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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화 (16/200)

제16화. 내가 방법을 줄 수 있다 (1)

소혜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청유백의 방 앞에 멈춰 섰다.

요전까지는 상을 가져와도 대충 깨작거리며 먹는 시늉만 할 뿐이었는데, 근래에는 이것저것 음식을 찾아 소혜로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뭐, 편식을 조금─어쩌면 많이─ 하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예전처럼 안 먹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은가 싶었다.

“도련님, 점심상 왔어요!”

“들여오려무나.”

문을 열자마자 방의 중앙에서 틀어 앉아 숨을 들이쉬는 청유백이 보였다.

‘오늘로 이레째던가?’

그 날 바로 의약전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오신 이후, 미동도 없이 항상 저리 정좌하고 있었다.

소혜는 그 행동에 대해 잘은 몰랐으나, 아마 도련님이나 교두님들이 칭하기를 가부좌라 했던가.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따금씩 검은 기운이 청유백의 피부 위에서 일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인이 아닌 소혜로서는 ‘뭔가 대단하다’ 정도의 감상이 느껴질 뿐, 구체적인 무언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도련님, 식사하세요!”

청유백은 소혜가 제 앞에 반상을 내려놓고 나서야 눈을 떴다.

팔을 움직이는 것과 허리 숙이는 속도가 상당히 굼떴다.

상당히 오랫동안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소혜는 청유백이 지난 보름간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 식사 기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이러고서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침없이 오리 한 마리를 없애버리고 있는 청유백에게, 소혜는 그간 참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도련님.”

“음?”

“조금 동글동글해지신 것 같아요.”

차마 뚱뚱하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음.

뭐라고 해야 할까.

피부에 윤기가 돈다. 정도로는 말해도 좋을 것이다.

비쩍 말랐던, 그야말로 뼈와 피부밖에 없었던 때에 비해서는 확실히 보기 좋아졌다.

하지만 근육보다는 살이 보기 좋게 오른 것이, 무가의 자식보다는 어디 부잣집의 자식 같아 보였다.

뭐, 청유백 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괜찮다. 사내가 뭇 각지기만 해서 쓰겠느냐. 좀 둥근 면도 있어야 여인들에게 인기를 사는 법이다.”

“그게 그런 의미였나요…?”

“지금부터 그런 의미인 셈 치지.”

하아.

소혜는 상실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청유백의 살이 오른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요즘 들어 식사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드시니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다만, 처음에 저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그리 진중하게 말할 때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느냔 말인가!

‘아니, 뭐 대단한 걸 시키려 하시진 않으셨겠지만….’

뭐 가령 누군가의 음식에 독을 탄다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잠입해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물건을 가져오라거나.

물론 잘 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키시는 게 고작 매끼 식사를 고기로 내 오라는 거라니….’

처음에는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혜 자신은 무공이나 의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고 말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이 행동하고는 했으니, 이번에도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 하는 것이라고는 밥 먹고, 저리 앉아 있는 것이 전부.

환자는 안정이 최고다?

‘그것도 정도가 있지….’

가벼운 산보 한 번 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살이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아침에 깨우러 올 때도 저리 앉아 계시고, 반상 차리러 올 때도 앉아 계셨던가?’

에휴.

저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으니 이제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천마지회가 가까워져 오는 지금, 어찌 일말의 초조함까지 감출 수 있겠는가.

청유백의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 즈음에야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아보라 했던 건 어떻게 됐지?”

“아이 참, 말 돌리시기는…. 평 부인 세력이 힘이 강한 이유요?”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 부인과 평 총관이라 했던가.

가문 내에서 당당하게 암살을 꾸미고, 자신의 훈련 참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

가문 내의 모든 사람이 청유백을 증오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녀의 행사를 누구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 상황이었다.

설령 가주에게 가장 사랑받는 부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권력은 기이했다.

뜻이 안 맞는 다른 장로와 부인들이 있음에도 그를 묵살할 정도의 권력이 있다는 소리니까.

소혜는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오 숙수님이 말해 주셨는데… 평 부인의 외가에서 상당히 큰 상단을 운영하고 있대요. 지금 청가 자본의 삼분지 일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평천상단(平遷商團)이랬나?”

“그래? 간단했었군.”

돈이었던가.

청유백은 머리를 굴려 가능성을 생각했다.

‘간단한 가능성 중 하나였군.’

인간을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신의와 사랑 이전에 금전이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명료한 물질이 돈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한 가문의 자본을 틀어쥘 정도의 돈.

아주 간단한 종류의 권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소혜는 청유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으니, 그저 궁금증만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건 왜요? 평 부인이야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알아 오는 건 쉬웠지만, 그걸 안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되겠지.”

“음, 무슨 말인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알 필요 없다. 머리만 더 아파질 뿐이야.”

굳이 이해하려 드는 소혜도,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자신도 피곤한 일이었다.

청유백은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좀 쉬어야겠으니 나가 보아라. 그리고 가는 길에 이것 한 병 더 가져오고.”

청유백이 그리 말하며 흔들어 보인 것은 그의 옆에 놓인 술병이었다.

청유백의 부탁으로 소혜가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술고래도 한 병을 마시면 뻗어버린다는 독하디독한 화주였다.

물론 이제 열여섯이 넘어 술 마시는 데에 뭐라 가타부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구석에 쌓인 술병의 개수를 세어 본다면 그 누구라도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작 이레 동안 저 독한 화주를 스무 병이나 마셔 재꼈다면, 정말 그 누구라도 말이다.

하지만 소혜는 작은 한숨을 내쉴 뿐,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젠 포기한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청유백은 옅게 웃었다.

“웬일로 잔소리를 안 하는구나?”

“잔소리하면 안 드실 건가요?”

“그건 아니지, 말했잖느냐? 약이라고. 약.”

“세상천지에 약주도 아니고 화주를 약으로 마시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나요!”

소혜는 그리 말하고서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나갔다.

몇 초 더 있어 봤자 ‘여기 있잖니’ 따위의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혜가 문을 닫고 나가, 조금씩 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질 즈음.

청유백은 다시금 가부좌를 틀어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크윽….”

그리고 채 잠시도 지나지 않아, 청유백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까득, 부서질 듯 이빨을 악문 청유백은 나직이 상소리를 내뱉었다.

“빌어 처먹을.”

* * *

후우.

청유백은 남은 화주를 입에 전부 털어 넣었다. 혀끝에서 비산독의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이 맛대가리 없는 독을 계속 먹으려니 물려서 먹을 방법을 생각해 보았는데, 그나마 제일 적당한 것이 이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이 취기까지 약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취기 정도야 태워 없애는 것은 간단하니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망할, 잠을 못 자니 사람이 미쳐 가는구만.”

지난 이레 동안 단 한 순간도 잠을 취하지 못했다.

조금만 쉬려고 긴장을 푸는 순간 찌를 듯한 두통이 머리를 찌르고 들어왔으니,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 계속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다스려야만 했던 것이다.

‘벌써 천마혼을 깨우려 한 것이 어리석었나?’

천마혼을 깨우기 위해서는 우선 상단전을 열어야만 했다.

신체의 단전은 총 셋으로 나눈다.

신체의 수련을 쌓는 하단전.

마음의 수련을 쌓는 중단전.

그리고,

정신의 수련을 쌓는 상단전.

상단전은 그 존재 자체로 특수했다. 정신이라는 것은 곧, 신(神)을 느끼는 감각.

흔히 이르기를, 영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감각의 근원지였다.

아니면 무림인들이 이르기를, 육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러한 감각의 근원.

말로만 들으면 맛 좋은 살구 같아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리라.

수련을 통해 얼마든지 쌓아 올릴 수 있는 다른 단전들과는 다르게, 상단전은 타고난 재능에 몹시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괜히 무당의 가계, 신녀의 가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

보통은 그놈의 상단전 하나 열자고 수련하다 늙어 죽는 게 평범한 인간이다.

공부해서 무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천하 어디에 있던가.

아무리 천마신공이라고 해도 그 특질은 그대로 따랐다.

상단전을 강제로 개방하여 천마혼을 깨울 수는 있지만, 재능에 따라 그 속도가 현저히 차이가 났다.

하지만 청유백이 간과했던 것은.

이 몸이, 그의 상상 이상으로 영감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레나 이 지랄을 할 줄은 몰랐지. 이레나 말이야.”

보통은 상단전을 계속해서 자극해 비집어 열어도, 자극할 때에만 잠깐잠깐 아프지 한 번 시도했다고 계속해서 찌를 듯이 아프지는 않았다.

때문에 역대 교주들도 일 년간이나 상단전 여는 것을 시도한 자가 있는 것이다.

쉬다가, 도전하다, 쉬다가, 도전하다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큰 부담이 없으니까.

‘하지만 왜인지 쉴 수가 없다.’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찌를 듯한 고통이 머리를 엄습했다.

저도 처음 겪는 상황이었기에 특별히 조치를 취할 방법도 없었다.

몇 달도 아니고, 일 년이나 수면을 취할 수 없으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멀쩡할 자신이 없다.

“망할, 이게 얼마나 지속될는지.”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몸으로는 삼 일 밤샘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주일씩이나 안 자고 있는 지금도 사실 반쯤은 근성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머리가 찌를 듯 울리더니 작게 환청이 울려왔다.

‘크윽!!’

[대…멍청한…이….]

‘망할, 아직 닥치고 있어.’

천마혼의 목소리였다.

상단전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고, 그것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일단 진행은 순조롭게 되고 있다는 뜻.

그러나 지금은 상단전이 온전하지 않기에, 쓸데없는 고통만 늘리는 꼴이기도 했다.

[………….]

‘크, 조금은 낫군. 그래, 가만히 좀 있어라.’

지금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꼴사납지 않게 행동할 정도의 이성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이상 앞으로가 희망차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왼팔도 치유가 더뎠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몇 배는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만, 과연 이레 뒤까지 완치가 될지는 미지수인 상황.

“두 마리 토끼 잡자고 무리하다 토끼한테 잡아먹힐 꼴이군.”

그야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청유백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굳이 무리하지 않고 천마혼의 해방을 뒤로 미뤘어도 되었을 터인데, 천주혈독의 독기, 고작 일 년치의 내공이 아까워 지금 이 고단을 겪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술기운이 고통을 덜어주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고통 탓에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 이제는 끝을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슬슬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앞으로 얼마 머지않았을 것이다.

그 기간을 앞당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계획도 정보도 없으니 그저 좌선하여 기를 다스리는 것이 최선.

애초에 정보를 얻으려 천마혼을 깨우는 것이니, 이미 정보가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우스운 꼴이다.

그때 청유백의 기감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이건….’

상단전을 비틀어 여는 지금, 청유백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감각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이 방 바깥, 열 장 정도라면 누구의 기척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감에 걸려든 것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이었다.

깨나 익숙하면서도, 역겹기 그지없는 기운.

조용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청유백은 문 너머로 청년과 눈을 마주하며 조용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청률.”

청유백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청률을 대놓고 짜증스레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청률이 태청심법을 운용하는 것을 본 이후로 이유 모를 경멸함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치솟았지만, 찾아온 손님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

청유백이 그 분을 남몰래 삭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률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몸은 좀 괜찮으냐?”

“글쎄요, 어때 보입니까?”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나.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왼팔을 들어 올려 보였다.

왼팔은 여전히 부목이 덧대어진 채였으니, 뭘 어찌 보아도 다 나았다 여기기는 힘들 것이었다.

청률은 머쓱하게 신음을 흘렸다.

“으음… 미안하다.”

“알면 됐습니다.”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적당히 벽에 등을 기대었다.

손윗사람 앞에서 할 행동은 아니었지만, 청률은 그 행동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련 중에 일어난 불상사라고는 하더라도, 잘못한 것은 청률이었으니.

내공을 쓰지 않겠다 약속까지 한 데다, 청유백의 몸이 성치 못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화내고 싶으면 내거라. 처음의 규칙을 어긴 것은 나이니, 그 대련의 승자는 너다.”

“…….”

“유백아?”

“아니, 그건 또 뭔….”

청유백은 어이가 없는지 눈가가 경련했다.

‘이건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제 딴에는 뭔가 속죄나 사과를 하려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다.

제 화를 풀어 주려는 것일까.

“내가 왜요?”

“뭐?”

하지만 우습게도, 청유백은 그 일에 관해서는 별다른 증오를 품지 않았다.

“내가 왜 화를 냅니까?”

“그야, 중요한 시점이고… 네 팔을 부러뜨린 것은 내가 아니냐.”

“글쎄요. 무슨 이득이 있다고.”

청유백이 그에게 갖고 있는 분노는 머저리 같은 태청심법에 관한 것이 반이요, 마교인 주제에 지금 이리 순진해 빠진 사과를 하는 그 성정에 대한 것이 반이었다.

팔 부숴 먹은 것이야 곧 해결이 될 테고, 애초에 이딴 애송이와 놀아주다 제 몸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한 제 과실이었다.

아직도 젖비린내가 그치지 않은 애송이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청률은 그리도 뭔가 신경 쓰이는지 거듭해서 물었다.

“탓하지 않는 것이냐?”

그리고 청유백은 이제는 되려 짜증이 나려 했다.

“화내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마교 놈들은 화가 그리도 많은가? 뭐만 하면 왜 화내지 않느냐 묻는군.’

아니, 어쩌면 그렇게 툭하면 화내는 것이 청유백의 본래 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그 악평과 헛소문에는 어느 정도 근간하는 것이 있었을 터였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청률이 무어라 대답하려 했지만, 청유백이 앞서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니, 상관없는 일이지요. 고작 사과 따위를 전하러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 또한 이유의 하나였다.”

“어쨌든 말입니다. 바쁘신 분이 고작 사과 한마디 하고자 행차하시진 않으셨겠지요.”

청률은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어찌 알았느냐는 듯한 생각이 얼굴에 여실히도 드러났다.

청유백은 한심해하며 말을 이었다.

“피차 바쁜 사이니, 할 말만 하고 떠나십시오.”

가뜩이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굳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다.

청률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결심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너를 보고자 하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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