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까짓것 만들어 먹지 (2)
5층의 복도는 고요했다.
각 방에서의 인기척이 이따금씩 들려오고는 했지만, 결코 소란스럽거나 요란하지는 않았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책장 소리와 복도를 걷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정적을 가득 메웠다.
잠시 후, 여인과 청유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복도 끝자락의 방 앞에서 멈춰 섰다.
여인은 구태여 들어오라 말로 제안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청유백이 그녀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오자, 한순간 진한 약향이 확 풍겨왔다.
‘퍽 인상적인 광경이군.’
벽에는 온갖 약재가 담긴 서랍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책상 위에는 무언가 제조했던 흔적인지 약포와 절구 등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광경.
여인은 도구들을 대충 치워 책상에 자리를 만들고는, 어디선가 다기를 꺼내왔다.
“한 잔 하시겠어요? 좋은 찻잎이 많답니다.”
그녀는 청유백이 대답도 하기 전에 찻잔에 반쯤 차를 따라 내어 주었다.
책상에 단 하나만 올려진 붉은 차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지만, 청유백은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차를 받아들었다.
약간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가에 감돌았다.
“향이 좋군.”
여인은 차를 음미하는 청유백을 기쁜 눈으로 바라보며 언질했다.
“그거, 독 들어 있어요.”
“안다.”
“…알면서 마신다고요?”
새삼스러운 말이다.
무림 어디를 가더라도 남이 내놓는 음식은 함부로 먹지 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 차는 생김새부터가 대놓고 수상하게 생기지 않았던가.
‘어떤 독인지까지는 모르겠군.’
독공의 고수는 마셔서 변하는 기맥의 흐름을 파악하면 독의 종류를 분별할 수 있지만, 청유백은 독공에 있어 그 정도의 경지는 아니었다.
그저 이것이 독인가, 아닌가 정도를 구별하는 정도. 그것에 더해 얼마나 강한 극독인가를 짐작하는 정도였다.
‘약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독이다.’
죽을 정도는 아니고, 딱 어딘가 죽기 직전까지 아플 정도의 독이다.
당연하다는 양 독을 건네는 쪽이든 의심조차 않고 마시는 쪽이든 이상하기 그지없었지만, 상대를 더욱 기이하게 여기는 쪽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태연히 물었다.
마치 처음 보는 신기한 생물을 보는 양 하는 투였다.
“청가에서는 남이 권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가르치지 않는 건가요?”
여인은 진실로 이상하다는 듯 청유백을 바라보았지만─아마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했을 테다─청유백은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미녀가 권하는 음식을 마다하지 말라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미덕 아닌가?”
“이상한… 아니, 재밌는 분이네요.”
여인은 쿡쿡 웃으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청유백의 앞에 내밀었다.
“자, 해약이에요. 빨리 안 먹으면 배가 상당히 아플걸요?”
“흠.”
청유백은 기맥에 흐르는 새로운 기운을 감지해 내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마따나 복부 부근에서 뜨거운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되려 상쾌하고 속이 뻥 뚫리는 것이, 기분이 좋기까지 한 감각이었다.
‘역시, 선천진기가 마기로 물들면 독기나 마기에 가까운 것도 해가 되지 않는가.’
내맥을 돌며 몸을 망쳐놓아야 했을 독기는 자연스레 그곳을 흐르며 마치 원래 제 기운이라도 했다는 양 몸에 흡수되었다.
청유백은 확신했다.
‘독은 이 몸에 있어서 약이다.’
그 종류나 정도에 따라서 차이를 알아보아야겠지만, 그래도 내맥에 침투하는 종류의 독은 이 몸에 해를 입힐 수 없었다.
반대로 선기를 품은 영단은 독이 되겠지만, 그리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런 영단은 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혼탁한 마기를 굳이 깨끗이 할 마음도 없으니 그런 것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청유백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필요 없을 것 같군. 나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나 내어 주지.”
“흥미롭네요. 만독불침(萬毒不侵)은 아닐 텐데…. 독에 꽤 익숙하신가 봐요?”
만독불침이라.
‘아마 비슷하긴 하겠군.’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대부분의 독은 되려 약이 되는 게 맞을 테다.
‘하지만 굳이 떠벌릴 필요는 없지.’
청유백은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어릴 적부터 시달린 게 꽤 많아서.”
“아하, 확실히 그렇겠군요. 당신이라면 그래도 이상하지 않죠.”
“나를 아는군.”
“모를 리가 있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당신은 유명해요. 물론 안 좋은 쪽으로지만.”
“어째서지?”
“저보다 못난 사람을 두고 위안 삼는 것에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여인은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청유백에게 따라 주었던 차를 제 잔에도 따르고는 조금씩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본능이지.”
“그렇군.”
명문 청가의 자제가, 일견 하급 무사들보다도 못한 버러지 신세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을 터다.
그야말로 쓰레기, 딱 좋은 별명 아니던가.
틀린 말은 아니다.
불안한 사람일수록 저보다 못난 사람을 찾고, 그것을 보며 나는 저것보단 낫다며 위안 삼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청유백을 멸시하는 것은 청유백을 증오해서가 아니다.
그저 멸시할 대상이 필요했고, 우연찮게 청유백이 그것에 적합했을 뿐.
그것이 이유의 전부일 테다.
둘이 몇 초 동안이나 그저 찻잔을 홀짝이고 정적을 이어가자, 여자가 먼저 참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물어보실 건가요?”
“무엇을?”
“제가 누군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당신을 데려왔는지?”
여인은 그리 말하며 한 번 보라는 듯 방을 주욱 훑어 가리켰다.
네가 온 이곳이 얼마나 비밀스러운 곳이며,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곳임을 아냐는 행동이었다.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내가 그것을 알아야 하나?”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지 않느냐라….”
청유백은 말꼬리를 끌며, 대답을 끝마치는 대신 여인의 인상착의를 대충 훑었다.
청가의 사람도 전부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녹가의 사람인 이 여인을 자신이 알 턱이 없다.
허나.
마교의 역사와 전통은 수백 년 동안이나 정형화된 것이 있었고, 그것은 큰 가문일수록 틀에 박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했다.
청유백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녹가의 후예, 이름은 모르겠고. 5층의 심처에 방을 받은 것을 보니 상당한 적통. 장녀나 차녀 정도겠지.”
태도를 보면 아마도 장녀.
계속해 보라는 듯한 그녀의 웃음에, 청유백은 그녀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끝부분이 검게 변색된 손을 보니 독공을 연마했고, 책상 위에 놓여진 풀은 소철잎에 투구꽃. 녹가 중에서도 독계 방파겠지. 허면 천마지회에도 참여할 터.”
그리고 천마지회에 나간다는 것은, 지금 즈음 시기에 무언가를 획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과 약을 다루는 녹가라면 그것으로 하여금 획책할 수 있는 종류 또한 많겠지만, 굳이 청가의 자신을 이리 데려온다는 이유라면.
“내게 원하는 것은 글쎄, 몰래 내 형제들의 음식에 독이라도 타라는 건가?”
청유백의 대답에 여인은 순수하게 놀란 눈치였다.
“대단하네요.”
“무얼, 기초적인 것이다.”
“그럼, 이름은요?”
거기까지 알면 ‘내 이름도 아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청유백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팍이나 등짝에 이름을 써 붙여놓고 다닐 게 아니라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왜요?”
“보통 자아도취라 부르지. 세상 모든 사람이 네게 관심이 있지는 않아.”
“…음, 저는 꽤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뭐 그렇죠.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데, 당신은 제게 관심이 없군요?”
“그럴 가치가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가지도록 노력해 보지.”
청유백은 가볍게 웃었다.
말은 이리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흥미로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당당히 간계를 내뱉는 교활함과, 상대가 제멋대로 하대를 해도 평정을 잃지 않는 냉정함까지.
‘아쉬울 정도로 청가 놈들과 비교되는군.’
자신의 본질은 청가 따위가 아닌 마교주 본연의 천가였으니 청가에 큰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 몸담고 있는 장소였다.
자식 농사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청가 놈들과 제가 뭔가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만.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청유백이 계속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과 태도로 일관하자, 결국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녹지연이라 합니다. 녹가의 장녀이고, 당신 말씀대로 천마지회에 참가하기로 내정되어 있죠. 누구 음식에 독을 탈 예정은 없지만요.”
“당연하다는 듯이 독차를 내놓은 주제에 잘도 말하는군?”
“그건 몰래가 아니었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확실히, 대놓고 주고 독도 있다고 말해 줬으니 몰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 말하면 맞는 말이긴 하지. 아주 비겁하군, 마음에 들어.”
“칭찬 감사합니다.”
그걸 받아주는 뻔뻔함까지.
참된 마교인 아닌가. 청유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원하는 게 뭐지?”
“그건 제가 할 질문 아닌가요?”
“어째서?”
“무언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곳을 찾았겠죠. 아마,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 말이에요.”
그건 맞다.
딱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틀리면 몰래 슬쩍하려 했으니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해도 될 일이었을 텐데, 굳이 데려온 것은 너다.”
“그건 그냥 평범한 호의였어요.”
“평범한 호의였다고?”
“믿기 싫으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그저 평범한 호의였어요. 정말로요.”
“농담을 잘하는군.”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녹가가 문양으로서 괜히 뱀을 사용하겠는가.
속이 음험하기로는 육대가 중 으뜸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말이 좋아 의학이지, 약과 독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온갖 독으로 인체실험도 자행하는 것이 녹가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는 종자들이지.’
“흐음, 여자의 순수한 호의도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내는 매력 없어 보이는 것 아시나요?”
“이유 없는 호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주의여서.”
애초에 이유가 없지도 않다.
청유백은 자신을 바라보는 녹지연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지 않은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나 뭔가 꾸미고 있어요’ 느낌의 분위기를 숨기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놓고 뭔가를 꾸미는 눈빛임에도, 말은 저리 한다는 것은 ‘내가 너 따위에게 왜 구구절절 말해줘야 하지?’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선뜻, 녹지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바꾸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나중에 제가 당신에게 부탁 하나를 할게요.”
“그런 종류의 약속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만.”
계약이든 약속이든 조건은 항상 명확히 해야 한다.
‘나중에 알려줄게’라며 차일피일 미루다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이던가.
회귀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 ‘말’이라는 놈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놈인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녹지연은 잠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이내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부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당신과 당신 주변에는 해가 끼치지 않을 것으로 하죠.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지도 않을 거예요. 이러면 어떠신가요?”
“내 몸을 요구하는 것도 안 돼.”
청유백이 덧붙이자, 녹지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당신이야말로 자아도취가 심한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마따나 모든 사람이 당신한테 관심이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그렇지. 곧 아니게 되겠지만.”
“무슨 뜻이죠?”
“내가 천마가 될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주 당연한 말을 하는 듯 내뱉은 청유백과,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 시도하는 녹지연의 사이에서.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녹지연이었다.
“아, 아하하! 하하하하하하!!”
책상을 쾅 내리치는가 싶더니, 정말 즐겁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 동안인가 한참이나 웃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아, 크흑… 아….”
“다 웃었나?”
“아, 미안해요. 큭, 정말… 하하, 오랜만에 정말 진심으로 웃었네요.”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청유백의 입가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화를 내지 않죠?”
녹지연은 방금까지 웃은 것이 무색하게, 어이없다는 듯 청유백에게 물었다.
왜 화를 내지 않느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넌 내가 강해 보이나?”
“아뇨.”
“지금 너와 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녹지연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즉답했다.
“제가 질 것 같지는 않네요.”
“몇 할 확률로 이길 것 같나?”
“9할 9푼 9리 정도?”
그 와중에 1리를 남겨놓는 것은 의식적으로 변수를 예상하는 치밀함인가. 과연 녹가의 여식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파악할 줄 아는 기량도 지니고 있다.
‘청률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조금 아래. 독을 쓴다면 더 위겠지.’
물론 자신에겐 통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청유백은 화를 내긴커녕 되려 웃음 지었다.
“그래. 그럼 당연히 우습겠지. 한데 내가 왜 화를 내지? 범도 아니고, 용 앞에서 여우가 산중호걸이라 외치는데 당연히 우습지 않겠나.”
“그러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교주가 되겠다는 거예요?”
“아직 천마지회까지는 보름이나 남았잖나?”
“그렇죠. 보름하고 사흘.”
“보름 뒤에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 말에 녹지연은 잠시 벙찐 얼굴로 청유백을 바라보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보름만 있으면 너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녹지연은 다시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며 손사래 쳤다.
“큭, 하하, 그래요. 좋아요. 원하는 대로, 맘껏 발버둥 쳐 보세요. 그런 사람 싫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대답은?”
“좋아요. 당신의 몸이든 뭐든 필요 없어요. 미래의 천마님. 그래서, 필요한 게 뭐죠?”
청유백은 품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어 건넸다.
이곳에 오기 전, 의약전에서 붓을 빌려 써갈긴 종이였다.
“이 목록에 있는 것들, 그리고 이왕이면 온 김에 네 독도 보지.”
본래는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을 사용하려 했지만,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청유백은 생각보다도 빨리 부러진 팔을 붙일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