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어쩜 이리 상큼한 새끼가 (5)
청천각(靑天閣)은 청가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청가의 대문에서부터 연무장을 가로질러 직진하면 바로 보이는 가장 거대한 전각.
청가주가 기거하는 처소임과 동시에, 청가의 내정을 지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청가주는 천마지회의 논의로 가문을 비웠고, 가주가 자리에 없는, 장로와 각 책임자들의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전회의(家前會議)라 불리는 이 회의의 논제는 다양했다.
당장 직면한 천마지회의 책정 예산이나, 내부 세력의 견제, 무사 녹봉 책정 등 청가가 움직이는 모든 선택이 전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본래는 가주가 가장 상석에 위치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만, 지금은 그 자리는 비워진 채 알음알음 조심스러운 논제만을 결정짓고 있었다.
“그럼 오늘도 세 번째 자리는 미정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하지.”
“그러세. 결국 가주께서 결정할 일이니….”
혹은, 너무나도 민감한 것이라 결정을 아예 보류해 버리거나.
천마지회의 세 번째 자리.
이것은 지금의 청가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민감한 사안 중 하나였다.
누구를 내보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향후 백 년간의 가문의 성세가 달라진다.
중요한 결정이기 이전에, 결국 다들 책임을 지기는 싫은 것.
때문에 가주에게 결정을 떠넘기는 것이었다.
회의의 참여자 중 한 명인 평택, 평 총관조차도 이것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걸지는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청궁우 녀석으로 결정해 버리자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직도 가주는 그 쓰레기 공자 녀석을 좋아하는 모양이었으니.
해서 녀석을 아예 죽여버리려고 했건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무언가 큰 건수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보름 뒤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가.
과거의 재능이 어쨌든, 현재로선 청궁우가 청유백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장로들 사이에서의 중론.
‘불안하기는 해도, 가주께서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터다.’
평택이 그리 억지로 위안하며 턱을 괴고 있던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하인 하나가 평택의 귓가에 소식 하나를 속삭였다.
평택은 하인을 돌아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떠 노려보았다.
“뭐라? 그게 진정 진실이냐?”
“예. 방금 직접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평택의 목소리가 컸던지, 장로들의 이목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장로 중 하나가 평택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
무슨 일이냐고.
평택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저를 돕는 격이 아니던가.
“장로님들, 아무래도 그 세 번째 자리를 오늘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 총관,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가주님께서 결정할 일이야. 자네가 궁우를 아끼는 것은 알지만,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닐세.”
하나 장로들은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청궁우가 우수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지만, 가문의 어른들이 계속해서 입에 올리는 그놈 때문이었다.
‘그놈의 청유백, 청유백.’
대체 그 병신 쓰레기 새끼가 뭐라고?
옛날에 얼마나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든, 지금은 내공도 다루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병신인데.
‘가주가 대기시켜 놓았던 고수만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 놈인데.’
뭐, 상관없다.
청유백 놈이 그리된 이상 더 이상 천마지회에는 참여하지 못할 테니까.
평택은 새삼 슬픈 것마냥 한숨을 내쉬며 방금 들은 내용을 조용히 내뱉었다.
“청유백 공자의 팔이 부러졌다는군요.”
“무어라?”
그 말에 일순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진위 확인을 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그게 진짜라면 사실상 참가는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등.
그 소란을 잠깐 종식시킨 것은 한 장로의 질문이었다.
“이유는 뭐라던가?”
“이공자 청률과 대련하다 사고가 있었다 합니다.”
청률!
그 이름에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다시 한번 소란이 찾아왔다.
“허어! 어쩌다 율이와 대련을 했는지….”
“대련 중 생긴 불상사였겠지요. 율이 성정이 좋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니오.”
“허나 그렇다면 유백이는….”
“으음, 심히 곤란하게 되었군.”
평택 또한 장로들이 당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청률은 청가의 둘째 공자, 이미 천마지회의 출전이 약속된 자였다.
동시에, 성정이 올바르고 만인에게 친절하다 평판이 자자한 아이인데.
‘그런 녀석이 청유백을 잡아 주다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돕는 게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본래는 직접 매수한 아이들 중 하나로 하여금 그를 치려고 했거늘, 이리 손도 더럽히지 않고 일이 해결되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
평택은 새어 나오려 하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비통한 표정을 연기했다.
장내의 소란을 잠재운 것은 가주 바로 옆, 지금의 가장 상석에 앉은 늙은 장로였다.
“진정! 진정하시오.”
다시 한번 소란을 정리한 장로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차분히 이야기해야 할 문제요. 그럼, 팔이 완전히 부러진 것인가?”
“예, 아마 치료까지는 반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거 참, 안타깝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 일을 어찌 할꼬….”
어찌하긴 무얼 어찌하나.
평택은 속으로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거늘, 무엇을 고민한단 말인가.
“어쩔 수 있겠습니까. 지금 대공자와 이공자를 제외하면 남은 아이들 중 제일은 역시 궁우지요.”
“흐음…. 그것은 확실히….”
“그래, 궁우가 나가도 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지는 않을 터다.”
“다른 아이들은 마졸급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대안이 없기는 합니다.”
장로들의 고민에 쐐기를 박듯, 평택이 말을 이었다.
“청유백 공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팔이 부러졌는데 천마지회에 참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장내가 옅은 신음으로 가득 찼다.
고민과 고뇌.
분명 팔이 부러진 아이를 천마지회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임에도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대로 보름을 기다려 가주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기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굳이 지금 정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라면 되도록 빨리 정하여 아이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크음….’
여럿의 침음이 흐르는 와중, 누군가의 엄중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들 있군.”
어느새 들어온 것인지, 목소리의 주인은 팔짱을 낀 채 평택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생각은 다르오.”
“악웅 대교두!”
“오오, 악웅. 어서 오게. 허면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장로들은 악웅을 반갑게 반기는 눈치였다. 악웅은 장로는 아니지만, 교두들의 필두로서 이 중 누구보다 가주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젠장, 저자가 여기를 왜?’
물론 그만큼이나, 평택은 그의 등장이 영 탐탁지 않았다.
악웅은 평택과 짜증 어린 시선을 교환하며 말을 이었다.
“갑작스러운 대련을 받아들인 것도 그 아이의 의지였고, 청률의 검을 받겠노라 시인한 것 또한 그 아이의 의지였소. 그렇다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도 그 아이의 의지여야만 하지 않겠소?”
의지? 웃기는 소리.
뿌드득, 평택은 이빨을 갈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저 부러진 팔로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클클, 글쎄다. 나는 왼팔이 없더라도 네 나불대는 아구창 정도는 부숴놓을 자신이 있다.”
“대교두!”
평택은 일갈하며 분위기를 다시 끌어오려 했지만, 회의의 말석에서 침묵하고 있던 여인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며 외쳤다.
“저도 동의합니다.”
“?!”
정갈하게 검은 머리칼을 묶어 올리고, 고요한 호수와 같이 그를 쳐다보는 여인.
청가주의 부인 중 하나이자, 청률의 어머니인 유 부인이었다.
“유 부인까지? 왜 그러시는 게요! 이미 뻔히 결과가 보이는 일이지 않소!”
평택은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악웅의 직함이 대교두라지만, 그래봐야 무사와 교두들 사이에서나 인망이 있는 존재다.
장로와 총관, 안주인 등─가문의 윗사람들이 모인 이 가전회의에서의 발언권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혼자 정도라면 어떻게든 분위기를 끌어올 수 있었다.
‘망할, 당신이 왜?’
하지만 유 부인은 다르다.
가주의 부인들 중 하나.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간접적으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애초에 다른 것보다도 그녀는 그 청률의 어머니였다.
즉, 이 일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곤란했다.
“당신이 왜 청유백의 편을 드는 거요?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 않소!”
“제 아이의 잘못이니, 마땅히 제가 그 아이에게 보답하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않겠습니까?”
“옳지 옳지, 맞는 말이지.”
“장로님!!”
…인물 자체도 선하고 인망이 넓은 탓에, 늙은 장로들도 그녀의 말을 듣기를 선호했고 말이다.
평택은 까득, 이빨을 깨물며 항의했다.
“허나 이미 결과가 보이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빨리 달래주어야 한다 생각지 않으십니까!”
“생각지 않는다.”
“그 무슨… 큭!”
단언한 것은 악웅이었다.
내공을 끌어올려 살기를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평택을 다시 입 닥치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 긴장감 속에서 지내는 것도 그다지 해볼 수 없는 경험 중 하나지. 일개 먹물 따위인 네놈이, 우리 교두가 할 일에 참견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믿겠다.”
악웅은 불쾌한 듯 혀를 몇 번 차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말이지.”
“?”
“그 아이가 부숴 먹은 팔로 칼을 뽑든, 무를 썰든, 여인을 품든 내 알 바는 아니야.”
“허면 왜!”
“그저,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누군가의 수작질인 것 같다고. 참… 기분 더러운 일이겠지. 어떻게 생각하나?”
“수작질이라니, 말씀이 지나치시오. 대교두!”
“지나칠까? 나는 그 아이에게 수련에 참여하라 명한 기억이 없다.”
그 말에 장로들은 뜨끔했는지 악웅의 눈치를 보았다.
악웅은 가전회의에 참여할 자격은 있지만, 직무가 바빠 불참하는 일이 잦고는 했다.
지난 회의에서 평택이 ‘청유백이 자격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청유백의 수련 참가를 종용했고,
그것을 허가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장로들 본인이었다.
“그저, 제 발로 걸어왔으니 그에 응해주었을 뿐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악웅의 권한을 멋대로 침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악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간, 장내에는 침묵만이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며, 유 부인은 악웅을 대신하여 결론을 내렸다.
“결정을 미루죠. 보름 후라면 가주님께서 가전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때 총의를 모아 결정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찌 생각하십니까, 평 총관님?”
말본새는 질문이었지만, 뒤에서 죽일 듯 째려보는 악웅의 표정과 조합하면 ‘그만 닥치고 있어라’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평택도 유 부인이 이리 나오면 크게 방법이 없었다. 악웅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고, 장로들은 유 부인의 편을 들 것이 뻔하다.
“…좋습니다. 보름 뒤, 가주님께서 참석하시는 가전회의에서 결정토록 하지요.”
‘…뭐 상관없다.’
보름 만에 부러진 팔이 다시 붙을 리도 없을 터다.
‘이번엔 우리가 직접 손을 쓴 것이 아니니 찔릴 것도 없다. 가주께서도 이번에는 청유백 놈을 옹호하지 못할 것이야.’
평택은 그리 확신했다.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안정을 취해야 하오. 절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누워 계시오.”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의원 노인은 그리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방금 전에 청가 내에 있는 의약전으로 끌려와 치료받기를 반 시진.
청유백은 팔이 부러진 고통보다도 짜증으로 인한 두통이 더 심하게 다가왔다.
‘안정은 니미럴 무슨 안정.’
고작 이 나이에 고혈압으로 죽을 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를 제외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 왜 청가 후계란 놈이 태청심법 따위를 익히고 있는 거지?’
그것도 이 신성한 마교에서.
마공을 연공하지 않고 그딴 허접쓰레기 같은 것을 익히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자신의 마지막 회귀에서 딱 100년이 지난 뒤의 시기.
분명 청유백의 기억에, 한 120년쯤 전에 곤륜파 기둥뿌리를 털어먹고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멸문은 시키지 않았지만, 그때 온갖 비급 서적이나 보물 따위를 털어 왔었으니 지금쯤은 문파 구실도 못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 당시에 쓸어온 비급 중에 태청심법이 있었다면 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것을 연공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빌어먹을 ‘왜’가 문제다.
‘청가가 육대가에서 쫓겨나기라도 한 건가?’
육대가라는 것은 마교의 핵심이자 상징과도 같다.
마교의 모든 활동을 여섯 개로 분할하여 관장하고 있고, 특히나 청가는 내부에서의 개입─마교와 밀접하게 연관된 단체들의 무력 관리를 전담한다.
사실상, 마교의 내부 정세 개입에 대한 권리를 전부 쥐고 있다고 무방한 것이다.
그렇기에 청가는 마교 무술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가장 마교답고 가장 마기가 짙은 무공을 주로 습득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교’란 무엇인지 소속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즉, 청가는 마교 무공의 기준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마교의 것도 아니고, 곤륜의 태청심법을 익히고 있다니?’
이건 마교 전체가 태청심법을 원하고 있거나, 청가가 육대가에서 쫓겨나 제 맘대로 아무 무공이나 연공하게 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자는 미치지 않은 이상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후자는 또 청가의 전체 상황이 여전히 건재한 것 같으니 후자도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백 년간의 기억의 공백이 너무 컸다. 대체 백 년 동안 마교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 몸의 기억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 기억의 공백을 메꿀 방법을.
‘천마혼을 깨울까?’
천마혼.
그것은 마교 교주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천마신공(天魔神功)의 한 경지였다.
옛 천마의 혼을 강림시켜, 그로부터 조언과 깨달음을 전수받는 일종의 강신술.
그것을 깨운다면, 지금 결핍된 것들 중 상당수의 것들을 메꿀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위해 필요한 마기도, 영약도, 시간도 없다.’
청유백은 이내 뇌리에서 그 가능성을 지워 없앴다.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인 일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지금 지닌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아니면 또 소혜에게 물어볼까?’
아니, 소혜는 무인이 아닌 데다 고작 열댓 살 먹은 어린아이다. 마교의 역사에 정통할 리가 없었다.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마땅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짜증 나는군….”
괜히 맞아줬나.
이 몸을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부러진 왼팔뿐만 아니라 멀쩡한 다른 쪽 손목도 시큰거리는 것이, 검을 받아낼 때의 충격이 무리가 된 듯했다.
‘그래, 선천진기를 바꾸었다고 해도 당장 몸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인가.’
좀 더 단련할 때까지는 굳이 적을 만들기 싫어 일부러 져 준 것인데, 이 모양이 되어서야 전혀 의미가 없다.
정보 습득도, 수련도 힘들다.
그러나 천마지회에 나가서 얻는 이득을 알아버린 이상, 무슨 수를 써서든 그것에 참여할 필요가 있었다.
검은 둘째 치더라도, 영약과 만마서고의 출입에 대한 권한은 몹시 매력적이다.
‘영약이 있다면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정수인 천마혼(天魔魂)을 깨울 수 있을 것이고, 만마서고에 들어간다면 지난 백 년간의 기록을 조금이나마 열람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이 시대와, 지금의 마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태청심법에 관한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천마지회에 나가지 못하면 전부 말짱 꽝인 일이었다.
“완목(腕木 : 팔목 뼈)이 부러진 것 같은데….”
천마지회가 앞으로 보름하고 사흘이라 하였던가.
천마지회에 나갈 인원을 미리 정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은 보름.
보름 만에 부서진 팔을 붙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굳이 왼팔이 없더라도, 그 조막만 한 아가들에게 저가 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뽑히는 게 문제지.’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천마지회에 출전하는 놈들의 명단은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선정하는 것일 터.
악웅의 말에 그중 두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였으니, 청유백은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해야만 했다.
‘근데 그 남은 한 자리를 탐하는 놈이 청궁우 놈이니….’
청궁우 따위는 당연히 두렵지 않다. 쫄리는 게 있다면 그 뒤에 있는 평씨 놈들이지.
오늘의 대련처럼, 대놓고 자신을 조져버리겠다고 일정을 짤 수 있을 정도로 높으신 놈들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다간 당연히 남은 한 자리는 청궁우 놈의 차지가 될 것이 분명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높으신 놈들 중에 제 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놈 팔까지 부러졌는데 나갈 수나 있겠습니까’라고 들어오면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이 현실.
팔을 어떻게든 고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야말로, 어떻게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