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3)
지쳐 잠든 새벽녘의 천류하를 깨운 것은 지저귀는 아침의 새 노랫소리도 아니요, 귓가로 스쳐오는 아침의 산뜻한 맞바람도 아니었다.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로는 벌컥 열린 문 사이로 활짝 들어오는 아침 햇살. 그리고─
“꺄아아악!!”
─문을 열자마자 귀청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는 시비의 비명소리였다.
“이, 이건 대체….”
가부좌를 튼 채로 졸던 천류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방금 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시비와 눈이 마주쳤다.
“자,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정리하겠습니다.”
대충 열댓 정도나 되어 보이는 소녀.
이름은 모르겠다.
당연하다. 이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청유백인지 뭔지 하는 놈팽이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천류하에게 필요한 것은 시체 치우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저 아이가 제 몸뚱어리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시체를 치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됐으니 가서 냉수나 한 사발 떠 오거라.”
“하, 하지만….”
“다른 놈 부르면 될 일 아니냐. 물 떠 오는 길에 사람을 불러 오면 되겠구나.”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녀는 아직 사색 어린 얼굴이었지만, 그리 대답하고는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쿵.
조심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다시금 문이 닫혔지만, 천류하는 잠시간 그 문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직 정신이 멍했다.
살수 놈을 해치운 이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도 머리를 굴렸지만,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있는 정보라면 이곳은 백 년 이후의 마교이며, 무신과 다시금 끝장을 보았다가 이번엔 회귀가 아닌 환생을 했다….
‘…인가.’
쉬이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간밤의 일은 분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으니, 부연 부정할 도리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천류하는 방금 소녀가 닫고 나간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달이 보이지 않았으니 흐른 시간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몸이 나름 가벼운 것을 보아하니 몇 시진 정도는 지난 모양이었다.
천류하는 어젯밤에 구석에 대충 던져놓은 살수의 시체에 슬쩍 눈을 돌렸다.
‘시체는… 그대로군.’
이미 몸을 뒤져 그럴싸한 것은 전부 옮겨 두었다.
‘그래봤자 돈과 금창약 정도였지만.’
무언가 그럴싸한 증표라던가, 배후를 특정할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평 부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가령, 방금의 그 아이에게도 물어봐도 좋을 일 테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씩이나 아무 관련도 없다는 것.
‘한번 쓰고 인연을 끊을 정도의 살수다. 청부를 했다는 증거가 없어.’
때문에 트집을 잡기도 어렵다.
청유백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짓눌렀다.
‘가진 것이 너무 없다.’
물건도, 사람도, 정보도.
그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다.
아는 것은 이곳이 백 년 후의 마교라는 것.
그리고 가진 것은 시체에서 나온 은 백 냥짜리 전표.
혹자가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거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천마 자리에까지 한 번 앉아 본 천류하에게 있어서는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은? 하, 가당찮은 소리.
그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은 최소한 금, 그것도 관 단위는 되어야 솔깃하다 할 만했다.
은 백 냥 따위는 화만 돋울 뿐인 양이었다.
‘내 목숨값이 고작 백 냥이라….’
허, 참.
이 몸의 주인이 누구랬더라.
‘청가의 청유백?’
청가(靑家)라고 함은 마교를 떠받치는 여섯 가문, 육대가(六大家)의 하나다.
청, 적, 황, 녹, 흑, 백의 여섯 색을 성으로써 사용하는 가문.
각자의 영역에서만큼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가문 여섯을 통틀어 육대가라 칭했다.
정파에서 이르는 오대세가라는 자들에 비해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다.
한데, 그런 가문의 자식이 고작 은 백 냥에 모가지가 따일 위기에 처한다라….
‘서자(庶子)인가?’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미움받는.
간밤의 일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 난리통을 피웠는데도 호위무사는커녕 경비병조차 오지 않았고, 최초로 얼굴을 들이민 자는 아직 나이도 채 차지 않은 어린 시비라니.
가문 내에서도 상당한 권력자에게 미움받는 위치가 아니고서야, 간밤과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는 없었다.
경비와 호위, 시중의 인선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던가.
가문의 안사람, 그것도 높으신 분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일 테다.
‘확인할 것이 태산 같군.’
천류하, 아니 청유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선은 이곳이 진짜 청가(靑家)인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제 살수가 한 말을 보면, 이곳이 마교 내부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미움받는 서자라면 청가의 본 장원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방치되는 일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끼이익!
시끄러운 경첩음과 함께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큭.”
문을 열자마자 쬐이는 밝은 태양빛에, 청유백은 마치 오래간 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방을 나서자 곧장 보이는 것은, 커다란 장원의 일부처럼 보이는 마당.
몇 칸짜리 기와집이 저 멀리 끝까지 이어져 있고, 한편으로는 담장으로 보이는 무언가도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광경은 아니었다.
천마였던 자신이라고는 해도, 굳이 청가의 안쪽 자세한 곳까지 들어와 볼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까지 자신이 추측한 ‘미움받는 서자’라는 지위치고는 상당히 좋은 곳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면 백 년 사이에 이 정도가 후진 곳일 정도로 마교가 발전했던가.’
그렇다면, 어제의 그놈이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은 분명히 청가의 장원.
그리고 그중에서도 꽤나 좋아 보이는 이곳을 사용하는 청유백은 분명히 청가의 아들이 맞으리라.
‘허면 대체 평 부인이라는 자는 왜?’
청유백의 뇌리에 당장 생각나는 것은 몇 개 정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그럴싸하게 생각되는 것은 하나 정도밖에 없었다.
‘후계자 자리 때문인가?’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현실성은 없다.
마교가 시대가 가면서 여러 방면에서 개선되기는 했다.
나아가 뭐, 이제는 인륜마저 좀 찾게 되는 세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자존의 법칙만큼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강한 자가 약자를 이끌 권력을 지니는, 강자존의 법칙.
그것이야말로 마교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이었다.
‘백 년이 지났다고 해도 그것이 바뀌지는 않았을 터다.’
당장 뛰어난 서자를 잡아 죽여 자식을 후계자로 만든다 치더라도, 그리 자란 후계자는 마교의 생태에서 도태될 뿐이다.
오히려, 조금 독하다 싶은 어미는 친자식을 버리고 뛰어난 양자를 더 예뻐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만큼 그 강자존의 법칙이라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었다.
자칫하면 가문 전체가 기울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헌데….’
이 청유백이라는 몸뚱어리가 그 정도로 견제해야 할 가치가 있는 실력을 지녔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외의 이유라면….’
청유백은 마당을 걸으며 몇 가지 이유를 더 생각해 보았지만, 개중 가능성이 있다 생각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청유백이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어느새 아까 고개를 들이밀었던 시비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
“도련님. 다녀왔습니다.”
시비의 손에는 찬물이 찰랑거리는 놋그릇이 들려 있는 채였다.
청유백이 ‘고맙다’라고 내뱉으며 물을 들이켜려는 찰나, 분명 사람을 부르러 갔을 이 아이가 혼자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른 사람은?”
“아, 그건….”
시비는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입을 닫더니 우물쭈물했다.
무언가 알지만, 이것을 말해도 되는가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새.
청유백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시비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곧…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아마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분명 농담으로 치부하는 것 같이 보여서….”
“그건 왜… 아니, 그렇군. 알겠다.”
청유백은 한순간 ‘왜’라고 물으려다 납득했다.
어젯밤의 계획을 획책한 것이 가문 내의 사람이라면, 정보를 통제하고 확인하러 갈 인원을 제 사람으로 보내기 위해 인원을 추리고 있을 것이다.
‘간밤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사실이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그것부터 파악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해가 중천에 뜬 지금까지 아무도 오지 않다가, 방 정리하러 들른 것 같은 시비가 처음으로 발견했다.’
애초에 이 근방에는 인적이 드물고, 이 방에 출입하는 사람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로 인적이 없으면 직접 확인할 수도 없었겠군.’
직접 확인했다간 ‘거길 굳이 왜 갔었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어린 시비가 시체가 된 자신을 발견하여 보고하는 것을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따위의 가능성도 있으리라.
‘아마 어떤 쪽이든 간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지는 않았겠지.’
청유백은 대강 생각을 정리하며 질문을 달리했다.
“가서 뭐라고 얘기했지?”
“유백 도련님의 방에 시체가 있다고….”
“흠. 다른 건?”
“그냥 그걸 말하자마자 알겠다면서 돌려보냈습니다. 부연 확인도 하지 않고서요.”
“그렇군.”
이맘때쯤 헐레벌떡 시체 발견을 전하러 달려올 것도 알고 있었다는 건가.
모든 상황을 사전에 계획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상관없겠어.’
계획의 이행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 계획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되었을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애초에 ‘청유백을 암살한다’라는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진 지금, 평 부인이 준비한 일련의 계획 따위는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 그래도….”
“음?”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청유백의 모습을 어찌 달리 받아들인 것인지, 어린 시비는 주먹을 꽉 쥐며 힘껏 의견을 표했다.
“괜찮아요. 소녀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그, 저것의 처리를….”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되었다.”
“네? 하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을 텐데….”
쉬이 농담으로 치부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이 아이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사람이 농담으로 받았을 것이라며 이야기했다.
이 청유백이라는 녀석의 위치가 조금은 감이 잡혔다.
‘가문 내에서의 암살 위협에, 하인들에게까지 괄시받는 처지라.’
뭐, 상관없다.
백 년 후의 마교, 백 년 후의 머저리면 어떻단 말인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다할 뿐이었다.
“사람은 곧 올 게다.”
“네? 어찌 아시나요?”
“그런 게 있다. 옷이나 준비해 다오. 손님을 맞을 차림은 해야 않겠느냐.”
“그럼… 알겠습니다.”
시비는 조금 의문을 표했지만, 청유백이 명을 내리자 지체 없이 움직였다.
대충, 이 어린 시비 정도는 제 편이라고 봐도 좋아 보였다.
‘달리 말하면 이 넓은 마교에 내 편 하나 없다는 소리로군.’
뭐, 언제는 네 편 내 편 갈라가며 싸웠겠냐마는.
깝치는 놈 있으면 족치고, 말 잘 듣는 놈은 봐 준다.
일 좀 잘한다 싶은 놈도 봐 준다.
그게 마도의 법도 아니던가.
일흔여섯 번이나 살아 보니, 피곤하게 다른 놈들 기분 맞춰 주면서 끌고 가는 것보다 쓸모 있는 놈만 골라서 방치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쓸모 있는 놈이, 이 백 년 후의 마교에는 있을 것인가.
‘과연 이번엔 어떨는지.’
* * *
시비가 가져온 옷가지를 전부 갈아입었을 즈음, 인적 뜸한 이곳에 다가서는 발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그리고 직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명의 사내였다.
둘은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청가의 무인으로 보였고, 하나는 그들을 데려온 시종으로 보였다.
“세상에, 정말로 왔네요.”
“당연히 와야 하는 것 아닌가?”
“평소에는 문 앞에 닭 모가지가 비틀어져 버려져 있거나, 피칠갑이 된 벽에 사(死)자가 쓰여 있어도 무시당했었잖아요.”
“…그래?”
“닷새 전 일인데, 까먹으셨어요?”
“…안 좋은 일은 빨리빨리 잊자는 주의라.”
청유백 이 자식, 생각보다도 취급이 안 좋은 모양인데.
밑바닥에도 또 밑바닥이 있다더니 이게 딱 그 짝이다.
뭐, 그것들을 손봐주는 것은 나중에 언제든 할 수 있는 일.
청유백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사내들을 관찰했다.
‘…무인들의 적의는 없군.’
그야말로 평범한 동행, ‘명령에 따른다’는 표본적인 병사의 태도였다.
하지만 어떨까, 그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시종 사내에게서는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살짝 경련하는 눈빛과, 조절하고 있지만 조금씩 일그러지는 입가.
적의라기보다는 당혹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네놈인가.’
저놈이 바로 평 부인이 보낸 사람이 분명했다.
시종 사내는 청유백에게 다가서더니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셨습니까, 도련님.”
“안녕 못 하다.”
“예?”
거 참, 간밤에 배때지 쑤실 계획을 세우고서 이튿날 ‘안녕하냐’라고 묻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너 같으면 안녕하겠냐? 라고, 목구멍까지 치달은 속내를 청유백은 겨우 참아내며 대꾸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코앞에 시체가 있어서야, 그걸 어찌 안녕하다 하겠느냐?”
“그, 그러시겠군요.”
“게다가 부른 게 언제인데 늦장 부리기까지. 일부러 안녕하다 말하기도 힘들겠군.”
“…그렇지요. 다, 당연한 것을 제가 실언을 했군요. 그러면 시체는 어디에….”
“저기에.”
청유백은 고개를 돌려 턱짓으로 방을 가리켰다.
방 안에 시체가 있노라고.
그리 말한 것을 알아들은 순간 시종 사내의 얼굴이 감출 기색도 없이 팍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표정이 좋지 않군.”
“예? 예, 그, 어… 요즘 안전이 안전이지 않습니까. 이 경비 놈들이 일을 안 해서! 제대로 경을 칠 테니 심려치 마십시오.”
“처리나 똑바로 하게. 피비린내 나는 곳에 몸을 뉘이고 싶지는 않아.”
“무, 물론이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경을 치기는.
네놈 목을 쳐야 할 판인데.
시종 사내가 짓고 있는 표정의 의미는 명확했다.
어딘가 계획이 틀어졌다.
어떻게든 다른 계획을 세우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수순이다.
‘사람은 보통 저마다의 계획이 있기 마련이겠으나….’
보통, ‘잠자는 범의 굴로 들어가서 코털을 뽑고 나온다’ 따위의 일은 계획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인(死因)이라고 부르지.
‘네놈들이 감히 누구를 건드렸는지 깨닫게 해 주마.’
잠자는 천마의 용린을 건드린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