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7화 (7/200)

제7화. 어쩜 이리 상큼한 새끼가 (2)

청가의 대연무장은 장원의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옛날 그 위치 그대로군.’

청가, 청일검가(靑一劍家)라 불리는 청가가 담당하는 것은 마교 내 무공 교육의 보급과 관리.

즉, 육대가 중에서도 무(武)를 중요시하며 숭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문이었다.

가문의 어디를 가더라도 돌아가지 않는 한 연무장을 지나쳐야 하는 심히 번거로운 구조.

실용성 따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구조이기는 했지만, 청가의 소속원들은 이 연무장을 자랑스레 떠벌리곤 했다.

‘미련한 놈들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직도 기억나는군.’

─데앵 ──데앵.

청유백이 연무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저 멀리서 진시 초(辰時 : 약7시)를 알리는 타종 소리가 울려왔다.

무사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늦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주님께서도 도련님께 기대하시는 바가 크니, 모쪼록 노력해주십시오.”

청가주가?

청유백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반문했다.

그리고 나서야, 소혜가 청아의 가계를 읊으며 했었던 말들 중 가주가 꽤나 청유백을 아낀다고 언질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었나?’

내 의지를 돋워주기 위해 그냥 한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청유백은 일단 대충 대꾸했다.

“그래. 보고 계시라고 해라.”

“예. 그럼.”

무사는 가볍게 포권하고는 제 할 일을 하러 재빨리 사라졌다.

방금 진시를 알린 종은 마교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로, 대부분의 아침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그 말인즉, 저 무사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는 소리였다.

청유백은 그의 인상착의를 대충 기억해둔 뒤, 연무장 중앙으로 발을 옮겼다.

연무장에는 속속들이 자신 또래의 어린 수련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내공은… 그리 많이 모이지는 않는군.’

주변의 내공을 흡수하는 구마지체이니 사람이 많을수록 빨리 내공을 쌓을까 싶었는데, 크게 의미는 없는 모양이었다.

기맥을 막고 있는 그 덩어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 같았다.

‘그래 뭐, 너무 날로 먹는 것도 좋지 않지.’

영약 같은 것 없어도 편하게 가나 싶던 기대가 배신당한 것은 조금 씁쓸했지만, 과욕은 독이 되는 법이다.

청유백이 연무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뒤쪽 어딘가에서 시비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어디서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것만 같군!”

“그러게 말입니다. 쓰레기는 시간도 맞출 줄 모르는 모양이죠.”

뒤를 돌아보니, 과연 청궁우였다.

그리고 그의 똘마니마냥 뒤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또래의 사내가 둘.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역시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청궁우와… 나머지는 모르겠군.’

대충 보아하니 청궁우를 추종하는 무리인 듯싶었다.

옷에 늑대 문양이 없는 것을 보면, 청궁우나 자신과 동급인 후계는 아니었다.

잘해봐야 수련생, 혹은 방계의 자식일 정도.

‘뭐, 그거면 됐지. 알 필요 있나.’

청유백은 다시 고개를 돌려 무시하며 연무장에 집합하고 있는 또래들의 행렬에 가담했다.

개기면 지금 족치면 될 일이고, 말 잘 들으면 나중에 족치면 될 일이다.

굳이 저놈들의 정체 따위를 알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저 뒤편에서 청궁우 무리가 무어라 언성을 높이는 것이 들려왔지만 알 게 뭔가.

‘아무리 제 놈들이라고 해도 이리 보는 눈이 많으면 직접적으로 무얼 할 수는 없겠지.’

뭐, 굳이 덤벼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는 일이겠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일단 현 마교의 상황 파악과 천마지회에 대한 상세한 정보 수집.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고작 저 핏덩이 하나 때문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청유백이 대충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대와 오를 맞춰갈 무렵, 연무장에 단상 위에 누군가 올랐다.

“다 모였느냐!!”

대연무장 전체에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허리에 검은색 곡도를 둘러찬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흰머리가 성성하고 피부에도 기미가 좀 낀 것이, 상당히 나이가 있는 노장이었다.

‘나이가 차 은퇴하고 교두 역을 맡은 건가.’

고수일수록 노화의 영향을 적게 받으니, 진짜 나이는 훨씬 많을 터.

청유백이 그를 평가하며 견적을 내던 중 옆의 수련생들이 쑥덕이는 것이 들려왔다.

“세상에, 악웅 대교두님이시잖아?”

“뭐? 대교두님이 여길 왜 오셔?”

“나야 모르지. 아, 오늘부터 그 쓰레기 공자가 참가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 때문인가?”

그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청유백은 속으로나마 대답해주며 쓰레기 공자라 처음 부른 새끼를 잡아 족쳐야겠다고 다짐할 무렵, 단상 위에서 우렁찬 노성이 터져 나왔다.

“조용!!!!”

소리를 지른 것은 악웅의 옆에 서 있던 다른 교두였다.

단 한 번 터져 나온 노성으로 온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악웅은 썩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서 말을 이었다.

“천마지회의 시작이 머지않았다. 청가에 주어진 자리는 세 명분. 당연히 첫째와 둘째 도련님이 두 자리를 가져가시겠지만, 혹시 모르지….”

악웅은 말꼬리를 끌며 연무장을 주욱 훑어보았다.

“…너희 중에 누군가 하나를 가져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한순간, 청유백과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그저 그러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악웅은 계속해서 연무장을 향해 말을 이었다.

“천마지회는 소교주를 뽑는 시험의 장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기회의 장이라?

청유백은 솔깃하여 귀를 기울였다.

“옛 거마들의 무공과 무구, 마교가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해 온 영약. 그 모두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호오.’

그냥 싸움만 마구잡이로 붙이는 줄 알았더니, 꽤나 체계적인 모양이다.

보수가 걸렸다면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워진다.

‘게다가 검과 영약이라.’

필시 마교에서도 알아주는 지보들이 분명할 것이다.

교주 후계자들에게 쥐여 줄 검을 허접한 것을 내올 리 없지 않은가?

‘본교의 지보들이겠지? 신마제구검(神魔啼懼劍)이나 연옥신검(煉獄神劍)일지도 몰라. 마교가 많이 부흥했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 핏덩이들에게 보검을 내려줄 리가 없으니.

청유백은 저가 없어도 후손들이 알아서 마교를 잘 이끈 것 같아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게 다 저가 살아생전에 잘 가르친 은덕이 아니겠는가.

‘귀찮아서 무시하려 했는데, 한번은 나가 봐야겠어.’

본래는 그래 봤자 ‘교주는 힘으로 먹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천마지회 따위는 너나 해라 하고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 예의범절을 물리적으로 주입시켜주고 교주 자리만 뺏어올 심산이었는데.

‘이 정도 대가면 할 만하지.’

미안하다 청궁우.

시켜주려 했는데, 내가 먹어야겠다.

악웅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만마서고(萬魔書庫)의 비급이나 마교 각 지부가 관리하는 객잔 따위의 이권 따위가 있다만, 다 네놈들이 그 자리를 쟁취했을 때의 이야기겠지.”

‘만마서고? 전쟁에서 소실되지 않았단 말인가?’

들을수록 놀라움의 연속이다.

만마서고라 함은 옛 마교가 모아놓은 기록의 총체이자, 수많은 비급과 무공서가 모여져 있는 서고였다.

육대가 중 백가(白家)가 담당하고, 각 가문의 장로급 이상의 허락이 있어야만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단연 마교의 자랑 중 하나였지만, 백 년 전의 마지막 충돌에서 불타올랐던 것 같은 기억이 있었는데.

‘복원한 건가? 아니면 전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있었던 것인가?’

뭐, 어느 쪽이든 좋다.

만마서고는 무공서의 집합소이기도 하지만, 마교 역사 기록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지금껏 있었던 마교의 일들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터.’

천마지회, 들을수록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그 발단만큼은 여전히 멍청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야 했다.

악웅은 비웃듯 말을 이었다.

“사실상 천마지회에 참여한 시점에서 세 번째 시험 이전에 탈락한 역사가 없으니 그냥 참여상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하긴 그럴 것이다.

각 육대가에서 세 명씩이라면, 마교에서 손을 꼽는 열여덟이란 말 아닌가.

그들이 곧 마교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지간한 시련 정도야 큰 문제가 없을 터다.

“그리고 천마지회의 참여자는 전부 마교 내에서 최저한의 출세가 보장된다. 대주는 기본이요, 현 장로님들의 반수 이상이 천마지회의 참가자셨지. 알고 있더냐?”

‘출세 보장이 아니라, 마교에서 그 재능에 그 무력이면 좌천되고 싶어도 못 되지.’

알고 있기는 뭘 알고 있어.

수백 년 마교 역사에 안 그런 적이 없다.

언제나 강자존의 법칙에 얽매이는 마교가 아니던가.

“고로, 남은 기간 열아흐레. 네놈들의 인생이 역전될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는 소리다. 클클.”

저 웃음 뒤에는 ‘할 수 있다면 말이다’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이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으니,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는 일이었다.

악웅은 수련생들이 저를 ‘성격 나쁜 노친네’라 이르는 눈빛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악웅은 음침한 눈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특히 그러려면, 오늘이 정말 중요할 테지만 말이야…. 곽 교두!”

“예!”

한 걸음 물러선 악웅은 옆을 돌아보며 누군가를 호출했다.

신속히 묵례하며 앞으로 나온 사내는 아까 수련생들을 조용히 만든 교두였다.

곽 교두라 불린 사내는 앞으로 나와 근엄한 자세로 통보했다.

“오늘은 전체 대련으로 진행한다.”

“갑자기 대련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본래는….”

“장로님들의 명이다. 천마지회에 참여할 씨앗을 제대로 가려내시겠다는 뜻일 터. 너희는 오늘 지닌바 실력을 모두 드러내야 할 것이다.”

예정에도 없던 대련이라니.

수련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당히 당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청유백에게 만큼은 그 의도가 너무나도 뻔하게 다가왔다.

‘아, 날 조져버리시겠다?’

뻔하군.

마치 무신 놈을 절벽에서 세 번 떨어뜨렸는데, 세 번 모두 기연을 얻어 두 배씩 강해져서 돌아왔던 것만큼이나 뻔하다.

어제 갑자기 하달된 수련에 참여하라는 명과, 오늘 갑자기 변경된 수련의 일정.

너무나도 대놓고 미필적 고의로 자신을 조져놓겠다는 의도가 선명히 비쳐 보였다.

평 총관 정도 되는 위치의 영향이라면 수련생들의 일정 정도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청유백은 그리 분노하지 않았다.

‘이리 이유 없는 원한을 사는 것도 오랜만이군. 즐거워 아주.’

자신에게 이 정도로 대놓고, 이 정도로 뚜렷하게 적의를 보내온 상대가 지금껏 얼마나 있었던가!

특히나 수십 번이나 되는 회귀를 반복하며 갈수록 효율적인 삶을 살았기에, 종래에는 주변 놈들이 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더랬다.

즉, 청유백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수십 생 만에 맞는 신선한 상황이었다.

“빨리 움직여라!”

곽 교두는 수련생들에게 위치를 잡고 2인 1조를 맺으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은 이미 면식이 있어 평소의 대련 상대도 정해져 있는지, 익숙하게 자신의 상대를 찾는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남겨져서 교두와 검을 맞대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관심에 굶주리지도 않았고!

하지만 청유백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리 가만히 있으면 머지않아 자신을 찾을 사람이 분명 있다.

필요한 건 딱 눈 감고 숫자를 셋까지 세는 일뿐이다.

하나, 둘, 셋.

“이봐, 쓰레기.”

‘이렇게.’

짜잔.

청유백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제 어깨를 잡아끄는 청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근처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면상을 들이밀자마자 도발부터 하는 청궁우의 태도를 보며 청유백은 맑게 웃어 주었다.

미래의 교주에 도전하는 녀석이 이리 입이 험하다니, 마교의 미래가 밝다.

역시 천마라면 도발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해야 하는 법이다.

청유백은 복합적으로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이 몸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마교인, 그것도 명문 육대가의 자제가 지금껏 수련 하나 안 한 꼴을 보면 쓰레기가 맞으니까.

그러나!

‘감히 나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도발? 좋다. 교주를 꿈꾸는 녀석의 올바른 마도인의 자세다.

하지만 상대가 나쁘다.

물론 도발은 훌륭한 천마의 소양이지만, 깝치다 골로 가지 않게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질 수도 있는 상대를 구분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한 소양이다.

청유백은 이어 대답했다.

“확실히, 조금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는 하군.”

“푸핫, 네놈도 그걸 안다니, 몹시 다행이군. 큭큭, 과연 천한 것에서 나온 것들은 어딘가 달라. 그렇지 않나?”

“그럼요. 궁우 님 말씀이 천 번 맞습니다.”

“저희가 어찌 저런 놈과 같은 자리에 서겠습니까?”

손바닥이 닳아 없어지게 아첨하는 꼴이, 마교생활 참 잘할 것 같은 친구들이다.

그들의 불운이라면, 줄을 잘못 섰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청유백은 코를 찡그리더니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손뼉 쳤다.

─짝!

“아! 이유를 알겠군.”

“이유? 이제 알았냐? 좀 씻고 다녀라. 이 새끼야. 물론 그런다고 네놈 몸에 밴 그 냄새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말이야.”

아주 정석적이고 훌륭한 도발이다.

청유백은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라는 것은, 본디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것.

이 치기 어린 새싹에게 분노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가소로울 뿐이다.

청유백은 고개를 돌리며 큭큭, 웃음을 흘렸다.

“미안하다. 어젯밤 네 어미의 교성이 특히나 탁월해서 그만. 오늘 아침 세안을 깜빡하고 말았구나.”

“뭐?”

청궁우는 방금 저가 들은 것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따까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놈, 지금 무어라고….”

“아, 지금 이 냄새가 무엇 때문인가 했더니, 그 아들이 여기 있어서 그랬군! 착각할 뻔했어. 눈이 뜨이는 것 같구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이 천한 것이!”

“천한 것이? 그 말 참 옳은 말이구나.”

하지만 그리 좋은 발언은 아니다.

무릇 교주 될 자라면 상대의 발언으로 상대를 묶어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청유백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혈에서 나온 것이 범이요, 용담에서 오른 것이 용일진대, 쓰레기의 배가 불러 나온 것이 어찌 쓰레기가 아닐까. 내 오늘 큰 배움을 얻고 가는데,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겠나?”

청궁우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단지, 옆의 아첨쟁이 중 한 명이 그를 진정시키고 있었고, 저 멀리서 이상을 눈치챈 교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직 억지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아첨쟁이는 심히 당황한 몰골로 따지고 들었다.

“어, 언행이 심하지 않은가! 어찌 그분을 욕보이느냐!”

저런, 목소리까지 떨리는 모습이다.

너는 천마는 못 되겠다.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나?

“거짓을 진실인 양 말하고 다니거늘, 어찌 그 정도를 따지나?”

거짓에 어찌 정도가 있겠는가.

작은 거짓말, 큰 거짓말 따위는 없다. 선의의 거짓말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이라 함은 곧 진실 혹은 거짓인 법이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선악의 구분도 없다.

“그리고, 아이야.”

청유백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첨쟁이는 그 순간 흠칫했다.

청유백이 살짝 끌어올린 마기를 은연중에 느꼈다.

‘바, 방금 그건….’

어디선가 솟아오른 이유 모를 공포감에 아첨쟁이는 순간 경련했지만, 청유백은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그릇된 거짓이라도 언젠가는 진실이 될 수도 있는 법이란다.”

“이노오오오옴!!!”

청궁우는 더는 들을 수 없었는지, 제 허리춤에 찬 검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이미 미간에는 혈관이 불쑥 솟아 있었고, 얼굴은 새빨간 꼴.

청궁우는 더 이상 치솟는 분노를 참아내지 않았다.

청궁우는 검을 뽑아, 단숨에 종으로 휘둘렀다.

“네놈의 피를 기필코 보아야겠다!”

‘미숙한 놈이군.’

마교 교주, 천마라는 짓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느는 것이 무엇일까?

압도적인 무공?

뭐, 좋다.

하지만, 아무리 압도적인 힘이 있다고 한들 일단은 그것을 쓸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천마라도 죄 없는 사람을 ‘그냥 죽어라!’라며 죽여대면 부하의 인망과 신뢰가 대체 어찌 되겠는가.

고로, 천마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소양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럴싸하게 상대방을 도발해서, 내가 저놈을 합법적으로 죽여 버릴 명분을 만드는 기술이다.

그리고 청유백은 역대 천마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그 짓거리를 해온 인물이었다.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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