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2)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인지.
‘느껴지는 살기는 하나.’
천류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감각을 집중했다.
이 어린 몸으로는 주변의 기척을 모두 감지해 낼 여력이 없다.
그나마, 가장 직관적으로 피부를 찔러오는 감각인 살기 정도나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지금 자신을 향해오는 살기는 단 하나.
즉, 살수는 혼자라는 소리였다.
‘불행 중 다행이군.’
어둠 속에서 덤벼오는 것이 여럿이라면 지금으로서는 상대할 방법이 없다.
넷, 혹은 셋만 되었더라도 확실하게 죽었을 것이다.
물론, 고작 여덟 살 먹은 어린아이를 죽이는 데 서너 명의 살수를 보내는 것은 낭비이겠지만.
지금은 누군지 모를 배후의 방심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슈욱!
다시 한번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천류하를 목표로 했던 칼은 목표물을 잃고 허공을 휘저었다.
“뭣?!”
두 번이나 빗나갈 줄은 몰랐는지, 어둠 너머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공기가 가라앉았다.
대충 윤곽을 보아하니 자세라도 고쳐 잡은 모양이다.
어둠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준 모양이군.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는 건가?”
“발버둥?”
천류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발버둥이라고?
물론 제 유년 시절이 거지 같기는 했다. 아니, 거지 같다는 말로 무마될 정도랴?
‘병신 같기 그지없었지. 하지만….’
그렇다 하여, 누군가에게 발버둥 따위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락한 인생은 아니었다.
천(天)이라는 성씨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천씨라는 것은 곧 현 교주의 핏줄이며, 미래의 교주의 좌에 대한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세상에서, 마교는 천씨의 집과도 같았다.
감히 누가 미래의 교주일지도 모르는 인간에게 발버둥 따위의 말을 하겠는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천류하는 기억을 헤집으며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일흔여섯 번의 회귀와, 그때마다 일어난 직후의 상황들.
하지만 그중 어떤 회귀에서도, 갑자기 깨어나자마자 습격을 받는 일 따위의 일은 없었다.
모두 같은 날, 같은 때에 깨어났었으므로, 지금 이 상황이 유별나게 특별하다는 것은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회귀한 시점이 달라진 건가?’
이유도, 상황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다.
‘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천씨끼리 서로 암약하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었지. 내가 열댓 살 정도의 시기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어둠 속이라서 확인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러잖아도 몸이 평소의 회귀보다 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번에 딛어지는 걸음의 간격.
시야부터 천장까지의 거리감.
눈앞의 복면인에게서 느끼는 체격의 차이.
결코,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천류하는 처음 맞는 상황에 대해 흥미와 짜증을 동시에 품으며 입을 열었다.
“누가 보냈지?”
스스로 목소리를 내면서도 확실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최소한 평소에 회귀하던 여덟 살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아니다.’
조금 더 굵지만, 아직 성인은 아닌. 대략 약관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소년이 이러할까.
어둠 너머의 살수가 이죽거렸다.
“멍청한 놈. 그걸 말해 줄 성싶더냐?”
“저승길 가는 선물로 알려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킥, 쓰레기 공자의 선물치고는 과분하지. 그냥… 죽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날이 날아든다.
살수 주제에 계속 나불거리길래 그냥 다 씨부릴 줄 알았더니, 그 정도로 폐급은 아닌 모양이다.
─콰각!
천류하가 긴급하게 비튼, 몸의 바로 오른쪽에서 칼날이 벽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류하는 비튼 몸을 그대로 다시 회전시키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컥!”
직후 들려오는 비명소리.
하지만 천류하의 손으로 전달된 감촉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팔이 짧다.
더군다나 몸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뼈가 아니라 복부에 틀어박은 주먹임에도 손목이 시큰거렸다.
‘나약해 빠졌군. 이딴 게 내 몸이라고?’
어릴 적의 감각이 약한 것은 그저 ‘어려서’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아직 수련을 통하여 얻을 기감과 오감이 다시 발달되지 않았고, 그것은 재능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고작 이 정도의 권격으로 관절이 아파온다는 것은, 어리다는 이유로는 변명할 수 없었다.
이건 그냥 나약한 것이다.
수련은커녕, 괭이질조차 해보지 않은 백면서생도 이것보단 강할 것이 분명했다.
‘망할.’
내공 쪽도 그리 형편이 좋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기연을 쓸어가며 성장했던 풍족한 단전은 어디로 갔는지, 형편없이 말라 비틀어졌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단전에 고작 쌀알도 아니고 먼지만 한 내공이 한 톨 있는 정도였다.
이건 뭐 쓰레기 같다는 말도 쓰레기에게 미안해해야 할 수준이다.
‘검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만.’
천류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이만큼이나 제한되다니, 탄식을 금치 못했다.
살면서, 일흔여섯 번의 생을 반복하면서 몇 번 없던 일이었다.
복면인은 그 한숨의 의미를 어찌 받아들였는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비꼬듯 이죽거렸다.
“포기한 건가? 뭐, 쓰레기치고는 분발했다. 편히 죽여주마.”
포기?
포기라.
천류하는 잠깐 고민했다.
그의 인생에서 몇 없던 일이긴 하지만, 뭐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포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면인이 어둠 속에서 몸을 날려왔다.
“죽어라!”
‘어쩔 수 없지.’
천류하는 단전에서 기를 끌어올렸다.
먼지 한 톨, 전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수준의 기다.
육체의 전신에 퍼지기에는 양이 끔찍이도 모자랐고, 어느 한 부분을 강화하기에도 총체적인 양이 모자라 그냥 있는 게 다행인 수준의 내공.
손가락 끝에 딱 한 번, 정말 단 한 순간 맺히는 정도가 최선인 정도의 양이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하지 않던가.
아무리 그라고 해도 답이 없는 상황 정도는 있는 법이었다.
천류하는 손가락을 뻗어 올리며, 한순간 교차하는 복면인의 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뭐, 포기하자.’
만족할 만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남의 목숨까지 노리며 야밤에 칼질할 정도면 적당히 배에 기름칠 정도는 하는 인생이었을 터.
그럼, 뭐.
‘살려서 잡는 건 포기한다.’
─콰득!
복면인의 검과 천류하의 신형이 한순간 교차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복면인은 자신의 가슴팍에 닿은 천류하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저려오는 팔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이, 이게 무슨?”
복면인은 마비되어 오는 사지의 감각을 생생히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천류하는 그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훈혈(暈穴)을 점했다. 기초적인 수지. 교두각에서 안 배웠나?”
이미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눈은 이미 어둠에 적응했고, 방금의 한 방으로 팔의 길이도 대략 파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쓰러뜨리는 과정뿐이었다.
단지, 정말 쓰레기 같은 내공 탓에 긴 시간 제압해둘 수는 없어 그냥 죽여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공이 없는 것은 좀 아쉽군.’
본래 훈혈을 점한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사용한 내공이 하도 적으니 잠깐 한순간 마비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정말 한순간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 벌써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복면인은 바닥을 기며 뒷걸음질 쳤다.
“마, 말도 안 돼, 쓰레기 공자 따위가….”
“그놈의 쓰레기 공자라.”
그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이제 보니 방의 크기나 가구 등의 종류, 배치도 전부 상이했다.
‘내 방이 아니다.’
이 거지 같은 몸과 이상한 방, 게다가 감히 이 천류하에게 쓰레기라?
‘내 전 생을 통틀어 나더러 쓰레기라는 말을 뱉을 수 있던 놈이 있기는 했던가?’
천류하는 우습게 돌아가는 지금의 꼴을 보며 검을 복면인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마비는 곧 풀릴 것이다. 네가 알던 쓰레기 공자가 쓰레기치고는 좀 기묘하다는 건 알아먹었겠고….”
“…….”
“그때까지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보도록 할까?”
이건 설득이 아니라 통보다.
하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잘 나불거리던 복면인은 그래도 꼴에 살수인지, 반항하듯 천류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목숨이 아까울 테니까, 그렇지 않나?”
천류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설픈 연기 따위는 집어치우는 게 좋을 게야, 라고 덧붙였다.
눈앞의 복면인은 정말로 암살에 있어서는 삼류 이하였다.
검술이나 박투술 실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허, 살수가 입을 열어?’
‘죽어라’ 따위의 말을 한 시점에서 이미 삼류조차 되지 못한다.
입도 뻥끗 안 하고, 그냥 슥 들어와서 목 한 번 슥 긋고 떠났다면 어땠을까.
어둠에 적응할 새도 없이 그냥 죽는다.
만약의 경우 따위 없다.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을, 저놈이 스스로 여유 시간을 쥐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천류하는 판단했다.
‘마교의 살수가 아니다. 끽해야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삼류 낭인 정도.’
마교의 정식적인 교육을 통해 길러진 살수?
말 한 마디 하기는커녕, 적에게 포획될 가능성이 일 푼이라도 생기는 순간 극약을 먹고 자살할 것이다.
그게 당연한 순서니까.
그저 ‘그렇게 훈련받았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교의 살수들은 그 규정을 예외 하나 없이 준수한다.
눈앞의 이 어설픈 복면인은 그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존재였다.
결코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자결했겠지.’
“셋을 세겠다. 하나.”
천류하는 왼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세 개 중 하나를 접었다.
자신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 사내에게는 보일 것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저 두 개의 손가락이 접혔다.
하나, 둘, 셋.
마지막 세 번째 손가락이 접히는 순간, 복면인은 잠깐 신음을 흘리고는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궁금하지?”
“그래, 그래야지.”
천류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어둠에 감추었다.
아직 이 상황이 대체 무엇인지도, 무엇이 원인인지도 뭣 하나 모른다.
이 살인 청부의 이유마저도 모르게 된다면 정말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물을 것은, 뭐 당연히.
“누가 보냈지?”
“그건 말할 수 없다.”
“그래?”
그럼 그러든가.
“그러면 굳이 귀찮은 짓 하지 말고 그냥 죽이는 게 낫겠군.”
천류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검을 턱밑까지 들어 올렸다.
“보기보다 강단이 있는 놈이군. 조금은 평가를 수정해 주마.”
평소 같았다면 분근착골(分筋錯骨) 따위의 고문이라도 해서 입을 열었겠지만, 이 몸으로는 무리다.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딱 두 가지.
바로 지금 모가지를 치거나.
치지 않거나.
그 둘의 선택지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뭐 죽여야지.
굳이 살려서 후환을 만들 이유가 무어 있겠는가.
천류하는 복면인의 목에 칼을 디밀고는 속삭였다.
“잘 가라.”
“자, 잠깐!! 잠깐만!!”
칼이 복면인의 목을 파고들어 양분하려는 찰나, 복면인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말하겠다! 말하면 될 것 아닌가!”
“허….”
거 참. 세상살이 한 번 잘할 것 같은 살수로다.
오히려 이딴 게 마교의 살수라면, 이런 병신을 가르친 자식을 찾아 목을 따야 할 판이었다.
천류하는 허탈하게 대꾸했다.
“말해.”
“평 부인이다. 평 부인이 청부했다.”
“…그렇군.”
“이미 예상했나 보군. 그, 그렇기에 말한 것이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지.”
천류하는 일단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조금 다른 고민을 했다.
‘평 부인이 누구야?’
마교에 사람이 몇 명인데, 평씨 쓰는 유부녀가 한둘인가?
이건 뭐 북경에서 왕 서방 찾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평 부인이 누구냐?’라고 물어도 어차피 의미가 없을 테다.
지금의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평 부인의 이름이 나오면 그건 또 뭣에 쓰겠는가?
저가 모르는 사람이면 아무 쓸모도 없는 노릇인데.
‘뭐, 어쨌든… 날이 밝으면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일이지.’
용의선상에 올리는 게 어렵지, 대충 성이라도 알기만 하면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류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난 누구지?”
“쓰레기 공자.”
그놈의 쓰레기, 쓰레기.
대체 이 몸뚱어리 새끼는 무슨 인생을 산 건지 모르겠다.
천류하는 짜증스레 말을 되풀이했다.
“망할, 내 이름이 뭐냐 물었다.”
“처, 청유백이지 않은가.”
청유백?
그건 또 뭐 하는 놈이야?
일흔여섯 번이나 같은 삶을 반복하면서, 웬만한 놈들의 이름은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름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다.
게다가 청(靑)씨?
‘청가의 놈인데, 내가 모른다고?’
청가(靑家)라고 한다면 천류하로서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종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청유백? 확실한가?”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지 모르겠군. 서, 설마… 그래, 그렇군. 날 속인 건가! 청유백을 숨겨두고 다른 고수를….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그 쓰레기 공자가 점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복면인은 저 혼자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계속 중얼거렸다.
대충 듣기로서니, 안타깝게도 계속 죽이니 마니 하는 청유백인가 뭔가 하는 나부랭이가 바로 이 몸의 주인이 맞는 것 같았다.
어둠이 익어가고, 몸에 적응되는 지금에서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청가(靑家)의 청유백(靑柳白).
누군지는 몰라도, 그런 이름을 가진 놈의 몸인 듯했다.
허나, 그렇다면 제 몸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럼 천류하는 누구지?”
“천류하? 설마 패도천마를 말하는 건가?”
“그래. 패도천마 천류하.”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미묘한 별호였지만, 그래도 복면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복면인은 대놓고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백 년 전의 전쟁에서 전사하신 선대 마교주가 아닌가. 뭘 묻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수수께끼 놀음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뭐?
백 년 전?
“백 년 전이라고?”
“망할, 농담 따먹기나 할 거라면 그냥 보내줬으면 좋겠군. 어디 가서도 말 안 할 테니… 나도 쓰레기 공자가 아니라 다른 놈이 있는 줄 알았으면 이런 일 안 받았다.”
“대답이나 하지.”
천류하는 칼을 다시 깊게 들이밀었다.
투정 따위를 들어 줄 상황이 아니었다.
백 년?
그 거지같은 전쟁에서 백 년이나 지났단 말인가?
복면인은 상소리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젠장, 그래. 백 년! 올해로 딱 백 년이군. 마교도라면 모두 아는 사실 아닌가!”
“허, 백 년, 백 년이란 말이지.”
백 년이.
지났단 말이지.
‘이제야 알겠다.’
이상한 몸뚱어리에, 처음 보는 방, 처음 맞는 상황.
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고, 어떤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마지막 생사결에서 자신이 이겼노라고 빌어먹을 하늘이 편을 들어준 것일까.
‘아니,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단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으니, 그것이면 족했다.
일흔여섯 번에 이르는 회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그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다.
천류하는 지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다른 사람으로의 환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당신도 밖에서 데려온 고수인가 보지? 하긴, 마교에서 그 자식을 도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인가.”
‘대체 이 청유백이라는 놈은 무슨 짓을 했길래 취급이 이 모양이지?’
아니, 아니다.
그 또한 알아가면 될 일.
천류하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말할 건 그게 다인가?”
“무슨 말인가. 물어봐야 무슨 말을 하지.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다냐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복면인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뭐, 옳은 말이다.
백번 옳은 말인데.
목에 칼이 디밀어진 상황에서 할 말로는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니지 싶다.
“무슨 소리냐? 유언 들어주겠다는 소리인데.”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나!”
“뉘 집 견공이 짖나?”
목숨 아깝지 않냐고 했지, 살려 준다고는 안 했다.
청유백의 비소에 복면인의 눈매가 대놓고 찡그려졌다.
“그런 비겁한….”
“야밤에 문 따고 들어와서 칼 휘두르는 놈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그래?”
“자, 잠깐!”
─서걱.
복면인은 무어라 말을 이을 새도 없이 한순간에 절명했다.
아까의 주먹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익숙한 감각이 손끝에 전해져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