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최후 (2)
단유소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무복과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미 그의 경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온몸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척조강도 기운을 끌어올리며 일어섰다.
“보고를 받은 적이 있지. 그대도 진원진기를 통해 일순간 강력해지는 무공을 익혔다더군. 물론 그 강력함만큼이나 위험성도 크겠지만.”
그 말에 단유소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서로가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기운을 끌어올리던 어느 순간, 척조강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은은한 은빛 기운이 묵룡의 전신을 감싸는 듯한 착각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이 아닌 현실이었다.
“기이하군.”
척조강이 미소 띤 표정으로 말했다. 놀람이 담긴 미소였다.
“무공명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척조강의 물음에 단유소가 대꾸했다.
“대라혼원공이라 하오.”
대라혼원공(大羅混元功).
대라유유선공과 혼원태극공이 합일을 이루어 탄생하게 된 무공이었다. 무공명은 사부인 백리극이 붙였다.
척조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대라혼원공이라……. 아마도 그게 현재 이 강호의 최고 절학이겠군.”
미소 띤 표정으로 그 말을 마친 순간, 척조강의 몸을 은은한 핏빛 기운이 감싸기 시작했다.
“혈황파천공(血荒破天功)이라 한다네.”
“아마도 그게 이 강호에서 최고로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무공이겠구려.”
그 말에 척조강이 재미있다는 듯 웃을 때쯤 단유소가 말했다.
“가겠소.”
척조강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단유소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척조강의 눈동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곧 척조강이 신형을 급격하게 좌측 후방으로 틀었다.
은빛의 강력한 검강이 찔러오고 있었다.
척조강이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콰앙!
강력한 폭음이 들렸을 때 척조강이 그 자리에서 살짝 도약했다.
허공에 떠오른 그의 발밑을 반월형의 은빛 강기가 휩쓸었다.
척조강이 여전히 허공에 있는 상태에서 몸을 비틀며 한 방향으로 검을 떨쳐냈다.
슈슈슈슈슉―
핏빛의 강기 다발이 향한 곳에 단유소가 있었다.
콰과쾅!
더러는 막고 더러는 피한 단유소가 또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단유소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척조강의 등 뒤, 지척이었다.
슝―
은은한 은빛을 머금은 검강이 척조강의 등 한복판을 찔러갔다.
매섭고 강력했다.
이를 악문 척조강이 급격하게 신형을 비틀며 검병을 양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이미 피하기는 늦은 시점.
무조건 막아야 했다.
상대인 묵룡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탓이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폭음이 울린 순간, 척조강은 온몸을 울리는 충격을 느껴야 했다.
놀라웠다.
상대가 아직 젊기에, 본격적으로 붙으면 적어도 내공에서만큼은 우위를 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저 정도로 강력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정신이 아찔한 와중에도 척조강은 본능적으로 묵룡의 움직임을 쫓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묵룡의 기척은 이미 사라져 있었고, 네 가닥의 은빛 검강만이 그의 전신 요혈을 향해 날아들고 있을 뿐이었다.
스으―
네 가닥의 은빛 검강이 척조강의 요혈들에 닿을 때쯤, 거짓말처럼 척조강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단유소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아무리 척조강이라 해도 방금 전의 공격에 대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한데 이건 단순한 대처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척조강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척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유소에게서는 조금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척조강을 찾으려 하는 대신,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러길 잠시 후.
단유소가 눈을 번쩍 뜨더니 빠르게 신형을 회전시켰다.
강력한 기운을 담은 검붉은 장검이 이미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우측 후방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허를 찔러온 척조강의 공격.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과연 혈천맹주.
대단한 한 수였다.
곧 핏빛 기운과 은빛 기운이 맞닿았다.
콰아아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렸고, 또다시 재와 흙먼지가 비산하여 온통 시야를 가렸다.
단유소는 강력한 충격과 함께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슷―
몸의 중심을 잃고 날아가는 단유소를 척조강이 바짝 뒤쫓았다.
단유소가 척조강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에서 은빛을 머금은 지풍 다섯 가닥이 발출되어 척조강에게로 향했다.
슈슈슈슈슝―
척조강이 검을 휘두르며 지풍을 막아갔다.
카가가가강!
핏빛 강기에 의해 은빛을 머금은 작은 기운들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고 생각된 순간, 척조강이 두 눈을 부릅떴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던 다섯 가닥의 지풍이 갑자기 허공에서 튕기듯 경로를 바꾸어 또다시 일제히 자신에게 날아드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수법에 척조강은 결국 추격을 포기한 채, 지풍에 대처해야 했다.
뒤로 날아가던 단유소가 자세를 바꾸었다.
그의 양발이 바위를 디뎠다.
콰곽!
집채만 한 바위에 쩍하고 금이 갈 때쯤, 허공에서 간결하게 제비를 돈 단유소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척조강이 단유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척조강이 물었다.
“어떻던가?”
단유소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죽을 뻔했소.”
“칭찬은 고마운데, 죽을 뻔했던 사람치곤 너무 멀쩡하군그래.”
단유소가 피식 웃자 척조강이 다시 말했다.
“내가 한 수를 보였으니 이제 자네는 더 강력한 한 수를 보이겠지.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소름끼치는구먼.”
“우는 소릴랑 집어치우시고…….”
단유소가 말을 줄였을 때였다.
스윽―
단유소의 양쪽 종아리에서 두 자루의 흑색 쌍소검이 두둥실 떠올랐다.
단유소의 양옆으로 떠오른 두 자루의 소검이 수직으로 세워진 채로 서서히 움직였다. 단유소를 중심축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척조강의 눈동자에 이채가 담길 때쯤, 단유소가 말을 이었다.
“악당이면 끝까지 악당답게 가시구려.”
말을 끝냄과 동시에 단유소의 신형이 척조강을 향해 또다시 짓쳐들었다.
주변을 회전하던 흑색의 쌍소검이 단유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척조강을 향해 날아간 후였다.
척조강을 향해 짓쳐든 단유소가 지체 없이 검을 쑤셔 넣었다.
콰앙!
공격을 막은 척조강의 입술선이 비틀어졌다.
공격의 위력이 아까보다 더 강력해져 있었던 탓이다.
쐥― 쐐앵―
그러자마자 척조강의 후방에서 두 개의 강력한 기운이 날아왔다.
방금 단유소가 척조강에게 달려들기 직전에 그의 주변을 떠났던 두 자루의 쌍소검이었다.
놀랍게도 단유소는 척조강과 격렬하게 얽히는 동시에, 두 자루의 쌍소검까지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척조강이 살짝 상체를 비틀었다.
쌍소검 한 자루는 본인의 검으로 쳐냈고, 또 한 자루는 장력을 발출하여 막아냈다.
캉! 퍼엉!
그 순간에 단유소는 이미 척조강의 등 뒤로 검을 쑤셔 넣는 중이었다.
하지만 척조강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신형이 기묘하게 휘어지더니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단유소가 검로를 변경하며 또다시 척조강의 요혈을 노렸다. 동시에 강기를 가득 머금은 흑색의 쌍소검이 또다시 후방에서 척조강을 향해 짓쳐들었다.
세 방향을 점하고 들어오는 강력한 공격.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척조강의 양미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주름이 잡혔다고 생각된 순간.
갑자기 척조강의 몸에 엄청난 기운이 집중된다 싶더니, 그를 중심으로 강력한 기운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 기운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파앗!
퍼벙! 캉!
단유소의 검도, 뒤쪽에서 날아오던 두 자루의 흑색 쌍소검도 모두 튕겨 나갔다.
단유소의 표정에 놀람이 서렸다.
아마도 호신강기를 이용한 방어식인 모양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력한 방어식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던 것이다.
보아하니 척조강의 모습이 이전과는 달랐다.
그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던 핏빛의 기운이 더 짙어진 채, 마치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내 단유소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결국 척조강도 진원진기를 통해 강력해지는 무공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척조강이 미소 띤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밑천까지 다 드러내게 만드는군. 대단해. 그대는 역시 대단해.”
단유소는 묵묵히 척조강의 시선을 응시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척조강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자네도 각오해야 할 걸세.”
단유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부터, 단유소의 몸을 감싼 은빛의 기운도 더욱 짙어졌다.
생사가 걸린 결투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캉! 카가강!
퍼벙! 쾅! 콰과과광!
분명히 두 사람이 격전을 펼치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계속 여기저기에서 빛이 번쩍이고, 폭음과 굉음들만이 일대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모르는 이들이 봤으면 이곳에서만 계속해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다고 여길 만한 광경이었다.
그 정도로 단유소와 척조강은 빠르게 공수를 교환하며 쉴 새 없이 얽히는 중이었다.
한시도 방심할 수도 없고 방심해서도 안 되는 긴박한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었지만, 단유소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몸의 상태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최대한으로 운용하는 대라혼원공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빠르고 강력하며 안정적이었다.
혼원태극공을 운용하던 시절처럼 뒷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대라혼원공을 최대한으로 운용할 시의 단점은 공력의 소모가 매우 크다는 점뿐인데, 그 또한 단유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복용했던 영약들의 영향이 컸다고 봐야 했다.
영약들 하나하나의 효능도 효능이지만 대라유유선공의 신묘함으로 인해 약효가 내공으로 흡수된 비율도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척조강의 기세가 여전히 사납고 매서운데도 불구하고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지를 두면 절로 그곳에 검이 알아서 가 있었다.
그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느껴지는 건 오직 무한한 자유였다.
펑! 퍼벙! 콰과과광!
두 사람의 싸움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강렬한 은빛 기운과 타는 듯한 핏빛 기운이 더욱 맹렬하게 얽혔다.
쉬지 않고 이어진 진기의 폭발로 인하여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대지가 울렸고, 일대의 대기는 온통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반각 남짓이 흘렀을 때쯤.
은빛의 기운은 여전히 형형한데, 핏빛의 기운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척조강이 일으킨 진원진기의 힘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서로의 몸 상태에도 차이가 있었다.
단유소의 경우에는 의복만 몇 군데가 갈라졌을 뿐인데, 척조강의 경우에는 신체의 이곳저곳에 잔상을 입어 혈흔이 보였다.
예견된 결과였다.
진원진기의 힘을 이용한 만큼 척조강의 폭발적인 힘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시간이 다하니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내공이 다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힘이 유지되는 단유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퍼어엉!
진기가 한 차례 강력하게 맞부딪치자 척조강의 신형이 결국 휘청거렸다.
그 순간 단유소가 들고 있던 검을 살짝 허공으로 띄웠다.
곧, 허공으로 떠오른 검의 검극이 척조강에게로 향한 상태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유소가 하늘을 향해 양팔을 펼치자 검의 숫자가 세 개로 불어나더니, 세 개가 아홉 개로, 아홉 개가 다시 스물일곱 개로, 스물일곱 개가 한 번 더 분열하여 여든한 개로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새에 불어난 그 모든 검들이 은빛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척조강이 두 눈을 부릅떴다.
‘미친! 저 모든 게 허상이 아닌 실상이라니……!’
이윽고 단유소가 펼치고 있던 양팔을 들어 올리자 수십 개의 검기가 각각 다른 궤적으로 빠르게 호선을 그리며 허공에 넓게 퍼졌다.
보는 것만으로는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었지만, 척조강의 입장에서는 한가하게 감탄이나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곧 척조강의 신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단유소를 향해 쏘아졌다.
마치 몸과 검이 하나가 된 듯, 척조강의 기세는 강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순간, 단유소가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있던 양팔을 세차게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넓게 퍼져 있던 수십 개의 검이 척조강이라는 한 점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단유소의 지척에 이른 척조강의 몸에서 또다시 강력한 진기의 파동이 일어났다.
퍼버버버버버벙!
콰과과과과과과광!
어마어마한 폭음이 천지에 진동했다.