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어쩜 이리 상큼한 새끼가 (1)
‘이게 어떻게 구마지체란 말인가?’
구마? 마(魔)를 몰아낸다고?
물론 그렇겠지.
이 몸이라면 능히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을 구해낼 수 있을 테다.
그러나 그 다음은?
그 몰아내진 마는 어디로 향한단 말인가?
그 몰아내진 마가 치닫는 곳이 바로 이 몸일진대, 이것을 어찌 구마라 부른단 말인가.
‘아니, 아니다.’
청유백은 웃음 지었다.
이것의 이름은 구마지체보다는, 그야말로 천마지체라 부름이 옳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극악의 마를 위한 몸이다.
세상의 모든 악의가 한 곳에 집중되어 그것이 형태를 이룬다면 바로 이런 몸의 모습이 되리라.
그리고 그 악의의 크기만큼이나 강대한 내공을 삽시간에 품는다.
물론, 어떤 기운이든 가리지 않고 흡수해대니 정순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특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세상의 모든 기운을, 선기고 마기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인다.
그리하면 당연히, 공력의 정순함 따위가 생길 턱이 없다.
그야말로 구정물 중의 구정물.
‘시장통의 오물조차 이것보다는 맑을 테지.’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하곤 한다.
내공은 정순해야 하며, 그것을 몸 안에 쌓고 탁기를 몰아냄으로써 육신은 한층 더 강인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그것이 일반적인 강호의 상식이다.
정파 놈들뿐만 아니라 마교에서조차 그리 착각하는 놈들이 있으니, 그것을 일반적인 통설로 취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관절─, 만일 정순하고 깨끗한 내공을 쌓아야 절정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면.
대체 마공을 수련하여 절정에 오르고, 천하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자들은 어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더러울 것이라면 더욱 더럽게. 어차피 많을 것이라면 더욱 많이.’
마기의 패도적인 기운에 몸이 상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마기가 선천적인 기운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악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정순한 기운은, 사람이 날 때부터 몸에 담고 있는 생명의 기운.
이른바 선천진기라 부르는 것이다.
헌데 그것에 정면으로 반하는 마기가 몸을 전부 차지하면 자연히 몸이 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바로 마공의 가장 큰 단점이지.’
힘을 대가로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야말로 짧고 굵게 영혼을 불태운다.
이것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편법으로나마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는, 마공의 고수가 벌모세수를 시켜 마공에 적합한 몸으로 바꾸어 주는 것.
그리고 둘은, 마공의 부작용으로 죽기 전에 스스로 환골탈태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궤는 같다.’
마공에도 쉬이 깎여나가지 않을 육체를 준비하여, 마기를 사용하더라도 몸이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본래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 몸은 어떤가.
태생이 구정물.
태생이 하늘의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그야말로 ‘넌 빨리 뒤져라.’라고 말하는,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음이다.
몸에 마기를 깃들게 만들기엔 그 무엇보다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청유백은 단전의 문을 열어 혼탁한 마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몸의 기공을 해방했다.
천천히 단전에 마기를 받아들이고, 그 빈 공간을 허공에서 받아들인 기로 채운다.
‘전부 그릇에 담을 필요는 없다. 그저 많이. 더더욱 많이.’
그릇에 과도한 양을 담아내려고 하면, 한계 이상을 부여하면 그릇은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린다.
과유불급?
넘치면 적음만 못하다?
그런 말이 있다곤 하지만, 글쎄.
‘개소리지.’
청유백은 생각이 달랐다.
세상은 언제나 다다익선이다.
황금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듯.
내공 또한 같다.
많으면 많은 대로 끌어들인다.
그저, 단전에 담아내지 않을 뿐.
‘흘러가라. 그저 넘쳐흘러라.’
그 압도적인 양 앞에서 통제는 이미 무용지물이다.
통제할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은 길을 틀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전부 받아들이고, 전부 해방하고, 전부 그릇에서 넘쳐흐르게 둔다.
그릇은 그저 그 넘쳐흐르는 과정만을 버틸 수 있으면 된다.
통제할 수 없다면,
그저 네 마음대로 날뛰어 보아라.
─쏴아아아아!
십수 년 만에 입구와 출구가 열린 청유백의 기맥에 그간 묶여 있던 마기가 한순간에 내달렸다.
‘크으윽!!’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어쩔 수 없다.
몸이 마기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나약한 데다 심장에 담긴 선천진기는 여전히 선기의 기운이었으니까.
몸을 박살 내고 혈관을 찢어놓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리라.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지만, 여기서 패배해서는 안 되었다.
지금 정신을 잃었다간 한순간에 갈 곳을 잃은 마기들이 몸 안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폐인이 될 터.
‘좋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청유백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감내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조급한 발걸음 소리와, 옅게 들려오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지럽혔다.
청유백은 비로소 영겁 같던 고통이 끝났음을 알았다.
마기로 가득 차 응어리졌던 기맥은 해방되어 이제 새로운 순환을 반복했다.
청유백의 텅텅 비었던 단전은 이제 정순함과는 영영 이별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 대가로 하룻밤 만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음을 짐작했다.
‘오 년, 아니 십 년 정도인가.’
대략적인 내공의 양을 가늠하자면 그 정도.
이건 아무리 그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단전이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강인하고, 조금 더 수련되어 있었던 단전이라면 어쩌면 갑자 단위의 마기를 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어리고 나약한 몸으로는 그만큼이 최선이었다.
그러나─청유백이 바라고 원한 것은 전혀 다른 것.
‘성공했다.’
청유백은, 몇 년의 마기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것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선천진기를… 물들였다.’
청유백은 자신의 심장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평소와 같이 맥동치는 심장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기운은 그로서도 생전 처음 느끼는 강렬한 것이었다.
분명한 생명의 기운이지만, 보듬고 자생하는 기운이 아닌 폭력적이고 복종시키는 강맹한 기운.
선천진기를 마기로 물들인 것이다.
‘짙다. 심장이 옥죄여 오는군.’
청유백은 이번에는 지나치게 강력한 탓에 몸을 파괴하는 힘에 몹시 흡족해하며 웃음 지었다.
‘상당히 거슬리기는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야.’
이것도 적응이 되면 괜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경지의 도전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그야말로 고작에 불과했다.
‘지금은 큰 성취가 아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큰 성취가 없다.’
선천진기가 마기라는 것은 즉, 얼마나 극악한 마공을 수련하더라도 결코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화입마란 결국 내공의 폭주. 계속 터뜨려 반발하며 종래에는 선천진기까지 소모하며 죽어가고 말지.’
주화입마의 위험성을 낮추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단순하다.
선천진기와 가장 비슷한 성질을 띤 정순한 내공을 쌓는 것이다.
보통, 정파의 인간들이 선기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태초의 기운과 가장 비슷한, 몸에 가장 걸맞은 기운을 쌓으니 그것이 폭주할 일이 없다.
그러나 청유백은 지금 그 선천진기를 마기로 변질시켜 버린 것이었다.
‘즉, 이 몸에 가장 친숙하고 친화적인 기운이 바로 마기다.’
선천진기가 마기라는 것은 곧 어떤 마공을 쓰더라도 몸이 반발하지 않는다는 뜻.
향후 익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특히 천마신공의 모든 구결을 아무런 위험 없이 익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그것의 마지막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십 번의 회귀를 반복한 그조차 목숨이 아깝다 판단하여 도전해보지 못한 천마신공의 마지막 단계.
지금의 이 몸이라면 그것에도 큰 무리 없이 도전할 수 있으리라.
‘지금의 상태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청유백은 주먹을 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깥의 조급한 발소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져 왔다.
문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몇 초 남짓.
‘준비를 해야겠군.’
잠시 후, 문 앞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요!”
“강제로라도 끌고 나오라는 총관님의 명입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도련님의 부탁입니다!”
“…따지는 건 총관님께 하시지요.”
소혜와 무사 한 명이 문 앞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소혜에게 언질했던 것을 착실히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사도 발을 뺄 생각은 없는 듯, 머지않아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되었습니다. 도련님, 실례하겠습니다.”
“아앗!”
─끼이익.
작은 경첩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시야에는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준비하고 있는 청유백의 모습이 들어왔다.
대놓고 몸에서 넘쳐흐르던 마기는 이미 갈무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제와 같은 나약한 청유백이 그 자리에 있었다.
청유백은 문고리를 잡은 무사를 향해 능청스레 말했다.
“이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그랬는가. 내 곧 나갔을 터인데.”
“바로 연무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재미없는 친구로군.”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자신 홀로 움직인다면 조금 여유롭게 거닐어도 괜찮겠지만, 이리 마중 나온 사람까지 있어서야 늦장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로 신을 신고 출발하려는 찰나, 소혜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도련님, 아침 식사는….”
‘식사라.’
이미 만든 음식을 버리게 되는 것은 좀 아깝긴 했다.
하지만 간밤의 운기행공의 영향으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에서의 식사는 그저 여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뭐 이리 박해받는 도련님의 조식상이야 알 만하니 굳이 그것을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둘러댔다.
“다녀와서 먹으마.”
“하지만요.”
“습. 그만. 소혜야. 시간을 지키는 것 또한 군주의 도리다. 윗사람이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
“…알겠습니다.”
소혜는 눈에 띄게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혜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백숙을 준비했는데요. 알겠습니다. 이건 아쉬운 대로 백구나 주도록 하죠.”
“잠깐 생각해 보니 까짓것 조금 늦어도 될 것 같구나.”
허허 참.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거늘.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까짓것 시간을 좀 쪼개면 못할 것도 없다.
“군주의 도리와 아랫사람의 고생은요?”
“네 고생을 내가 차마 무시하기 힘들어 이런다. 생각해 보니 새벽부터 이것을 준비한 네 고생이 갸륵해 무시할 수가 없더구나.”
“숙수님이 준비한 건데….”
“어쨌든 간에.”
큼큼, 하고 헛기침하는 청유백을 무사는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충 태양의 위치를 보는 듯하더니, 청유백의 곁에 다가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시간이….”
“밥은 먹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에 맞춰서 가셔야 합니다.”
“자네는 이 어린아이의 정성을 무시할 셈인가?”
숙수가 만들었던 간에 누가 만들었던 간에.
그걸 부탁하고 얻어오는 정성도 있지 않은가!
왜 그걸 몰라주나!
라는 표정으로, 무사를 올려다보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청유백을 내려다보았다.
“이러시면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
힘, 나도 그것 참 좋아하긴 한다.
그래도 어찌 만사를 그것만으로 해결하겠는가.
“예.”
“천하무적의 힘이 있다 하여도 때로는 다른 것으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나?”
“험한 꼴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이 편한 길이기는 하지요.”
“무얼 그리 무서운 소리 하는가? 이거나 먹고 생각하게.”
“무슨… 윽!”
청유백은 그리 말하며 닭다리 하나를 주욱 뜯어 말하던 무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신속한지, 정신을 차리자 입에서 닭다리를 씹고 있을 정도였다.
무사는 다 먹은 다리뼈를 뱉으며 청유백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자신은 마교 무사의 명예로서 위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거늘, 어찌 먹을 것으로서 자신을 산단 말인가!
“이런 걸로 저를 살 수는….”
“소혜야. 닭 한 마리 더 내오거라.”
“…이번만입니다.”
하지만 살 수 없다 말하기에는, 그로서는 너무나도 귀한 고기였다.
* * *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연무장을 향해 걷던 중, 청유백의 머리에 문득 떠오른 질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자네, 누구 명으로 왔나?”
“총관님께서 보내셨습니다.”
“평 총관 말인가?”
“그렇습니다. 늦지 않게 잘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어쨌든 잘 모시게 되었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큭큭, 그렇지. 자네 말이 옳아.”
‘‘잘’ 모신다, 라….’
청유백은 자신을 마중하러 온 이 무사 사내의 내공을 대충 가늠해 보았다.
대충 10년 남짓할 정도 될까.
겉보기에는 하급 무사 수준이지만, 그 내공의 질이 상당한 수준의 마기였다.
‘아마 심부름을 하는 걸 보면 분명히 하급 무사. 그럼 개중에서는 마기로서는 제일이겠군.’
그렇다면 심부름꾼으로 보낼 수 있는 인원 중에 가장 마기가 짙은 인원을 보냈다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이 구마지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만큼 영악하게 수명을 깎아 먹는 방법이 또 없다.
끊임없이 쌓여만 가는 혼탁한 기운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버릴 테니 말이다.
물론 지금의 청유백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의도만큼은 깜찍하기 그지없었다.
청유백의 머릿속에서 청가의 가계도가 주욱 한번 그려졌다.
평 총관, 그리고 저를 암살하려 한 평 부인.
‘그렇군. 평 부인이 총관의 누이라 했던가.’
거 참, 대놓고 속셈이 보이는 인선이 아닌가.
‘최대한 빨리 나가 뒤지시라 이거지.’
설마 총관씩이나 되는 자가 몇 년이나 앓아누운 도련님의 상태를 몰랐다고 하지는 않을 터.
‘어쩜, 이리 나만을 생각해주는 정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청유백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