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뜻을 위해서는 사람은 그저 방해물로 취급하는 그런 인간.

‘마음에 드는군.’

쓰잘데기 없는 감정 운운하며, 사람의 마음 운운하는 것보다는 이런 사람이 훨씬 알기 쉬워 좋다.

어찌 이런 사람 아래에서 청률 같은 순둥이가 나온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청유백은 유 부인이라는 사람을 똑똑히 뇌리에 박아 넣으며 다른 의문을 제시했다.

“평 부인의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당연히 그렇겠지.”

유 부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제 자식의 앞길을 위해서인지, 자신의 치세를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평 부인 또한 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악독함으로는 눈앞의 여자와 비교해도 결코 꿇리지 않으리라.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아들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닐세. 그저 조금 첨언하자면, 그년을 옹호하는 사람보다 그년을 혐오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군. 마치 자네처럼 말이야.”

“그렇습니까? 흥미롭군요.”

“마치 몰랐다는 말투군. 자네는 아니었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청유백은 딱히 평 부인을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제 욕망에 충실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

얼마나 알기 쉬워 좋은가?

병신 같은 정의와 협의를 앞세워 위선을 떨치는 머저리들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인물이다.

그냥 자신의 적이니까 적대하고 죽일 뿐, 그 이상도 이하의 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 모든 사람이 자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 리도 없는 노릇.

청유백은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움직였다.

“뭐, 그렇다 치지요. 하지만 그래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글쎄, 숫자는 언제나 가장 직관적인 힘의 단위지. 그리고….”

유 부인은 말끝을 흐리더니 찻잔을 들썩였다.

옅게 홀짝이는 소리가 목너울 너머에서 들려오고, 찻잔 너머로 청유백을 꿰뚫는 듯한 시선이 보였다.

그녀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실은 언제고 힘 앞에 감춰지는 법일세. 자네는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지난날 밤의 일처럼, 말이야.”

흠칫, 드물게도 청유백의 입가가 경련했다.

‘그것을 본 자가 있었나?’

청유백의 기억에서 ‘지난날 밤’의 일이라 지칭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청유백의 몸으로 깨어난 바로 그날의 밤.

그것을 제외하면 밤에 이렇다 할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 분명히 그날이다.

‘하지만 그날, 그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그 난장을 피워도 사람 한 명 얼씬하지 않았던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헌데 도대체 어떻게?

청유백은 의구심을 품으며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 또한 이 집의 안주인이거늘,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찌 모를까?”

“허면 어찌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소리가 들렸을 텐데요.”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네. 아니, 말을 달리해야겠군. 상관없다 생각했었다네.”

“어째서?”

“쓸모가 없었으니까.”

“그 말은….”

“궁우 놈을 죽여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그 자리를 꿰찰 놈이 없으면 무용지물. 다른 승냥이가 채어 가면 쓸데없이 고생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넌 내게 쓸모가 있으니 살려 준다’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투명한 악의가 아닌가.

“지금은 쓸모가 있다는 소리군요.”

“그렇지. 그게 바로, 내가 자네에게 친히 이딴 것들을 구구절절이 설명해 주는 이유이기도 하지.”

유 부인은 냉소했다.

너는 딱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존재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간단한 거래일세. 난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년이 절망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자네는 천마지회에 나갈 수 있어. 나쁠 것 없지 않나?”

‘글쎄, 어떨까.’

나쁠 것 없다?

분명히 그렇다.

말하는 것을 보면 죽이는 방법도, 뒤처리할 방법도 전부 준비해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에게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까지, 그저 ‘원래 청유백’에게 있어서라면 말이다.

그는 자연스레 웃음을 이어갔다.

“나쁠 것 없지만, 이왕 말씀해 주시는 김에 하나만 더 알려주시겠습니까?”

“뭔가?”

“평 부인을 그토록 증오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아는 당신은….”

“아아.”

유 부인이 청유백의 말을 끊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숨기지도 않으며 말을 이었다.

“성정이 선하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세상에 둘도 없을 선인이라고. 나도 아네! 그 허울 좋은 평판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네는 모를 게야.”

“그 말인즉?”

“그 빌어먹을 년을 족치기 위해 준비한 가면이지, 달리 무엇이겠는가.”

“…대단하시군요.”

장장 십수 년 가까이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 소리 아닌가.

빈말로도 별 것 아니라 하기는 힘든 기간이다.

아니면, 그만큼이나 그 증오가 거대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내가 자네를 과대평가한 것인가? 그 정도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 줄 알았는데.”

유 부인이 청유백을 쏘아보자 청유백은 재빨리 대답했다.

“아뇨. 직접 확언하시는 것을 듣고 싶어서 말입니다.”

“괘씸한지고.”

유 부인이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당돌한 아이를 보고 기분이 들뜨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딱, 청유백이 지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 흡사했다.

“그래, 질문이 뭐였더라… 그년을 왜 싫어하느냐, 였던가.”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교가 본래부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긴 했지만, 정말 드문 예외 사항에서나 들먹일 뿐,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아마….”

청유백은 기억을 더듬었다.

저는 전쟁 탓에 교주로서 아내를 맞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마교는 일부다처제를 명목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자칫하다 천가나 육대가의 핏줄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명목상’이었다.

실제로 아내가 여럿인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원래 있던 부인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으니까….’

그것이 정략결혼이든 연애결혼이든 크게 중요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발작하고 일어나는 것은 똑같았다.

지금껏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일인데, 청가의 부인이 넷이나 있던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원래 됐었으니까’라고 치부하고 있던 것이 패인이었다.

청유백은 그제야 기이함을 깨닫곤 말을 이었다.

“…분명히 그랬었지요. 하지만 작금의 청가는 그렇지 않잖습니까?”

“그래 부인이 셋… 실례, 넷이지. 자네의 모친을 포함하여 네 명. 지금의 청가가 기형적인 형태인 것이야. 단 한 번도 교주 자리의 근처조차 가지 못해서 이권이란 이권은 다 뜯어 먹히고, 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잡것을 아내로 들여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몰락했지.”

물론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여전히 육대가에 들고는 있지만.

다른 육대가에 비하면 확연히 그 세력이 처진다. 그러한 말이었다.

즉, 유 부인이 평 부인을 싫어하는 이유란.

“주제도 모르는 불여시가 호굴(虎窟)이 제집인 줄 알고 꼬리치는 것이 꼴 보기 싫다. 그거군요.”

“불여시라! 하, 그놈 참 말 잘하는구나! 그래, 그것일세. 애초에 말일세, 생각해 보게. 부인이 제 낭군과 정을 통하는 다른 여자를 미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없지요?”

확신은 못 하겠다.

일흔여섯 번의 생을 살면서도 여자 문제로 목숨이 위협받은 적은 많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청유백은 여기서 부정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눈치는 지니고 있었다.

“돈과 이권만 아니면 그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세. 진즉에 처리할 수 있었어!”

돈과 이권이라, 확실히 평 부인의 외가인 평천상단이 청가 재산의 3분지 일 정도를 지탱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의문이 들었다.

평 부인을 없애면 평천상단의 원조도 끊길 것이 아닌가.

“그럼 왜 하필 지금입니까?”

“천마지회가 코앞이니까.”

“예?”

“모르는가? 천마지회의 시험은 각 단계마다 참가자에게 그들을 위한 물건을 하나씩 하사한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검과 비급, 영약이던가요?”

그것 때문에 굳이 천마지회에 참여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느 것 하나 따로 구하려면 큰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이 아는 것 중 모자란 것이 있었는지, 유 부인이 설명을 보충했다.

“첫째는 검, 둘째는 비급, 셋째는 영약… 넷째가 바로, 향후 교주 사후까지의 이권이다.”

“이권이요? 그건 몰랐군요.”

“작게는 중원 어디 지부의 주점에서부터, 크게는 전장이나 상단의 경영권까지도 지닐 수 있지. 알겠느냐? 이것이 바로 청궁우와 자네가 경쟁해야 하는 이유다.”

“아…하.”

말뜻은 이러했다.

평 부인이 청궁우를 천마지회에 올려보내 이권을 따오게 되면, 평 부인은 앞으로도 그 이권을 앞세워 뻐기고 권세를 이어 갈 것이다.

하지만 청궁우가 아닌 청유백이 이권을 가져오게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아니, 청궁우가 그것을 가져오지 못하게만 되더라도 평 부인의 필요는 이제 사라지게 될 터였다.

청률과 그 위에 있는 청가의 대공자가 큰 이권을 가져오면 될 테니 말이다.

그때에는,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없애버려도 문제가 없다.

‘…솔직히 무섭군.’

질투에 미친 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똑똑히 본 것 같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없는 서리도 만들 어 내릴 것만 같다.

‘어우, 소름이 돋네.’

하지만 뭐, 질투의 당사자가 아니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해했습니다.”

청유백은 즐거이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남의 복수 사정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을까.

인간의 감정이 가장 뜨겁게 부딪히는 순간이 복수의 순간 아니던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정도의 마음가짐이었지만, 어느새 청유백은 꽤나 즐겁게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미 위험하다는 생각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천마혼도 잠잠하군. 다행이야.’

굳이 무어라 떠들었다면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천마혼의 본능 또한 지금 이 여인이 제 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일 터.

유 부인은 이윽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어떤가? 중요한 것은 자네 의지일세. 그놈이 없다면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기개만 있다면 나는 자네를 그 자리에 앉혀 줄 용의가 있다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다.

손해 볼 것도 없고, 재미까지 있을 것 같다.

‘애초에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만.’

여기서는 엄밀히 말하면, 저가 유 부인을 도와준다 말하는 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뭐, 청궁우 놈을 손봐줘야 하는 것은 본래의 계획이었으니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청유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좋아. 이걸 받게.”

유 부인은 그리 말하며 탁자에 작은 병을 꺼내어 내려놓았다.

불길한 진홍색 액체가 반쯤 담긴 새끼손가락 크기의 병.

공교롭게도 청유백에게도 몹시 익숙한 물건이었다.

“천주혈독…이군요.”

녹가의 녹지연에게 받아내었던 그 독이다. 분명 몹시 희귀하고, 녹가에서도 지닌 이가 많지 않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유 부인은 어떻게 얻은 것인지 그것을 꺼내 들었다.

유 부인은 도리어 놀라며 물었다.

“알고 있는가? 대단하군. 청가의 장로들조차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터인데 말이야.”

“뭐, 방에 틀어박히면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유 부인은 청유백을 의심스레 잠시 쳐다보았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귀여운 물건이지. 알고 있으니 설명이 빠르겠어.”

그녀의 계획은 단순했다.

청유백과 청궁우가 싸울 수 있는 판을 만들고, 그곳에서 천주혈독을 사용하여 놈을 척살한다.

천주혈독은 애초에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독이었다. 그 눈에 띄는 색과 맛은 음독하여 누군가를 암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기맥에 작용하여 기경팔맥을 뒤트는 그 성질을 이용해, 상대를 죽이고 그것을 주화입마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주목적인 독이었다.

하지만 청유백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제가 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청유백은 그리 말하며 제 왼팔을 들어 올렸다.

꼴사납게 부목이 덧대어진 왼팔은 여전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부목과 붕대로 칭칭 감겨진 그대로.

도저히 그 손으로 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자네의 어릴 적을 기억하는데, 그런 질문을 왜 하는 것이지?”

“예?”

“걱정 말게. 자네 다섯 살 때 실력만 발휘해도 몇 수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테니. 그 몇 수 안에 한 번만 스치면 끝나는 일 아닌가.”

“제가 그리 천재였던가요?”

물론 지금이야 천재가 맞지만, 원래도 그랬던가?

이 몸의 기억이 하나도 없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억 알아내려고 깨우려 한 빌어먹을 천마혼은 지금으로서는 두통거리만 되었고 말이다.

‘확실히, 구마지체의 성질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기맥이 막히지 전까지는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내공을 쌓는 것처럼 보일 테니, 천재로 보여도 이상하지는 않은가.’

그것과 별개로 검술의 재능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테고.

높으신 분들이 청유백에게 아직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유 부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자네에게 왜 이리 큰 도박을 걸겠는가?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였고, 지금은 그게 있는 듯 보이는군. 그러면 그것으로 끝인 일이야. 청궁우 따위는 쓰레기의 아들에 불과해.”

“신랄하시군요.”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유 부인은 평온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차를 홀짝였다.

어지간히도 평 부인을 혐오하는 것이 눈에 척 보였다.

여자들끼리의 알력싸움은 제 알 바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청유백 자신과 관련된 일.

청궁우를 손봐주는 것 또한 당초의 계획에 들어 있었으니 조금의 편의 정도는 봐 줘도 좋을 것이다.

청유백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이렇게 하시지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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