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5화 (5/200)

제5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5)

허허, 이거 참.

“어느 집 개새끼가 말을 이리 참하게 하나?”

듣는 사람 기분 좋게 말이야.

청유백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소혜는 다급하게 청유백을 만류하며 일어섰다.

마치 예상치 못했다는 투였다.

“아,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됐다. 내가 보련다.”

“네? 하지만 평소엔─”

평소엔?

‘아.’

소혜의 말은 차마 이어지지 못하고 끊여졌지만, 그 뜻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청유백이 피하던 사람이다. 그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소혜가 나가서 지금은 없다느니, 뭐니 하는 등의 핑계를 둘러댔을 터이고.

‘어린애 뒤에 숨느니 뒤지고 말지.’

원래 이놈이 어쨌든,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지금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좀 다르게 살 수도 있는 게지.”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던데요….”

…애가 무슨 말을 그리 무섭게 하냐?

근데 묘하게 맞는 말이긴 하다.

청유백 죽었잖아?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고.

‘이런 거 보면 옛 현인들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옛날에도 회귀나 전생을 하는 놈이 있었는가보다 싶다.

청유백은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을 늘어놓으며 문을 열었다.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청유백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놈의 아니꼽기 그지없는 면상을 보며 두 번째 참을 인忍 자를 새겨야만 했다.

“어쭈? 웬일로 도망을 안 갔냐? 이번에는 정말로 끌어내서 형님의 손맛을 보여 주려 했는데.”

문 앞에서 건들거리고 있는 것은 이제 약관 정도나 되어 보이는 나이의 사내였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 어린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빡치게 만들 수 있을까─

─를 성심성의껏 연구한 듯한 표정을 제외하면, 꽤나 봐줄 만하게 생긴 외모의 청년.

양옆에 저를 지킬 호위 무사 따위를 대동하고 있는 꼴은 한눈에 보기에도 명문가의 자제 같아 보였다.

‘저놈은….’

청유백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청년을 대충 훑고는 소혜를 돌아보았다.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처음 보는 놈이었다.

뭐 하는 놈인지 어찌 알겠는가.

소혜가 무언가 언질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았지만, 소혜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당장 자신과도 상당히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꼴을 보니, 일방적으로 저를 싫어하는 모양인데.

‘보자, 그럴 만한 놈이….’

일단 저놈의 옷에 수놓아진 푸른 늑대 모양 자수를 보아하니 청가의 일원, 그것도 후계임은 자명했다.

육대가의 후계들만이 각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을 옷에 새겨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중 청가의 상징은 늑대.

가슴팍에 늑대를 새겨놓은 저놈은 분명한 청가의 자식이었다.

‘청가 놈들 중에서도 청유백을 극도로 싫어하는 놈.’

청유백은 소혜에게 천마지회와 함께 물어 두었던 청가 사람들의 특징을 되짚어 보았다.

청유백이 청가 내에서 상당한 왕따인 것은 맞다.

하지만 대부분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은연중의 무시나 멸시면 모를까, 이리 대놓고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할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정말 몇 없는데….

‘아. 평 부인의 아들인가.’

청유백은 뇌리에 스쳐간 이름을 입에 담았다.

“네가 청궁우란 놈이냐?”

“청궁우란 놈? 네놈이 미쳤구나!”

미쳐? 허허허.

“무슨 말을 그리 험하게 하나. 만일 제일 선호하는 음식이 미음이 아니라면 그런 말은 삼가는 게 좋다.”

아래턱이랑 위턱을 반으로 분질러서 접어 버릴 테니까.

평생토록 고기도 씹지 못하고 죽만 목구멍으로 겨우 넘기는 삶은 너무 처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형을 생각하는 청유백의 갸륵한 마음은 그에게 닿지 않았는지, ─혹은 무슨 말인지 알아먹질 못했거나─청궁우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만 같이 분개했다.

“이놈이 진정…!!”

“도, 도련님. 참으시지요. 총관님께서도 당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나마 옆의 무사들이 그를 말려서 망정이었다.

이제 보니 호위가 아니라 반은 감시인가 싶었다.

사고 치지 못하게 막으라는 감시.

호위들이 나서 그를 열심히 막아서자, 청궁우는 마지못해 알겠다는 양 머리를 쓸어 넘겼다.

“후, 그래. 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양 있는 네놈 표정을 보는 것도 오늘까지니 말이야.”

“…무슨 뜻이지?”

“장로들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지만, 내일 수련부터는 네놈도 참가한다고 한다.”

“수련?”

“정기 오전 수련 말이다. 이제는 존재조차 까먹은 거냐? 게으름뱅이 놈. 계속 핑계 댈 줄만 알지.”

청궁우의 이죽거림에 소혜가 발끈하여 나섰다.

“핑계라뇨! 도련님께서는….”

“닥쳐라. 누가 입을 열라고 허락했나!”

하지만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한 채, 청궁우의 일갈에 입을 다물었다.

청궁우는 그야말로 옆의 호위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너희는 다 죽었다는 투였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던데, 역시 옛 성현들 말씀은 맞는 게 하나 없다.

‘가는 말이 고우면 호구로 알지.’

가는 말이 고우면, 다른 뭔가가 험해야 오는 말이 고와지는 법이다.

가령 주먹이라던가.

‘이 쓰레기 같은 몸이라도, 저 머저리 하나 족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청유백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전쟁을 할 때에조차 전령에는 손을 대지 않는 법이다.

태도가 어떻든 간에 소식을 전하러 온 놈을 패죽이면 제 체면이 어찌 되겠는가.

고로, ‘다음에 보자’라며 웃어 보이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할 말은 그게 다냐?”

“그래. 도망치지 말고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야말로 추하게 질질 끌려 나오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렇군.”

청유백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유백이 생각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기이했는지, 청궁우는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가 가지 않나? 네놈 목숨은 내일까지라는 소리다. 내 손에 뒤졌다는 이야기지.”

“그러면 그렇게 해라.”

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흥미로운 이야기 아닌가.

이 천류하를 그 나이에 이길 수 있는 아이라니!

‘그거야말로 마교의 흥복이지.’

이기면 인정. 네가 교주 해라.

물론 못 이기면 죽는다.

상대를 구별해서 덤비는 것도 고수가 되는 중요한 비결이다.

그걸 할 줄 모르면 고수가 될 때까지 못 살아남는다.

몰랐다고?

모르는 게 잘못이지.

‘허어 참, 후손들이랍시고 조금은 봐주려고 했더니만.’

조용히 힘만 키우고, 교주 자리는 나중에 먹어도 좋으니까 좀 여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절 좀 훈육해 주십시오, 하고 나오는데, 이걸 무시할 수도 없고.’

아, 이거 참.

정말이지.

이렇게 귀여움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무시하는 것도 높은 곳에 선 자의 도리가 아닌 법이다.

청궁우는 핏줄이 바득바득 오른 모양새로 청유백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알겠나? 내일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헛소리 지껄일 생각은 말고… 젠장, 외숙부님은 왜 날 보내셔서. 대답해라! 알겠냐!!”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뭐? 기대? 하, 이 새끼 정말로 미쳐버린 모양이군. 대체 아버지는 이딴 새끼를 왜….”

“할 말 다 했으면 가라. 소혜야. 시장하구나.”

“이 새끼가 정말….”

“도,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청궁우는 계속 제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는 청유백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소혜 또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당혹한 표정으로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돌아보았지만 청유백은 그저 소혜를 돌아보며 오랜만의 점심 식사를 찾을 뿐이었다.

“망할.”

청궁우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드는가 싶더니만 옆의 호위무사들이 계속 제지하여 결국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나야말로 기대하고 있겠다. 넌 뒤졌어.”

청유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고 여기는지─

청궁우는 그를 향해 한번 슥, 비웃음을 흘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청궁우는 그렇게 제 말만 하고 저만치 사라졌다.

청궁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소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뭐가 말이냐?”

“수련 말이에요. 지금껏 지병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셨잖아요. 저 망나니는 그런 것도 모르면서….”

허, 망나니라.

청유백은 소혜의 발언에 옅게 웃음 지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또 모르나, 이 모자란 청유백 놈을 보좌하는 것 또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네가 어찌 나를 위해 화를 내더냐? 되었다.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소혜는 무어라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청유백이 그리 일축하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혜는 우물거리는 중에도 이것만큼은 말해야겠다는 양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의원님께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잖아도 요즘 이것저것 자주 까먹으시잖아요.”

‘하긴, 소혜에게는 하등 정상인 게 없게 보이겠군.’

백 년 후의 세상, 그리고 하등 모르는 신체.

아는 게 많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가족의 이름이나 신상까지 까먹었다며 물어보는 것은 확실히 기괴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뭐, 그것이 의원에 간다고 나을 증세던가.

“쓸데없는 걱정 말고, 내일 아침상으로 무엇을 차릴지나 걱정하거라. 나는 기왕이면 닭이 좋을 것 같은데.”

“으음, 숙수님께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소혜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로 물러났다.

어쩌면 ‘걱정해 줘도 지랄이야’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청유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이야말로 세상에서 불필요한 일 중 하나니까.

‘왜 나를 걱정하지?’

차라리 좀 더 현실성 있는 걱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어떻게 해야 우리 집 강아지를 무신으로 기를 수 있을까 같은 것 말이다.

다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청유백은 방금 소혜가 말한 것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지병…이라. 지병 때문에 수련에 참여하지 못했었다고 했나?’

청유백은 이 몸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

* * *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꿇어앉았다.

빌어먹을 살수 놈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시작했을 일이었을 테다.

청소다 소식이다 뭐다 하면서 방해해대는 통에 지금껏 정신을 집중할 환경을 만들 수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이딴 몸으로 운기조식을 하다 충격이라도 받으면 그대로 요절이다.

그러니 아무 곳에서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라면 적당하겠지.’

날은 어두워졌고, 소혜에게는 손님이 오거든 대충 둘러대라고 명해 두었다.

눈치가 좋은 소혜이니, 너도 방해하지 말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청유백은 숨을 고르며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그리고 단전의 기를 끌어올리며 천천히 기의 운행을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맥의 흐름을 읽고 몸을 지배하는 과정이었다.

이 빌어먹을 몸이 어디까지 망쳐져 있는지 알아야, 이제 어디부터 고쳐나갈지 파악할 테니 말이다.

‘자, 어디 한번 볼까.’

고작 쌀알만도 못한 내공이라 해도 몸 안의 내공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 번이나 되는 생을 허투루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 몸 안의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명확히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청유백은 끌어올린 내공을 천천히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시작하여 기해혈을 지나, 용천혈로부터 말미암아 백회혈까지 이른다.

복잡한 묘리 따위는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몸의 파악.

그저 한 번 죽 훑어보는 것이면 그것으로 족했다.

가장 간단한 과정, 단 한 번.

무어가 어렵겠는가.

그러나 청유백은 내공을 단전에서 뽑아내자마자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기운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기의 운행을 시작하자마자 청유백은 자신의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지?’

그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아니, 벽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아주 어둡고, 혼탁하며, 더럽게도 느껴지는 무언가.

청유백은 그것의 주변을 살피며 그것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려 했다.

‘상당히 크군.’

청유백은 기맥의 중앙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실 한 가닥이 되어 기맥을 헤엄쳤다.

수십 번이나 되는 회귀를 경험한 청유백이었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미친놈들이나 수련이 가능한 기예.

범인(凡人)이라면 이미 기맥을 잘못 건드려 폐인이 되었거나 주화입마에 빠져 광인이 되는 결말을 맞을 것이었다.

허나, 이미 이 비슷한 역경을 수십 번이나 반복해 본 청유백에게는 별다른 어려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청유백은 곧이어 하나의 사실과 맞닥뜨렸다.

그것의 앞에서는, 청유백조차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크지 않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전부(全部)다.

‘크다’라고 표현할 만한, 무언가가 길을 막고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부였다.

단전 한 부위를 제외한 온몸의 기맥 전부에 이 검은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다.

청유백은 그것들의 주위를 돌며 그것의 성질을 파악했다.

아주 난폭하고.

몹시 공격적이며.

보이는 건 뭐든지 먹어치워, 제 것으로 만든다.

지금은 잠들어 그저 고여 있을 뿐이었지만, 청유백은 그 안에 내재된 힘과 성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청유백이 알고 있는 기운과 몹시 흡사했다.

‘말도 안 돼.’

청유백은 저도 모르는 사이 숨을 내뱉었다.

‘이 모든 게… 전부 마기라고?’

그것도, 십수 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고여, 그 질이 독하디독한 마(魔)의 것으로 변질된, 극악한 마기.

그러한 것이 전신의 기맥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딴… 이딴 게 가능하단 말인가?’

단전에는 고작 그딴 허접쓰레기 같은 내공이나 채워두고 있었으면서, 기맥에는 차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양의 마기라니.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하지?’

청유백은 계속해서 기맥을 내달리며 그것들의 정체를 살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고 나서야, 청유백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기맥에 채워진 마기가 늘어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몹시 미세한 양이었다.

거대한 호수를 숟가락으로 물을 채우는 수준의 양이었지만, 분명히 늘어나고 있었다.

‘주변에서 기를 흡수하는 건가?’

마기의 독기에 그대로 집어 삼켜져 그 일부가 될 뿐인 미약한 기운이었지만, 분명히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는 기운.

청유백은 이러한 몸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우선 떠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천무지체(天武肢體)나 건곤지체(乾坤肢體)인가?’

아니, 아니다.

그것들은 하늘이 내린 무골이다.

기를 흡수해도 선기로 바꾸어 몸에 축적하지, 이리 마기를 그득히 들여 채워 몸을 망치지는 않는다.

이 몸에 가득히 들어찬 마기의 독함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청유백은 몇 개의 체질을 더 떠올리다가, 너무 현실성이 없어 떠올리지 못했던 가능성을 끄집어내었다.

‘…구마지체(驅魔肢體)! 설마 실제로 존재했단 말인가?’

수십 번의 회귀를 겪은 청유백은 강호에서 수많은 무골(武骨)을 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날고 긴다 하는 고수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뽐내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하지만 구마지체는 청유백으로서도 무성한 소문으로만 접한 것이 전부.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까닭이라 함은, 구마지체를 지닌 이는 결코 약관을 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하기 때문이라 했다.

애초부터 전부 풍문이었으니 그저 지나가는 가담항설 정도로 흘려들었건만.

‘그것이 전부 사실이었던가.’

구마지체는 태어나서부터 계속해서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인다.

선기든, 마기든 가리지 않고 그저 몸 안으로 빨아들여 축적한다.

구마(驅魔 : 마귀를 몰아 내쫓다)라 불리는 이유는 그런 까닭에서였다.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의 마기조차 흡수하여,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의 유일한 치료책이라 불리었으니까.

그래서 구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러한 마기를 빨아들이면 구마지체의 주인은 당연히 죽고 만다.’

남의 마를 치료한 대가로 그것을 고이 품고 죽어가는 몸.

흡수한 것이 마기가 아니라 선기더라도, 갈 곳 없이 몸 안에서 고여가기만 하는 기운은 언젠가 썩어버리고 만다.

구마지체는 그 주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일종의 저주인 셈이었다.

‘과연,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어째서 제 방 근처에는 그리도 인적이 드물었는지.

그리고 호위조차 없이, 무공도 모르는 시비 혼자만이 제 수발을 들고 있었는지 말이다.

주변의 기운을 흡수한다면,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은 편이 연명에 도움이 되는 것일 테다.

‘그래. 이 정도면 지병이라 할 만하지.’

어릴 때에는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몸이 받아들인 양이 그리 많지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아직 썩어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유아 시절에는 천재라 불렸을 수도 있었겠군.’

허나 시간이 갈수록 내공의 운용은 어려워졌을 것이다.

게다가 몸 안에 축적되어 썩어가는 마기로 인해 그저 몸을 단련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졌을 터.

심지어는, 그 마기로 인해 몸의 온 기맥이 침식되어 몸의 선천진기마저 정순하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청유백은 이 탁하고 추악해진 몸의 상태를 살피며 단전에 품은 내공을 가늠했다.

도대체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단전만큼은 차단되어 있다.

이것을 단전에 받아들이는 법을 몰라, 마기 대신 미약한 수준의 내공만이 자리 잡아 있었다.

그러나 기맥 전체를 가득 채운 마기는, 이 나이에서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마기였다.

‘이 아이가 살아온 인생이 통째로 마기로 치환된 수준이군.’

단전에 쌓인 둑을 터뜨리는 순간, 이 탁한 기운이 물밀 듯이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단전은, 그 양을 차마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기적적으로 그것을 감당했다고 하더라도 이후는 어째야 할까.

이후의 내공은 결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정순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청유백은 이러한 상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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