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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4화 (4/200)

제4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4)

서늘한 오후의 바람이 귓가를 스쳐 갔다.

청가의 장원에는 높은 전각이 몇 개 있는데, 이는 대부분 가주의 처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 서쪽의 창운각.

사내, 평택은 오늘따라 조급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보채는 자신의 누이를 애써 달래고 있었다.

“계획에 문제는 없겠지?”

“심려치 마십시오. 일대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자입니다.”

“확실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야. 가주께서 알게 되는 날에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첩년들의 동세도 확인해 봐. 혹시라도 그년들이 알아서는 안 될 것이야. 알아들어!”

“…물론이지요.”

불안한 듯 계속 제자리를 돌아다니는 자신의 누이를 보며, 평택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새벽부터 지금껏, 이 의미 없는 문답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제 누이를 청가에 시집보내어 이곳에 온 이후로는 인생이 탄탄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었다.

지금 청가의 여느 사람이 ‘평 부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지 않던가.

다른 부인들조차도 제 누이의 권력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니, 평택은 자신이 꽤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다 자부할 수 있었다.

악독하다느니, 잔혹하기 짝이 없다느니 하는 풍문 따위가 나돌기는 했으나, 그래 봐야 힘없는 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쥐고 있는 권력.

그 권력의 주인이, 오늘 같은 하찮아 빠진 일 따위에 저리 불안에 떠는 꼴이라니.

평택은 혀를 차고는 다시금 제 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 다독였다.

“그 쓰레기 놈이 무슨 재주가 있어 살아 나오겠습니까. 그냥 마음 놓고 기다리시지요.”

“그놈만 없으면 우리 궁우가 천마지회에 나갈 수 있어. 그렇지?”

“무슨 말씀을. 그놈이 있어도 당연히 청궁우 도련님의 자리였을 겁니다. 그저, 조금 더 확실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 맞아. 당연한 일이지. 어찌 그 천박한 쓰레기 따위가 우리 궁우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빌어먹을, 어미도 없는 천박한 놈 따위가 말이다.

평 부인은 이를 악물며 의자에 앉았다.

“그래, 우리 궁우가 얼마나 우수한 아이인데!”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자그마치 은자 백 냥이나 쥐여 주고 고용한 해결사가 아니던가.

이미 주사위는 굴렸고, 결과는 당연히 승리.

이미 정해진 결과를 긴장하고 기다려서야 비웃음만 살 뿐일 테다.

“평택, 차나 한잔 다오. 내 이 마음을….”

─쾅!!

평 부인의 말을 끊듯, 거센 소리를 내며 문이 터지듯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의 시종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평택에게 손짓했다.

“초, 총관님. 급히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안색을 보아하니 보통 일은 아닌 듯 보였다.

설마 하니 나쁜 소식이겠느냐마는, 지금 이 순간에 그가 저만치 당황할 만한 이야기라니.

평택은 설마, 하는 생각을 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고는 평 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평 부인의 방의 문을 닫고 나와 조금 걸은 뒤, 평택은 그제야 중년 시종에게 물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냐? 무엇이길래 그리 당황하는 것이야. 놈이 살아 있기라도 하더냐?”

“예!”

“뭬야?”

살아 있어?

놈이?

청유백이?

이게 대체 대관절 무슨 소리란 말인가?

평택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시종과 눈을 마주쳤지만, 그의 안색은 여전했다.

농담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이라는 소리겠지만, 평택으로서도 믿고 싶은 사실은 아니었다.

“나는 그따위 농은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거짓이라면, 볼기짝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야.”

“진짜입니다. 그, 그 그놈이 사지 멀쩡한 채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된다. 어찌? 어떻게 그놈이 살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명하신 대로 누군가 전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병사들을 동행하여 갔는데… 글쎄, 그놈은 멀쩡하고 청부한 놈은 방에서 피주검이 돼 있었더랍니다.”

“허, 대체 어떻게….”

청유백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아니,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십 년쯤 전부터 무공을 익힐 수가 없게 되어 박해받던 놈이 아니던가.

‘차라리 살수 놈이 돈을 받고 도주했다면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 허나….’

그놈은 방구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자를 제압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다. 실력으로는 나름 믿을 만한 낭인이었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만 했기에 최대한 외부의 인원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실력이 정말 만족스러울 정도의 일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자고 있는 꼬맹이 하나를 죽이기에는 아깝다 느낄 정도의 돈을 주고 고용했다.

결코 시정잡배 취급을 받을 허접쓰레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는? 다른 흔적은 없었나?”

“몸싸움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놈도 단칼에 목이 베여 죽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단칼에?

저항할 새도 없이, 아니면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었다는 것 아닌가.

‘…나라면 그를 이길 수 있는가?’

평택은 자신과 고용한 살수를 비교 선상에 놓아 보았다.

조금의 고민 후에 나온 결과는, ‘이길 수 있다’였다.

자신이 무인이 아니라고는 해도 나름 마교 명문의 일원.

조금의 상해가 있을지언정 그 정도 낭인에게 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굳이 싸운다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박투 한번 없이, 저항도 못 한 채 한 방에 목을 베어 죽인다?

‘가능할까?’

아니, 아니다.

평택 자신으로서도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청유백이 했을 리는 만무하다.’

혹여라도 무언가 이변이 있을까 매일 매일을 감시하고, 가주가 억지로라도 내리려 하는 영약을 먹지 못하게 빼돌린 것이 몇 번이던가.

저가 모르던 새 절벽에서 떨어져 기연이라도 얻지 않고서야 그런 기행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당연히도 평택이 모르는 청유백의 일거수일투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고수가… 그놈을 비호하고 있다는 건가?”

“그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고수가요.”

“가주께서 준비하신 건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그놈을 아끼시지 않습니까.”

“젠장할…!!”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평택이 멍청하여 지금껏 아무 준비도 없이 방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혹여나 가주가 그놈을 위해 무언가 안배하진 않았을까 경계하여 온갖 것을 미리 시도해 보았다.

‘닭 피로 난장을 쳐놓는 것부터, 혹시 모를 영약을 위한 산공독, 매일 밤의 섭혼향….’

그것뿐이랴.

식사에는 주기적으로 독을 타 생사를 헤매게 만드는 것도 자주였다.

뭐가 되었든 간에, 그놈의 곁을 지키는 놈이 있었다면 진즉에 나왔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

빌어먹을, 빌어먹을.

평택의 입에서 상소리가 반복해서 튀어나왔다.

지금껏 암살할 돈이 없어서, 배짱이 없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청가주의 눈을 가려야만 했기에, 지금껏 수년을 미뤄 온 것이다.

대놓고 일을 벌이면 가주의 눈에 띄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자신과 평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무사할 수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지금이 바로 절호조였다.

수십 년에 한 번, 가주가 본가 내로 눈을 돌릴 틈조차 없는 지금 이 시기.

이제 곧 찾아오는 천마지회의 때를 노려 일을 행한 것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할까요. 천마지회가 다가오면 가주께서….”

“닥쳐라. 나도 안다!”

평택은 악을 지르고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몇 초 후, 그제야 진정이 되는지 시종에게 되물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보름하고 나흘 남았습니다.”

보름하고 나흘. 열아흐레 뒤.

천마지회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계획을 새로 준비하기에는 한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 하나 죽이기에는 결코 모자람 없는 시간이다.

“다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이라 하심은?”

“가전회의를 열어야겠다. 놈을 불구로 만들어 버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고수가 놈을 비호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지금껏 나서지 않다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 사정이 있을 터.’

밤이 아니라 낮에, 공공연히 처리한다.

실수로 가장해서… 아니, 이제는 실수가 아니어도 좋다.

‘그놈만 제거하면, 이제 모든 게 완벽해진다.’

수년을 준비한 대계(大計)가, 고작 애새끼 하나 때문에 깨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 * *

천마지회(天魔知會).

백 년 전에는 그러한 회합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청유백으로서도 듣기에 생소한 이름이었다.

마교의 회합에서 천마(天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경우뿐.

자연히, 어떤 거창한 행사길래 천마의 이름을 대는가, 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별 시답잖은 짓으로 역대 천마들을 기린다거나 하는 짓거리나 하고 있다면 나중에 모가지를 예쁘게 반으로 접어 줘야지, 하고 다짐한 것이 불과 일각 전.

하지만 대충 들어보니, 청유백이 듣기에도 나름 합리적인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천마를 정하는 회합이었으니까.

“뭐? 후계자를 정해? 경쟁으로 소교주를 뽑는다, 그 말인가?”

멍청하게 자기가 들은 내용을 되풀이한 청유백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 어린 시비를 돌아보았다.

이름이 뭐랬더라, 그래, 소혜라고 하는 아이였던가.

‘허 참, 어이가 없어서.’

소혜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마의 좌, 즉 교주의 자리는 그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해야 할 절대 불가침의 자리다.

어릴 적부터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보여주며 저분한테는 깝치지 마라, 라고 세뇌 교육들을 시켜둬야 한다.

이유야 단순하다.

혹여라도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반란의 싹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근데 그걸 드잡이질로 뽑아? 거 참, 어이가 없어서.’

물론 소교주 될 놈이 제일, 정말 비교도 되지 않을 차이를 내며 압도적인 강함을 보인다면 크게 상관은 없다.

자신도 그리 천마가 되었었으니, 때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천재가 지천에 널린 게 아니란 말이지.’

마교 역사 수백 년, 역대의 모든 천마들이 그렇게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물론, ‘누가 가장 강하냐’라고 물으면 당연히 천마가 가장 강하다, 라는 수준은 되었다.

허나 과거의 천마 천류하나 무신 진서령 같은 자는 결코 많지 않았다.

한 세력의 총원이 생사결을 내자고 덤벼들어도, 그대로 그 세력의 뿌리를 뽑아버릴 만한 무력을 갖춘 이가 많았을 리가 없다.

당연했다.

재능, 운, 노력. 그 모든 것을 전부 타고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 따름이지 않은가.

때문에 천마란 보통, 각자의 세력을 쥔 장로나 가주들을 일대일로 압살할 정도의 실력, 그 정도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라면, 아무리 머리가 굵었다 한들 다른 수장들이 연합해서 천마를 치겠다는, 그런 발상은 하지 못한다.

‘그런데 압도적이지 못하면?’

천마와 자신은 씨앗부터 다르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

어릴 적부터 ‘싸워 볼 만하다’ 같은 생각을 품고 자라는 것이다.

‘반란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천마의 씨, 즉 천가(天家)가 있었을 때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거늘.

그 긴 마교의 역사에서 반란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그 체제의 우수함을 증명한다.

청유백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소혜에게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그 천마지회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그년이 나를 족치려 한다?”

“그, 상소리는 조금… 일단은 그게 가장 지배적인 이유죠.”

‘평 부인에 대한 정보를 어찌 얻어야 하나 조금은 고민했었다만.’

아무래도 그녀가 청유백을 싫어하는 것은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인 듯했다.

그 정도라면 쉬이 알 수 있으리라.

“으음….”

짜증 때문일까, 혹은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 때문일까.

청유백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고, 소혜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 요즘 정말 이상하신 것 아세요? 원래는 평 부인께서 아무리 괴롭혀도 입도 뻥끗 안 하셨으면서….”

…그랬나?

원래 청유백이 어땠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유백은 결코 그리 살 생각이 없었다.

‘화병 걸려 뒤지느니 칼 맞아 뒤지고 말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리 삭히면서 살면 하루 만에 열이 뻗쳐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청유백은 태연히 대꾸했다.

“사람은 바뀌는 법이지. 그래서, 보기 별로더냐?”

“아뇨. 저는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되었지 않으냐.”

곁에 두는 시비인 소혜가 이리 좋게 말하는 것을 보면 청유백이 그리 놈팽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하고, 멍청할 정도로 미련할 뿐.

‘뭐, 복수는 해 주마.’

평 부인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말이다.

뭐? 복수는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원해.

헌데, 그건 그거고.

“…잠깐만.”

청유백은 문득 떠오른 의문을 무심코 입에 담았다.

“그럼 천가는 정말 멸족한 건가?”

“그렇죠. 패도천마께서 자식을 남기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흠, 무신 놈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느라 다른 것에 시간을 쓸 겨를이 없었더랬다.

저가 채음보양의 수 따윌 익힌 것도 아니었으니, 여자와 몸을 섞는다 하여 얻는 것도 없었고 말이다.

아예 경험 한 번도 없이, 쌩 동정이냐 물으면 그건 아니긴 한데….

‘결혼이니 후사니, 이 빌어 처먹을 회귀를 끝내고 하려고 했었지.’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돌아가 버리니, 아무 의미 없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천마치고는 경험이 많이 적기는 했다.

‘내 애비만 해도 후처가 수십 명이었으니 말이야.’

이번 생에서는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하고 희망찬 생각도 가져보는 청유백이었다.

‘그래. 소림 땡중 놈들도 지금 내 꼴을 보면 비웃을 것이야. 이번에는 조금 더 느긋하게….’

“쓰레기!! 안에 있는 것 안다!! 빨리 튀어나오지 못할까!!”

그러나 그 희망찬 생각은 어림도 없다는 듯, 바깥에서부터 분위기를 박살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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