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까짓것 만들어 먹지 (3)
녹지연은 목록을 대충 훑어보더니, 벽의 서랍에서 이것저것을 꺼내어 대조하곤 말했다.
“흐음, 천남성에 협죽도, 말린 은방울꽃 잎…. 비산독(悲酸毒)인가요?”
“눈썰미가 좋군.”
“뭐, 평범한 편이죠.”
청가의 후예가 검을 다루는 것이 당연하듯, 녹가의 후예가 약과 독을 다루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다.
녹지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독이 필요한 거라면 더 편한 것도 있어요. 오색산(五色酸)이나 칠공독(七孔毒)같은 것들 말이죠. 딱 한 방울만 있어도 당신이 죽이고픈 사람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걸요?”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독이 약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 정도를 실험하기 위해 어쨌든 우선 강력한 독이 필요했다.
치료하기 위해 영약을 사용해야 할 정도의, 강력한 독기를 머금은 종류의 것 말이다.
그러나 청유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비산독이다. 다른 것도 있으면 좋지만, 우선적으로는 그게 필요해.”
“비산독은 병증이 눈에 띄고 해독이 쉬워서 비효율적일 텐데요.”
“그래서 그게 필요해.”
비산독은 섭취하면 사지의 말단에서부터 힘이 서서히 빠지고, 끝내는 심장에 쓰라린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죽어가는 독이었다.
그 고통이 끔찍한 대신,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 병증을 파악한다면 해독 또한 쉽다는 단점이 있는 독이었다.
‘하지만 이 몸이라면 고통이 아닌 치료의 효과를 볼 테니 지속 시간이 길다는 것은 장점이지.’
또한, 그 약효가 사지의 말단부터 시작하니 당장에 이 팔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녹지연은 청유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 내어 드리도록 하죠. 마침 아직 남은 것이 있어요.”
녹지연은 찬장에 있는 수많은 병들 중, 제 손가락만 한 크기의 작은 병을 찾아 탁자에 내려놓았다.
옅은 분홍색이 도는 투명한 액체가 병 속에서 반짝였다.
“다른 것은 또 필요한 것 없나요?”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을 만한 것, 최대한 고통이 강한 종류로.”
본래는 그러한 독은 제조가 어렵고 재료의 조달도 힘들다.
때문에 비교적 쉬이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비산독을 사용하려 했지만, 독의 전문가인 녹가의 사람이 거저 준다는데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녹지연은 또다시 찬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오더니, 청유백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에는 불길한 붉은 색이 반짝이는 병이었다.
“그럼 이걸 추천할게요. 따끈따끈한 신제품! 뇌혈독(惱頁毒)이에요. 따뜻한 차 종류에 타 음용하면 칠주야 동안 머리가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다 죽죠! 흔적이 안 남아서 원수를 갚을 때 아주 훌륭한 물건이에요.”
“나쁘진 않은데, 다음.”
훌륭하긴 한데, 딱히 지금 머리가 아프지는 않다.
복통을 일으키는 독을 먹었을 때 배가 따뜻해진 것을 보면 독이 드는 부위에 따라 약효도 갈릴 터.
지금 필요한 것은 전신에 강한 효과를 발휘하거나, 그런 것을 무시할 정도로 매혹적으로 강력한 독이었다.
하지만 녹지연은 조금 다르게 이해했는지, 찬장에서 다른 것을 꺼내왔다.
“아하, 이 정도 고통으론 만족하지 못하신다? 상대가 남자라면 이것도 좋아요. 거세산(祛勢酸)이라는 일품이죠. 이건 마셔도 되고 바늘에 발라서 찔러도 돼요. 마시고 두 시진이 되면 일시적으로 성기능을 상실하고, 보름 정도 꾸준히 마시면 영구히 성기능을 잃게 되죠! 볼일을 볼 때마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건 덤이에요!”
세상에.
“…다음.”
저걸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살짝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혹여라도 부작용이 있는 날에는….
음, 그만두는 게 낫겠다.
녹지연은 짜증스레 대꾸했다.
“거참, 이걸로도 만족을 못 해? 원하는 게 뭐예요?”
“말하면 줄 수 있나?”
“여기에 어지간한 건 다 있어요. 최소한, 제가 만들 수 있는 건 말이죠.”
“그렇겠지. 하지만 그걸 물은 게 아니야.”
저 나이에 녹운각의 5층에 개인 방이 있다는 것은 녹가 내에서도 촉망받는 후기지수라는 뜻이다.
수많은 독을 섭렵하고, 또 만들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물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말 돌리지 말고. 줄 수 있느냐고.”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도 방심을 못 하겠네요.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쓰레기 공자라 불리는 걸 방치하고 있죠?”
“글쎄, 약하니까?”
“그래도 개입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개입할 방법이라, 있었겠지.
자신이 지금의 몸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의 이 몸에 깨어났다면 애초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말할 이유도 없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대답을 아직 하지 않았다.”
녹지연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무르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드리죠. 여기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다시 만들면 되니까…. 원하는 게 뭔데요?”
청유백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약속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조금만 섭취해도 두 시진 내에 오장육부가 녹아내리고,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소리치게 만들 법한 독. 전신의 기맥을 뒤틀어 찢는 탓에 내공의 고수조차 해독이 어렵다는 독이 있었지. 약간 단맛을 띠고….”
그 후로 청유백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청유백의 말이 이어질수록 녹지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독에 대한 설명이 끝났을 때 즈음에는, 녹지연의 인상이 한껏 찌푸려진 이후였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녹지연의 물음에 청유백은 조소로 답했다.
“이제 와서 그걸 묻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싶은데? 왜, 쓰레기 공자 따위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나?”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죠. 그 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녹가에서도 극히 일부니까요.”
독이라는 것은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그래야 독도, 해약도 능히 통제가 가능해진다.
위험한 독일수록 그러했고, 현재로서 그 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녹가의 적전 후계자와 장로급 이상의 인원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문의 비밀을 공공연히 떠벌릴 만한 멍청이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녹지연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청유백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너는 내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약조했고, 난 원하는 것을 말했어. 그러면 다음은 약속을 지킬 차례 아닌가?”
까득, 녹지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히 그러했다. 설마 아둔한 청가 놈이 독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 라고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던가.
‘비산독을 아는 시점에서 의심했어야 했어.’
비산독은 크게 비밀에 싸인 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공에는 문외한일 터인 청가 후계가 들먹일 정도로 대중적인 물건은 아니었다.
그것의 재료를 당연하다는 듯 보여줬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지식이든, 남의 지식이든 독에 관해 깊은 지식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은 분명 약속을 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이 자를 여기서 죽이고 말 것이라면 약속 따윈 알 바 아니야.’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녹지연은 계속해서 말려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제가 상황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했는데, 그것은 눈치챌 새도 없이 눈앞의 사내가 가져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쉬이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천주혈독(天誅血毒)은 안 돼요. 이걸 쓰면 너무 눈에 띄고, 가문의 어른들이 한눈에 알아보실 테니 누가 유출했는지 금방 들통 날 게 분명해요.”
천주혈독은 들어가는 재료도 끔찍이 귀한 것들일뿐더러,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길어 일 년에 한 병을 만들까 말까 한다.
당연히 현재 지니고 있는 사람도 적었으니, 그것이 밖에 나돈다면 유출자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걱정 마라. 네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흔적도 남지 않을 거고, 누구도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고요? 천주혈독은 극독이에요. 한 방울만 검에 묻혀 찔러도 사람 정도는 쉽게─”
…죽는다.
녹지연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그제야 이 사내가 이 독들을 사람을 죽이는 데에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생각이 닿았다.
시종일관 유지하던 미묘한 표정에 알 수 없는 분위기. 심지어는.
‘이 사람, 한 번도 누굴 죽이겠다 말한 적이 없어.’
그저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
‘사람을 죽일 정도로 강한 독’이 필요하다 했지, 그것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참으로 애매한 말이었지만, 그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변수가 수없이 생겨난다.
어디에 쓸 것인지, 누가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런 인간을 쓰레기 공자라고 부른 거야?’
무공은 하잘것없지만, 머리를 쓸 것도 없이 세 치 혀만으로 저를 이리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제깟 게 해봤자 뭘 하겠냐고 생각했던 것이 패인이었을까.
“…이렇게 하죠.”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한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제가 말을 꺼낸 것이니, 드리기는 하겠습니다. 비산독은 가져가세요. 어디에 쓰실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 귀한 물건은 아니니, 제가 의심받을 일도 없을 거예요.”
“천주혈독은?”
“어디에 쓰실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듣고 판단하도록 하죠.”
“재밌군,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준다고 한 적은 없지 않나요? 간단한 일이잖아요. 제가 누굴 죽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녹지연은 두어 번 숨을 들이쉬며 진정하더니,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나도 선해 선의로 도와드린다곤 하지만, 제가 연루되는 건 곤란하거든요.”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선의는 무슨.
“좋다. 결국 그걸 써서 네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 아닌가?”
“대충 예상이 가니 어차피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알아요. 그냥, 제가 확신 수 있게 확언을 해 달라는 것뿐이죠.”
녹지연은 태연히 말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천주혈독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필요한 상황은 지극히 제한된다.
개중에서도 마교 내에서 할 수 없는 행동들을 몇 가지 제외해 본다면, 남는 것은 한 가지.
‘이 사람, 영약을 갖고 있어.’
그것도 극음(極陰)의 기운을 지닌 영약을 가지고 있다.
녹지연은 그리 확신했다.
음과 양, 한쪽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한 영약을 흡수할 때에는 반드시 기운을 중화할 반대 기운의 매개체가 있어야만 한다.
천주혈독은 독이지만, 극양(極陽)의 기운을 띈 액체이기도 했다.
독성이 강하지만, 그것을 짓누를 정도로 강한 영약과 함께 취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대체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쓰레기 공자’ 청유백이 그런 영약을 가지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그가 청가 내에서 지니는 입지에 대한 소문은 대단하다.
물론, 나쁜 의미다.
아까 복도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 소문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릴 적에는 출중한 재능이 있었지만, 갈수록 재능도 몸도 병약해져 끝끝내 수련생들만도 못하게 된 청가의 쓰레기.
그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이나 겉으로 보이는 빈약한 몸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청가 내에서도 무시당해 버려진 존재일 것이다.
‘지금까지 청가 무사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어.’
자신도 그리 느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런 위치의 인간이 어떻게 천주혈독과 함께 취할 만한 영약을 손에 넣는단 말인가.
녹지연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껏 청가가 다른 가문들을 속여 왔다는 쪽이 더 현실성이 있었다.
‘소문이 전부 거짓이었나?’
다른 가문들을 속이기 위해, 수년간이나 일부러 위장하여 기만한 것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위험해.’
만만하게, 그저 장기판의 졸 하나 정도로 생각하던 말이 상상 이상의 거물이라면?
녹지연의 사고가 극에 달해 있을 때, 청유백은 선심 썼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냥 천주혈독을 내 와라. 여기서 증명하고 나가지. 그러면 되겠나?”
“증명? 무슨 뜻이죠?”
여기서 영약을 먹겠다는 소린가?
아니면 미리 먹고 왔나?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녹지연은 감각을 집중해서 청유백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을 느꼈다.
천주혈독과 함께 취할 만한 영약이라면, 어떻게 보관하더라도 향이나 기운 따위의 형태가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유백에게 그런 기운은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영약은커녕 본신의 내공도 형편없는데?’
영약이 아니라, 당장 그 본인조차 하잘것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최 무엇을 믿는 것인지 청유백은 건들건들 손을 까딱였다.
“가져오면 알아.”
“…….”
녹지연은 마지못해 병 하나를 꺼내왔다. 잠긴 서랍에서 꺼내온 그것은 고작해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작디작은 병이었다.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저 병의 반을 채울 수 있을 것같이 보였고, 그 병은 정확히 반이 채워져 있었다.
녹지연은 청유백을 노려보며 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말해두겠지만, 허튼짓을 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예요.”
“의심이 많군. 좋은 자세지.”
“농담이 아닙니다!”
녹지연의 일갈에 청유백은 그저 웃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내였다.
‘그래,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보기나 하자.’
대체 천주혈독을 중화제로 사용할 정도의 영약을 무엇을 구했길래 이리도 당당히 나오는가.
이미 이 사내가 소문대로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지독하게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사내가 생각하는 것을 들여다볼 차례였다.
“향이 좋군.”
청유백은 천주혈독의 병을 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를 맡았다.
천주혈독은 무색무취의 독이 아니었다. 색은 불길하리만치 붉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고, 그 향은 일반인은 맡기만 해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짜릿했다. 그 존재만으로도 척수가 마비되는 느낌.
녹가의 장녀로서 온갖 독공을 배우고, 독에 상당한 내성을 지닌 녹지연 그녀조차도 저것을 마시고 멀쩡하리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녹지연이 보는 앞에서, 청유백은 병의 내용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목울대가 한 번 울렁이고, 입맛을 다시는 청유백에게 녹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영약은요?”
“무슨 영약?”
“네?”
녹지연은 멍청하게 소리를 내뱉었다.
청유백은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는 기색도 없었다.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지도 않았고, 가부좌를 틀어 앉아 기맥을 다스리려 하지도 않았다.
“천주혈독을 영약의 중화제로 쓰려고 했던 게….”
“영약 같은 게 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안 왔지. 쓰레기 공자한테 영약을 갖다 바치는 미친놈도 있나?”
“그, 그럼 그걸 왜 마시는 건가요! 천주혈독은 해약을 마셔도 독기가 몸에 남아서 목숨을 갉아먹는 극독인데!”
녹지연은 황급하게 서랍을 다시 열어 해약을 찾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을 멈췄다.
서랍을 찾아 헤매던 자신의 뒤편에서, 마치 거대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생겨난 어둠이 점점 덩치를 불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녹지연이 청유백을 돌아보자, 청유백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제 몸을 돌아보고 있었다.
“다, 당신은 대체….”
“말했잖나?”
방금까지만 해도 버러지와 다를 것이 없이 보잘것없던 남자는, 어느새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한껏 내뿜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같은 사람의 것인가 의심될 정도의, 악의로 가득 찬 기운.
“보름이나 남았다고.”
청유백은 만족스레 주먹을 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