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그와 그녀 (3)
서백풍의 거처 또한 곽승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사가 끝나기까지 한 달 가량이 예정되어 있었다.
“사랑채는 안 된다. 이미 들어오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별채는 보시다시피 천마신교에서 점거했고.”
“저야 뭐 어디든 상관없이 감사할 뿐이죠. 앞으로는 문 소저도 매일 놀러오게 할 건데, 괜찮죠?”
서백풍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문주란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그그, 그런 폐를 매일 끼칠 수는…….”
그러자 단유소가 문주란을 향해 말했다.
“문 소저.”
“예, 단 공자님…….”
“당황한 척하시지만 이미 눈이 웃고 있는 이유는 뭡니까.”
“그그, 그, 그런…….”
잠시 우물쭈물하던 문주란이 말했다.
“시, 실은 집에 있으면 제 일상은 늘 똑같거든요. 한데 여기에 잠깐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 정겹고 즐겁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차피 저도 나중에 이곳에 들어와서 살아야 할 텐데 미리 친해질 겸, 좋겠다는 생각에…….”
단유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농담이었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놀러 오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아울러 모든 분들께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저희들이야말로.”
이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유소가 멀리 보이는 앞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소운이는 안 보이네?”
저 앞에 보이는 집에 거주하기로 한 사람은 연소운이었다.
정문 쪽에서 가깝기에 사람의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는데, 선배들이 기피할 것을 알고 막내인 연소운이 알아서 그곳을 거처로 삼은 것이다.
그러자 곽승추가 되물었다.
“조장님 소운이네 집, 들어가 보셨습니까?”
“아니. 인기척이 없기에 지나오면서 외관만 봤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던데?”
연소운의 거처 또한 가옥으로 쓰던 곳이라서 애초에 간단한 수리와 정리만이 필요한 상태였었다. 아까 한설연과 함께 걸어오면서 보니, 역시나 입주하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곽승추가 말했다.
“이사는 며칠 전에 이미 끝낸 상태인데, 안에 들어가 보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정말 멋지게 꾸며놨더라고요.”
“그래? 소운이가 그런 쪽에 소질이 있었나?”
“소운이가 한 게 아닙니다. 소수궁 쪽 사람들이 한 겁니다. 매입한 다음 날부터 그들이 부지런히 드나들며 작업을 한다 싶더니, 결국 그렇게 만들어놨더라고요. 그 집 별채에는 심 소저가 머물고 있는데, 별채도 멋지게 꾸며놓았더군요.”
“하긴. 소옥이가 소운이랑 친하긴 하지.”
단유소가 그렇게 대꾸하자 이번에는 서백풍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가 볼 때는 그 두 사람, 단순히 친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뭔가가 더 있어요.”
“무슨 뜻이냐?”
“진즉에 집 다 꾸미고, 이사도 다 끝내놓고, 둘이서만 신나게 놀러 다니고 있거든요.”
“무공 수련하러 다니는 게 아니고?”
서백풍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꾸했다.
“두 사람 다 무공 수련하러 가는 복장이 아닙니다. 특히 심 소저는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뭐랄까, 귀엽게 보이는 복장을 주로 입었잖습니까. 얼굴은 원래 동안에 피부도 좋으니 딱히 치장도 안 했고요.”
“그랬지.”
“그런데 소운이랑 외출할 때는 늘 신경 써서 치장한 모습이란 말입니다. 복장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워 보이는 것으로만 입습니다. 마치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입고 둘이서만 놀러 다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진평이 말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일전에 수중 수련을 할 때, 저는 특히 그 두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둘 사이에 오가는 느낌이 묘했습니다.”
“어떤 느낌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심 소저는 늘 소운이에게 거친 언사를 쓰잖습니까. 한데 하는 행동은 그런 언사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늘 소운이를 가장 먼저 챙기고, 가장 많이 챙겼습니다. 특히, 수련에 집중한 소운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심 소저의 표정은 늘 애틋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곽승추가 말했다.
“소운이는 녀석만의 순수하고 착한 매력이 있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죠. 잘해주면 그만큼 보람이 느껴지는 녀석이고요. 충분히 모성애 비슷한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심 소저는 겉으로 보이기에만 소녀지, 원래는 저와 동갑이 아닙니까. 소운이보다 어른이고요.”
그러자 단유소가 물었다.
“서로가 충분히 끌릴 수 있는 사이다?”
“예. 뭐, 이상할 것도 없고요.”
단유소가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따가 한번 확인해보자고.”
* * *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른 초저녁.
마당의 사방에서 횃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마당 중앙에는 긴 탁자 두 개가 이어져 있었다. 그 앞에 앉아서 몇 명이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진평의 가족들은 모두 거처로 돌아갔고, 서백풍도 문주란을 바래다주고 온 후에 합류해 있었다.
결국 모든 묵룡조원들과 한설연 그리고 송주와 홍련, 심소옥 등이 함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단유소가 한쪽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연소운과 심소옥을 바라보며 물었다.
“둘이 요새 부쩍 붙어서 놀러 다닌다며?”
그 말에 연소운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심소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단유소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다웠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연소운과 심소옥에게 집중되었을 즈음, 가만히 단유소를 바라보던 심소옥이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숙부. 내가 쟤 좋아하거든.”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평소 심소옥의 성격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까지도 저렇듯 거침없이 밝힐 줄이야.
“누, 누, 누, 누나…….”
연소운마저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의외의 고백을 받은 사람의 표정이랄까.
심소옥이 단유소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안 돼?”
단유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안 될 리가. 그런데 소운이도 같은 마음인 거야?”
그러자 심소옥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연소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싫어?”
“아, 아뇨! 왜 싫겠어요. 다만…….”
“말해.”
“그 말은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그러자 심소옥이 환하게 웃었다.
“누가 먼저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연소운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일 때 단유소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두 사람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모두가 건배한 후에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켰다.
진평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신룡대의 일을 하며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데 정말로 이런 날이 오다니.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그러자 서백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날이 온다 해도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옆에 짝이 있어도, 조장님의 옆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하핫. 아시다시피 조장님이 워낙 연애 쪽으로는 워낙 숙맥이었던지라.”
그 말에 묵룡조원들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유소가 대꾸했다.
“이 사람들이…….”
“말이야 맞는 말이잖습니까.”
진평이 쐐기를 박자 결국 단유소가 손을 들었다.
“부정할 수가 없군.”
그러자 서백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랬던 우리 조장님이 한 소저 같은 분과 이렇게 될 줄이야.”
그 말에 단유소와 한연이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곽승추가 단유소에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일전에 최익 대협을 통해서 했던 주선연이 잘 안 된 게 다행이라고 봐야겠지요? 만약에 그때 잘됐으면 지금처럼 두 분이 잘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 말에 한설연이 살짝 움찔했다. 다행히 그녀의 기색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곽승추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소개받기로 했던 양 소저도 참하고 예쁜 소저라고 했습니다. 최익 대협에게서 듣기로 우리 조장님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이라서 추진했던 거고요. 그런데 하필 그쪽 양 소저가 주선연 직전에 다리를 다쳤대서…….”
“다치지만 않았으면 그 소저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과 짝이 될 수도 있었겠군? 사람의 앞날이나 인연이라는 건 역시 알 수가 없다고 할까…….”
송주의 대꾸였다. 그는 묵룡조원들과 이미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
곽승추가 말했다.
“한데, 양 소저야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면 정말 쌤통입니다. 당시에 다친 양 소저 대신 주선연에 나와서 조장님과 만났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양 소저의 상황을 전해주러 나왔었다는데, 글쎄 그 여자가…….”
“그쯤 해라. 뭐 하러 한참 지난 얘기를 들먹여?”
단유소가 곽승추의 말을 끊으며 그렇게 말하자, 곽승추가 대꾸했다.
“그래도 괘씸하잖습니까. 다시 생각해도 괘씸하네요.”
“뭔데 그렇게 괘씸해요?”
심소옥마저도 관심을 보였다. 곽승추가 바로 대꾸했다.
“애초의 목적대로 양 소저의 상황만 전해주고 들어가면 되는 거잖습니까? 그럼 조장님도 그렇거니 했을 텐데, 글쎄 그 여자가 차 한잔 마시자고 하면서 조장님을 이리저리 떠본 겁니다. 조장님에게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듯 물어보면서, 마치 본인이 주선연 상대자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답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조장님은 그 여자가 마음에 드셨던 겁니다. 어차피 당시의 상황이, 조장님과 양 소저가 다시 만나기는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다친 다리가 며칠 새에 나을 것도 아니고, 조장님도 워낙 바쁘시니까. 어쨌거나 조장님은 그 여자에게 계속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가 거절을 당한 겁니다.”
그러자 송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뭐, 그런 상황에서 그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 친구 입장에서도 고백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한데 그 여인의 입장에서도 거절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예. 당연히 거절할 수도 있지요. 문제는 거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장님에게 온갖 안 좋은 말들을 다 늘어놓은 후에, 마지막에 가서 본인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거절했답니다.”
“허어.”
“아니, 그러면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으면 될 일 아닙니까? 그랬으면 조장님도 바로 단념했을 것 아닙니까. 사람 바보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냔 말입니다.”
곽승추는 지금 생각해도 열 받는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그건 좀 그렇다.”
“괘씸하긴 하네.”
“이상한…… 여자네요.”
마지막에는 평소 말수가 적은 홍련까지도 한마디 했다. 그러자 곽승추가 말했다.
“그날 조장님과 술 한잔했는데, 그렇게 상심한 조장님의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장님, 그 상황에서도 그 여인에 대한 욕은 한마디도 안 하시더군요. 다 본인 탓이라면서.”
곽승추가 한설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몇 달 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소저께서 조장님과 함께하고 계신 게 너무 보기 좋아서 드린 말씀이고요. 지금은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즈음 단유소와 한설연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미묘한 표정이었다.
단유소가 한설연을 향해 미약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으나, 한설연은 어딘지 모르게 결연한 눈빛이었다. 이윽고 한설연이 입을 열었다.
“그 괘씸한 여자, 저였어요.”
“……예?”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모두가 어리둥절해할 때, 한설연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곽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양 소저라는 아이의 이름은 금영이에요. 저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죠. 즉, 몇 달 전에 단 공자님의 주선연에 대신 나갔다던 그 여자가 바로 저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 물론 그때는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지만.”
“예에에에에에?”
놀람과 당황함으로 가득한 모두의 시선이 한설연에게 집중되었다.
한설연의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주선연 이야기부터 단유소를 거절할 당시의 이야기. 그리고 한설연 본인이 비밀리에 강호에 나올 당시에 단유소가 비마대원으로 함께하게 되어 깜짝 놀랐던 이야기까지.
“그 후에는 단 공자님과 둘만 남아서 혈천맹의 추격을 받게 됐어요. 단 공자님이 없으면 저는 죽을 목숨이었죠. 그런데 그때 단 공자님이 저를 알아본 거예요. 제가 주선연의 당사자였다는 걸.”
“하……!”
“단 공자님에게 주선연의 일에 대해 사과를 하는데, 너무 염치가 없었어요. 누가 봐도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모양새잖아요. 단 공자님이 속으로 나를 얼마나 야비한 사람으로 생각할까. 그래도 나, 그렇게까지 최악인 사람은 아닌데. 왜 하필 상황이 이렇게 된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한설연이 독백처럼 말을 이었다.
“주선연을 할 당시에는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자존심만 세서는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이 강호마저도 우습게 여겼어요. 그런 마음으로 강호에 나섰으니, 그 대가가…… 그렇듯 클 수밖에 없었겠죠.”
한설연이 말을 맺었다.
그녀의 과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그녀를 향해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연소운이 말했다.
“이야! 두 분의 인연도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예, 연 공자님. 돌이켜 보면 저도 신기하니까요.”
한설연이 대꾸하자 송주가 물었다.
“단순히 궁금해서 그러는데……, 당시에 이 친구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주선연의 당사자가 한 소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 소저가 사과했을 때 말입니다. 물론 임무였을 테니 호위야 열심히 했겠지만, 함께하면서 한 소저가 느끼기에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거나…….”
“그때 저는 이렇게 사과했었어요. 단 공자님이 고수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주선연 당시의 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고. 그랬더니 단 공자님은 그 말을 믿는다고만 하셨어요. 실제로 그 후에도 단 공자님은 제게 악감정을 보이지도, 꺼려하지도, 멀리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으셨죠. 오히려…….”
모두가 집중한 가운데 한설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를 지키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싸우셨어요. 싸우느라 본인이 더 힘들 텐데도 언제나 상냥하셨고, 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늘 잡아주셨지요. 심지어는 제가 저 스스로를 포기하려 할 때에도, 단 공자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한설연의 목소리가 크게 일렁였다. 물기가 가득해진 눈으로 한설연이 어렵게 다시 목소리를 냈다.
“세상의 어떤 여자가 이런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복에 겨운 여자랍니다.”
그러자 단유소가 한 팔로 한설연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누가 하고 싶은 말을.”
밝은 달이 하늘 위로 조금 더 올라가고, 모두가 기분 좋게 취해갈 무렵, 두 사람이 찾아왔다. 적룡과 선화란이었다.
“온 줄도 몰랐잖나. 혹시나 하고 들러봤는데 이렇게 다들 모여 있을 줄이야.”
“서운해애.”
적룡과 선화란이 단유소에게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단유소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썩 서운해하는 느낌은 아닌데.”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들 하지.”
송주도 끼어들어서 한마디 거들자 적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 틀린 말 아니더군.”
“모두 다 청춘이네.”
단유소가 웃으며 그렇게 말한 후, 적룡과 선화란에게 술을 따랐다. 그러자 적룡이 말했다.
“아, 우리도 이 장원에 입주할까 하는데.”
“으잉?”
“보니까 저쪽 구석에 터가 하나 있더군. 아담하게 한 채 지을 거고, 자네가 없을 때 이미 시공업자들도 다녀갔네. 이 장원 인수할 때 각자 자금을 각출했다던데, 당연히 나도 그 비용은 낼 거고.”
그러자 서백풍과 곽승추가 적룡에게 말했다.
“오! 입주 축하드립니다, 조장님!”
“두 분 조장님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두 사람은 이 장원을 구하는 와중에 거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평소 돈을 잘 써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모아둔 자금이 적었던 탓이다.
어차피 봉급이 높으니 잠깐의 쪼들림일 뿐이겠지만, 이왕이면 적룡이 낼 입주 자금으로 어느 정도는 경제 상황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다.
단유소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젠 뭐, 어찌 돼도 상관없다고 할까…….”
그리고 그날의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